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온전히 나로 살아 있는 기분
결에게,

결아 안녕, 민경이야.

 

이번 주는 평일보다 주말 기상 시간이 더 빠를 정도로 부지런한 휴일을 보냈어.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서울 끄트머리에 갔다가 오후 3시를 넘겨 집으로 돌아왔어. 하루 종일 해가 가득 들었던 방이 더워서, 피아노 학원에 피신하듯 다녀왔고, 다시 집에 돌아와서는 낮잠을 한숨 푹 잤어. (일어난 시간이 오후 8시라 낮잠이라는 말은 안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제 써둔 편지 앞에 지금 이 문장들을 붙이고 있어. 급히 전해야 할 마음이 있어 미처 인사를 건네지도 못하고 쓴 편지거든. 내가 어떤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이제부터 천천히 들여다 봐줘.

 

*

 

모든 게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흠 없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틈이나 흠을 발견할 때마다 왜 이토록 당혹스럽고 흔들리는 걸까?

 

지난 몇 달 동안 아무런 저항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또 열린 누군가의 문 너머를 겁 없이 들여다보았어. ‘너무 재미있네, 나 이런 거 너무 좋아하네.’ 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웠어.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내내 밖에서 먹고, 놀고, 누군가를 만나는 일상을 보내다 보면 방 안에는 빨래와 자잘한 쓰레기들이 쌓이곤 하잖아, 공과금이 밀리기도 하고 이부자리도 뱀 허물처럼 엉망이 되어버리지. 마음도 비슷한 것 같아. 내도록 열어두고 비워두었던 마음의 공간에 바람이 들어 무언가를 상하게 하기도, 자라면 안 될 곳에 잡초 같은 것들이 자라기도 했어.

 

어떤 관계에 빠져들 때 내 우선순위는 아래와 같아.

1. 관계
2. 상대
3. 나

 

대충 보아도 건강한 모양새는 아니지. 관계를 가장 위에 두는 이유는 결국 그 관계가 주는 즐거움이 나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야. 그런데도 ‘나’를 세 번째 자리에 둔 건, 그 행복을 얻기 위해 나를 돌보는 일에 소홀해지기 때문이지.

 

사람들과 있을 때, 사람들과 나 사이에 피어나는 관계가 매력적이고 희귀하거나 아주 익숙할수록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또는 습관처럼 나를 쉬이 버리곤 해. 요즘도 범람하는 관계 속에서 자주 그런 선택을 해. 내가 좋아서 그러는 거라 탓할 사람도, 상황도 없지.

 

그래서 오늘은 그런 나를 좀 돌봐보려고, 나와의 시간을 좀 가져보려고 매번 남들에게 하던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기로 했어. 나랑 인터뷰를 해보기로 한 거야.


먼저 스무 개 남짓한 테마 중 네 가지를 골랐어. 당신, 자람, 감각, 난제 테마가 눈에 들어왔어. 그리고 각 테마 당 일곱 개의 질문들을 차례로 뽑아 흥미가 느껴지거나 지금 나에게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질문을 골라보았지. 그리고 그중에서 다시 한 가지를 골랐어. 내가 고른 질문은 바로 <‘나 살아있어’라는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요?>야.

 

*

 

사람들을 좋아하고, 또 곁에 있고 싶어 하지만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나를 완전히 살아있는 상태로 두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이 사람이 나랑 있는 걸 기뻐한다’,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한다’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들에 나는 항상 중독되어 있었던 것 같아. 그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치명적인 게 아니라면 내 어느 한 부분을 끄거나 지운 상태, 즉 죽인 상태로 사람들을 대해왔던 것 같아. 아주 친밀하고 편한 사람들 앞에서도 나는 종종 그러곤 해. 그게 가끔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처음에는 상대를 탓하거나 나를 비난했어. 미움을 받더라도 솔직해야 하는 게 맞다며, 그 의미를 담아 비밀번호들을 설정하기도 했지. (be honest 같은 느낌이었어) 매일 로그인할 때마다 입력하면 좀 바뀔까 싶어서. 그런데 결과적으로 말아야, 실패했어.

