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5일, 코트워치 기자들은 부천화재참사 유가족분들을 만났습니다.

사과가 '해야 하는' 일


지난 3월 5일, 코트워치 기자들은 부천화재참사 유가족분들을 만났습니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서 열린 재판이 끝나고 나서였습니다. 가족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손에 쥔 A4 용지를 오래 쳐다봤습니다. 화재로 아들, 딸을 먼저 떠나보낸 가족들이 보내온 시간을 너무 구체적으로 상상하지는 않으려고 했습니다.


부천화재참사는 작년 8월 22일에 발생했습니다.


부천 원미구의 한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습니다.


객실 에어컨 연결선 발열에 의한 화재였습니다. 규정상 닫혀 있어야 했던 객실과 비상구 출입문이 개방된 상태였고, 복도와 비상계단을 통해 화염과 연기가 빠르게 확산했습니다. 화재 발생 직후 호텔 직원이 화재알림 경보음을 차단해 2분 16초간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습니다.


수사기관은 안전 관리 책임, 화재 대응 과정에서의 과실 등을 인정해 호텔 관계자 4명을 재판에 넘겼고, 현재 1심이 진행 중입니다.


4월 재판에서는 피고인들에 대한 보석심문이 있었습니다. 보석을 신청한 피고인을 석방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한 피고인이 작은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변호인은 합의를 언급했습니다. "(석방이 되면) 진지하게 반성하고 합의할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피고인의 가족이 유가족들에게 다가와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유가족들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을 다녀오고 나서 한 가지 질문이 남았습니다. 피고인들의 사과와 반성은 왜 공허할까. 그들의 사과는 왜 유가족들에게 아무것도 전하지 못할까.


피고인이 재판 중에 사과했고, 변호인은 '(피고인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고, 피고인의 가족 한 사람이 유가족들에게 사과했지만, 그 말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 * *


사과의 의미를 다룬 한 책에서는 '사과 이후에 뒤따르는 행위'에 대해 설명합니다.¹ 사과는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로 완결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본인이 져야 할 책임에 대한 인정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이 따라올 때 그 사과는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사과를 함으로써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복합적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말뿐인 사과라도 아무 말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들의 말은 유가족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실상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더욱이 (피고인들은) 유가족들에게 단 한 차례의 진정성 있는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유가족들에게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범죄사실을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으면서 합의를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보석 허가 결정에 대한 유가족모임의 입장문)


"합의라는 게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을 전제로 논의된다. (피고인 측은) 범죄사실을 표면적으로는 인정했지만 주요 과실을 거의 부인하고 있다. (...) 몇 차례 합의 제안이 있었지만 유가족들과 의논 끝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합의 제안의 전제가 성립되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유가족을 대리하는 대한변협 생명안전특위 최석봉 변호사의 발언)


부천화재참사 재판의 피고인들은 참사와 연관된 구체적인 과실은 부인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법원은 피고인 전원에 대한 보석을 허가했습니다.


재판은 5월 19일에 이어집니다.


¹ “감정의 문화정치”, 사라 아메드, 254쪽


(이 레터는 김주형 기자가 작성했습니다. 코트워치 후원회원 워처 79분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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