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깊고 날카로운 불안이 느껴질 때 나는 그것을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 몰라 자주 허둥거린다. 감당할 수 있는만큼-이 얼마만큼인지 나는 아직도 잘 알지 못하고. 그렇게 입 속으로 말들을 주워 섬기다 보니 자꾸만 몰라, 몰라 하고 말하게 된다. 바보. 고양이가 자는 모습을 살핀다. 고양이는 배를 하늘로 벌렁 드러내고 온 몸의 힘을 완전히 뺀 채로 자고 있다. 동물들은 배를 약점으로 여겨 언제나 배를 숨기고 경계한다는데, 이 고양이는 뭐가 그렇게 마음이 편한지…나는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을 살살 쓰다듬으며 속삭인다. 단테야, 넌 나를 믿니? 너는 이 집을 믿니? 고양이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가 이해하는 건 맘마, 이리와 정도의 짧고 분명한 문장 정도이다. 그래도 나는 고양이가 자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껏 착각한다. 고양이는 나를 사랑해, 고양이는 내 곁에 있는 걸 좋아해, 고양이는 안심하고 있어—만으로 한 살을 넘기지 않은 고양이는 자주 천진한 어린아이같고 나는 그 모습을 보는게 즐겁다. 하지만 어두운 밤중에 홀로 깨어 숨죽여 떠는 내 모습은 노인도 어린아이도 아니요 다만 병자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네. 근거가 희박한 불안은 병이라지만 만약 내가 그 근거를 찾아내버린다면 어쩔테지? 누가 그 책임을 지지? 수많은 질문과 해답이 가리키는 곳이 오직 나라는 데에서만 오는 압박 그러나 나는 모두 무시하고 고양이를 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