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바뀌었죠? 디자이너 가내수공업자님이 로고에 새로운 색을 입혀주셨어요. 새 옷을 입고 새 마음으로, 2025년 1월 첫 레터 시작합니다. 신간 소식을 얼른 전해드리고 싶어서 마음이 이리저리 분주해요! 올해도 어김없이, 한 해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
*설 연휴인 1월 28일, 레터는 쉬어갑니다.

지금 오드리 로드를 읽는다는 것

🤲 번역자 박미선·이향미 그리고 편집자 캠퍼


📬 박미선·이향미

로드는 흑인 퀴어 여성의 관점과 입장에서 흑인 퀴어 여성의 경험을 지식으로 생산합니다. 이런 퀴어 인식론에 기반한 정치도 실천합니다. 주목할 점은 로드의 이런 관점, 활동, 지식 생산이 모두 전 지구적 지평을 지닌다는 것이며 이는 곧 이 책의 특별함이기도 합니다. 로드가 당대에 그렸던 퀴어 생존과 미래 비전은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혐오의 전 지구적, 지역적 연설성을 인식함으로써 나왔으며 이런 연결점들은 2020년대에 우리가 치르고 있는 전쟁이 1980년대 로드가 치렀던 전쟁과 똑같은 것임을 시사합니다. 이 전쟁은 전쟁 지역에서 무고하게 죽어가는 민간인들과 고향에서 쫓겨나 죽어가는 이들, 전 지구적으로 점증하는 여성혐오, 노동혐오, 장애인혐오, 동성애혐오, 빈곤혐오, 디지털 성산업 및 성범죄의 전 지구적 증가, 빈곤한 남반구에서 늘어가는 성매매업소, 착취 공장에서 천천히 죽어가는 이주 노동자들에 이르는 전 지구적인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소수자들이 서로를 혐오하며 자기보다 더 약한 이들을 짓밟도록 분열시키는 전쟁이며 지금 여기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여 벌어지는 전쟁입니다. 한국에 온 이 책이 고립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이 되기를, 우리 퀴어, 여성, 노동자, 가난한 이들, 아픈 이들이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데, 우리가 함께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캠퍼

2024 12 3일 이후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게 터져나오는 지금, 우리는 그간 미처 듣지 못했던 수많은차이’의 말들을 듣고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 정국 때와는 또 다른 연대의 물결을 보며 조금은 섣부를지 몰라도 희망을 감각하게 됩니다. 2025년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대의 확장 속에서, 지난 세기에 이미 기회가 될 때마다 그것을 호소하며 외쳐왔던 오드리 로드의 글을 읽다보면 어찌나 많은 지금 여기의 장면들이 겹쳐 보이는지요. 언제나 (강압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침묵당해왔던 이들의 편에서 목청을 높였던 로드의 목소리를 피부로 감각하며 읽을 수 있는 이 시국에 출간하게 된 것도 책의 운명은 아닌지, 믿어보는 지경에 이릅니다. 오늘날 억압과 차별과 폭력의 연결성을 인식하고 감각하며 연대의 밀도와 범위를 키우고자 고심하는 모두에게, 아울러 온전히 자기 자신을 살아내고자 하는 모두에게 지금 오드리 로드를 권합니다

 이전 화 읽기→ 4화: 읽고, 굽고, 놀려라

적정 코미디 기술

출간 전 연재 5화: 가진 무기로 싸워라

📩 금개 지음


새해를 맞아 내 책의 제목 후보들을 소개하려 한다. 갑작스러운 전개라고 느껴지겠지만 ADHD의 뇌에는 다소 그런 면이 있다.


