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며 밑미 팀원들과 서로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그중 우리의 마음을 찔렀던 질문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올 한 해 후회되었던 소비였습니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답답할 때 기분 전환 삼아 미용실 가서 큰돈 들여 머리를 하고, 옷장 가득 옷이 있는데도 입을 게 없다며 계절마다 사고, 지금 당장 필요 없는데도 신상이면 우선 지르고 보는 그런 소비 행태가 머릿속을 지나갔어요. 돌이켜보면 정작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닌데도 평소 받았던 스트레스를 소비로 풀고, 잠시나마 위안을 얻었던 것 같아요. 혹시 님은 스트레스 받을 때 무언가를 사진 않나요? 나의 지난 소비를 한 번 분석해보세요. 그러다 보면 소비 패턴에 따라 내 감정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내년엔 좀 더 감정적 소비를 떨쳐내고 나를 위한 소비를 할 수 있을 거예요!
내 인생이란 여행을 위한 짐 싸기
‘오늘 뭐 입지?’ 
 
언제나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어요. 옷장에 많은 옷을 두고도 늘 새 옷을 찾아 쇼핑에 나섰죠. 돌아보면,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은 채 기분이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이상 세계 속 나를 위한 옷을 사고 또 샀어요. 반면 현실 세계의 내가 무얼 입어야 할지는 무관심했어요. 쇼핑몰의 솔깃한 프로모션이 스마트폰 팝업으로 뜨면 홀린 듯 쇼핑을 했죠. 옷을 살수록 입을 옷이 없는 건 당연했어요.
 
내가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모르는 모습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모습과 닮아 있었습니다. 현실 세계 속 나는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중압감에 엘리트 코스로 향하고 있었지만, 이상 세계 속 나는 늘 일탈을 꿈꿨죠. 그런 마음을 엉뚱하게도 쇼핑으로 풀었어요. 신을 일 없는 하이힐, 입고 나갈 일 없는 드레스, 메고 나갈 일 없는 명품백. 언젠가부터 비싼 패션 아이템은 옷장에서 방치되었어요.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내 마음을 쉽고 빠르게 달래주는 것이 바로 쇼핑이었어요.

옷장이 꽉 차도 입을 옷이 없는 옷장 앞에서 한숨 쉬던 어느 날, 어느 스타일리스트의 여행가방 싸기 팁을 접했습니다. 질문을 던지라는 팁이었는데요, ‘그 여행지에서 나는 어떤 여행자인가?’ 여행지에서의 자신에게 별명을 붙이면 여행가방에 무엇을 넣을지 결정이 쉬워진다는 것이었죠. 그런 신선한 팁은 처음 봤어요. 나는 같은 질문을 이렇게 바꿔 보기로 했습니다. ‘내 인생이란 여행에서 나는 어떤 여행자인가?’ 내 옷장은 내 인생의 여행 가방이 되는 셈이었죠. 여행가방에서 무엇을 빼고 무엇을 넣을지 결정하기가 쉬워지는 질문이에요. 내가 옷장이 꽉 차도록 입을 옷이 없었던 이유는 현실 세계 속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질문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난 내가 원하는 여행지가 어딘지 알지 못한 채 엉뚱한 옷만 여행 가방에 넣는 바보 같은 여행객이었어요. 내 여행지는 정해놓지 않은 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했고, 그 공허함이 나를 쇼핑으로 이끌었죠. 거기까지 그렇게 힘들게 달려왔으면서도 내가 어디서 행복한지 질문하고 답한 적이 없다니. 참 부끄러운 순간이었습니다. 문득 진짜 내 여행지가 어딘지 궁금해졌어요. 쇼핑몰은 알려주지 않는 내 진짜 목적지는 어디이며, 나는 어떤 여행객인가? 그리고 내 여행가방엔 어떤 옷이 들어가야 할까?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스치듯 드러나던 내 욕망에 주목했습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좋아해온 나만의 곡, 우울증이 극에 달했을 때 죽음을 생각하고도 당장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써본 버킷리스트, 그리고 논문과 달리 이상하게 술술 풀리던 감성적인 글쓰기. 그러자 어떤 여자가 내 머릿속에 딱하고 들어왔어요.
 
카페에 앉아 글을 쓰다 잠시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관찰하고, 조용히 수다를 떨다 깔깔 넘어가기도 하며, 자기만의 특별함으로 선한 영향을 미치고 싶은 여자. ‘조용한 말괄량이!’ 내 인생에서 나는 나 자신을 늘 ‘조용한 말괄량이’로 그려왔어요. 이렇게 시원할 수가! 나를 찾은 이후 영혼 없이 쇼핑몰을 기웃거리던 나, 폼 나고 불편한 학자의 옷을 입으려던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내 욕망을 존중하지만, 그 존중을 소비로만 푸는 것이 나를 위함은 아니라는걸. 행복은 소비가 아니라 삶에 있었어요. 나는 이제 진짜 내 여행지로 향하고 있고 내 여행지에 필요한 옷만 사게 되었죠. 내가 아침마다 ‘오늘 뭐 입지?’에 답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진짜로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이제 난 쇼핑몰의 프로모션이 와도 가볍게 흘릴 수 있게 되었어요. 비결은 바로 하나. 언제나 이렇게 묻고 답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뭐 입지? 조용한 말괄량이!’
밑미 리추얼메이커 최유리

정체성을 찾고 그에 맞는 옷을 권하는 ‘패션힐러’ 이자 작가. 30대 후반까지 나를 몰라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았고, 허전한 마음을 쇼핑으로 달래곤 했다. 진정한 나의 모습을 표현하는 옷 입기를 시도했고, 결국 옷에서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다. 나의 정체성과 '건강한 의생활'을 찾아가는 여정을 블로그에 기록하고, 그 글들이 <오늘 뭐입지? 패션보다 나>와 <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소비는 감정이다 
연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소비를 하는 경향이 높아진다고 해요. 한 해가 저물어가는 상황에서 허탈감 혹은 상실감을 느낄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마음속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필요하지도 않았던 것을 무의식적으로 사고, 일시적인 충족감을 느끼려는 거예요.

