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이후의 '변화'와 '변하지 않는 것'
재판을 따라가다보면 '사건 이후'의 변화를 접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이 공론화되면 법이나 규정이 바뀝니다. 피해자를 지키지 못한 법, 문제를 악화시킨 시스템을 개선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바뀐 규정은 법정에 출석한 증인, 피고인에게 방패 아닌 방패가 되기도 합니다.
증인석에 앉은 사람들은 '그때는 법이 바뀌기 전이라서', '별다른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지난 8월에 있었던 고 이예람 중사 사건 재판¹에서도 "시스템이 없었다"는 말이 반복해서 나왔습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A 씨는 사건 당시 공군 양성평등센터 소속 성고충 상담관이었습니다.
성고충 상담관은 성폭력 사건 발생 시 피해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안내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피해자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2차 가해를 방지하는 등 사건 처리 과정에 어려움이 없도록 도와야 합니다.
2021년 5월, 이 중사에 대한 지원을 담당했던 A 씨가 휴가를 가면서 공석이 생겼지만 직무대리자는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A 씨가 자리를 비운 3주 가량의 기간 동안 군에서 이예람 중사를 보호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A 씨는 법정에서 "(이 중사가 사망한 이후) 지금은 상담관이 5일 이상 자리를 비울 경우 대직자를 지정하는 시스템이 생겼지만, 당시에는 센터 내 업무 연계 시스템이 전무했다"고 말했습니다.
피해자 보호 체계에 구멍이 생긴 이유는 미비한 규정 때문이지 구성원의 잘못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사건 이후의 현장'은 안전한가, 질문하게 됩니다.
지난 8일,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12월 공군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질의했습니다.
공군 B 하사는 2021년과 2023년 두 차례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올해 1월에는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를 입었습니다.
B 하사는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군은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공군은 B 하사에게 '불명예 전역'을 권고했습니다. 성추행 사건 이후 2차 가해자가 피해자와 같은 부대에 배치되기도 했습니다. B 하사는 세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고, 병원에서 우울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성폭력 피해자는 군 시스템 안에서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B 하사는 사건을 외부에 알려 스스로를 보호하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사건 이후의 현장'을 진정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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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수요일, 비영리 독립언론 '단비뉴스'에 코트워치를 소개하는 인터뷰 기사 '처음부터 끝까지 재판 취재하는 희귀한 기자(클릭)'가 발행됐습니다. 코트워치가 어떻게 시작됐고, 지난 1년 간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코트워치의 출발점과 앞으로의 지향점이 궁금한 뉴스레터 독자 분들은 링크를 통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¹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고 이예람 중사는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수사가 진행되던 2021년 5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중사가 사망한 이후 군이 2차 가해를 방치하고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재 대전지방법원에서 공군 양성평등센터장의 직무유기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레터는 김주형 기자가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