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과 도서관
2022/3/18/金  웹에서 보기 | 구독하기


Vol.49 INTERVIEW:  이경주 작가
LETTER
🎈 학교와 도서관
1|| 하교 후 불 꺼진 교실. 그곳이 무덤처럼 보이는 까닭은 비단 인기척의 문제는 아니에요. 학교는 공간 자체가 어두워요. 아이들이 너무 밝아 공간을 어둡게 해 중도를 지키려던 설계자의 깊은 의도는 설마 아닐 테죠. 학교 건물을 생각할 때 칙칙함이 먼저 떠오르는 건 못내 아쉬운 부분이에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도는 교정에도 으레 환기구 역할을 하는 공간은 있어요. 돌아보면 그곳도 학교의 다른 구역처럼 회색 지대였지만 색색이 악센트가 있어요. 어디일까. (이게 사계절 북뉴스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짐작하고도 남겠지만) 도서관.

2|| 이번에는 도서관이 배경인 책 하나 준비했어요. 이 북뉴스를 읽는 분 중에 13~18세 학생은 없는 줄로 압니다만 나른한 주말, 동네 도서관, 앉은 자리에서 완독하고 나올 수 있는 소설이에요. 제목은 『우리를 만나다』. 지난 북뉴스에서도 언급했지만 한 채의 도서관 같은 책이기도 하고요.

3|| 이번에도 어떤 책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데 실패한 것 같네요. 제 능력 미달에는 차도가 없네요. 하하하. (멋쩍은 웃음.) 그러나 괜찮아요. 묘수가 있어요. 저는 역부족이었지만 인터뷰를 읽으면 책이 읽고 싶을 거예요.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INTERVIEW: 이경주 작가
🎈 "책도 사람처럼 다 다른 모습이구나." (🎱: 담당자 | 📗: 이경주 작가)
🎱: 『우리를 만나다』는 어떤 이야기인가요.
📗: 두 청소년이 어느 특별한 계기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를 만나다』는 그 과정에서 진실을 마주한 주인공들이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이야기예요.
🎱: "특별한 계기"는 역시 도서관에서 벌어지죠. 도서관을 판타지의 배경으로 삼으신 이유가 있나요.
📗: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도서관 열람실에 갔어요. 열람실에 들어섰을 때 수많은 책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친구는 자연스럽게 책을 고르는데 저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서, 무작정 마음에 드는 책을 찾기 시작했어요. 책등에 적힌 각각 다른 책 제목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책도 사람처럼 다 다른 모습이구나.’ 이름과 모양, 크기처럼 책 속 내용도 다를지 궁금했고요. 그때부터 책을 읽는 건 새로운 사람,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경험 때문에 도서관을 판타지 공간으로 정했어요. 책은 삶과 세상을 담고 있고, 바로 그 책이 있는 곳이 도서관이니까요.
🎱: 작가님의 고등학교와 도서관에 얽힌 기억처럼 이 소설 또한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예요. 청소년기에 관심을 가지고, 더불어 글까지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 저는 원래 입시 국어를 가르쳤어요. 대부분은 입시를 눈앞에 둔 수험생들이어서 칠판 앞에 서면 문제 풀이하느라 정신없이 바빴어요. 어느 날 강의실에 앉은 학생들을 보는데 모두 피곤한 얼굴이었어요. 입시 학원에서는 학생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면 대학에 합격한다는 얘기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입시가 끝난 제자들을 만나면 항상 다른 사람을 만난 기분이 들었어요. ‘이 아이가 이렇게 환하고 눈부셨구나. 빛나는 모습을 이제야 보다니.’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자 강사 일을 그만두게 됐어요.

그 뒤로 아이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학습 상담 일을 했어요. 심리적인 이유로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만나면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방법으로 글쓰기처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글쓰기를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청소년의 이야기가 쓰고 싶어졌어요.

🎱: 소개하고픈 문장이 있나요.
📗:  시간이 지나도 괜찮아지지 않는 게 있어. 아픈데 안 아프다고 할 수 없잖아. 그래도 우리가 나이가 들면 지금보다 덜 아프지 않을까. 괜찮아, 제로.”

이 대사는 밴쿠버가 제로에게 말인데, 바로 나 자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었어요. 아직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애써 외면한 채 그저 앞만 본다면 그 상처는 곪아서 나를 더 아프게 할지도 몰라요. 내 안의 상처 혹은 아픔을 인정하며 바라보는 것. 그 순간부터 치유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죠, 그래야 약도 바르고 치료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주인공들은 선택의 순간에 놓여요. 가혹한 진실을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것과 고통스럽다 해도 진실을 아는 것. 작가님의 선택은 역시 후자일까요.
📗:  저는 가혹한 진실이라도, 혹은 고통스럽다 해도 그 진실을 마주하고 싶어요. 예전에 예능에서 종종 본 장면 중에, 밀폐된 상자 안에 손을 넣어서 그 안에 든 것을 맞히는 게임이 있었어요. 상자 안에 있는 양말 뭉치를 만진 어떤 출연자가 소리를 지르고 기겁했어요. 상자 안에 무서운 게 있다면서요. 진실을 외면하는 일은 이 게임과 비슷한 것 같아요. 너무 무섭게 느껴지거나 실체를 왜곡할 수도 있으니까요.
🎱: 책을 읽는 일은 상자 안을 들여다보는 일일 수도 있겠네요. 『우리를 만나다』에는 이제까지의 내 삶을 기록한 책이 나와요. 저도 저에 관한 책이 있다면 읽어 보고 싶어요.
📗:  제 삶을 기록한 책이 있다면 펼칠 것 같아요. 그 책을 보면서 제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소중한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어요. 그 책을 읽을 때 제가 많이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잘 보내고 싶어요.
🎱: 편지들 또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책을 읽을 독자분을 위해서도 기념의 한 말씀 부탁드려요.
📗:  『우리를 만나다』가 독자분들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길. 그래서 『우리를 만나다』가 여러분의 기억 한편에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 저도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나저나 오는 주에 책방사춘기와 함께 이경주 작가님 강연이 있지요.
이 인터뷰 읽은 분들은 필히 참석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만 총총.