    ❶ 웃기는 아빠, 못 웃기는 아빠
    ❷ 적을 만드는 대화법
    ❸ 웃기니까 코미디다
    ❹ 웃겨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❺ 웃기는 사람들의 6가지 습관
    ❻ 천 번을 실패해야 코미디언이 된다
    ❼ 못 웃길 용기
    ❽ 유머는 도끼다
    ❾ 광대의 말 그릇
    ❿ 결국 웃기는 사람들의 원칙

이로써 내가 자기계발서를 패러디하려 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놀리고 싶은 마음에 허무한 말장난 제목을 100개 정도 일필휘지로 써냈으나 편집 과정에서 적당히 타협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아챘겠지만, 나는 자기계발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독자들이 알아서 눈치 보길 기대하며 은근히 가스라이팅하는 것을 즐긴다.

진지함을 회피하기 위해 농담 따먹기를 일삼는 입장에서 자기계발서의 진중한 태도에 웃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백인 아저씨가 아래위로 정장을 빼입고 ‘저는 대단히 성공한 사람입니다. 님들도 몇 가지 간단한 원칙만 따라 하면 대단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근데 그 정장 자체가 지독하게 못생겼을뿐더러 돈을 줘도 입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는지?

각자가 처한 상황은 절대 보편화될 수 없는데도 모두에게 적용되는 진리가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다보니 이 장르에는 종교 뺨치는 비장함이 서려 있다. 실제로 성공학의 역사는 한국 교회의 “현세 중심의 기복 신앙적 특징”과 그로부터 파생된 부흥 목사들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1]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부류의 서적에서 나타나는 ‘자아’에 관한 서술은 개신교의 관례와 상당히 유사하다.[2] 성공을 향한 지름길로 안내하는 구루들의 눈빛에 서린 묘한 광기는 나에게 익숙하다. 한때 나와 엄마가 가졌던 눈빛이기 때문이다. 유년기의 어둑하고 찬 새벽을 떠올리면 자기계발과 개신교의 상관관계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엄마 차를 타고 교회에 가서 찬 지하실 바닥에 방석을 깔고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하던 일을 떠올리면 된다. 저마다의 소원을 웅얼거리는 신도들 틈에서 기말고사를 잘 보게 해달라고, 외고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새벽과 영단어를 스무 개 외우고 엄마 앞에서 시험을 보던 매일 등교 전의 아침.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인생의 사명을 프랭클린 플래너에 적고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는 건 이제 그만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기도에서 지금(good)보다 더 나아지길(better) 빌던 시절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지금(emergency)은 죽지 않는 게 삶의 제1 목표가 되었다. 살다보니 그렇게 됐다…… 현재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고 어쩌다 죽기 십상인 비상사태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저 힘을 빼고 최소한만 해야 스스로를 착취하다가 죽이지 않을 수 있었다. ‘자기계발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니까 자기계발서를 쉽게 비웃을 수 있겠지?’, ‘아무것도 아닌 내가 어설프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우습겠지?’라고 생각했다. “○○해라”식의 제목으로 몇 개의 글을 완성한 지금, 자기계발서의 형식만 가볍게 패러디하려던 의도는 거의 실패로 돌아간 듯하다. 가볍게 헛소리만 하기에는 그간 나에게 꽤 진지한 교육자 자아가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퇴사한 지 5개월이 되어가는 지금도 학기 말 시즌이 되면 성적표에 쫓기는 꿈을 꾼다. 교사도 성적표를 받는다. 내가 매 학기 생활기록부를 썼던 것처럼 학생들도 나의 코칭과 수업이 어땠는지 피드백을 작성했다. 방학을 맞아 조용한 학교에서 교사 워크숍을 할 때마다 가장 떨리는 시간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사내 메신저로 보낸 ‘학생 설문 결과’ 파일을 클릭해 열리기까지의 시간. 그 문서에는 수업 만족도에 대한 5점 척도의 평가 그래프들과 주관식 답변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재직 기간에 여러 개의 PDF 파일을 받아보았지만 절대 익숙해지는 종류의 성적은 아니었다. 숫자로 된 지표는 평균을 넘기면 다행이다 싶은데, 문제는 주관식 답변들이었다. 다분히 감정적이거나 편파적일 때도 있지만 학생들의 평가는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더 뾰족하게 파고들었다. 학생들이 나에 대해서 신랄하게 평가하거나 바라는 바를 적은 문장들을 읽고 나서 멘탈을 다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너네는 그럼 완벽하냐?”, “너희가 뭘 알아!”를 속으로 다섯 번 외친 다음 조금 울고 나면 겨우 다음 수업을 준비할 수 있었다.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고 내장을 꺼내 저잣거리에 내거는 기분이 드는 코멘트도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괜찮습니다.^^

 

학교의 문제점: 지친 교사에 비해 활기찬 학생이 너무 많다.

