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민일보 뉴스레터 한NU네 제107호
2026년 10월 16일(금)
  

‘주제 파악을 하라’


  가을은 걷고 뛰기 좋은 계절입니다. 형형색색 단풍이 물든 산에는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도심 곳곳에서는 마라톤 대회가 열립니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이 삶의 활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가을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산악사고와 마라톤 참가자의 사망 소식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발생한 등산사고 2만8624건 가운데 3542건이 10월에 집중됐습니다. 실족과 조난, 신체질환 등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정상에 오르겠다는 욕심에 무리한 산행을 이어가거나 자신의 체력을 과신한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마라톤도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한 마라톤 대회에서는 20대 참가자가 결승선을 불과 500m가량 남겨두고 쓰러져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감독은 기록 경쟁의 과열을 경고했습니다. 자신의 훈련 수준과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도전이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칭찬합니다. 끝까지 버티는 것을 의지라 부르고,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물론 도전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모든 도전이 용기인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멈춰야 할 때 멈추는 것이 더 큰 용기입니다. ‘주제 파악을 하라’는 말이 있죠. 대개 상대를 깎아내릴 때 쓰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적용하면 이보다 더 현실적인 충고도 없습니다.


  산은 누구에게나 정상을 허락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마라톤 역시 모든 참가자가 완주해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들이 오른다고 따라 오를 필요도, 남들이 달린다고 같은 속도로 달릴 이유도 없습니다.


  이는 비단 운동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의 속도와 성취를 자신의 기준으로 삼곤 합니다. 그러다 무리하고, 지치고, 때로는 소중한 것을 잃습니다.

인생은 정상에 먼저 오르거나 결승선을 빨리 통과하는 사람만의 경기가 아닙니다. 끝까지 건강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높이 오르는 법보다 안전하게 내려오는 법을 먼저 배웠으면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용기는 ‘더 할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 ‘여기까지가 내 한계’라고 인정하는 솔직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영희 디지털콘텐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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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 일기 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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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식탁 예보 🍚
고구마 맛탕 고구마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즐기는 대표적인 뿌리채소다.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 건강과 배변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주황색 과육을 가진 고구마에는 체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되는 베타카로틴도 들어 있다. 고구마 맛탕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남녀노소 즐기기 좋은 간식이다.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고구마를 한입 크기로 썰어 물기를 제거한 뒤 기름에 튀기거나 에어프라이어로 노릇하게 익힌다. 여기에 설탕으로 시럽을 만들어 버무리면 윤기 나는 맛탕이 완성된다. 설탕 대신 꿀이나 조청, 메이플시럽을 활용하면 색다른 단맛과 풍미를 더할 수 있고, 버터를 함께 넣으면 고소한 맛이 살아난다. 마지막에 검은깨를 뿌리면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여주(女主) 그리고 사관(史官)


 ‘속무정보감(續武定寶鑑)’이 있습니다. 조선 개국후 예종까지 기록한 ‘무정보감’의 후속편입니다.

 1548년 이기와 정순붕이 문정왕후(文定王后·1501~1565년)의 명을 받아 성종부터 명종 초까지 내우외환을 정리했습니다. ‘을사정난기(乙巳定難記)’라고도 부릅니다.

 3년 전 인종(仁宗)이 죽고 명종(明宗)이 집권하는 과정도 담겼습니다. 을사년 일입니다. 인종을 지지했던 대윤(大尹)과 명종을 지지했던 소윤(小尹)간 권력 투쟁입니다.

 역사는 이 책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소윤들이 사관(史官)들을 도륙했던 사화(史禍)를 기억합니다. 사관들은 무엇을 기록하려고 했고, 권력은 무엇을 삭제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1548년(명종3년) 2월12일. 경복궁은 살얼음을 걷는 긴장이 다시 감돌았습니다. ‘위에는 여주(女主), 아래는 간신이 있어 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는 양재역 벽서사건이 있고 5개월 만의 일입니다.

 벼슬아치들이 지존 앞에 숨을 죽이고 부복했습니다. 1534년 태어난 명종은 1545년 인종이 죽자 보위를 이었습니다. 어린 왕을 대신해 모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주의 섭정입니다.

