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트릭트가 재현한

자연보다 더 살아있는 자연

디스트릭트 홀딩스는 삼성동 코엑스에 상영되었던 ‘wave’, 뉴욕 타임스퀘어의 ‘whale’, ‘waterfall’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한 것으로 유명한 콘텐츠 제작 회사입니다. 디지털 미디어에 특화된 이 기업은 자신들만이 가진 특별한 기술적과 역량과 디자인적 감각으로 전 세계를 홀렸습니다. 이들의 작업물은 전광판이라는 2차원의 공간의 한계를 아나몰픽 일루전 기법을 통해 3차원이라는 착각이 들도록 확장시켜 그동안 볼 수 없던 없었던 전광판 광고의 새로운 매커니즘을 제시했습니다.

디스트릭트의 작업물이 더욱 시선을 끄는 이유는 이들이 커다란 전광판에 구현하는 그래픽 이미지가 실제보다 더 진짜처럼 자연을 모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엑스 한복판에서 요동치는 작품 wave는 삼성동 거리를 집어삼킬 듯 휘몰아치고, 뉴욕의 중심 타임스퀘어의 고층 빌딩 꼭대기에서부터 물이 떨어지는 모습의 waterfall은 저 물이 떨어져 나를 덮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압도되어 눈을 떼기가 힘듭니다. 이들은 도심 속 대형 옥외 광고판에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자연을 봉인하여 도시에서 광활한 자연의 모습을 우연히 마주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의외성과 비현실성을 자극해 흥분감을 증폭시킵니다. 

디스트릭트가 처음부터 자신들이 가진 기술력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구현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지난 10여 년간 실내형 4D 아트 파크 ‘라이브 파크’, K팝 디지털 테마파크 ‘플레이 케이팝’을 흥행시키는데 연이어 실패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라이브파크와 플레이 케이팝에서 이들이 찾은 두 공간의 공통적 실패 요인은 주제가 지나치게 기술에 집중되어 있거나 특정한 집단만이 공감할 수 있는 테마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무렵 넥센 타이어 마곡 신사옥을 위해 ‘도전’을 파도의 움직임으로 풀어냈던 설치 작품이 사옥에서 일하는 직원들뿐만 아니라 입소문을 타고 대중들 큰 호응을 얻으며 ‘자연’이라는 주제가 형성하는 공감대가 가진 힘을 몸소 체감하게 됩니다.

이들은 자연을 실감 나게 구현한 작업들에 온 긍정적인 피드백을 토대로 지난 2020년 제주도에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관 아르떼 뮤지엄을 오픈, 이후 여수, 강릉에 이어 해외 오픈을 준비하는 등 코로나로 인해 전시 업계가 주춤했을 때에도 멈추지 않는 확장세를 보여왔습니다. 이들은 Flower, Waterfall, Beach, Wave, Forest 등 자연을 테마로 주특기인 미디어 아트와 함께 음악과 향의 전문과들과 큐레이션 한 공간을 만들어 시각적인 자극을 넘어 공감각적 감각을 만족시키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사람들은 자연을 닮았지만 자연의 어떤 특정 요소들이 극대화되거나 일상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자연의 모습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의 비 일상성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고, 어쩌면 진짜 자연보다 더 멋있는 사진을 남길 수 있는, 더 강렬한 기억을 선사하는 이 공간에 깊이 매료됩니다. 

위 사례들을 통해 디스트릭트는 자연이라는 소재를 공공의 목적과 상업적 성공 모두에 적절히 활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형 전광판에 진짜보다도 더 진짜 같은 자연을 구현하여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잠시 숨돌릴 틈을 주고, 자신들의 기술을 총 집결시킨 아르떼 뮤지엄에서는 관람객들에게 자연이 주는 경외감과는 또 다른 유형의 감동과 즐길 거리를 선사해 자연의 제한적인 한계를 확장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도심 속 인공 자연에서 즐기는 여유,

섬세이 테라리움

섬세이는 자연에서 경험한 기억을 우리가 일상에서도 매일 상기시킬 수 있도록 하고자 돕는 브랜드입니다. 지금 성수동 서울숲 부근에서 진행 중인 ‘섬세이 테라리움’은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대변하는 첫 번째 공간 프로젝트입니다. 이곳은 ‘지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자연이 만약 사라진다면'이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자연을 잃게 된 미래의 어느 날, 인공적인 자연을 만들어 현재를 추억하며 살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여 공간에 구현해 냈습니다.

Black Out, Water of Dawn, Heart of Wind, SUMSEI Forest, Refresh Five Sense의 총 다섯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이들의 전시는 우리가 일상에서 종종 느끼고 있지만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다소 생소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자연과의 교감 지점들을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각각의 공간에서 밀도 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채워 놓았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가져보는 명상의 시간, 어둠만 있을 줄 알았던 동굴에서 만날 수 있는 인공 하늘, 양말과 신발에 갇혀 그간 감각조차 잃어가고 있었던 발바닥에 닿는 새로운 자극, 선선하게 불어와 피부를 간지럽히는 바람과 자연의 냄새까지 평소에 바쁜 매일을 살아내느라 주변에 있어도 미처 마음껏 즐기지 못했던 오감을 자극하는 자연적 요소들을 집약해서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대수롭지 않다고 느꼈던 부분들을 이곳에서 체험하고 느끼며 새롭고 신선하게 받아들입니다. 또, 내부의 사진 포인트들은 전시를 찾게 하는 주 요인이 되어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SNS에 공유되어 공간을 알립니다. 

이쯤 되면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섬세이가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단체인지, 자연 친화적인 용품을 판매하는 브랜드인지, 인공 자연을 연구하는 연구소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조금 생뚱맞게도 샤워 후 젖은 몸을 말리는 에어샤워(몸을 말리는 드라이기와 같은 기계)를 생산, 판매하는 브랜드입니다. 언뜻 들으면 에어샤워와 인공 자연이 어떤 연결지점이 있을까 의아함이 들 수밖에 없지만 이들은 에어샤워가 제공하는 기능을 자연과 연결하여 소비자에게 그 어떤 마케팅보다도 자연스럽게 다가갑니다. 맨발로 공간을 즐기는 전시의 특성상 전시 말미에 발을 닦고 말리는 과정에서 섬세이의 제품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체험하게 되고, 이는 단순히 핸드 드라이어로 손을 말리거나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보며 성능을 테스트하는 일반적인 개념의 경험을 넘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닦는 등 평소에 외부 공간에서 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비일상적인 행위를 직접 하고 싶게 만들었다는 데 있어 큰 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불편함 혹은 불쾌감을 줄 수도 있는 이런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전시 주제가 ‘자연’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도시에서 직접적으로 경험하기 어려웠던 자연을 피부로 받아들이기 위해 관람객들은 직접 자처해서 신발을 벗습니다. 그리고 불쾌함보다는 일반적인 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전시 형태에 대한 호기심과 쉽고 빠르게 유사 자연을 누리며 휴식과 일탈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편의성을 이유로 공간을 소비합니다. 이를 통해 도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쉼과 휴식,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자연을 필요로 하는지, 그런 공간에서 얼마나 해방감을 느끼고 자유로워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