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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3매 | 최갑수

우리가 끝까지 소중히 여겨야 할 것

잊어버리고 있다가, 지난주 비 오는 날, 연희동 굴다리 아래 어느 술집에서 김치전에 막걸리를 마시다가 떠올렸다.


지금까지 여행 작가로 일하며 살아오는 동안, 딱 두 번 죽을 뻔했다. 한 번은 배에서, 그리고 또 한 번은 비행기에서. 내가 잘못했거나, 실수한 건 없었다. 그냥 그런 상황 속에 내가 있었을 뿐이다. 지진이 났고, 비행기에 이상이 있었다.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억울했다. 내가 잘못한 것이나 실수한 건 없었으니까. 한동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다시 출장을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 누가 내게 말했다. “그런 일을 겪고도 그 일을 한다면, 그건 네가 그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거야.” 이후 나는 내 여행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일이라서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겐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죽음과 마주한 그 순간, 나는 후회했다. 마음속에 정말 큰 후회 하나가 있어 너무나 억울했다. 뭐냐 하면…… 그건 비밀이다.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됐다. 우리 인생에 거창한 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마지막에는 우리 모두가 후회한다는 것을. 인생에는 성공도 없고 실패도 없으며, 그저 각자의 삶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인생은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굴러가지만, 그래도 각자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라. 작고 사소한 것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라. 비행기에서 산소 호흡기가 내려오는 순간, 뭘 떠올리게 될지 상상해 보라. 어쩌면 우리에겐 그게 전부일지도 모르거든. ✉️

최갑수는 시인이자 여행작가다. 매일 매일 글을 써서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쓴 책으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등이 있다. @ssuchoi

📎 Clip | 쉿! 난 제임스 본드가 아니야

일등석 라운지도 없던 1983년. 7살이었던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니스 공항에 갔다가 게이트 근처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로저 무어를 봤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저기 제임스 본드가 있으니 가서 사인을 받아오자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제임스 본드나 로저 무어가 누군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나를 데려가서 그의 앞에 세워놓고 말했다. “내 손자가 말하길, 당신이 유명한 사람이라더군요. 사인 좀 해주겠소?”


당신이 예상하는 것처럼 그는 유쾌하게 내 이름을 물으며 내 비행기 티켓 뒤편에 사인과 함께 기원하는 글을 남겨줬다. 나는 너무 기뻐하며 자리로 돌아갔는데, 와서 보니 사인 속. 이름이(알아보긴 힘들었지만) 아무리 봐도 ‘제임스 본드’는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보시더니 아마 로저 무어인 것 같다고 얘기해 줬다. 나는 로저 무어가 누군지 전혀 몰랐고 그새 기운이 빠졌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그가 다른 사람 이름으로 잘 못 사인해 준 것 같다고 말했고, 할아버지는 사인 된 티켓을 들고 다시 로저 무어에게 갔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사이, 할아버지가 그에게 가서 말하길, "얘가 말하길 당신이 이름을 잘 못 쓴 것 같다고 하더이다. 당신이 제임스 본드라더군요." 로저 무어는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은 후 나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내가 그의 근처로 갔을 때 그는 나에게 몸을 구부리고, 좌우를 살핀 뒤 눈썹을 치켜올리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로저 무어라고 사인할 수밖에 없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블로펠드가 알아낼지도 모르거든.” 그리고선 제임스 본드를 봤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며, 비밀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기뻐서 신경이 곤두설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그가 제임스 본드라고 사인해 줬냐고 물었고, 나는 “아뇨, 제가 잘 못 알았던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제임스 본드와 함께 일하는 중이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유니세프와 관련된 촬영에서 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마침 로저 무어는 대사 자격으로 촬영을 하러 왔고, 매우 사랑스러웠다.카메라 세팅이 끝난 상태에서 나는 지나가는 길에 그에게 니스 공항에서 만났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행복하게 듣고선, 킥킥 웃으며 말했다. “음, 기억은 안 나지만 제임스 본드를 만났다니 정말 좋았겠네요!” 기쁜 순간이었다.


그리고서 그는 멋지게 촬영을 마쳤다. 촬영 후 그는 차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복도에서 내 앞을 지나쳐 가게 되었다. 그런데 내 근처에서 멈춰서더니 좌우를 살핀 후 눈썹을 치켜올리며 조용히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가 니스에서 만난 걸 기억하고 있지. 하지만 저 안에선 카메라 맨 때문에 말할 수 없었어. 누구든지 블로펠드를 위해 일할 수 있거든!” 서른 살이던 나는 그날 7살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기뻤다. 정말 멋진 사람이었다.


