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 #레버넌트 #윈드 리버 다정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이번 주에 눈 보셨나요? 잠시 흩날리다 말아서 첫눈을 보았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졌습니다. 아침에 커튼을 걷었는데 밤새 내린 눈에 하얗게 변한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올 때 어찌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있을까요. 눈길을 헤치고 갈 출근길 걱정은 잠시 미뤄두자고요. 이번 주는 설원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 영화 세 편을 골랐습니다. 수북이 쌓인 눈 속에 진실을 파묻은 이들은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될까요? 파고 (1996) 코헨 형제는 제게 대하기 어려운 직장 동료 같았습니다. 그들의 영화는 분명 좋은 줄 알겠는데 마음 편히 보긴 힘든, 마냥 어려운 건 아닌데 그렇다고 쉬운 것도 아닌 영화로 느껴졌어요.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최근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에게 헌정한 영상을 보고 디킨스 감독이 만들어 낸 마법 같은 영상을 보기 위해서라도 코엔 형제의 영화를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중에 첫 번째로 고른 영화가 오늘 소개드리는 『파고』예요. 영화는 미국 미네소타주를 배경으로 어딘가 나사가 하나쯤 빠져 보이는 얼빠진 인물들이 유괴 사건을 벌이면서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일을 그립니다. 『파고』는 미네소타주와 다코타 주의 경계에 있는 도시예요. 영화가 시작할 때 실화라는 자막이 나오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 크레디트 마지막에 허구의 이야기라고 나와요. 사건을 뒤쫓는 만삭의 형사 마지 건더슨(프랜시스 맥도먼드 분)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자 일색인 영화에 여성 형사가 등장하는 점도 신선했고 그를 멋지게 연기한 프랜시스 맥도먼드도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얼마 전 출연한 영화 『노매드랜드』를 포함하면 세 번이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감독 조엘 코엔의 배우자이기도 한데요, 그래서인지 코엔 형제의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네요. 감독 : 조엘 & 에단 코엔 러닝타임 : 1시간 38분 Stream on Watcha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2015) 가슴이 벅차올라 차마 첫 문장을 시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 『레버넌트』를 보고 그랬죠. 문장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영화에 압도당했던 그 생생한 느낌이 떠올라 자꾸만 멈추고 말았어요. 『레버넌트』는 끝없이 펼쳐진 설원처럼 막막하고 먹먹했습니다. 19세기 초, 사냥꾼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하던 중 부상을 입은 채 일행에게 버림받고 숲 속에 버려집니다. 그러나 글래스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고 오직 복수를 위해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자신을 버리고 간 존 피츠제럴드(톰 하디 분)를 추격합니다. 영화가 개봉했을 때, 과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번에는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갈 수 있을지가 화제였어요. 수많은 영화 팬의 염원이 모여 디카프리오는 5번 만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죠. 영화에서 글래스가 곰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무척 유명한데 "이 정도 했으면 제발 상 줘라"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돌기도 했습니다. 이냐리투 감독의 고집으로 자연광에서만 촬영했다는 영상은 푸르스름한 여명과 어스름을 머금고 있습니다. 몇몇 장면은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영화를 멈추고 그 장면만 계속 보고 싶었어요. 류이치 사카모토가 암투병 중에도 작업했다는 음악도 영상과 환상적으로 어우러졌습니다. 감독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러닝타임 : 2시간 36분 Stream on Netflix 윈드 리버 (2017)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이 와이오밍의 여름을 담았다면 『윈드 리버』는 와이오밍의 겨울을 담았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와이오밍에 있은 "윈드 리버 인디언 보호구역(Wind River Indian Reservation)"에서 왔어요. 윈드 리버의 혹독한 겨울과 그보다 더 혹독한 아메리칸 원주민의 현실을 건조하게 담았습니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와 『로스트 인 더스트』의 각본을 썼던 테일러 쉐리던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한 소녀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설원을 쫓기듯 달립니다. 소녀는 어류 야생 동물국 요원 코리(제레미 레너 분)에 의해 얼어붙은 시체로 발견되죠.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FBI 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 분)이 도착하지만 몰아치는 눈폭풍에 무엇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플로리다 출신에 초짜 티를 팍팍 풍기는 제인이 영 미덥지만 코리는 그를 도와 사건을 수사합니다. 자신의 사연을 가슴에 묻고, 인디언과 백인의 경계에 서서 총부리를 겨누는 그를 그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요. 제레미 레너와 엘리자베스 올슨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호크 아이와 완다로 출연하기도 했죠. 거기서 호크 아이가 완다를 이끌어 주는 멘토로 나왔는데 『윈드 리버』에서도 둘이 비슷한 관계로 나와 흥미로웠습니다. 왓챠에 일반판과 감독판, 두 가지 버전으로 스트리밍 중인데 둘이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전 감독판을 조만간 볼 계획입니다. 감독 : 테일러 쉐리던 러닝타임 : 1시간 47분 Stream on Watcha 덧붙이는 이야기 세계의 끝 씨앗 창고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 이야기 - 캐리 파울러 눈 아래에 씨앗을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 이야기이지요. 노르웨이 본토와 북극점의 중간즈음에 위치한 스발바르 제도에는 세계 각지에서 보내진 씨앗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습니다. 책의 저자 캐리 파울러는 농사가 현대화되면서 점점 종자다양성이 사라지는 걸 보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종자보존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스발바르에 국제종자저장고를 만들었어요. 그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과정과 실체를 가진 창고가 실제로 세워져기까지 겪은 일을 담담하게 기록했습니다. 도시에 살면 식품이 너무나도 풍부해서 종종 이 음식이 땅에서 나온 거라는 사실을 망각하곤 합니다. 책을 읽으면 먹거리를 지켜나간다는 일의 무거움과 중요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조만간 쌓인 눈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당신의 큐레이터Q 📬 금요알람 구독하기 || 친구에게 소개하기 https://url.kr/4aycxm 금요알람은 언제나 당신의 이야기를 환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