 

누군가에게 내 솔직한 마음을 매 순간 남김없이 보여주는 건 아마 내겐 어려운 일일 것 같아. 그 일은 아가미가 없는 나에게 난데없이 이제부터 수중 호흡을 하라는 말과 같다는 걸 이제는 알겠어. 대신 다른 방안을 찾아볼 수는 있겠지.

 

그건 바로 혼자 있는 순간을 소중히 하고 또 그 비중을 늘려가는 거야. 혼자 있을 때, 의도가 없는 자극들. 그러니까 바람이나 나무나 햇빛이나 달빛, 파도 같은 자극들을 어떤 존재의 개입도 없이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자유롭게 살아있다고 느껴.


파악할 의도가 없으니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고, 나의 반응도 자연에는 아무 의도 없이 전해질 테니 걱정할 것도 없고 말이야.

 

편지를 쓰는 지금도 서향인 내 방에는 한여름, 오후 다섯시의 햇빛이 들어와 내 얼굴에 내려앉고 있어. 지는 해의 볕이라 그리 강하지 않아서 그 빛을 똑바로 쳐다보기도 하고, 눈을 감아보기도, 또 얼굴을 찡그려 보기도 해. 의도 없는 빛에 대한 의도 없는 반응. 온전히 나로 살아 있는 기분이야.

 

*

 

하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재미있는 일들은 의도 있는 자극과 반응들 사이에서 주로 일어난다고 생각해. 누군가 건넨 조각들을 하나둘 맞춰보는 거, 주고받는 손길 사이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잡아버리기도 하는 거, 어쩌면 영원까지 지속될 찰나를 만나게 되는 것. 그 모든 것이 일어나는 장소이기에 나의 일부를 꺼두어야 하더라도 떠나고 싶지 않은 어떤 세계. 함께인 세계.

 

그 세계에서 나는 매번 실수하고 또 무례를 저지르고, 누군가에게 상처 주기도 할 거야. 반대로 어떤 말에 완전히 무너지기도 하고, 겪지 않았으면 더 좋을 일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내가 이 세계에 머물고픈 이유는 그 모든 상황에서의 ‘나’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야. 나 혼자서는 찾을 수 없는 나의 조각들을 나는 만져보고 싶어.

 

그리고 그 조각들을 맞춰보며 내가 이곳에 가장 나다우면서도 자연스럽게 포개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 산허리에 걸린 구름처럼, 강물에 내려앉는 석양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모래사장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내가 이곳의 일부이면서도 죽지 않는 호흡법을 끝내 알아내고 싶어.

 

*

 

사실 이런 대답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분명 질문을 받고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나를 조금 죽이더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면 돼.’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내 솔직한 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봐. 나는 매순간 살아있고 싶나 봐.

 

그 시작은 아마도 아까 말했듯, 혼자 있는 시간에서부터 일 거야. 온전히 살아있는 나를 잘 지켜보고, 나를 죽이던 순간에 조금씩 숨을 불어넣고 싶어.

 

그런 상상을 하면 서운해하는 누군가의 표정이, 단념하는 손짓이, 멸시하는 눈빛이 떠오르기도 해.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것,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거, 미움받는 건 경우에 따라 내게 죽음보다 무겁기도 하거든.

실망할, 상처받을, 미움을 품을 누군가를 염려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 그 무서움의 가장 깊은 곳에는 ‘누군가를 아프게 한 나를 혐오하는 마음’이 크게 자리 잡고 있어. 하지만 나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아무도 아프지 않게 하면서 살 수는 없겠지. 나를 완전히 죽이지 않는다면 말이야.

 

결국 내가 해야 하는 건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이는 일일 것 같아.

그 자연스러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내 평생의 숙제 같아.


