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관계에 강박적일 때가 있습니다. 좁고 깊은 친구 관계를 선호했던 학생 시절일 때 생긴 버릇이 아닐지 추측하곤 합니다.
관계의 기준이나 구분이 명확한 편입니다. 그 기준은 보통 저에 관한 것입니다만, 아무래도 그런 시각으로 세상을 대하다 보니 타인에게 투영되는 경우도 부득불 있지요. 더불어 예전부터 ‘빈말’ 자체에 강박적인 사람이라 최대한 의식해서 자제하려 합니다. 사람이란 아무래도 본인이 싫어하는 건 먼저 잘 하지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사회생활에서 빈말이란 필요악 혹은 선의의 거짓말이기 때문에, ‘언제 밥 한번 먹어요’나 ‘다음에 커피 한잔해요’ 같은 말은 안부 인사처럼 자연스럽게 흘려들을 수 있을 정도로 단련되긴 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고치기 어려운 습성이라면, 저는 ‘구체적인 빈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령 이런 느낌입니다.
어떤 영화가 개봉했을 때 ‘같이 보러 가면 재밌겠다’라거나, 책 이야기를 하다가 ‘이 책 집에 있는 것 같은데 찾아 보고 빌려 줄게’라든가, ‘여기 덮밥 유명하던데 다음에 도장 깨러 가보자’ 같은 말들. 적당히 애매하지만 어떤 특정한 정보는 들어있는 말들.
이런 말을 들으면 저는 최대한 그 말을 뱉은 사람과 다음을 기약합니다. 다른 영화를 보고, 일부러 다른 책을 읽고, 맛집은 다른 메뉴를 고릅니다. 강박이든 호의든 함께 하자는 그 마음을 꼭 이루고 싶거든요. ‘구체적인 빈말’임을 깨달을 때는 그 영화가 영화관에서 내려갔거나, 같이 가자고 한 맛집 사진을 그 사람의 SNS에서 발견했을 때죠.
왜 먼저 말을 안 꺼내냐고요? 어렸을 땐 소심해서, 지금은 의식적으로 기다립니다. 제가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의 크기와 상대방의 경우가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잖아요. 이런 상황들이 그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되어주거든요.
비슷한 기준점이 있다면, (정말이지 처음 꺼내 보는 이야기입니다만) 누군가와 대화할 때 자연스럽게, 그렇지만 의도치 않게 대화가 끊기는 순간이 오잖아요. 밥 먹으며 이야기하다가 메뉴가 나올 때라거나, 길을 함께 걷다가 불쑥 비가 온다거나. 상황이 완전하게 뒤집어지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어떤 불가피한 변곡점이 생길 때. 만약 그때가 제가 한창 이야기하고 있을 때라면 저는 종종 그 대화를 잇지 않고 기다리곤 합니다. 그럴 때면 보통 두 가지 상황으로 나뉩니다. ‘그래서? 아까 무슨 얘기 하고 있었지?’라며 물어봐 주는 상대와 아무렇지 않게 본인의 새로운 화두를 꺼내는 상대. 제 말을 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묘하고 세세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 기준점이 분명 저를 각박하게 옭아맬 때도 있지만 그렇게 곁에 남은 소중한 사람들이 또 이렇게 저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하면 역시 어쩔 수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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