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앙에 대한 다양한 시선 👀 과신뷰
이 달의 주제

현대우주론과 신학적이해 2️⃣

과학과 신앙에 대한 다양한 시선  과신뷰 vol.73 특집호

편집팀장 : 김양현 │편집위원  : 박아론 이슬기 

목차
  • 이 달의 핫 클립 : 「과학 시대의 신앙」 "우리는 특별한 존재인가"(장재호)
  • 주제 칼럼 : "우주의 운명과 그리스도교의 소망" (김정형)
  • 사무국 소식 : (박아론, 이슬기)
  • 교사모임 리뷰 : "여름성경학교를 준비하며" (정종명)
  • 기고문 : "연금술, 신학이 과학과 대화해야 할 또 하나의 자리" (박요한)
  • 과신뷰 이달책 : 《여섯 개의 수 (박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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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핫 클립 🔥
주제 칼럼🖋

우주의 운명과 그리스도교의 소망

글 | 김정형
연세대학교 종교철학과에 있으며
과신대 자문위원으로 함께 하고 있다.

1. 우주의 운명에 관한 현대 우주론의 예측


 우주의 운명에 관한 과학적 탐구는 영원하고 정적인 우주에 관한 고대 그리스의 우주론이 붕괴된 최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19세기 중반 열역학 제2법칙이 발견되고 우주 전체를 대상으로 그 법칙을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우주의 운명에 관한 최초의 과학적 예견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때 우주의 운명은 우주의 모든 지점이 열평형상태에 도달하는 소위 “열 죽음(heat death)”의 형태로 논의되었다. 20세기 들어 빅뱅 우주론의 놀라운 발전은 우주의 종국에 대한 논의를 현대 과학적 우주론의 한 분야로 만들었다. 빅뱅 우주론은 지금 팽창하고 있는 우주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팽창하거나 혹은 다시 수축할 것이라고 내다보았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우주의 운명이 “얼어 죽거나 불타 죽게(freeze or fry)”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한편, 우주의 구성 물질에 대한 가장 최근의 과학적 발견과 연구는 우주가 계속해서 팽창할 것이라는 견해에 더 무게를 실어주고 있으며, 이 경우 우주의 먼 미래는 “끝없는 부패의 과정”이 될 것으로 과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우주는 종말에 관한 여러 모델들 1. 빅 크런치 2.빅 칠 3. 빅 립 모델,
가장 유력한 것은 끊임없이 퍼지는 빅립 모델이다. 이미지=ESO

2. 우주적 희망에 대한 신학적 도전


 우주의 종국적 상태에 대한 이 암울한 그림은 비록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의 최종적 완성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소망을 위협하고 있다. 과학으로부터 제기되는 도전은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 우주의 종국적 파멸에 대한 과학적 예견은 우주적 과정 전체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말하자면, 우주가 종국적으로 파멸을 피할 수 없다면 생명의 출현은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우주 역사 속에서 잠시 지나가는 에피소드나 “부조리한 역사 흐름 속에 우연히 발생한 행복한 사건,” 혹은 “무의미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의미 있는 섬”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생명 역시 결국에는 무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생명의 의미조차도 단지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전도자가 말하듯이, 결국 모든 것이 헛된 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전 1:2). 그렇다면 우리가 우주 전체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이것은 첫 번째 허무주의의 도전이다.

 둘째, 만약 만물이 무로부터 와서 과학자들이 예측하듯 무로 돌아가게 된다면, 우주적 과정에 어떤 목적도 없어 보인다. 현대 과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우주의 물리적 격자 속에는 어떠한 목적(telos)도 새겨져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과학적 발견들에만 호소하면서 우주의 위대한 설계자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여하한 철학적 혹은 유사-신학적 시도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주 전체가 최종적 파멸에 이르게 되는 암울한 미래상 앞에서 최근 많이 논의되고 있는 우주의 “미세조정”조차도 우주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의 최종 목적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두 번째 도전, 무목적성의 도전이다.