 영의정 윤인경, 좌의정 이기, 우의정 정순붕, 이조판서 윤원형과 좌승지 채세영, 우부승지 정언각이 손을 떨며 을사년(1545년)과 병오년(1546년) 시정기(時政記)를 올렸습니다.

 시정기 여기저기 불온하고 사특한 기록들이 보였습니다. 사관들은 환국(換局) 과정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뒤 주(註)를 붙여 논평했던 것입니다.
# 을사년(1545년) 8월23일 사관 백인걸(白仁傑·1497~1579년)이 밀지(密旨)의 부당함을 논계했다. 이에 답했다. “화(禍)가 종사(宗社)에 핍박했음으로 부득이 밀지를 만들어 조정과 의정(議定)한 것이다. 지금 아뢴 뜻은 의당 조정과 다시 의논해서 처리하겠다.”

 주(註) “백인걸이 부름을 받고 궁궐에 들어가 이 말을 아뢰려고 하면서 어머니와 아내에게 ‘내가 지금 가면 반드시 금부(禁府)에 내려져서 귀양갈 것이니 그렇게 되더라도 놀라지 마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와 아내가 울면서 만류했으나 듣지 않았다.”

# 인견(引見)하여 말을 마치자 모두 물러나와 제 자리로 돌아갔다.

 주(註) “이날 상(上)은 끝내 말 한 마디 하지 않았고 자전(慈殿)은 대윤 윤임(尹任) 등의 죄가 깊고도 무거워서 죄주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을 반복해 말했다. 이때 홍언필 등은 평소 상을 향하는 정성과 윤임 등의 소행을 모르고 있었음을 서로 다투어 하소연하면서 화를 면하고 총애를 굳히려고 기도했다. 그래서 서로 혹시라도 미처 말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이 사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 사람이 벌써 말을 시작해 어눌한 사람은 자주 말 차례를 빼앗겼다. 이때 이기만 유독 말이 적었는데 그것은 수의(首議)는 별로 말할 만한 것이 없었고 대의(大意)는 (소윤 당원) 허자(許磁)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허자는 자주 정죄(定罪)된 사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말로 대비의 비위를 맞췄다.”

# (대윤의 수장)윤임·유관·유인숙은 사사(賜死)하고 이임은 극변(極邊)에 유배 보내고 권벌은 본직(本職)을 체직했다.

 주(註) “윤임 등을 사사하라는 전교가 내려지자 이언적·정옥형·윤개·민제인·나세찬 등 5∼6인은 몹시 비통한 표정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평소와 다름없이 떠들썩하게 웃곤 하였다. 그 중에는 평소보다 더 의기양양한 자도 있었다. 아, 윤임 등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하겠으나 대행왕(大行王)이 아직 빈소에 계신데 같은 날 대신을 죽이니 어찌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옛사람은 죄인을 보고서 불쌍히 여겨 울었고 또 ‘불쌍히 여길 것이요. 죄인 적발한 것을 기뻐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이 때에 비록 마땅히 죄주어야 할 자에게 죄를 준 것이기는 하나 의당 이같이 해서는 안 될 듯하다.”

# (대윤 윤임의 아들)윤흥의(尹興義)가 이날 죽었다.

 주(註) “윤흥의 시체가 타락산(駝駱山) 아래 있었다. 한 서생이 산에서 내려와 흥의 시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관리가 처음에는 ‘장사지냈다’고 했다. 다시 묻자 마지못해 시체를 보여줬다. 서생은 시체 옆에 앉아 시체를 어루만지며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다가 하얀 모시인 백저포(白苧布) 한장을 소매 속에서 꺼내어 시체 옆에 두고는 타락산으로 다시 올라갔다. 그가 누군지를 알 수 없다.”

# (대윤 처형을 반대했던)정희등(鄭希登)을 용천(龍川)에 안치했다.

 주(註) “정희등의 노모가 있었는데 아들이 유배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얼굴이나 보고 작별하려고 성밖을 나갔다가 희등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인이 모친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모친은 오히려 더 나가려고 하여 서로 다퉜다. 한쪽은 나가려 하고 한쪽은 만류하면서 길에서 방황하며 통곡하니 사람들이 모두 가슴 아파했다.”

