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자리에서 과연 어떤 워딩의 말을 했느냐, 이게 쟁점 아닙니까? (…) 실제로 어떤 말을 했는지. 가장 정확한 건 본인의 말씀이지만, 여쭤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깐깐한 인상의 재판장이 정면에 앉은 변호인 6명에게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본인'은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2022년 9월. 국제회의에 참석했던 윤 대통령이 행사장을 빠져나오는 장면을 MBC가 가장 먼저 보도했죠. 영상을 여러 번 돌려본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넘게 흘렀지만,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법정에서는 여전히 분쟁 중입니다.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모른다
당시 MBC는 이렇게 자막을 달았습니다.
"(미국)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김은혜 당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이렇게 해명했고요.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나"
전문가는 이렇게 감정했습니다.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OO (판독불가) 쪽팔려서 어떡하나"
가장 예민한 대목은 판독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의 결론이었습니다.
판결문을 찾아봤습니다.
1심 재판부는 '현재로서는 대통령이 뭐라고 말했는지 입증할 수 없다'는 것에서 출발해 'MBC가 허위 보도를 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입증할 책임은 MBC에도 있다
1심 재판부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정정 보도를 요구한 외교부(원고)에 책임이 있다. 외교부가 '허위 보도로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걸었으니, 보도가 허위임을, 즉 대통령이 '바이든'이라고 말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실제로 뭐라고 말한 건지 판독이 안 되기 때문에 이 입증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송을 당한 MBC(피고)도 책임을 나눠질 수 있다. MBC가 대통령이 '바이든'이라고 말했음을 어떻게 확인했는지, 보도 과정은 어땠는지 따져본다.
보도한 근거가 타당하지 않다면 허위라고 볼 수 있다.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이해가 잘 안됐습니다. 무리해 보이기도 했고요.
1심 재판부가 논리를 가져온 대법원 판결 때문입니다.
인간 광우병 발병과 유전자 유형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을 다룬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된 판결인데요.
광우병에 대한 의학적 연구처럼 과학적으로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사실, 논쟁적인 과학적 사실의 진위를 판단해야 할 때 위와 같이 해야 한다고 제시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기술적으로 음성 판독이 안 된다는 이유로, 윤 대통령의 말을 '과학적 불확실성'의 차원까지 격상한 셈입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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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가 MBC에 정정 보도를 청구하며 시작한 소송은 현재 2심 중입니다.
MBC는 2심에서 김은혜 전 홍보수석을 증인으로 불러 당시 해명이 나온 경위 등을 확인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외교부가 김 전 수석의 진술서를 받아오면서 증인 채택이 어려워졌고, MBC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