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 노가리 클럽의 탄생 : 더 비기닝
포스트잇부터 페니실린까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멋진 발명품들은 사실 우연한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 꽤 많습니다. 지금 이 뉴스레터를 쓰고 있는 노가리 클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노가리 클럽이라는 이 근사한 이름도 귀여운 착각에서 시작됐죠.
도쿄 오징어 클럽이라는 사조직이 있습니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요시모토 유미(작사가), 츠즈키 교이치(사진작가)와 함께 특이한 곳을 여행하는 사모임인데요. 하루키가 속해 있는 것 말고는 한사랑 산악회와 크게 그 목적이 다르지 않긴 합니다. 갑자기 왜 이 얘기를 하냐면 노가리 클럽의 탄생이 이 모임과 관계가 깊기 때문입니다.
그저 셋이 모여 서로 좋아하는 것을 줄기차게 이야기하던 모임에 이름을 부여하자고 말을 꺼낸 것은 슬이었습니다. “어차피 놀 거라면 하루키의 그 클럽처럼 생산성 있게 놀아보자” 제안을 한 것이었는데 바로, 저 도쿄 오징어 클럽에서 오징어를 노가리로 착각한 거죠.
여담이지만 이때 노가리 클럽에 지지 않는 그럴듯한 이름을 짓자며 2시간 정도 열띤 제목학원이 열렸는데 이건 기회가 되면 나중에 풀어드리겠습니다. 저희가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재밌어요. 진짜.
하지만 노가리 클럽의 다른 이름을 짓는다면 아마도 ‘절대로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에 드는 게 생기면 누군가를 붙잡고 이게 얼마나 왜 어떻게 좋은지 떠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죠. 심지어 이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는 지금도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각자 재밌었던 무언가를 들이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독하죠?)
그래서 만들게 됐습니다. 절대 저희끼리 밥숟가락을 권하다 지쳐서가 아니라, ‘이 재밌는 걸 더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흘러넘쳐서요. 노가리 클럽은 매달 이 뉴스레터를 통해 책과 영화, 공연, 전시에 이르기까지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기미 해보고, 좋았던 것들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맛있을 줄 알았는데 나름의 이유로 실망감을 안겨준 것들도 함께요.
첫 번째 뉴스레터는 ‘처음’과 관계있는 것들을 들고 왔습니다. 슬은 ‘가장 먼저 생각난’ 유즈키 아사코의 소설 <버터>, 윻은 이 모임의 ‘첫 시작’을 열어준 뮤지컬 <위키드>, 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숨 쉬듯 영업하고 있는 영화 <걷기왕>입니다.
노가리 클럽 첫 번째 영업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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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를 욕망한다
유즈키 아사코의 소설 <버터> by 슬
저는 오늘도 노가리 클럽 단톡방에 외칩니다. “아, 이거 증말 맛있는데 한 번만 잡숴봐.” 근데요. 내 입맛에 맞는 걸 남의 입에 집어넣기란 꽤 어려운 일이에요. 심지어 나 때문에 그것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다? 어느 날 최애가 우리 집 현관으로 들어오는 것만큼이나 기적 같은 일이죠.
소설 <버터>에서는 그런 기적이 가장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펼쳐집니다. 주간지 기자 ‘리카’가 남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가지이 마나코’를 만나 버터의 맛에 제대로 영업 당하는 이야기거든요. 가지이 마나코는 세 남성에게 거액의 돈을 받아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이제는 그들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주인공을 독점 인터뷰하고자 면회를 신청한 리카에게 가지이는 미션을 주죠. 명란 버터 파스타, 버터 시오라멘, 가지이의 방식대로 만든 버터 간장밥 등 자신이 평소 좋아했던 음식을 대신 먹어달라고요.
가지이는 프랑스 산 에쉬레 버터를 고집하고,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된 요리를 즐기는 ‘탐닉적 미식가’입니다. 반면 리카는 식사를 때우는 것에 익숙해요. 버터와 마가린도 구별하지 못했죠. 그런 그녀가 가지이의 지시에 따라 난생처음 버터가 듬뿍 들어간 음식을 먹고 만들기 시작합니다. 혀에 녹아드는 진한 풍미가 익숙해질 때쯤 리카는 깨닫습니다. 나를 먹이고 기쁘게 하기 위해 시간과 돈, 정성을 더한다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에 대해서요. 그냥 씹어 삼키는 삶 말고 때때로 음미하는 시간을 누릴 필요와 권리가 있다는 걸요.