# (1546년)병오년 9월3일 시정기에 “상께서 사슴 고기를 좋아했는데 사슴 꼬리는 더 좋아했다. 진상할 때 산 사슴을 구하지 못하면 산 노루를 진상하는 자가 있었다. 상이 신하에게 ‘산 노루 열 마리가 어찌 산 사슴 한 마리를 당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금년 6월 상이 이질을 앓으면서 아주 신선한 맛을 찾자 내시가 승지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승지들이 산 붕어와 은구어(銀口魚)를 많이 잡아들이니 상이 정지하라고 명했다.”

 주(註) “주상께서 거상중(居喪中)인데도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이와 같다.”
 각본대로 이기와 정순붕 등 정승 판서들이 게거품을 뿜어내며 사관들을 탄핵하고 나섰습니다. 다시 대윤의 잔존세력을 발본색원할 호재로 삼았던 것입니다. 잘 짜여진 공작의 산물이었습니다.

 여주, 문정왕후도 격노하며 화답했습니다. “참혹하기가 지금의 역적만한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인심이 정해지지 않고 시비가 밝지 못한단 말인가? 역적을 옳게 여기고 조정을 그르게 여기는 이같은 경악스러운 일이 있으니 이것을 어찌 후세에 전해 보일 수 있겠는가. 그날그날 기록한 사람을 찾아 추문한 다음 사실대로 개정하라. 사슴 꼬리를 좋아했다는 일에 대해서는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 임금’이라고 여겼다면 분명하지 않은 일을 쓸 수 있겠는가. 다른 마음이 있었을 것이니 심문하라.”

 곧바로 사관 안명세(安名世·1518~1548년)와 손홍적(孫弘績·1510~1549년)이 끌려왔습니다. 오늘날 특별검사 같은 추관(推官)들이 심문하니 스스로 기록한 것을 인정했습니다. 안명세는 시정기 대부분에 대해, 손홍적은 사슴 꼬리에 관한 전후 사정을 실토했습니다.

 추관들이 아룄습니다. “모두 승복했으나 다만 사실을 남김없이 자복하지는 않았으니 고문해 심문하게 하소서. 안명세 진술에 의하면 ‘백인걸이 잡혀왔을 때 일에 대해서는 조박(趙璞)이 기록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조박은 유배지에 있으니 잡아 올리소서. 손홍적 진술에 의하면 사슴 꼬리에 대한 일은 승전색 노윤천이 승지들에게 말해준 것인데 그때 그 승지는 누구였는지 기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추국(推鞠)은 혹독했습니다. 사나운 나장(羅將)들의 매질과 고문에 뼈가 으스러졌습니다. 피가 튀었습니다. 비명이 금부 담장을 넘어 종로까지 들렸습니다.

 추관들이 다시 보고했습니다. “안명세는 자복하지 않으니 더 형추하소서. 손홍적은 의리를 몰라서 희미하고 용렬하며 ‘잘못 썼을 뿐이요. 별다른 뜻은 없었다’고 하니 승복한 것입니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안명세는 더 형추하라. 손홍적은 가벼운 죄로 처벌하라.”

 안명세는 세 차례 더 형추했으나 자복하지 않았습니다.

 2월14일 심문이 재개됐습니다. 얼마 뒤 추관들이 아룄습니다. “어제 대강은 승복하였으나 역적을 비호한 말에 대해서는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형신을 정지했습니다. 형장서 죽기라도 한다면 불쾌할 듯하니 이것으로 조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알았다. 아뢴 대로 조율하라.” 사형으로 결론났습니다.

 안명세는 곧바로 당현(唐峴)으로 끌려가 참수됐습니다. 가족은 종이 됐고 재산은 빼앗겼습니다.
 사신(史臣)들의 당대 평가입니다.