*


결아, 이 편지를 쓰면서는 너를 잠깐 잊었던 것 같아.

하지만 지금은 너를 생각하며 이 편지의 끝에, 너에게 무슨 질문을 건네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어.

 

오늘 나는, 네가 가장 너답게 살아있는 순간에 대해 묻고 싶어.

너는 언제 가장 자연스럽게 살아있다고 느껴? 그 순간에 너의 마음은 어때?

 

*

*

 

주변 사람들의 여름휴가 소식이 들려오는 칠월이야.

계곡에 간다는 사람도 있고, 바다가 잘 보이는 숙소에 비싼 값을 치렀다는 사람도 있어. 숲속으로 캠핑을 떠나는 사람도 있고.

나무 그늘 아래에만 있어도 금세 여름의 황홀함을 느끼는 나라서, 그리고 성수기의 분위기를 어려워하기 때문에 꼭 어디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그래도 이제 휴가를 쓰고 계획을 세워보려고 해.

 

너는 어떤 휴가를 보낼 예정인지 궁금하다.

 

모두가 여름 날씨에 혀를 내두르지만,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날 때 그리워하는 여름 풍경 하나쯤은 다들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올여름 그 풍경을 넉넉하게 누릴 수 있길 바랄게.

 

그럼 우리 다음 주에 또 만나자.



2022.07.10. 민경

 

추신. 인터뷰놀이 풍경을 함께 보낼게:)
답장은 여기로 보내주면 돼,
보내준 답장은 우리 모두 볼 수 있다는 점 기억해줘.
모두들 너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있으니까.
#15-2. 지난주에 받은 답장을 나눌게, 너의 장마와 그것에 대처하는 마음에 대해 물었었어.
"나는 요즘 장마의 한 복판에 서 있어"

안녕, 민경.
처음 쓰는 답장이야. 그동안 답장을 부칠 수가 없었거든. 한동안은 바빠서 답장을 쓰다가 완결을 못하고 일주일이 지나버리길 몇 번, 최근엔 답장은 커녕 편지도 겨우겨우 읽어서. 나는 요즘 장마의 한 복판에 서 있어. 그래서 오늘 민경의 편지 제목을 읽자마자 6살처럼 막 울어버렸어. 장마가 너무 길고 지독해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어떻게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는 중이야. 올해의 모토였나. 예전 편지에서 올해의 결심?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답장을 쓰다 완결을 못한 편지가 있어. 거기에 그렇게 썼었는데, '나는 파도가 오면 잠수를 할 거야. 몸도 맘도 단단히 튼튼히'라고. 근데 파도인 줄 알았던 게 쓰나미더라고. 그래서 잠수 시간이 너무 길어져 버려서 숨이 꼴깍꼴깍하나봐. 한참 후에 이 쓰나미가 지나고 나면 엄청 숨 참기 고수가 되어 있으려나 싶어.

항상 고마워. 다정하고 개구진 편지를 받을 때마다 민경의 따뜻한 온도가 전해져. 오늘도. 펑펑 울어버린 것마저도 편지구절을 읽다가 보고 싶은 시절, 얼굴들이 덕분에 떠오른 것도.

다정한 마음, 건강한 몸, 여름다운 여름이길.
민경과 마주 앉을 수 있는 날을 고대해.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는다. 홀딱 젖더라도"

내가 사는 이곳에는 올해에는 지독하게도 비가 오지 않더니 금요일 오후 4시 경에 물 폭탄 퍼붓듯이 쏟아지더라. 마침 버스에서 내려 한적한 길을 걷고 있었는데 우산을 쓰고도 옷이 다 젖어버릴 정도였어. 워낙 더웠던 터라 비가 쏟아지니까 좋더라.

