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Vol.12

지난 한 주간 잘 지냈나요?


생각해 보니 일글레가 편지 형식인데, 발행인의 이름만 있고 수신인의 이름이 없더라고요. 여러분을 '일글러'라고 불러도 될까요? 부를 이름이 생기니 좀 더 친근하게 저의 이야기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글러는 살면서 몇 번 이직을 경험해 봤나요? 저는 총 6번. 이직을 꽤 자주 했지요?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환승 이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을 안 하면 불안해 죽는 저로서는 이직을 준비할 때마다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다음번엔 이 시기를 버텨낸 방법에 대해서도 다뤄볼게요.)


무엇보다 저를 힘들게 한 건 이직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연봉 협상에서 얼마를 불러야 하는지, 어떤 분야로 이직을 해야 만족도가 높을지 등등. 인터넷 정보에도, 지인의 조언에도, 정답은 없었죠.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큰 혼란에 빠뜨린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어요.


"꼭 1년을 채우고 이직해야 할까?"


여전히 이직의 정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6번 이직하면서 나름 저만의 정답이 생긴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이건 제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과도 많이 닮아 있더라고요. 산전수전 이직러가 생각하는 정답, 한 번 들어볼래요? 

이직 한 달 차의 바짝 군기(?)든 모습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한 회사에서 적어도 1년은 채워야지"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어본 것 같아요. 일글러의 생각은 어때요? 1년을 채우지 못한 경력이 4번이나 있다 보니 나에게 '1년'이라는 숫자는 무척 무겁게 느껴집니다.


제 생각에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요. 우선 맞는 부분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사람도 사계절을 겪어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듯이, 회사도 사계절을 겪어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제가 처음 IT 회사에 입사했을 때 1개월도 못 버티고 '또' 퇴사를 하려고 했어요.사람들은 외계어에 가까운 말들로 소통을 했고, 한글과 워드 프로그램밖에 사용할 줄 모르던 저에게 구글 시트, 포토샵, 슬랙(Slack), 지라(Jira)와 같은 프로그램들은 너무 어려웠거든요. 특히 그 용어를 사용하는 동료들이 나를 공격하는 듯한 이상한 피해의식이 생기기도 했죠.


제가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니까 한 친구가 3개월만 버텨보라고 했어요. 제가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쉽게 말하는 그 친구가 얼마나 미웠는지 몰라요. 하지만 친구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어요. 워낙 힘들게 들어간 회사였으니까요. 3개월만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버티다 보니 3개월 이후부터 사람들이 쓰는 외계어를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했어요. 그렇게나 무서워 보였던 업무 프로그램들도 별거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친한 동료들이 생기면서 고민을 나눌 수 있게 되니 모르는 게 생기면 빨리 털어낼 수 있었고. 즉, 제가 변화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던 거예요. 일이 빠르게 돌아가는 만큼 회사의 성장 속도도 무척이나 빨랐고, 직원 복지가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한 덕분에 그 회사에서는 3년 반 동안 정말 즐겁게 일할 수 있었어요. 1개월 만에 그만 뒀으면 어쩔 뻔?


누가 누가 말했나 1년은 버텨야 한다고 

자, 이제 틀린 부분을 이야기해 볼게요. '1년'이라는 숫자는 누가 정했을까? 1년 3개월도 아니고, 1년 9개월도 아니고, 반드시 1년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물론 근로 기간이 1년이 되어야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을 하겠지만, 커리어에 '시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어요.


저는 현재 회사로 이직하기 전, 지인과 창업에 도전을 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준비 없이 시작한 창업은 순탄하지 않았고, 매일 혼자 재택으로 일을 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어요. 점심시간에 회사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커피를 사 마시는 모습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결국 9개월 만에 지인과의 창업을 종료하고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왔어요. 물론 이 경험을 통해 배운 점도 무척 많아요. 나는 아직 창업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는 혼자 일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일을 하는 것이 잘 맞는 사람이다,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등등. 저는 1년을 채우기 위해 3개월을 더 버티는 대신,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회복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데 매진했어요. 그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제가 변화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요. 현재 저는 9년 차 회사원으로서 커리어에 더 큰 불꽃을 만들고 있어요.


저는 상사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거나 굴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1년은 버티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걱정돼요.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퇴근하면서도 1년은 버티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안쓰러워요. 그들이 그토록 버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직할 때 끈기 없는 사람으로 비칠까 봐 걱정되어서라면 이렇게 관점을 바꾸어 보면 어떨까요? 


당신의 목표가 팀원에게 굴욕적인 말을 퍼붓는 상사를 1년 동안 버티는 것이 아닌, 끈끈한 팀워크로 팀원들과 제대로 시너지를 내는 것이라고. 당신의 목표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회사에서 1년을 버티는 것이 아닌, 효율적으로 일하며 회사의 로켓 성장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중요한 건, 1년을 버텼는가가 아니라 내가 버티든 안 버티든 그 선택을 한 명확한 이유를 갖고 있느냐입니다. 저는 가장 빛나는 커리어를 그려나가고 있는 당신의 목표가, 무턱대고 '1년'을 버티는 것만은 아니었으면 해요.

일글레 발행인 유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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