학생들의 특징: 아직 지칠 만큼 뭔가를 해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매일 더 나아지고자 하는 열망으로 눈을 빛내는 학생들 앞에서 자기계발은 신자유주의적 허상이라느니 하는 신념은 별 쓸모가 없었다. 교사 워크숍에서 성적표를 받은 날이면 새벽기도를 나가는 심정으로 친구 나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밥 먹으러 가도 돼?” 그 집의 객식구로서 충실히 곡식을 축내려는 것도 맞지만 진짜 목적은 식사 이후에 있었다. 숟가락을 내려놓을 때쯤 “나 타로 봐줘”라고 하면 나래는 방에서 타로카드를 꺼내와 방바닥에 까만 천을 깔았다. 밥상에서는 꺼내놓지 않았던 고민이 타로카드 앞에서는 질문의 형태로 나왔다. 나래는 신통한 타로 리더인데, 신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뛰어나게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라서다. 요즘은 본인도 모르게 약간 무당 말투로 타로 점괘를 읽어주긴 한다. 날카로운 학생 피드백에 상처받은 그날도 나래는 용한 선녀 보살처럼 말했다.

“새롭게 뭔가 도전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 가진 무기로 싸워야 돼.”

가진 무기로 싸우기, 너무나 적절한 타이밍에 타로의 신이 내려준 지침이었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잘못한 채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간절히 실수를 복구하고 싶을 때는 나의 부족함을 자책하며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더 나아지려면 여기서 버텨서 밀고 나가야 한다. 내가 잘하는 게 뭐냐고 자문하면 답하기 어려웠지만, 가진 무기가 뭐냐고 물으니 무딘 날이나 이상하게 생긴 돌도끼 같은 것도 다 꺼내보게 됐다. 잡다한 가재도구를 다 꺼내놓고서도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를 잘 모르겠어서 내가 도움을 구한 곳은 의외로…… 갤럽이라는 회사였다. 맞다, 그 가끔 전화 오는 여론조사 전문 기관. 그렇게 자꾸 끊기는 전화를 돌려서 어떻게 먹고사나 했더니 칭찬에 목마른 현대인의 허를 찔러 야무지게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평소 그렇게 코웃음을 치던 자기계발서에 10만 원을 쓴 이야기다. 아직도 좀 황당하다. 하지만 학생들의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생각하면 당장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잘은 몰라도 데이터로 돈을 버는 갤럽이란 회사에선 ‘클리프턴 강점 테스트'라는 걸 만들었다. 클리프턴이라는 백인 아저씨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강점 항목 34개를 만들어놓고 사람들한테 30분 정도 이것저것 물어본다. 클리프턴 아저씨가 직접 물어보는 건 아니고, MBTI 테스트 같은 게 인터넷에 있다. 근데 MBTI 테스트처럼 무료로 할 수는 없다. 갤럽 프레스가 낸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이란 3만 원짜리 책에는 코드가 하나 들어 있는데 그걸 입력해야 테스트를 볼 수 있다. 테스트 결과로 갤럽이 만든 34개 강점 리스트 중에서 나의 탑 5 항목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나의 탑 5는 이렇다.


개별화
커뮤니케이션 
사교성
발상
행동

애걔……? 불변의 ENFP로서 다소 예측 가능한 결과라 실망스럽다. 이때 귀신같이 옆에 결제 버튼이 뜬다. “모든 34개의 강점 순위를 알고 싶다면 7만 원을 더 내세요.” 홀린 듯이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땐 월급이란 걸 받는 시절이었을뿐더러 34위가 뭔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약점에 천착하기보다는 강점을 계발하라는 이 테스트의 취지와 정반대의 이유였다. 34위 꼴찌 항목이 롯데월드 화장실의 기 센 언니처럼 노려보는 것을 무시하고 상위 10개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가진 무기로 싸우랬으니까.