나 어릴 적엔 장마 시즌이 되면 종일 흐리고 비가 퍼붓기를 몇 날 몇 일 이어서 노아의 홍수를 상상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요즈음은 게릴라 성 폭우라는 표현에 걸맞게 반짝 비가 내린다. 더위를 참기가 힘들지만 덥고도 습한 날씨는 사람의 한계를 종종 드러나게 할 정도여서 심신이 견디기 힘들어지는 것 같아. 몇 날 몇 일 비가 내리면 꿉꿉하고 냄새나고 빨래는 마르지 않아서 해가 나기를 간절하게 기다리게 되잖니! (몇 가지 가전 도구를 사용한다면 좀 더 뽀송하게 지낼 수 있을거라 여겨지지만 나는 아직 원시적으로 산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첫 해에는 이 집의 성향 파악이 안 되어 일 층 뒷 방 헹거에 가득 걸어 두었던 옷에 몽땅 곰팡이가 피었었어. 일부 옷은 버리고 일부는 세탁을 하면서 식겁을 하여서 지금은 옷은 무조건 통풍 잘 되고 해가 들어 오는 전면 방에 보관한다.

장마철 습한 날씨 이야기 하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네. 사실 나는 장마를 피한다기 보다는 즐기는 편이라고 할 수 있어. 해마다 장마를 겪었겠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어. 아주 어렸을 때 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던 기억이 있는데 아마 장마비였을 것 같아. 예전 살던 집 마당에 아버지가 만들었던 물고기 집에 비가 뚜둑 떨어지는 기억, 캠퍼스에서 비를 쫄딱 맞고 버스를 탔을 때 민망했던 기억,…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고 장마철을 당한다면 곤란을 겪겠지만 이제껏 경험을 바탕으로 잘 준비하여 장마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런데 피할 수도 있는데 스스로 장마 속으로 뛰어드는 성향은 어떤 유형일까? 너는 MBTI를 말하지만 나는 가끔 사주에 맞춰 평가를 해 본다. 물의 기운이 약한가? 지금 곰곰 생각해 보니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맞겠다 싶어. 많은 후유증을 겪었던 것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장마는 두 가지야. 물론 피할 수도 있지만 당당하게 빗 속을 걸어가고 있지. 하나는 봉사 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날마다 엄마를 만나러 가고 있는 중이지.

봉사라는 것은 누구의 강요없이 스스로의 결정과 선한 마음으로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겠지. 나 스스로의 결정과 선한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봉사 활동이지만 그래서 많은 시간과 때로는 약간의 금전도 투자해야 하게 되니까 가끔 내가 뭐하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 그래도 이것은 내가 맞이해야만 하는 장맛비거니 생각하면 마음이 가득 찬다.

날마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것이 어째서 장맛비인가 싶은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연세 드셔서 날마다 약해져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면 내 엄마이기 때문에 마음이 힘겹다.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는다. 홀딱 젖더라도. 그래도 이제는 잘 대처하는 법도 알아가는 중이라 곧 즐길 수 있을거라는생각이 들어. (그리고 확실히 즐길 수 있는 장마 키워드에 ‘무결레터’를 입력해 두었어. 나를 자라나게 하는 비니까) 안녕~
답장 잘 읽었어. 여기에 함께 나누지 못한 답장들까지도. 조금은 울면서 말이야.
머리 위에 컴컴하게 자리 잡고 있는 비구름들이 떠올랐어. 빗줄기는 역시 장마답게 촘촘하고 거세지만, 그래서 피할 수 없어 가끔은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자세를 갖춰보고 있는 마음들이 귀하게 느껴졌어. 빗줄기는 더 거세지는데 안에서는 단단한 힘이 뭉근하게 쌓여가기도 할 거야. 지금 너를 지나고 있는 장마도, 언젠가의 너를 지났던 장마도,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만날 장마도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는 그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고, 있었고, 있을 거야. 이렇게 저렇게 자세를 바꿔보며 말이야. 그 시간들을 마음을 담아 응원하고 싶어.  

*이 편지를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곳 주소를 통해 전해줘
*혹시 편지를 그만 받아보고 싶다면, 여기를 눌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