3월 24일 오후 7시.
책방사춘기 인스타그램 (@sachungibook).
COMMUNITY
🎈 배짱
한 편의 북뉴스를 쓰기 위해선 몇 권의 책을 읽어야 할까요. 배짱만 있다면 안 읽어도 가능해요. 그렇다면 한 번 '독자와의 대화'를 하기 위해선 몇 개의 피드백을 받아야 할까요. 이건 배짱의 문제가 아니에요. 초라한 북뉴스의 초췌한 코너. 그럼에도 어쨌든 이어나갈 수 있는 건 전적으로 독자님 덕분이에요. 초가삼간에 어울리지 않는 크고 단단한 대들보. 고마운 마음을 꽉꽉 담아 독자의 피드백에 응답해 봅니다.
독자: 👀 | 담당자: 🎱
👀: 세상에, 하이쿠! 하이쿠를 인용하다니! 저는 간결하게 말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라, 한동안 하이쿠에 심취했었거든요, 동경인가. 뉴스레터 곳곳에, 나와 회사(ㅋㅋ)와 유머와 팩트, 를 적절하게 섞으시는 점이 늘 좋습니다.
🎱: 고맙습니다. 겨울 지나 봄. 계절은 길어도 밉고 짧아도 밉습니다. 적당한 게 좋다지만 어디 쉽습니까. 그러나 긴 말의 요를 찾는 사람, 짧은 말 속 의를 찾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연말부터 달린 탓에 시작한 줄도 모르고 시작한 올해의 시작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어요. 제가 시작한다고 해서 시작되는 해는 아니지만, 결국 올해를 사는 건 저니까요. 게다가 관심 있던 책이 나와서 반가웠어요. 『우리를 만나다』, 기대됩니다.
🎱: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지만 나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기다릴 것인가. 기다림의 대상을 정하는 일은 삶의 방향을 정하는 일입니다. 12월 31일에도 올해를 시작할 수 있는, 나를 위해 나를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길.


👀: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해요. 『차대기를 찾습니다』는 꼭 한 번 읽어 보고 싶네요. 누구나 학창시절에 이름 때문에 고민했던 기억이 한 번쯤은 있을 거 같아요. 특히 동명이인인 연예인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면 괜히 내가 뜨끔해진다거나 같은 반에 동명이인인 친구가 있으면 더 조심스럽게 친구를 부르게 된다거나 했던 기억들이요. (저만 있나요?) 아무튼 동명이인이 없어서 외려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차대기라는 친구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 이름이 짧은 시라면, 멋진 시를 들으며 살아가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시를 싫어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름이 신체시라면? 김"철......ㄹ썩".'이름에 먹칠하다'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동명이인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이름에 윤을 내며 살아야겠다는 그야말로 자기계발적인 다짐을 해 봅니다.


(지난 번 북뉴스 추가 질문입니다.)
❓ 전쟁과 정치. 평화가 절실한 요즘입니다.
독자님 나름, 불안을 달래거나 의지를 다지는 방법이 있나요? 책 추천도 좋아요.

👀: 의지를 다져야 할 때, 삶이 고난의 한가운데 있을 때 저는 『어스시 이야기』를 읽어요. 그 작품은 아주 집중해서 읽어야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고, 마법의 원리는 '이름'을 아는 데서 나와요. 존재의 이름을 알아내면 그를 지배할 수 있게 되죠, 그러니까 존재의 본질은 바로 정체성이라는.... 이야기를 르 귄 여사는 재미있게 썼어요, 정말이에요. ㅎㅎ
🎱: 어스시 이야기』. 소설은 못 봤지만 애니메이션은 봤어요. 내용은 전혀 기억이 안 나네요. 때가 되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오르네요.)


👀: 요즘에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방법을 택하고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걸 찾아 하려고 하죠. 생각이라는 우물을 깊이깊이 파느라 가만히 앉아 있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주말 오전엔 청소를 하고, 오후엔 일기를 쓰면서 불안함을 달래고 의지를 다지는 편이에요. 『넌 아름다워』.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책입니다.
🎱: 청소를 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다시 말해, 청소를 하지 않으면 기분이 안 좋습니다. 제가 청소를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기분이 안 좋으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농담입니다만 사실이기도 합니다. 제 방은 대체로 쓰레기장과 같고, 그곳에서 저는 찡그린 표정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아무튼, 자연이 진공을 거부하는 것처럼 사람은 무위를 견디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건강하세요.


🎱: 탁월한 선택입니다.
PERIOD.
독자님의 피드백은 북뉴스 쓰는 일에 큰 힘이 됩니다.
산책을 하다 움튼 산수유 꽃을 보았습니다. 마른 하늘임에도 신발 밑창이 지저분했습니다. 겨우내 언 땅이 녹은 게지요. 바야흐로 봄입니다. 여긴 경기도 서북부이니 남쪽 독자님들께는 뒤늦은 소식일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봄과 관련한 질문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봄을 묻는 질문이 봄을 부른다는 감상적인 권유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봄을 그려 보는 일은 그 나름대로 좋은 글감이지 싶습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봄 큐레이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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