# 사신은 논한다. ‘명세는 단정한 사람이다. 사재(史才)가 있어 한림(翰林)이 됐다. 을사년 정난의 옥을 당하여 사실에 의거해서 바르게 기록하고 자신의 의견을 첨가하여 춘추(春秋)의 뜻을 붙였다. 그런데 군간(群奸)들에게 지적을 받아 대죄에 걸리고 말았다. 국문을 받을 때도 놀라지 않으며 언사(言辭)가 침착했다. 죽음에 임해서도 신색(神色)이 조금도 변함 없었다. 직필(直筆)이 몸을 죽이는 매개가 됐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 사신은 논한다. ‘안명세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이기 등이 그를 역당이라 몰아 대역으로 논해서 극죄(極罪)로 다스렸으니 사화(史禍)가 여기에 이르러 극도에 달한 것이다. 권요직(權要職)에 있는 자들은 모두 간흉(奸凶)의 무리로서, 역사책을 찬집한다는 설은 맨 처음 윤인서 입에서 나왔고 그것을 참고한다는 의논은 마침내 이기 등의 계책에서 이뤄져 사신(史臣)으로 하여금 극화(極禍)를 받게 했으니 국가가 망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 사신은 논한다. ‘안명세 사화가 일어났을 때 장인 이은우가 이기·정순붕과 알고 지냈던 사이여서 이기 집으로 달려가 눈물을 흘리면서 안명세를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이기가 말하기를 ‘이 죄로 어찌 죽기까지야 하겠는가. 내 생각은 이러하나 다만 정순붕을 만나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즉시 정순붕 집으로 가서 애원하니 순붕이 말하기를 ‘국가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은우는 말 한 마디 없이 물러나왔고 안명세는 끝내 화를 면하지 못했다. 아, 슬프다! 간흉들이 모여서 사류(士類)를 살육할 때 평소에 사이가 조금만 좋지 않았던 자들도 역류(逆類)라고 무함하여 유배하거나 죽이거나 했다. 더구나 안명세의 직필은 간흉을 주벌하는 법에 엄격하여 곧바로 그 칼날을 범하였으니 그가 온전할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그가 끝내 죽게 된데는 정순붕의 힘이 가장 컸다. 아, 참혹하다! 안명세는 ‘이십사 공신전(二十四 功臣傳)’을 일찍이 저술하여 을사년의 일을 비판했다. 사람됨은 단중(端重)하고 과묵했다. 처형에 임해서도 안색이 변치 않고 평소와 같아 사람들이 장하게 여겼다. 한지원(韓智源)은 안명세와 같은 사관이었다. 명세가 직필을 할 때마다 칭찬하고 탄성을 자아내는 표정을 내보였다. 명세는 그를 믿고 거리낌 없이 직서(直書)했다. 이때 한지원은 이 사실을 모두 소윤의 우두머리 이기에게 알렸는데도 명세는 알지 못했다. 화가 일어나자 명세는 한지원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자 한지원이 남에게 이르기를 ‘명세는 참으로 모자란 사람이다. 그의 사록(史錄)에 관한 일을 내가 다 유포했는데 나더러 재상 집에 가서 구해달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하였다.’
 그리고 20여 년이 흘렀습니다. 1567년 선조(宣祖)가 즉위했고 10월15일 사면령이 있었습니다.

 “을사년 이후 죄를 받은 사람들은 허물이 없는 데도 죄에 걸려 대악의 이름에 빠진 자들이 많다. 당시 선비 중에 어찌 대부분이 반역의 무리이겠는가? 이기와 윤원형이 선왕께서 어리신 것을 틈타 작은 원망이나 터럭만한 혐의만 있어도 반드시 터뜨린 데 연유했다. 당대 단정한 선비로서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역자란 이름을 가하여 없는 죄를 얽어 잡아 가두었다. 이로 인해 사기가 꺾여 머리를 떨구고 감히 입을 열지 못하게 하여 국세가 시들게 했다. 슬퍼서 기가 막힌다. 옛날부터 사관이 죄를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안명세는 여론이 지금까지 원통해 한다. 너그럽게 용서하여 직첩(관리 임명장)을 다시 주라. 부인과 자식도 풀어주며 적몰한 재물은 되돌려 주라. 조박은 성행이 단정하고 학식이 있다. 손홍적도 신진의 인물로 선왕도 죄주는 것을 미안하게 여겼다. 그러나 중론의 압박을 받아 곤장을 맞고 유배까지 가게 되어 여론이 지금껏 원통하고 민망하게 여긴다. 모두 직첩을 되돌려 주라.”

