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영본색 10호 2021-09-07 백로 안녕하세요 이하오입니다.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는 백로입니다. 오늘 중영본색에서는 할리우드 작품이 점령한 중국 극장가, 홍콩 액션 영화의 연대기 <용호무사>와 패럴림픽 실화 바탕의 영화 <마마적신기소자>에 대한 소개 그리고 마블 신작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중국 내 상영 불가 소식을 전합니다. 1. 할리우드 작품이 점령한 중국 극장가 코로나 이래 처음으로 할리우드 작품이 중국 박스오피스 top5의 과반수를 차지했습니다. 9월 4일 기준 중국 박스오피스 순위는 1위 ‘프리가이 失控玩家’ (미국), 2위 ‘투모로우 워 明日之战’ (미국), 3위 ‘노화중안 怒火重案’ (중국 홍콩), 4위 ‘마마적신기소자 妈妈的神奇小子’ (중국 홍콩), 5위 ‘루카 夏日友晴天’ (미국)입니다. 북미는 백신 접종률이 증가함에
따라 상영을 미뤄왔던 작품들을 차츰 개봉했습니다. 반면 중국은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확대로 극장가가
위축되면서 국내 작품 개봉을 미루었고, 하반기 극장가의 가장 큰 대목인 국경절 연휴를 기다리며 상영
일정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난 9월 첫째 주
중국 극장가는 다소 썰렁합니다. 8월 27일 개봉 이래 줄곧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켜온 <프리가이>는 개봉 10일차에
흥행 수익 3억 위안을 간신히 넘겼습니다. 한편 7월 30일 개봉한 진목승 연출, 견자단 주연의 홍콩 누아르 작품 <노화중안>은 꾸준히
일일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오르며 누적 흥행 수익 11억 위안을 넘겼습니다. 2021년 중국에서 흥행 수익 10억 위안을 넘긴 작품은 총 여덟
편입니다. 2. 홍콩 액션 영화 연대기 <용호무사> 홍콩 액션 영화 60년 역사를 되돌아보는 다큐멘터리 <용호무사 龙虎武师>가 8월 28일 개봉했습니다. <용호무사>는 홍콩 액션 영화의 맥을 훑으며 홍금보(洪金宝), 원화평(袁和平), 서극(徐克), 유위강(刘伟强), 증지위(曾志伟), 견자단(甄子丹) 등 영화계 인물들의 인터뷰와 영화 영상 자료를 교차합니다. 홍콩 액션 영화의 발전 과정과 화려한 전성기 그리고 내리막길을 지나온 현재의 모습까지 조명한 <용호무사>에 홍콩 액션 영화 팬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龙虎武师(용호무사)”는 초기 홍콩 액션 영화의 무술 전문 배우를 일컫는 말입니다. 경극* 단원이 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전문적인 무술 훈련을 받은 아이들은 1950년대 말 경극 무대가 없어지면서 무술 전문 배우로서 영화에 출연합니다. 용호무사들의 화려한 액션으로 주목받던 홍콩 영화는 1960년대 이소룡의 등장으로 첫번째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액션 장면에서 배우의 눈빛과 동작의 디테일을 클로즈업하고 “아뵤~”로 대표되는 기합 소리를 넣는 등 현재 액션 영화에서 사용되는 연출들은 이소룡을 기점으로 완성되었습니다. * 경극(京剧):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 연극 1973년 작품 <용쟁호투> 중 1973년 이소룡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 침울해졌던 홍콩 영화계는 홍금보와 성룡을 계기로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이때부터 홍콩 영화는 액션 장면 연출에 말 그대로 “목숨을 겁”니다. 맨몸으로 달리는 차에 매달리는 것은 물론 안전장치 하나 없이 높은 건물에서 유리창을 부수며 뛰어내려 목과 허리가 꺾이는 일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위험천만했던 당시 촬영 현장을 회상하며 한 감독은 말합니다. “홍콩 영화가 어떻게 할리우드를 정복할 수 있었겠어요? 우리는 할리우드처럼 돈이 많지도 않았고 진짜 총을 쏠 수도 없었어요. 주어진 예산과 조건을 생각하면 다른 방법이 없어요. 몸으로 때워야죠”. 1985년 작품 <용적심> 촬영 중 7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장면 90년대 이후 홍콩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며 촬영장이 사라지고, 유명한 감독과 배우들이 잇따라 대륙으로 넘어가며 홍콩 액션 영화는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현재는 아주 소수만이 남아 홍콩 액션 영화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용호무사>는 관객 수는 많지 않지만 홍콩 액션 영화의 기록을 보기 위한 팬들로 인해 꾸준히 상영관을 확보하고 높은 평점을 올리고 있습니다. 특히 <노화중안>을 연출한 진목승 감독의 별세 이후 홍콩 액션 영화를 되살려보자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용호무사>가 홍콩 액션 영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3. 패럴림픽 실화 바탕 <마마적신기소자> 2주간의 도쿄 패럴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그 여운을 이어 9월 4일, 홍콩의 패럴림픽 단거리 육상 선수 소화위(苏桦伟)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마마적신기소자 妈妈的神奇小子>가 개봉했습니다. <마마적신기소자>의 주인공 화위는 어릴 적 황달을 앓은 뒤 청력 손상과 언어 장애, 근육 발달 장애가 나타납니다. 