 셋째, 우주의 파국이 내포하는 허무주의와 무목적성은 우주의 설계자나 창조자가 없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설령 우주의 창조자가 있다고 가정한다손 치더라도, 그 창조자는 창조 세계를 자신이 계획한 목적대로 완성시킬 선한 의지와 충분한 능력이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하나님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우주의 최종적 파멸에 관한 과학적 예측은 선한 의지와 주권적 능력이 있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신앙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의 최종적 완성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소망에 큰 위협이 된다. 이것은 무신론의 도전이다.


 요컨대, 우주의 운명에 관한 암울한 예측은 과학 이론에만 기초한 진화론적 낙관주의를 설득력 있게 논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몇몇 저명한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우주의 역사가 궁극적으로 부조리하며 우주의 의미나 목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유추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우주의 파국에 대한 과학적 예측과 그것이 내포하는 허무주의적, 무목적론적, 나아가 무신론적 함의는 창조의 미래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소망의 관점에서 신학적 응답을 요청한다.

3. 우주적 희망은 신학적 문제다


 한편, 우주의 운명에 관한 과학의 예측이 그리스도교에 도전이 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주의 미래에 관한 우주적 희망이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포기할 수 없는 영역임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주적 희망이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주적 희망은 간단히 말해서 창조의 미래를 향한 소망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창조”란 이중적 의미가 있다. 창조는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을 가리키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결과 생겨난 창조 세계를 가리킨다. 창조의 이 같은 이중적 의미를 염두에 둘 때, 우주적 희망은 단순히 창조 세계의 미래를 향한 소망만을 가리키지 않고, 거기에 더하여 혹은 그보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미래를 향한 소망을 가리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주적 희망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으로서 신학 자체의 가장 중요한 이슈들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우주적 희망은 세계를 창조하시고 그 세계를 궁극적으로 완성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소망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주적 희망은 단지 세계의 미래 상태에만 관계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기로 결정하신 이후로 줄곧 의도해 오셨던 하나님의 창조 목적의 궁극적 성취를 향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진정한 의미의 “신학적” 이슈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창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성과 더불어 스스로 시작한 일을 완성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창조 세계의 완성이 없다면, 창조 세계와 관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완성으로서 새 창조가 없다면, 창조 세계의 미래를 향한 소망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의 실패를 의미할 것이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신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그리스도교적 신념에 의문을 품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교적 우주적 희망을 재구성하고자 시도하는 사람에게 있어 일차적인 과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를 염두에 두고서 우주적 희망의 토대를 새롭게 정초하는 것이다.

4. 우주의 파국 예측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응답


 그렇다면 우주의 파국에 대한 과학의 예측은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의 실패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근본 확신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한다고 볼 수 있다. 과연 현대 과학의 예측에서 비롯하는 이 도전 앞에서 창조 세계의 완성을 향한 소망을 고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우주의 종국에 대한 끔찍한 과학적 미래상이 처음 일반 대중에게 소개된 이래 많은 위대한 지성들이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도전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응답하려고 시도해 왔다.

 

  • 찰스 다윈(Charles Darwin)과 같이 역사의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던 많은 근대 사상가는 세상의 종국에 대한 과학의 암울한 예측에 당혹스러워했다. 또한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이나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와 같이 우주 전체가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음을 인정하는 무신론적 사상가들도 등장했다.

  • 한편, 떼이야르 드 샤르댕(Teilhard de Chardin)은 인간의 의식이 결국에는 엔트로피의 무제약적 증가를 극복하고 우주적 과정의 최종적 완성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었고, 그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프리만 다이슨(Freeman Dyson)과 프랑크 티플러(Frank Tipler) 등은 먼 우주 미래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정보처리 과정으로서 “생명”은 여전히 지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영국의 윌리엄 잉거(William Inge)와 에드먼드 휘테커(Edmund Whittaker)는 우주의 파국에 대한 과학적 예측이 당시 년차 신앙과 경쟁 관계 속에 있던 근대 이데올로기들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과학적 예측을 환영하는 한편, 과학자들이 예견하는 우주의 미래 너머를 바라보는 그리스도교적 소망과는 충돌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복음주의 계열의 몇몇 신학자들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우주의 파국에 대한 과학적 예측이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는다는 성서적 증언을 확증한다고 주장했다.

