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화요일(29일)은 이태원 참사 2주기였습니다. 며칠 사이 신문에 많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코트워치는 작년 10월 29일 '이태원참사 재판기록'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고, 지금도 관련 재판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전 레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코트워치는 창간 1년을 전후로 새로운 기획,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중요한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한다'는 코트워치의 출발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법정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판결이 나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지켜보는 기자가 꼭 필요할까, 알려야 하는 정보가 맞을까 고민했습니다.
결론은 '필요하다'였습니다.
제가 결론을 내리는 데에 도움을 준 몇몇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를 오늘 레터에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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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수요일, 이태원 참사 재판이 있었습니다.
서울경찰청 박성민 전 정보부장은 2022년 이태원 참사 발생 이후 서울청 경찰관들에게 핼러윈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날 재판에는 서울청 정보부 소속 A 계장이 증인으로 왔습니다.
박 전 부장은 참사 이후 회의에서 "보안 관리 철저히 하라"고 말했고, 당시 A 계장은 박 전 부장의 지시 사항을 직원들에게 두 차례 전파했습니다.
검사는 "경찰이 내부 감찰을 진행하던 시기에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A 계장은 박 전 부장이 문서 삭제를 지시한 것과, 그 지시를 자신이 그대로 전파한 것이 잘못된 행동이 아니었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신문 시간은 길어졌습니다. 증인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다시 묻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검찰에 이어 변호인의 질의가 이어지는 동안 방청석에서 재판을 취재하던 기자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났습니다.
양측의 신문이 마무리되고 마지막으로 판사가 물었습니다.
"이태원 관련 행사의 위험성을 지적한 보고서를 삭제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증인이 삭제하라고 한 보고서가 누군가의 책임 소재를 밝힐 만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보고서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더더욱 (감찰팀에) 제출해서 명명백백하게 밝히면 되는 것 아닌가. 삭제를 하면서까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지 않나"
시종일관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유지하던 증인은 재판이 끝날 때쯤이 돼서야 '자신의 불찰'임을 인정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직원들에게) 그 보고서를 잘 갖고 있으라고 했어야 했는데 이야기를 못 한 건 제 불찰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깊게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판사는 그 답을 듣고 나서야 질문을 멈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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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재판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종종 목격합니다.
사건과 연관된 증인이 처음에는 '문제가 있는지 몰랐다, 잘못이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하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앞에서 자신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잘못 혹은 마음에 묻어둔 양심과 마주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어쩌면 반박하는 일에 지쳐서 나오는 대답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주로 재판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증인이 몇 시간에 걸쳐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 반복되는 질문 앞에 놓였을 때에 이루어집니다.
저는 재판의 그런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고, 새로운 '팩트'나 사건을 뒤집을 만한 증언이 아니라고 해도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날 재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불 꺼진 복도를 지나 당직실 문을 통해 법원 밖을 나서며 재판에서 나온 말들의 의미를 되짚어봤습니다.
법원 겨울 휴정기가 오기 전까지 코트워치는 앞으로도 여러 법정을 오갈 예정입니다.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순간을 전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오랫동안 취재해 보겠습니다.
(이 레터는 김주형 기자가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