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득 그런 날이 있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느껴지는 날. 분명 내 손에 있었던 것이 어느 사이에 사라졌다는 걸 깨닫는 날. 어디에 두고 온 지도 알지 못해서 그저 허망하게 빈 손을 부비는 날. 정작 잃어버린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어렴풋한 날. 분명 별 것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해 봐도 결국 쓸쓸해지는 날. 그런 날이면 배가 고프지 않는데도 괜히 허기가 지고 옷을 입고 있는데도 헐벗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알 수 없는 서글픈 마음만이 안개처럼 내 주위를 맴돌았다.
2.
한 번은 어느 뮤지션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앨범을 낼 때마다 음악이 점점 성숙해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첫 앨범을 냈을 때와 가장 최근의 앨범을 냈을 때, 그 사이에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얻게 된 것은 무엇일까요?"
나의 질문에 그는 탄식하며 대답했다. "저는 이 질문이 되게 슬프게 느껴졌어요. 저는 나아진 것보다 잃어버린 것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인가 봐요. 글쎄요. 잃은 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일일이 다 말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잃은 만큼 정확하게 채워진 느낌이에요. 그게 아마 변한다는 거겠죠."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지만, 내 머릿속에는 '잃은 만큼 정확히 채워졌다'라는 문장이 맴돌고 있었다.
3.
문득 메모장을 열고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써본다. '아주 작은 가능성에 뛰어드는 일,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노는 것, 가치를 따지지 않고 마음이 끌리는 대로 선택하는 것, 갑자기 훌쩍 떠나는 여행, 눈물, 깊이 있는 대화, 밤새 이야기 나누던 시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사람들, 아무 걱정 없이 웃던 순간들, 두근거림, 외로움, 낭만, 꿈...'
그 시절의 나는 충동적이었고, 자유로웠다. 삶은 모험이었고, 매일이 새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와 함께 어딘가에 홀로 내던져진 듯한 기분도 항상 따라다녔다. 그래서 늘 불안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이 그리운 것은 그 시절이 나에게 있어서 진정한 나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4.
그리고 잃어버린 것 옆에, 내가 얻은 것을 따라서 써본다.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법,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는 것, 미래를 생각하는 것, 내가 아닌 우리를 헤아리는 것, 어떤 말에도 다치지 않는 마음, 가족 나들이, 요리 실력, 건강, 절제, 안정, 내면의 평화, 확고한 기준, 현실에 대한 이해, 계획, 책임감, 지속가능한 관계...'
지금의 나는 신중하고, 현실적이다. 삶은 평안하고, 예측 가능하다. 예전처럼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대신, 깊이 생각하고 계획한다. 그렇게 얻은 안정감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이전의 무모함이 주었던 설렘과 두근거림이 지금의 평화 속에서는 사라져 버린 듯하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건강을 지키기 위한 노력, 그리고 지속 가능한 관계들 속에서 다른 종류의 기쁨을 찾고 있다.
5.
좋게 보면 단단한 사람이 되었고, 나쁘게 보면 지루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좋게 보려는 마음이 없다면 어떤 것이든 좋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무뎌졌다는 건 예민한 감각을 잃은 것이기도 하지만, 이전과 달리 어떤 상처와 불안에도 견딜만한 힘이 생겼다는 것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것과 얻은 것 사이에 나의 삶은 계속 흘러간다. 나는 그 사이에서 겨우 균형을 맞추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잃은 만큼 정확히 채워진다.'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내 곁을 맴도는 서글픈 마음도 조금은 가라앉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