평생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과 달리 화위는 혼자 걷는 것은 물론 달리기에 재능을 보입니다. 이른 나이에 대표팀에 합류해 실력을 키우는 화위는 엄마의 응원에 힘입어 홍콩을 대표하는 단거리 선수로 거듭납니다. 1996년 첫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후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화위의 엄마는 “同工同酬(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장합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선수들의 급여와 상금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위가 은퇴 전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2008년까지도 임금 차별은 나아지지 않고 화위는 한 달에 50만
원 지원금을 받으며 패럴림픽을 준비할지, 배달일을 하며 150만
원을 벌지를 두고 고민합니다. 어렵사리 연결된 매니지먼트 회사는 화위에게 “은퇴 후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해두는 게 중요하다”며 훈련 도중에도
광고를 찍을 것을 요구하고 광고 감독은 화위에게 더 장애인같이 보일 것을 요구합니다. <마마적신기소자>가 지적하는 체육계의 문제는 비장애인, 장애인 올림픽이 모두
끝난 이 시점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마마적신기소자> 중 생활고로 운동을 관두고 택배일을 하는 화위 <마마적신기소자>의 이야기 전개와 연출 방식은 지극히 평범하고 때로 눈물을 뽑아내기 위한 억지스러운 연출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본 관객들은 눈물을 닦으며 높은 평점을 매겼습니다. 모자간의 애정과 신뢰, 주인공의 성장과정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는 화위가 기차와 함께 나란히 달리는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됩니다. 균형을 잃지 않고 달리는 연습을 위해, 속도를 더 빠르게 하기위해,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해 화위는 기차와 함께 수없이 달리고 그동안 화위는 여러 번의 알을 깨며 성장합니다. 화위는 달리기 전 떨리는 눈빛으로 엄마를 찾습니다. 화위가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매일같이 먼발치에서 응원해 온 엄마가 아들을 발견하고 외칩니다. “望着妈妈(엄마 봐)! Set! Go!” 엄마의 원더풀 보이가 땅을 박차고 날아오릅니다. 4. 중국의 상영 규제에 고통받는 마블 마블 유니버스의 최초 동양인 히어로물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9월 첫째 주 세계 각지에서 개봉했습니다. 양조위(梁朝伟), 시무 리우(刘思慕), 아콰피나(奥卡菲娜), 양자경(杨紫琼) 등 인지도 높은 중화권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샹치>는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습니다. <샹치>는 개봉 후 전역에서 놀라운 흥행 성적을 보여주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지만 정작 중국에서의 개봉은 미지수입니다. 주인공 ‘웬우(文武)’가 동양인에 대한 부정적인 스테레오 타입 ‘푸 만추’와 유사한 것, 양조위가 홍콩 시위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 마블의 후속 작품 <이터널스>의 감독이 중국 비난 발언을 한 클로이 자오라는 것 등이 상영 허가를 받지 못한 이유로 추측됩니다. 팬데믹 이후 중국의 관객 규모가
할리우드를 앞지르며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 시장이 되었습니다. 지난 5년간 중국은 마블 작품의 전체 흥행 수익 중 15% 이상을 꾸준히
차지해왔습니다. 특히 2019년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중국에서만 42.5억 위안의 흥행 수익을 달성하며 작품 전체 수익의 22.5%를
차지했습니다. 마블은 코로나 이후 극장가를 가장 빠르게 회복한 중국 시장에 기대를 품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올해 7월 개봉한 <블랙위도우>는 중국 건당절과 겹친다는 이유로 끝내 상영하지
못했고 <샹치>에 이어 올해 말 개봉 예정인 <이터널스> 역시 개봉 가능성이 불투명해지면서 마블은 올해 흥행
수익에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영본색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을비 몇 번에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SNS에서 “긴 소매에 반바지를 입을 수 있는 건 앞으로 딱 2주”라는 말을 봤습니다. 가을은 너무 짧고 그래서 더 귀합니다. 다급히 찾아올 추위 전 따가운 가을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찜통 같았던 여름에서 벗어났음을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낮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다음 절기 추분에 뵙겠습니다. 발행인 이하오 이메일 주소 lihao29@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