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꿈 서신 #12

서랍레터는 이주이와 이소이가 만드는 뉴스레터입니다. 살면서 신경 쓰지 않았던 서랍장을 설렘과 두려움으로 열어봅니다. 매일 밤 꿈속의 나와 무의식이 만든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기록하지 않아 기억에 없던 '오늘'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둘째 주, 넷째 주 목요일 늦은 11시에 보내드립니다.
꿈 서신은 매일 전날 밤 꾼 꿈 이야기를 나누는 이주이와 이소이가 만드는에 관한 서랍장입니다. 각자의 꿈을 합쳐 하나의 원고를 만들고, 우리의 꿈과 관련해 떠오르는 문화예술 콘텐츠, 꿈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들을 담습니다. 아주 가끔은 각자의 사생활이조금반영된 에세이를 실을 예정입니다
Xi Zhang
Hide and Go Seek, Acrylic on Canvas, 60 x 76 inches, 2019

어보지 않은 서랍장
집착과 반격
집착
달리는 지하철 안이었다. 열차 칸 끝에 누군가와 나란히 서 있었다. 신호가 울렸다. 서로를 밀치며 맞은편 끝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거긴 라면 한 묶음이 있었다. 간발의 차로 내가 라면을 차지했다. 헉헉대며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나는 누가 빼앗아갈까 봐 라면을 구석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놓으면서도 자꾸 주변을 살폈다. 맞은편 끝에는 다시 라면 한 봉이 올라와 있었다. 아직 신호가 울리기 전이었다.

나는 70대 할머니다. 사는 게 무료해져서 교회를 다녀보기로 했다. 동네 아무 교회에 가서 처음으로 예배드리는 법을 배우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사이비가 틀림없었다. 구석으로 가서 경찰에 신고하려 하는데, 그 모습을 다른 신도들에게 들켜버렸다. 나는 건물 안에서 숨어 다녔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면 바로 죽일 것 같았다. 그러다 결국 한 청년에 눈에 띄어버렸고 나는 건물 밖으로 도망쳐서 바로 옆 건물로 들어갔다. 옆 건물은 3층짜리 본죽 건물이었다. 가뜩이나 늙어서 폐활량도 좋지 않은 나는 너무 힘들고 놀라서 죽을 것만 같았다. 저녁이 되기까지 본죽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집에 가려고 밖을 내다봤는데, 길거리에서는 아직도 신도들이 나를 찾고 있었다. 나는 이제 무섭다기보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핀셋을 들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코털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엑스레이를 찍은 것처럼 코털이 잘 보였다. 잡초를 뽑듯이 한 움큼씩 코털을 뽑았다. 뽑자마자 다시 자라났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반격
꿈속에서 나는 철저한 관찰자였다. 어떤 여자가 출근을 하려고 길을 걷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 여자에게 당장 시험을 치러 가야 한다며 붙잡았다. 여자는 자기는 시험 칠 일이 없다며 완강하게 거부했으나 손에는 사람들이 억지로 쥐어준 펜이 들려 있었다. 사람들은 여자의 모든 삶을 훑어본 뒤 못된년이라고 욕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여자의 억울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동네를 뛰었다. 어릴 적 알던 아이들을 길에서 스쳤다. (꿈에서도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눈인사를 하고 멀어졌다. 나는 계속 동네를 뛰었다. 다시 그 친구들과 마주쳤다. 이번에는 서로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멀어졌다. 나는 더 빠르게 동네를 뛰었다.

자식이 산업재해로 죽은 아빠가 있었다. 그 아저씨의 아이는 일을 하다가 병을 얻어서 죽고 말았고 회사에서는 책임지지 않으려 했다. 개인이 모여서 회사를 이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아저씨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나는 그 아저씨를 돕기로 했다. 나는 아이를 잃은 그 아저씨도 되었다가 죽은 아이의 동생이 되었다가 방관자나 관람객처럼 완전한 타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재래시장에서 회사를 이길 만한 단서를 엿들었고 회사 사람 중 한 명을 우리 편으로 만들었다. 꿈이 끝날 때 우리는 거의 복수에 성공하고 있었다.
후기
이소이
냄비에서 끓어오르는 물 같은 꿈을 꾸는 중이다. 아침엔 증발한 꿈과 식은땀을 쥔다. 유리조각으로 흩어진 몇 개의 이미지를 붙잡아도 샤워하는 동안 다 씻겨 내려간다. 그러면 문자 없이 감정만 남는다. 찝찝함. 우울감. 분노.
염전에서 채취하는 소금처럼 꿈이 아침의 이불 안에 많이 남아 있을 때 부지런히 기록해두었다. 지금 그 기록의 덕을 보는 중이다. 이 주 간격으로 꿈레터를 발행해도 1년 치 꿈이 쌓여 있다.
20216월의 꿈에서 20226월의 꿈을 발견한다.
헉헉대며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나는 누가 빼앗아갈까 봐 라면을 구석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2022년에는 라면이 아니라 신발이었다.
 
이주이
이맘때 꿈에서는 자주 다른 사람이 되었다. 꿈속의 나는 매번 다른 역할을 맡은 배우 같다. 비록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영상이지만, 나는 내가 맡았던 배역의 마음을 아주아주 조금이나마 체득하게 되고 현실에도 그 이해도를 조금은 가져올 수 있게 된다. 체력이 달리면 쉽게 화가 난다는 걸 깨닫거나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본다거나 부조리를, 방관을 마주할 때의 마음을. 이런 걸 조금 더 알게 됐다고 해서 스스로 지금보다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나만의 숙제로 남겠지만.
한꺼번에 열린 서랍장
단편영화
1. 고민시,「평행소설」

“동네를 뛰었다. 어릴 적 알던 아이들을 길에서 스쳤다. (꿈에서도 친구가 아 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눈인사를 하고 멀어졌다. 나는 계속 동네를 뛰었다. 다시 그 친구들과 마주쳤다. 이번에는 서로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멀어졌다. 나 는 더 빠르게 동네를 뛰었다.”

나의 수많은 관계는 꿈속에의 삶도 있다는 듯 꿈에서 내게 인사하고 나를 기 쁘게 하고 나를 슬프게 화나게 한다. 꿈과 삶이 평행한다는 생각을 한 적 많다. 삶의 괴로움은 꿈의 괴로움이 되 었다. 꿈은 난해함과 기괴함 속에 숨어 들어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았지만, 꿈 레터를 쓰면서 알게 된다. 그건 나의 괴로움이었구나. 여전히 어릴 적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쓰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 글을 읽을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문제 있는 일도 아니었고, 나를 아무리 가엽 게 생각해도, 서로에게 비슷한 상처를 주고받은 일이었다. 나는 그걸 알았고. 그것으로 다시 썼다.
2. Eduardo Verastegui,Snack Attack

“나는 70대 할머니다 (...) 그러다 결국 한 청년에 눈에 띄어버렸고 나는 건물 밖으로 도망쳐서 바로 옆 건물로 들어갔다.

한 할머니의 분투가 담긴 이 단편영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나름대로의 반전을 지니고 있는데, 내 꿈의 결말도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