요즘 마음이 헛헛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소비를 하게 된다면,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우리가 하는 소비의 대부분이 감정을 담당하는 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인데요, 다섯 편의 시리즈 중 2화인 <소비는 감정이다>에서는 하버드 대학교 의사결정 과학 연구소가 실시한 재미있는 실험을 통해 감정과 소비의 연관성을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첫 번째 그룹에는 평화로운 풍경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고, 두 번째 그룹엔 슬픈 내용이 담긴 영상을 보여줍니다. 그 후 플라스틱 물병을 보여주고 얼마에 살 것인지 물어보면, 두 번째 그룹의 사람들이 무려 4배나 많은 돈을 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왜 그럴까요슬픈 영상을 보고 나면, 마음에 공허함과 상실감이 생겨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 자리를 채우려는 욕구가 쇼핑을 부추기는 거죠. 다시 말해, 허전하고 상실감으로 가득 찬 마음이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사게 만드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소비는 나의 감정 상태와 자존감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합니다. 우울함을 느낄수록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상실감을 갖게 됩니다. 상실감을 빨리 해소하고자 비싼 물건을 사며, 자신의 낮아진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보상심리가 생기게 됩니다. 실제로 자존감이 낮으면 자존감을 높여줄 물건을 확률이 높다고 해요. 물론 모든 소비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신적인 결핍을 채워줄 있는 경험적인 소비는 가치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감정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면, 아래의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세요.

  • 되고 싶은 나의 이상적인 모습이나 상황이 있다면, 적어보세요.
  • 진짜 나의 현실의 모습과 상황은 어떠한가요?
  • 이 둘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가요?

이상적으로 바라는 상황과 현실의 간극이 커질수록,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무의식적인 소비를 하게 될 경향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진짜 나의 감정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현재로도 나는 이미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태도가 그 어떤 비싼 쇼핑보다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19 가슴이 답답한 요즘, 감정적 소비를 하기 보다 진짜 나를 알아가고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가져보는 어떨까요?

EBS 다큐프라임 <소비는 감정이다>
힘들지? 고민을 말해봐~~ 🗣 
원빈 님의 고민

강박이 고민이에요. 물건이 제자리에 있는지, 일을 함에 있어 빨리 해결해야 하지는 않은지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확인을 하게 돼요. 예전엔 회사에서 일할 때 강박을 느꼈다면, 지금은 스마트폰의 어플들, 내 방, 가족들에게까지 강박 증세를 보이고 있어요. 딱히 불안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잘못된건가 싶기도 해요. 이런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밑미 심리 카운슬러 박현순 님의 답변

내 의지와는 다르게 계속해서 생각이 떠오르고, 시뮬레이션을 그리며 확인을 해야만 안심이 되고..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우선 원빈 님의 마음을 먼저 만나보는 것이 필요해요. 행동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하면 고칠 수야 있겠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물건의 자리를 정해놓고 계속 정리 정돈을 하고, 업무의 프로세스를 신경 쓰며 해결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들을 원빈 님이 반복하는 건 일을 효율적으로 잘 해내기 위함이에요. 꼼꼼하게 일을 잘하기 위한 노력을 하신 거죠. 혹시 그런 노력을 할 때마다 원빈 님은 스스로에게 어떤 반응을 했나요? 혹시 ‘더 잘 해야 하는데.. 다음엔 더 완벽하게 해내야 해’라고 생각하진 않았나요? 그랬다면 마음이 안절부절 못하고 위축되어, 다른 상황에서도 실수하지 않도록 항상 긴장했을 것 같아요. 강박이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의 불안도가 높아졌단 뜻이기도 해요. 결과뿐만 아니라, 내가 해낸 과정과 노력, 시도들을 봐주세요. 그리고 나 자신에게 얘기해 주세요.

‘애썼어! 열심히 노력했잖아. 다음에는 이 부분만 좀 더 챙겨보자. 잘하고 있어!’

긍정적으로만 표현하는 것과는 조금 달라요. 나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객관적이면서도 따뜻한 말로 나를 지지해 주는 거예요. 이솝우화 ‘해와 구름’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구름이 아무리 센 바람을 날려도 나그네는 외투가 벗겨지지 않도록 두 손으로 옷자락을 꽉 움켜잡았죠. 따뜻한 햇살로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만든 것처럼, 원빈 님 마음도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지지해 주길 바랍니다.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밑미타임 #MeetMeTime

내가 어떻게 소비하는 지 알면 삶의 패턴이 보이고,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요. 나의 지난 소비 생활을 돌이켜보면서 내 마음의 상태도 살펴보세요.

*실천하는 모습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SNS에 해시태그(#밑미타임 #MeetMeTime)와 함께 올려주세요.
굿바이2020 나이스투밑2021

출시되자마자 금세 매진되었던 밑미의 연말 질문카드! 밑미 팀원들도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이미 구매하셨던 분들의 후기를 보고 많은 분들이 또 추가 요청을 해주셔서, 소량 재생산을 했습니다. 2020년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 새해를 정돈된 마음으로 준비하기 딱 좋은 서른 개의 질문들을 나에게 던져보세요 :-)
이번 주 밑미레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솔직한 의견은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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