 사관 안명세의 명예가 회복됐습니다. 후배 사관들은 권력이 지우려 했던 선배들의 시정기를 조선왕조실록에 빠짐없이 남김으로써 역사에 충성했습니다. 사필귀정(史筆歸正)입니다.

 가을이 성큼 와 있습니다. 곧 가을의 찬 서리도 내리겠군요. 기록에서 추상(秋霜) 같았던 한림 안명세 선생을 만나 봤습니다. <남궁창성 원주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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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때가 되기 전에 꽃을 피우려 하지 마라. 자연은 언제나 제 때에 피어난다.

- 일본 속담


<가로 낱말 풀이>

(1) 기회를 노리고 가만히 정세를 관망함의 비유

(4) 비슷하게 만든 물건

(7) 깨끗한 물, 정한 물

(10) 번갯불이나 부싯돌의 불이 번쩍거리는 것과 같이 매우 짧은 시간이나 매우 재빠른 움직임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2) 이익을 위해 정부나 그 밖의 권력 기관에 영합하여 자주성 없이 행동하는 신문사

(14) 닥쳐올 일을 미리 짐작하는 밝은 지혜

(15) 죄인에게 형벌로 보내는 외딴 곳

(17) 나서 자람

(19) 직무를 맡겨 사람들을 등용함

(21) 새로운 기원, 획기적인 사실로 인해 나타나는 새 시대

(23) 사람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름

(25) 국제적인 재판에서 원고나 피고를 위해 변론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

(27) 질풍에도 부러지지 아니하고 억센 풀이라는 뜻으로 어떠한 어려움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비유

(29) 가리키어 보임

(31) 혈액을 보존 관리하고 공급함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

(32) 사물을 정도에 알맞게 조절하는 기능


<세로 낱말 풀이>

(2) 어떤 사물의 가치나 어떤 사람의 역량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만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알려지지 않는 사실을 몰래 살펴서 알아냄,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5) 조선 세조 때,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잡혀 죽은 여섯 명의 충신,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성삼문, 박팽년

(6) 폭탄 또는 소화기 따위가 돌발적으로 터지지 못하도록 신관에 꽂는 핀

(8) 물과 물고기의 사귐, 친밀하여 떨어질 수 없는 사이

(9) 배를 부리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11) 선지(宣紙)의 하나,옥판선지보다 품이 낮고 조금 큼

(13) 용감하고 사나움

(15) 개편이나 임기 만료 때에 그 자리나 직위에 그대로 머무르거나 머무르게 함, 또는 그런 일

(16) 생긴 모양, 사물의 어떠함을 설명함

(17) 싱싱하고 힘찬 기운

(18) 과거에서 갑과에 첫째로 급제함

(20) 상대방의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함

(21) 작은 일에도 쉽게 자극되어 잘 흥분하는 성질

(22)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23) 어떤 뜻을 나타내거나 적어 보이는 표

(24) 수분이 거의 없는 순도 높은 초산, 순수한 것은 16도 이하에서 얼음처럼 결정상태가 됨

(26) 빚을 갚음, 끼친 손해를 물어주는 돈

(28) 시기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때

(30) 한 겨레의 가장 처음이 되는 조상


* 출제 : 한림대학교 / 김기우 소설가

♣ 지난주 정답 : 

병가상사 兵家常事

(兵 군사 병 家 집 가 常 항상 상 事 일 사)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흔히 있는 일.

실패로 낙심할 것 없다.


사례문장:

.선수들은 패배 후에도 ‘승패는 병가상사’라는 마음가짐으로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투자 실패로 낙담하는 친구에게 ‘주식시장에서의 손실은 병가상사’라고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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