이런 테스트에 10만 원씩 쓰지 않아도 뛰어난 코미디언이라면 본인이 뭘 잘하는지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유재석은 진행을 잘한다. 자신이 아닌 사람을 무대에 올려놓고 최선의 퍼포먼스를 이끌기 위해 자기가 가진 위치와 재능을 활용하는 거다. 무대에 세운 사람을 완전히 신격화하지도, 깔아 낮추지도 않으면서 팬임을 자처하는 동시에 잘 놀린다. 홍진경이 세상에서 제일 웃긴다며 눈물을 훔칠 때, 그가 〈유퀴즈〉에서 수없이 만나는 일반인 출연자들의 말에서 놀림거리를 발견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때 유재석 옆의 사람들에게는 캐릭터가 생긴다. 플레이어에게 무대 조명을 넘겨주고 시청자들의 리액션을 이끌어내는 제1의 반응자이면서 대화를 이끌고 분위기를 만드는 진행자다.

조혜련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진행자보다는 공채 코미디언의 스타일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식으로 기어이 웃긴다. 일단 분홍색 밀짚모자에 왕 귀걸이를 한 채로 나온다. 유행어를 만들어 반복하며 몸짓을 크게 쓴다. 그리고 〈아나까나〉를 부른다. 공영방송 심의에 걸릴 정도로 ‘수준 미달’이라 여겨지는 것을 기꺼이, 자랑스럽게 해낸다. 태보 에어로빅 영상과 〈아나까나〉를 웃음거리로 만든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웃으라고 만든 건데? 나 코미디언인데?”라고 대답하는 것 같다.

유재석과 조혜련은 다른 방식으로 너무나 뛰어나다. 웃기기 위해서는 본인에게 가장 뛰어난 자질이 뭔지 아는 것이 유리하다. 일단 내가 잘하는 게 뭔지 알았다면 그 방향으로 전략을 짜고 자기 스타일을 믿어야 한다. 관객에게 맞추려고만 하는 코미디언은 관객의 반응에 따라 어떤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반응이 안 좋아도 일단 밀고 나가는 힘이 있어야 한다. 뚝심 있게 밀어붙이면 어떻게든 된다. 4절까지 하면 뇌절이라고 욕먹지만 10절까지 해버리면 어이가 없어서라도 웃음이 나온다. 〈피식대학〉의 이용주가 엉터리 사투리로 경상도인들의 눈치를 보다가 슬쩍 발을 뺐다고 생각해보라. ‘맛깔끼노’, ‘맛꿀마’ 같은 말맛을 가진 밈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상도 출신인 본인의 고향에서 분명히 쓰는 말이라고 증언하는 뻔뻔한 거짓말쟁이 누리꾼들도 댓글창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뭐가 됐건 무조건 10절까지 밀고 나가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잘하는’ 걸 밀어붙이라는 것이다. 〈피식쇼〉에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이용주가 언어를 다루는 감각이 뛰어날 거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확실하진 않다. 게다가 밀어붙인다고 안 될 때도 많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갈뿐더러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고, 경상도의 아들 노릇을 왁자하게 하다가 지역 비하 발언으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할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훌륭한 사람들은 훌륭함의 씨앗을 어떻게 알아차렸을까? 사람들은 각각의 이유로 특출나고 나는 매번 그것에 이끌린다. 하지만 정작 나에게는 뭐가 있는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힐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친구들을 경유해서 뭐라도 찾아내려고 한다. 위대한 재쓰비가 노래했듯 “도무지 너를 모르겠다면 네 곁의 나를 믿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무기를 발견해주는 친구가 있고 그걸 솔직하게 말해주기까지 하는 행운을 모두가 누리기는 어렵다. 친구가 없거나 소통이 단절된 안타까운 경우에도 써먹을 수 있는 방법들을 몇 가지 추천한다.