이건 실화다.

💻 사십 대의 스타트업 생존기 |  김유정

그래도 철학과 신념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오랜만에 목욕탕에 다녀왔습니다. 현금이 없어서 세신사 분에게 “선생님, 제가 현금이 없는데 입금해 드려도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세신사 분이 놀란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금하는 게 문제가 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런 존중의 표현은 여기서 처음 들어보네요.” 그 세신사 분을 놀라게 한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쓰게 된 계기는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보다 나이 든 분을 가리켜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쓰게 된 것은 시니어 관련 스타트업을 다니고 나서 버릇처럼 남아있는 부분입니다. 시니어 관련 스타트업이다 보니 50대 이상의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그 분들의 성함 뒤에 님을 붙여 드리거나, 보통은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을 상대할 때면 선생님이라는 칭호가 버릇처럼 나오게 되더군요.

 

그리고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을 상대하고 대화하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게 됐습니다. 전에는 어렵게만 느껴지던 그 분들이 제게는 저와 같은 생각과 욕망을 가진 보통의 사람으로만 생각되더군요. 그것이 시니어 관련 스타트업을 다니면서 크게 얻은 것 한 가지 입니다.

 

모든 회사가 그렇듯이 회사 경영에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너는 그 철학을 바탕으로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회사를 운영해 본 적이 없어 쉽게 말하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특히, 제가 몸담고 있었던 시니어 관련 스타트업이야 말로 회사 가 가진 철학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회사가 마찬가지겠지만, 시니어 관련된 사업은 이루고 싶은 목적에 관련된 철학이 없으면 단순한 사업이자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니어 관련된 사업은 철학이 없으면 진정성이 없을 수 밖에 없고, 그렇다 보면 그걸 고객이 당연히 알 수 밖에 없으니 그 사업이야 말로 진정성, 철학이 너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가 몸 담고 있었던 회사는 안타깝게도 ‘시니어의 외로움과 고립을 해결하자’라는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철학이나 진정성은 없었습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모순적인 부분이 너무 많아서 과연 이곳이 시니어 관련된 사업을 해도 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지요.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내 걸면서도 본사의 복합문화공간을 ‘노키즈 존'으로 운영했습니다. 이것이 결정될 동안에 저는 여러 차례 반대의 의견을 냈습니다. ‘시니어 관련 사업을 하면서 노키즈 존을 운영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또 다른 나이에 대한 역차별이다.’ 하는 의견을 강하게 냈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의 손을 잡고 그 공간을 찾을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너의 생각을 공고했죠. 결국 제가 졌습니다. 그 복합문화공간에는 노키즈존이라는 문구가 붙었죠.

 

사실 그 것이 제 퇴사의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믿고 따라야 하는 오너의 생각, 결정이 시니어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질 만한 철학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고, 모두가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가 당연히 있어야 하고, 우리는 그것을 보장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노키즈 존이라니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노키즈 존을 존중하는 편입니다. 반대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노키즈 존 조차도 하나의 취향이고 존중받아야 할 의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니어 스타트업에서는 노키즈 존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은 여전히 틀리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목욕탕에서 제가 ‘선생님'으로 칭했던 세신사 분이 스스로 존중받았다고 느낀 부분도 모든 나이의 사람들이 존중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처음에 그 시니어 스타트 업에 합류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이러한 철학이 바탕이 된 회사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겪은 그 회사는 시니어 산업에 대한 어떠한 철학도 가지지 못한채 시니어 산업이 돈이 되기 때문에 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스타트업은 어떤 분야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철학을 가지고 도전하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좌초되기 쉽다는 것을 여러 스타트업을 거치면서 느꼈죠. 정육을 하는 회사는 어떻게 더 좋은 품질의 고기를 고객에게 잘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고, 여행 정보 스타트업은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믿을 만한 정보를 고객에게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죠.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사례를 통해 회사가 가진 철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이처럼 인생도 자신만의 신념이나 철학이 없으면 좌초되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선택을 할 때 내가 가진 최소한의 철학이나 신념에 위배되면 하지 않는 편이 내 인생의 방향성에 더 좋은 영향을 준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회사를 운영하듯 인생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와 농담 삼아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신념과 철학 같은 것은 없어. 내 마음이 가는 쪽으로 선택한 것들이 모여 내 신념과 철학을 만들기도 한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구성원으로서도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계기였습니다. ✉️

김유정은 그동안 여행 에세이 소설여행과 가이드북 두근두근 여행 다이어리 북 시리즈 8권을 썼다. 지금은 스타트업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여행과 술, 커피를 좋아한다.그의 일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writer_kim_u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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