  • 반대로 헨리 모리스(Henri Morris)와 같이 성서의 문자주의적 해석을 고수하는 이들은 현대 과학의 우주론을 맹목적으로 거부하고 요한계시록에 근거한 대안적인 유사-과학적 우주론을 발전시키려고 시도했다.

  • 또 다른 신학자들은 현재의 과학적 미래상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우주의 미래에 대한 현재의 과학적 예측이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장차 새로운 과학적 예측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한편, 루돌프 불트만과 캐서린 태너(Kathryn Tanner)와 같이 그리스도교적 소망을 실존론적으로나 초월론적으로 해석하는 신학자들은 우주의 미래에 대한 과학적 예측이 신학적 주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보고 우주의 운명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 이안 바버(Ian Barbour)를 필두로 과정 신학자들은 화이트헤드의 과정 사상이라는 기존의 잘 정립된 형이상학의 토대 위에서 우주의 운명에 대한 과학적 예측을 수용하면서도 여전히 우주적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 마지막으로,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과 로버트 존 러셀(Robert John Russell)을 비롯한 다른 신학자들은 우주적 희망의 토대를 과학이나 기존 형이상학에 정초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나 예수의 부활에 관한 성서적 증언에서 새 창조를 향한 그리스도교적 우주적 희망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그럼에도 과학이 새 창조를 향한 우주적 희망의 내용을 이해 가능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5. 우주적 희망의 신학 재건의 과제


 현대신학에서 우주적 희망의 주제가 새롭게 부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우주의 최종적 파국에 대한 과학적 예측이 제기하는 도전에 응답하려는 일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논리에 있어 우주적 희망이 가진 신학적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물론이고 창조의 미래를 향한 우주적 희망의 토대와 성격과 범위와 모델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도 부재한 상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적 우주적 희망의 토대를 탐구하고 공고히 할 뿐 아니라 과학적 우주론이 제기하는 도전에 직면하여 그리스도교적 우주적 희망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교사모임 리뷰🖋
여름성경학교를 준비하며
글 | 정종명
소명중고등학교에서 과학교사로 가르치고 있으며
과신대 교사팀장으로 섬기고 있다.

 서울에 있는 교회의 요청으로 중등부 여름수련회 과학과 신앙 특강을 맡게 되었다. 가평이 서울 근교 가까운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네비를 찍어보니 만만치 않은 먼 거리였다. 특히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 고단함이 있었다. 하지만 산과 계곡이 보이는 멋진 장소에서 아이들 만나는 여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해서 보니 역시 멋진 계곡과 운동장이 있었고 그 주위에 높은 산이 둘러싸여 있었다. 도중에 집에 돌아가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묘안 안정감을 주는 이 장소야말로 수련회 장소로 최적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필자도 먼 거리를 오며 다양한 감정이 느껴졌던 만큼 코로나가 끝나고 수련회를 열심히 준비해 오셨을 선생님들과 목숨보다 중요한 학원 일정을 조정해서 온 대한민국 중등부 아이들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느새 기대가 커져 있었다.


 특강을 준비했던 과정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과신대 교사팀에서는 주일학교와 성경학교에서 활용할 교재를 만들고 있던 터라 그것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잘 제작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우주와 신앙, 과학의 본성을 각각 집필한 정승화 선생님과 나는 오전 오후로 나누어 특강을 준비하였다.


 비록 두 부분에 불과하였지만 교재를 제작해 놓으니 주일학교 교사들이 분반공부를 할 수 있도록 사전에 교육이 가능했고, 특강 때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가 되었다. 막상 수련회에 가서 할 특강을 준비하면서는 그 더운 여름 성경학교에 와서 과학수업까지 들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재미있게 특강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퀴즈와 그룹토의, 심지어 아재개그까지 준비해 갔다.