 

[나의 무기] 강점-가능성 확인법

혈액형(병원): 다소 전통적인 방법이지만 조상들의 지혜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간을 피의 종류 네 가지로 거칠게 분류해 대략 특징을 모아둔 것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나도 그런데?’ 싶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MBTI(인터넷 테스트): 네 가지 알파벳의 조합이 대한민국을 휩쓴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혈액형 경우의 수의 제곱이나 되는 가짓수로 인간을 분류했으니 제곱만큼의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상담(심리상담센터): 상담에서는 나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장점도 발견할 수 있다. “저는 답도 없는 쓰레기예요”라며 울고 있으면 나에게 돈을 받은 상담 선생님이 아니라며 좋은 점을 몇 가지 이야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등 아픔이 증상을 가볍게 인증하면 나라에서 상담 비용을 지원해주는 제도도 있으니 잘 찾아보고 혜택을 받을 것. tci 기질 검사라는 것도 추천한다.
진단(신경정신과): 나의 진단명을 알게 되면 구글에 ‘(병명) 장점’을 검색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ADHD는 온갖 군데에서 지각하고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려 가까운 사람들에게 평생의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창의적이랍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앞의 말은 무시하고 창의적이라는 것에만 집중하자.
사주팔자(사주카페, 점신 어플 등): 태어나는 순간 우주가 나에게 부여한 고유의 운명이 있다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통계를 바탕으로 나의 캐릭터를 해석할 수 있다면? 내가 음양오행 우주의 한낱 점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연물에 빗대어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두 배로 편안하다. 참고로 나는 사주에 물이 많아서 남자(나무)를 썩혀서 죽였고, 배우자 자리에 같은 사주가 있어서 동성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한다. 그냥 신림에서 시간 때우려고 들어간 일반 사주카페에서 들은 이야기다.
신점(무속인):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존재가 내 조상신과의 즉석 대화를 통해 길흉화복을 알려준다면? 게다가 화려한 인테리어와 패션, 죽이는 음악과 퍼포먼스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면? 이제 와서 종교를 가지기엔 좀 귀찮지만 신의 입장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샤머니즘을 추천한다. 참고로 나는 2023년? 2024년? 초반에 난생처음 신점을 봤는데 팔자에 책이 있다고 했다. 잘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계속해야 나에게 좋다고 했다……

유재석이 유재석을 잘하고, 조혜련이 조혜련을 잘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이 모든 과정을 거쳐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그들이 숱하게 많은 무대와 기회를 거쳐 지금 잘하는 것을 잘하게 되었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새해에는 내가 어떤 종류의 웃김에 자신 있는지 생각해보고 강점과 가능성이 있는 부분에 집중해보자. 코미디언 강점-가능성 테스트는 단행본에 싣도록 하겠다. 모쪼록 올해에는 반드시 출간을 약속하며……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 정해윤, 성공학의 역사》, 살림, 2004.

[2]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돌베개, 2009. 스티븐 코비는 몰몬교 신자이긴 하다.

곧 출간됩니다

《인식적 부정의: 권력, 편견, 그리고 앎의 윤리》

미란다 프리커 지음ㅣ유기훈ˑ정선도 옮김


사회적 권력과 정체성, 앎의 얽힘을 탐구하는 우리 시대의 고전

 

“시간이 흐른 후 미래 세대가 21세기를 돌아보며 철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작들을 꼽는다면, 《인식적 부정의》 역시 단연 그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옮긴이의 말)

 

👉성폭력에 대한 비판적 언어의 부재로 고통받는 여성

👉자기 정체성을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한 성소수자

👉인식적 능력을 마땅히 인정받지 못하는 장애인

👉불신에 둘러싸여 증언을 묵살당하는 흑인……

 