가지이의 욕망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록 그녀의 곁에 있었던 남자들이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더욱 명징해집니다. 가지이의 풍만한 몸과 외모를 조롱하며 ‘꽃뱀답지 않다’고 떠드는 세상을 비웃으며 그녀는 이렇게 말하거든요. 여자가 여신으로 군림할 수 있는 방법은 “남자를 용서하고, 감싸고, 긍정하고, 안심시키고, 절대 능가하지 않는 것”이라고요. 가지이는 가부장 사회가 자신에게 원하는 역할, 요리 잘 하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철저하게 수행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취했습니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남자들은 삶을 음미할 수 있었고요.
이 소설의 탁월한 점은 가지이를 호떡처럼 납작하게 눌러 희대의 악녀로 그리지도 않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구구절절 늘어놓지도 않는 균형 감각입니다. 이 건조한 시각이 빌런을 끝까지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힘이 되더군요. 달거나 짜거나 마라맛이거나. 확실한 맛에 열광하는 세상이지만, 결국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요리는 여러 가지 맛이 오묘하게 섞여 상상의 지평을 넓히는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버터>는 그런 소설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잡숴 봐요! 후회하지 않으실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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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드라는 중력, 너로 인하여
뮤지컬 <위키드 Wicked> by 윻
함께 이야기하면 즐거움이 세 배, 아니 아홉 배가 되는 노가리 클럽의 시작은 뮤지컬 <위키드>였습니다. 2021 시즌에 제대로 덕통사고를 당한 나머지 슬과 희에게 가열찬 <위키드> 영업 후 관극 후기를 나누다 결성하게 됐죠.
사실 저는 이 작품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누군가가 어떠냐고 물어보면 “위키드? 한 번쯤 볼만해~!”정도였달까? 하지만 그랬던 작품이 2020 시즌,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제 심장에 굴러떨어지고 맙니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사람처럼 작품과도 시절 인연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아마 작년이 그런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미국 소설가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위키드>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에 토대를 둔 작품입니다. "그게 뭔데 이 십ㄷ.. 아니 이 덕후야"라고 물으실 분을 위해 부연 설명을 보태자면 구슬픈 목소리로 무지개를 찾는 바로 그 노래 ‘Over the Rainbow'가 삽입된 영화입니다. <오즈의 마법사>가 오리지널이라면 <위키드>는 **스핀오프 작품이죠.
이 작품은 사악한 서쪽 마녀 엘파바와 착한 남쪽 마녀 글린다, 이 두 명의 마녀가 이끌어 갑니다. 뮤지컬 <위키드>는 엘파바에게 왜 'Wicked(못된, 사악한, 악질의)'라는 수식어가 붙게 됐는지 비하인드에 대해 들려주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은 엘파바와 글린다가 사실은 ‘친구’였다는 설정 아래 시작하는데요. 엘파바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하지 않은 초록색 피부때문에 아버지에게 사랑 한 번 제대로 못 받아 본 소녀죠. 그러다 몸이 불편한 동생 네사로즈(a. k. a 동쪽 마녀)를 돌보는 조건으로 함께 학교에 가게 되고, 거기서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보이는 글린다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너무나 다른 두 캐릭터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친구가 되고, 성장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하이틴 무비 같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열등감 덩어리였던 소녀가 편견과 오해를 딛고 세계관 최고가 되는 이야기라니. 벌써 너무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이 작품에는 소위 말하는 킬링 넘버가 곳곳에 포진해있는데요. 가장 유명한 넘버가 바로 'Defying Gravity(중력을 벗어나)'입니다. (저는 다른 캐스팅으로 보긴 했지만) 네, 옥주현 배우가 부른 그 노래 맞습니다. 1막 마지막, 무대 가장 높은 곳에서 부르는 이 노래는 스스로를 가둬왔던 한계(중력)를 벗어나 더 이상 무엇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며, 막을 수도 없을 거라는 내용으로 엘파바의 출사표와 같은 곡입니다.
제법 점잖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이 넘버를 직접 현장에서 들을 때의 쾌감, 감동,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거짓말 하나도 없이 이 넘버가 끝나고 나면 온 극장이 떠나가라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죠. 이 글을 쓰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 지금도 소름이 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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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맛에 취해 한강진역 붙박이가 돼 서울 공연을 n차 관람하고, 부산 공연까지 가서 배우님들과 같은 퇴근길 엘리베이터를 타는 '계 탄 덕후'가 됐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자랑이었고요. 다시 영업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실 <위키드>가 왜 좋은지는 2박 3일 필리버스터도 가능하지만 주어진 지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직접 관극을 통해 확인하신 후 따로 메일 주시면 답변드리고 싶습니다.
