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아 너의 저번 편지를 읽고는 많은 반성을 했다. 물론 동시에 엄청난 감동도 받았다. 나의 이 계획없음
 
044_너는 나에게 공포의 마시멜로인 것이다
오막 to 한아임
2024년 5월
 

아임아

너의 저번 편지를 읽고는 많은 반성을 했다. 물론 동시에 엄청난 감동도 받았다. 나의 이 계획없음 성향을 포함한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인간이 존재하다니, 아주 감동적이야. 
물론 그렇다고, ‘허허 난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걍 이렇게 살아야지~’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까.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한테 안 좋은 점은 고쳐 나가야겠어. 그런 의미에서 반성을 했고 너에게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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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막에 대해 이야기를 했으니, 나도 아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이 편지는 간간히 음악 얘기가 섞일 순 있지만 너의 편지와 비슷하게 너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될 것이다. 
Tom Misch - Movie
나는 이제야 아임을 아임답게 보는 것 같다.
이.제.야.
아임에 대한 어떤 벽 같은 것이 말랑말랑해짐을 느낀다. 마시멜로처럼 말야. 그리고 그건 분명 너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아임을 학창시절부터 항상 무서워했더랬지. 공포 그 자체! 친함의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나의 어휘력이 아주 하찮기 때문에 ‘무섭다’라고 표현을 했지만, 이것은…. 음…. 뭐랄까,
너무 바르면서도 쿨하고 똑 부러지는 사람이라 한 번이라도 밉보이면, 혹은 바보처럼 보이면, 나를 ‘하찮은 인간’으로 생각할 것만 같은, 그런 의미에서의 무서움이었다. 널 멋지다고 생각했기에 거기에서 나오는 무서움인 것이지.
중학교 때도 그랬고, 나중에 대학을 가서 연락이 닿았을 때도, 네가 직장을 다니면서 직장을 떠나 네가 하고 싶은 일들에 관해 얘기하고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해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너는 너의 안에 명확하게 정답과 오답이 있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간간이 너를 몇 년 만에 만나게 될 때면 오답이 되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 벽을 세운 것 같기도 하다. 벽이 없다면 ‘헐랭방구인간’같은 나를 보여지게 될 테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20년의 관계가 끊어질지도 모른다고!'
'깨져버릴지도 모른다고!'
Tatsuro Yamashita - Fragile

여튼 그런 이미지의 아임이었는데 이번 너의 방문으로 인해 정말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막은 아임 앞에서도 그냥 헐랭방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건 온전히 네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너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변했음을, 그리고 그 전부터 변하고 있었음을 종종 네가 말해주긴 했는데 이번에 보니 정말 그렇더라.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 나한테 말을 거니 나 또한 나도 모르게 '벽'이 없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너도 알겠지만 정말, 정말 급속도로 친해졌다. 

지난 9900년 동안의 과학적 진화 속도를 10 이라고 한다면, 2010년~2020년의 진화 속도는 60000 이라고 한다는데, 체감상 거의 이 정도 속도차이다. 

명확한 계기나 시점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언젠가부터 ‘아니 내가 똥 같은 말을 해도 웃겨한다고?’라는 생각이 들며 내가 세웠던 벽도 허물어졌던 것 같다. 너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기 때문이겠지. 그리고는 저엉말 무의미한 대화를 우린 많이 했다. 지금도 그러고 있고 말야.

Sonder - Too Fast

물론 부쩍 가까워져 참 좋다
무의미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생긴 것도 좋고. 그리고 나는 내가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인지 몰랐다. 고막사람이야 글로 쓰는 거고 수정도 가능하고 취소도 가능하기에 이런 저런 말 늘어놓지만, 실제로는 나는 수다스러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수다쟁이가 되어버렸군. ‘벽’이란 게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어내다니 신기하군. 
네가 이번에 한국에 좀 오래 있어서 다행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냥 적당히 가까운,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가깝지도 않은 상태가 쭉 이어질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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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가까와지고 재밌는 건 너무 좋은데 우리의 계획들은 약간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있다. 노는 게 재밌는 것을 어떡해. 물론 계획한 대로 되는 우주가 아니다 이 우주는. (그냥 놀고 싶어서 변명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해낼 것이다. 음원이든, 유튜브든, 글이든, 뭐든 말야. 정말 정말 늦어져서 꼭 네가 한국에 있는 동안이 아니더라도, 네가 미국에 있어도 우리의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