이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사례에서 우리는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도덕철학과 사회인식론을 연구하는 철학자 미란다 프리커는고유하게 인식적인 유형의 부정의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단초로, 인간에게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인식적 능력(무언가를 이해하고 알 수 있는 능력) 혹은 지식의 주체로서의 능력에 범해지는 잘못을인식적 부정의epistemic injustice’로 개념화한다. 그의 이 개념은 (도덕)철학, 인식론, 문학비평 등은 물론 페미니즘을 비롯해 다양한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각종 사회운동에 강력한 언어와 사유를 안겨주었고, 그 덕택에 비로소 우리는 이 고유한 부정의에 뚜렷한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추천의 말*

 

미란다 프리커가 정식화한인식적 부정의개념은 우리가 얘기해왔던 것에 뚜렷한 형상과 힘을 부여해주며, 그것을 움켜쥐고 변방에서 중심으로 밀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인식적 부정의》는 지식 회득 과정에 어떻게 편견과 불평등이 개입하여 부정의를 낳을 수 있는지를 면밀히 드러내고, 전통적인 인식론에서 도외시되었던 인식적 덕들을 개념화하여 인식적 부정의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려 한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이우람, 서울대 철학과 교수

 

지식은 언제나 몸이 가진 권력 위치의 문제이기에 인식적 부정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몸의 위치에 공감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미란다 프리커의 문제의식이다. 진리는 차가운 것이 아니라 따뜻한 것임을 설파하는 이 책은 냉혹한 능력주의가 휩쓸고 있는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준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News  
알라딘이 주관하고 작가, 출판인, 활동가, 언론인, 번역가 등 106인이 참여한 ‘21세기 최고의 책’ 기획에 오월의봄 도서 12종이 선정되었습니다.🔊 알라딘에서 ‘가장 중요한 책, 현재의 세계에 영향을 끼친 저작,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 더 많이 읽혀야 할 책’이라는 느슨한 기준을 제시해주시고, 선정자분들께서 고심 끝에 골라주신 책입니다.

지난 25년 사이 출간된 이 귀한 양서들 가운데 오월의봄 책을 선정해주신 분들과 함께 흥미로운 이벤트를 기획해주신 알라딘 서점, 책을 만들어주신 저·역자 선생님들, 오월의봄 책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21세기 최고의 책 선정 도서
《오월의 사회과학》(최정운 지음)
《유언을 만난 세계》
(정창조·강혜민·최예륜·홍은전·김윤영·박희정·홍세미 지음ㅣ비마이너 기획)
《전사들의 노래》(홍은전 지음ㅣ훗한나 그림ㅣ비마이너 기획)

📙 106인의 ‘최고의 책’ 809(선정자)
•《감정의 문화정치》(사라 아메드 지음ㅣ시우 옮김): 안희연(시인)
•《고통받는 몸》(일레인 스캐리 지음ㅣ메이 옮김): 정희진(여성학자)
•《노랑의 미로》(이문영 지음): 김중미(작가)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홍세미·이호연·유해정·박희정·강곤 지음ㅣ정택용 사진): 손희정(평론가)
•《어쩌면 이상한 몸》(장애여성공감 지음): 은유(작가), 정보라(소설가)
•《오월의 사회과학》(최정운 지음): 박솔뫼(소설가), 이수현(번역가), 정세랑(소설가)
•《유언을 만난 세계》
   (정창조·강혜민·최예륜·홍은전·김윤영·박희정·홍세미 지음ㅣ비마이너 기획)
   : 오혜진(평론가), 진은영(시인), 이연숙(평론가)
•《장애학의 도전》(김도현 지음): 서성진, 진태원(연구자)
•《재앙의 지리학》(로리 파슨스 지음ㅣ추선영 옮김): 김겨울(작가)
•《전사들의 노래》(홍은전 지음ㅣ훗한나 그림ㅣ비마이너 기획)
   : 김도현(활동가), 장혜영(정당인)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오혜진 지음): 강소영(편집자)
•《짐을 끄는 짐승들》(수나우라 테일러 지음ㅣ이마즈 유리·장한길 옮김): 안희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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