뮤덕들 사이에 전해지는 명언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고민은 자리를 잡은 뒤에 해도 늦지 않다’라는 말이죠. 뮤지컬이 낯설 수도 있고, 가격이 부담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시즌 <위키드>가 돌아온다면 한 가지만 기억해주세요. ‘갈까, 말까’ 고민은 자리를 잡은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위키드>라는 중력이 이끌어 준 저의 소중한 노가리 친구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김인육, <사랑의 물리학>, 2016, 문학세계사를 차용했습니다.
**스핀오프(spin-off), 오리지널 영화나 드라마를 바탕으로 새롭게 파생되어 나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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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종종걸음을 치는 날엔
영화 <걷기왕> by 희
리코더 타이타닉을 OST로 쓰는 미친 영화를 아시나요? 바로 제가 영업할 작품입니다. <걷기왕>은 선천적으로 탈것을 타지 못하는 만복(심은경 분)이 주인공입니다. 비행기, 자동차, 자전거, 심지어 소순이(수컷입니다.)도 못 타는 만복이는 집에서 학교까지 매일 아침저녁으로 걸어서 등하교를 합니다. 무려 왕복 4시간 거리를 말이죠.
그 모습을 본 담임 선생님(김새벽 분)은 만복이가 걷는 데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며 육상부에 들 것을 추천합니다. 코치 선생님은 달리기와 걷기 사이 어드매 쯤인 경보 종목을 배정해주지만, 만복이는 예상보다 운동에 소질이 없었죠. 그치만 이제 와서 때려치우자니 좀 애매해집니다.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운동은 왠지 해볼 만 해 보이고, 주변의 반응도 좀 신경 쓰이죠.
목숨걸고 경보에 임하는 수지 선배(박주희 분)는 그런 만복이가 고까워요. 재미 삼아 설렁설렁 하는 만복이를 보니… 거친 말로 'X가리 꽃밭' 같아 보이거든요. 결국 둘은 크게 부딪히고, 수지 선배는 만복이에게 "너 같은 애들 한심하다"며 아픈 말을 쏟아냅니다.
만복이는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복도에서 리코더를 부는 학생에게 담임 선생님이 음악 쪽 진로를 권유하는 모습을 발견해요. 자신에겐 사실 아무런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은 만복이는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들어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때 OST로 리코더 타이타닉이 깔려요. 지난 과거 속 한때 만복이었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같이 울다가 어느새 실실 웃고 있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만복이는 불안해집니다. 다들 뭔가 될 것 같은데 나만 아무 것도 안 될 것 같거든요. '내 인생 어떻게 되는 걸까' 고민이 깊어질수록 불안해진 만복이의 마음은 자꾸만 종종걸음을 쳤을 겁니다. 인생이 무조건 빨리 달려야 하는 레이스인 줄 알고, 양옆의 트랙을 곁눈질하며 달렸던 지난 날이 떠올랐어요. 인생이라는 트랙 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만의 속도를 찾는 일인데 말이죠.
만복이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맹훈련에 돌입하지만 순탄치 않습니다. 중요한 대회는 서울에서 진행되는데, 강화도 집부터 서울까지 가는 방법이라고는 튼튼한 두 다리로 걷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죠.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이 모든 걸 이겨내고 끝끝내 ‘성취’를 거머쥐는 순간을 극적으로 그려내겠죠?
하지만 처음부터 말했듯, 우리의 <걷기왕>은 일반적인 영화가 아닙니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리코더 타이타닉을 OST로 쓰지도 않았겠죠. 아등바등 안간힘을 다해야 마땅할 레이스 위에서, 만복이는 의외의 선택을 합니다. 과연 만복이는 어떻게 됐을까요? 영화로 확인하세요! (김경식 빙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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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입엔영
좀비 처돌이를 슬프게 한 허위매물 by 슬
러브 스토리 인 좀비 스쿨. 커플로 간택 받지 못한 여성 캐릭터의 대부분이 시청자의 짜증을 돋우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동생이 누나를 지키고, 아빠가 딸을 지키며 장렬하게 죽는 것과 달리 이들의 죽음은 의미도 서사도 없이 치워지죠. 특히 학교 폭력 피해자 ‘은지’를 다루는 방식은 맛있게 먹던 마라샹궈까지 내려놓게 만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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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인데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 머쓱하네요.
하지만, 평소엔 동태 눈깔로 영혼없이 살아도
덕질할 때만은 반짝거리는 게 우리의 눈이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게 입 아니겠어요?
그러니, 다음주에도 우리 같이.. 노가리까요...!
(노가리 클럽 인스타그램도 있으니 놀러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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