그것도 집 안에서?

 ‘펑’ 소리가 난 다음에 들린 것은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였다. 대로변 쪽으로 난 큰 창문이 있는 방에 앉아있었는데 이는 밖에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막연히 상상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방문을 열어 부엌으로 향했다. 얇디얇은 리델 와인잔을 쓰면서도 이런 상상은 해 본 적이 없는데. 직감이란 이럴 때만 적중한다. 로또나 좀 맞혀보지.
  그 상상이란 것은 바로 콤부차를 담은 스윙 유리병이 콤부차가 발효되면서 나오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깨질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약 10년 전에는 텔레비전에 광고까지 하던 청담어학원이라는 곳을 꽤 오래 다녔다. 여러 레벨로 반이 나뉘어 있었고, 청담동 본원은 일정 레벨 이상의 수업만 진행했다. 처음 레벨 테스트를 봤을 때 본원 가기 조금 아쉬운 레벨이라 광진 브랜치를 다녔고, 거기서 몇 달 다니다가 청담동으로 학원을 옮겼는데 우리 엄마가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어쨌든 거기가 본원이고, 또 다른 핫한 브랜치로는 대치 브랜치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가 본원이기 때문에 대치동에서도 오는 친구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사실 대치동뿐만이 아니라 서울, 심지어 몇 명은 분당 같은 데에서도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청담어학원 본원은 이렇게 많은 사춘기 청소년들의 애증이 담긴 곳이다. 그런 곳답게 낙서가 빠질 수 없다. 지금도 기억 나는 낙서이자 모르는 사람이 없던 낙서는 바로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놓고 그 옆에 ‘청담어학원 폭발 버튼’이라고 적힌 낙서였다. 많은 친구들이 학원이 무너지길 바라며 그 낙서에 손을 댔다. 그걸 누른다고 학원이 무너질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나의 상상도 그런 것이었다. 아니,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놈의 불안감]
  <해지면_일기>를 오래 읽어온 구독자라면 알겠지만, 발행인은 불안도가 놓은 중생이다. 부끄럽지만 징크스도 있다. 최근 약 한 달 동안 여기저기에 자기소개서를 쓰고, 입사 지원서를 보냈는데 그런 상황에서 ‘펑’ 소리를 내면서 열리는 2차 발효 중인 콤부차의 가스를 빼주는 게 이상하게 힘들었다. 아니, 힘들기보단 무서웠다. 매번 하던 것인데도 이상하리만치 두려웠다. 그래서 방치했다. 방치의 결과는 위에 기술한 내용과 같다.
  룸슬리퍼를 신고, 마트에서 알바할 때 받은 고급 목장갑을 끼고 부엌으로 향했다. 병이 깨진 것이 아니라 ‘터진’ 것이었기에 상황은 생각보다 처참했다. 바닥뿐만이 아니라 가스레인지, 조리대, 선반 위에도, 심지어 거실 바닥까지 유리 조각이 튀었다. 큰 유리 조각부터 은은한 반짝임을 자랑하는 유릿가루까지, 문제 상황이 일어났을 때 부엌에 아무도 있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2시간 동안 유리조각을 치웠다. 청소기를 돌리고, 돌리고, 또 돌렸다. 조금 지저분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아 조리대와 가스레인지 위에도 청소기를 돌렸다. 청소기를 돌린 다음에는 물티슈로 바닥을 닦았다. 그렇게 2시간 동안 유리 조각을 치웠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폭탄은 그리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상온에 둔 콤부차가 끊임없이 발효되면서 폭탄이 되기 약 2시간 전에 냉장고에 넣은 다른 콤부차가 한 병 더 있었다. 냉장고 속의 시원한 온도 덕에 발효가 더뎌져서 터지진 않았지만 어떤 조치를 취해야 된다고 느꼈고, 인스타그램 세상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욕조에 물 받고 열어봐라’, ‘일단 병 속의 내용물과 깊은 대화를 나누어봐라’ 등의 답변을 받았는데 한 친구가 119에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이런 걸로 119에 전화를 거는 것이 올바른 행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냉장고 속의 병을 그냥 여는 것이 너무 겁이 났고, 병이 또 터진다면 정말이지 위험한 상황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염치 불구하고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전화를 받으신 119 대원분께서는 진지하게 고민에 응해주셨고, 병을 망치 같은 걸로 부시라는 답변을 주셨다. 
[냉장고 문짝에 구멍 뚫는 상상을 해보셨나요?]