Sir Chloe - Too Close
얼마 전에도 너랑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다가 나왔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정말 좋은 것은 별달리 이유가 없다. 음악도, 영화도, 장소도, 시절도, 사람도. 말 그대로 별것 없어. 심플하고 명확해. 물론 테크닉적으로 덕지덕지 발라져서, 그것도 너무 프로페셔널하게 트렌디하게 잘 발라져서 멋진 음악들도 있지만 내가 좋다고 저장해 놓은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쭉 들어보면서 정말 심플한 경우가 90% 이상이었던 것 같다.
그럼 느끼기도 쉬워지지. 다만 레이어는 있어야 한다. 이것도 우리는 만나서 했던 이야기긴 하지만, 레이어가 안 느껴지는 음악들은 너무 재미가 없다. 단순히 재미가 없다기보단, 정말로 그 곡에서 1차원적으로 느끼길 원한 감정마저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너무 행복한 멜로디의 노래를 너무 행복한 가사와 행복한 악기 구성으로, 그리고 행복한 보컬로 담으면 생각보다 행복x4가 되지는 않는다는 거지. 행복x1로 느껴지면 다행이다. 가끔은 마이너스까지 된다고! 
물론 그 레이어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론적으로는 난 더더욱 설명을 못 하는 사람이다. 실용음악 전공자들은 알고 있으려나. 테크닉만 알아서 되는 건 아닌 것 같지만. 감각의 영역 같기도 하고 말이야.
Current Joys - Symphonia IX
우주와 인생은 어쩌면 심플할지도 모른다. 자꾸 나 자신도 모르게 심플하지 않길 바라는 인간의 마음이 심플하지 않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이렇게 하고, 저기서 이렇게 연결해서, 오 좋아 그다음엔 이 점과 이 점을 연결하면 아주 이쁜 모양이 되고, 그다음 사각형을 한 번 그린 다음에 잠깐! 여기다 원을 끼어 놓고 삼각형을 올리면…! 아주 내가 원하던 이상적인 조형물이다! 내가 원한 인생이라고!'

이런 계획 따위는, 바람 한 번 불면 쓰러진다고. 아무리 밑그림을 그리고, 기둥을 세우고, 조립을 하고, 이음새를 본드로 붙여도 우주 입김 한 번이면 부서진다고. 아임이 너가 가지는 요즘 삶의 태도에 대해 나도 배우는 게 많다. 내가 내 몸도 컨트롤을 못 하는데 무엇을 자꾸 컨트롤 하려고 한단 말인가. 우리 집 강아지 루니도 내 맘대로 안 된단 말야. 오히려 나를 개무시하지. (내가 다정해도 루니에게 나는 서열 꼴찌….)그리고 우주에 흐름을 맡김으로써 알게 되는 아름다움이 있다. 당연하지! 내 계획서만 쳐다보다가 그냥 우주 무중력에 몸을 맡겨서 누워 있다 보면, 하늘도 보이고 별들도 보이고 그러니까. 계획서를 아무리 붙잡고 있어도 그 무중력에 떠다니는 건 똑같다. 다만 종이를 보고 있느냐, 아니면 누워서 주위에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있느냐 차이인 것 같아. 
thuy - universe
그나저나 말야, 너의 우주에 실크 소닉 Silk Sonic 정도는 추가해 놓으렴. 나 참 깜짝 놀랐잖아! 실크 소닉을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다니. 우주까진 아니어도 지구상에서 가장 핫 한 음악&아티스트 중의 하나였으니까, 넣어두어도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거야. 실크 소닉을 보면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게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좋아하는 것만 하기에도 시간은 너무 빠르고, 싫어하는 것을 하며 계획서를 붙잡고 있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실크 소닉 그들도 그들이 하려는 음악과 시대를 좋아하니깐 진심이고, 진심이니깐 잘하고, 잘하니깐 상대방에게 마음이 전달된다.
Silk Sonic - Skate
어쨌거나, 아임아.
너무 쿨해서 다가가기 무서웠던 아임은 이제 오막 우주에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쿨함은 똑같이 남지. 본투비 쿨했던 인간은 120살이 되어도 쿨한 것이라고. 이 우주가 그래. 쿨함과 키는 이 우주에서 그대로인 거다. 아직도 작디작은 아임아. 
이제는 말랑말랑해진 아임아. 다시 한번 벽을 허물어줘서 고맙다. 친해짐은 이제야 시작인 것 같다. 고막 사람 2년 동안, 아니 학창 시절부터 20년 동안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구나. 그냥 바보였구나…. 나를 '다정하다'고 해석해 줘서 고맙다. 돌고 돌고 돌아 드디어 가까워져 정말 다행이야. 네가 나를 그대로 봐주고 그걸 사랑이라고 봐주는 사람이어서도 다행이다. 그간 내가 살면서 무의미하게 내뱉었던 말들도, 혹은 스스로를 힘들게 했었을 일들도 너무 다행이라고 느낀다. 너랑 요즘 항상 하는 말이 있지? 이 세상에 진짜는 '지금'과 '내가 뭘 느끼고 있느냐' 밖엔 없으니까 그냥 지금 이 시간에 감사해야겠다. 


모든 것은 다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임을!


- 가까워져서 너무 기분 좋은
오막이가

Elijah Fox - L'Autre Cote
이번 편지를 보낸 오막은...
기약 없이 찬란한 미래를 꿈꾸고 있는 음악 프로듀서다. 학창 시절 미국 Omak에서 1년 동안 살았던 기억과 행복의 느낌을 담아 이름을 '오막'으로 정하고 활동중이다. 평소 말로 생각을 전달하는데에 재주가 크게 없던 오막은 특정 장르의 구분 없이 음악을 통해 생각을 전달하려고 한다. 앞으로 고막사람과 함께 오막 자신의 작업량도 쑥쑥 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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