  우리 집에는 옥상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없는 곳에서 망치로 병을 부수는 것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일이 커지기 때문에 최대한 평화로운 방법을 모색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구글링을 해도 나와 정확히 일치하는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고, 콤부차 폭탄을 경험한 콤부차 메이커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공감에서 오는 위로도 잠시, 끔찍한 내용을 읽었는데 바로 ‘냉장고 안에서 콤부차 유리병이 폭발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냉장고 안에 2차 발효 중인 콤부차를 여러 병 넣어놨는데 그중 몇 개가 터져서 냉장고 문짝에 이미 구멍이 난 상태고, 아직 터지지 않은 병들을 처리할 방법을 몰라서 그냥 나머지 병들이 알아서 폭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발. 시발. 시발. 냉장고에 있다고 마냥 안심할 게 아니었다. 최대한 빠르게 조치를 취해야 되었다. 
  혹시라도 파편이 튈 것을 대비해야 했다. 119 대원분께서는 나무 상자에 넣고 깨뜨리라고 하셨는데 우리 집에 그런 게 있을 리가. 마침 생일에 받은 리델 와인잔 상자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 상자와 세탁해 놓은 여분의 피아노 의자 커버 그리고 망치를 챙겼다. 반바지를 벗고 스웨트팬츠로 갈아입었고, 입고 있던 스웨트셔츠 위에 데님 자켓을 걸쳤다. 반스 올드스쿨을 신고, 고급 목장갑 위에 고무장갑을 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콤부차 병을 꺼내 옥상으로 올라갔다. 
[새벽 2시 쯤에 일어난 일입니다]
  깨뜨리려고 작정하고 올라갔는데 병을 보는 순간 고민이 들었다. 병 안에 빈 공간이 생각보다 많아서 그냥 열어도 될 것 같았다. 일단은 병을 피아노 의자 커버로 둘둘 말아 상자 안에 넣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병의 목 부분만 빼꼼 꺼내놓았다. 병을 망치로 부수는 대신 열어보기로 했다. 장갑 낀 손을 스윙병 뚜껑 고리에 걸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움직이면 병이 열린 것이다. 그 뒤의 일은 몇 초 뒤의 내가 알겠지. 

  하지만 쉽사리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뜬금없지만 아케이드 파이어의 ‘My Body Is a Cage’가 떠올랐다. 오르간 솔로가 등장하는 클라이막스라면 철사를 올릴 용기를 줄 것 같았다. 그 타이밍에는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벽 2시였다. 일단 음악을 틀었다. 수백 번 들어 본 노래에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을 집중했다. 아 클라이막스가 이렇게 빨리 등장하는 거였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철사에 살짝 걸쳐만 둔 손가락을 올렸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증명이다. 그냥 가스를 빼줄 때와 같이 ‘펑’ 소리를 내며 병이 열렸고, 콤부차 거품이 조금 넘쳤다. 나의 완전무장이 부끄러웠지만, 다행히도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최근 우리 동네의 아무개 씨가 닭을 기르기 시작했는지 닭 우는 소리와 함께 아케이드 파이어의 고딕 감성 음악이 재생되고 있었다. 
[인생은 샴페인]
  병을 열 때 가스와 함께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콤부차 이외에도 샴페인을 비롯한 스파클링 와인이 있다. 안도감과 허망함을 동시에 느끼며 새해에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 생각났다. 새해맞이 셀프 선물로 빨간 라벨의 파이퍼 하이직을 한 병 사서 혼자 병을 비우면서 ‘열기 전에는 겁나지만, 막상 열면 별일 없이 맛있는 액체만 나온다. 겁내지 말자’ 이런 글을 썼던 걸로 기억한다. 
  저거 하나 열겠다고 망치를 들고 완전무장을 한 채로 브금까지 깔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도전을 무서워해서 할 일을 미루는 내가 부끄러웠고, 발전이 없는 내가 부끄러웠다. 벼락치기를 하면서도 이런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응하느라 할 일을 또 미루는 내가 너무 싫었다. 그래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했고, 병뚜껑을 연 손이 멀쩡해서 타자를 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손을 다치면 벼락치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리병 두 개에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빼고 그냥 잤다. 미친듯한 긴장의 몇 시간이 지나고 난 뒤의 안도감에 힘이 쭉 빠졌다. 그 정신에 해봤자 뭘 하겠는가. 아무리 벼락치기여도 도저히 아닌 것 같으면 그냥 자는 게 나은 방법일 때도 있다. 할 일이 많은 데 이런 수고로운 일이 생긴 것에 대해 약간의 짜증스러움을 느꼈지만 내가 상상만 하던 일을 두 눈으로 확인한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결과를 기다리기 떄문에 불안해서 병을 열지 못한 미련함은 내 손으로 직접 액땜 거리를 만들기 위한 작디작은 인간은 절대 알 수 없는 우주의 큰 계획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운에는 총량이 있다. 그 총량을 늘릴 수는 있지만, 범위 내에서 행운을 만나려면 약간의 귀찮음이 따라주어야 한다. 그리고 방바닥을 닦는 것은 곧 도를 닦는 것 아니겠는가? 콤부차가 자신이 담긴 유리병을 새장이라고 느끼고 탈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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