 충분히 준비했다고 생각하고 진행하려는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준비하는 과정 동안 소통했던 부장 집사님께서 가장 치밀한 준비를 해오셨던 것이다. 과신대를 익히 알고 기초과정 유튜브도 보신 부장 집사님께서는 교회에 과신대 단체를 소개하고 목사님과 부목사님께 검토와 동의를 받고 부모님들 주일학교 교사분들하고도 소통을 해오셨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중간중간 특강 내용을 물어보시고 교인들의 특징을 알려주셨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얼마나 세밀하고 조심스럽게 준비해 오셨는지 감동을 받았다.     


 첫 번째 특강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관찰과 증거를 통해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이 세상에 꼭 필요한 중요한 방법론이지만 확실히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혹은 과학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신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믿을 수 있겠다는 반론에 우리 주변에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존재하는 믿음과 같은 형태가 많고, 그것이 있기에 세상이 존재하기도, 또 세상이 유지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증명할 수 없는 믿음과 과학을 분리해서만 생각해야 하느냐, 꼭 그렇지는 않다. 행성의 운동을 정확하게 설명한 뉴턴은 그 이론이 가능하게 한 존재자가 있음을 고백했으며 믿음을 전제로 과학을 통해서 신앙을 공고히 한 사례이다. 또 보이저 1호에서 관측한 창백한 푸른 점은 우주적으로 교만할 것 없다는 차가운 결론에 그친다 하지만 신앙은 이 작고 초라한 존재를 위해 우주를 만드신 존재가 십자가 희생한다는 따뜻한 결론으로 바뀌게 하고 이는 우리의 신앙이 과학을 해야 하는 이유와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 것이다.


 이어서 정승화 선생님이 하신 특강의 요점은 경이롭고 광대한 우주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과 시작과 팽창이 있는 우주로 설명하는 현대 표준 우주론은 창조 기사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함께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었다. 덧붙여서 그렇게 설명되는 우주는 하나님의 계속적 창조와 인과적 창조를 보여준다고 결론을 맺었다.


  오전 오후 진행된 중등부 특강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학교 현장에서 배운 것과 다르지 않은  과학 이야기를  우리의 신앙과 연결시켜본 경험이 재미있고 새로웠을 것 같다. 그리고 교재를 첫 활용한 특강이 수업 때 잘 활용된 의미도 있지만 교회에 특강을 소개하는 과정에도 활용되었고,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서도 부모님에게도 소개되고, 또 특강에 관심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데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부분이 좋았던 것 같다. 


  아무쪼록 신앙과 과학의 균형 잡힌 관점을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 교회와 부장 집사님께, 또 동행한 정승화 선생님께, 그리고 교재 편집을 힘써 준 사무국에게 특강 후기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앞으로 한국 교회의 많은 주일학교와 성경학교에서도 구원과 믿음을 넘어서서 과학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의 하나님의 주권을 고민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기고문🖋
연금술, 신학이 과학과 대화해야 할 또 하나의 자리
글 | 박요한
과거에 신학을 전공했고, 전(前)근대서양 과학사 및 의학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연금술의 역사를 학문적으로 다룬 학술 연구서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1. 신성한 스톤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 6개의 특이점들이 있었고, 대폭발로 우주가 존재하게 되자, 그 잔해들이 응축되어 덩어리를 형성했지. 이름 하여 인피티니 스톤... 이 스톤들은 특별한 힘을 가진 존재들만 다룰 수 있지.

인피니티스톤, 마블 코믹스에서 등장하는 아이템
인피니티 컨틀릿을 착용한 마블의 악당 타노스

 2014년 개봉된 제임스 건 감독의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등장하는 콜렉터의 대사 중 한 대목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장대한 서사 가운데 한 조각을 차지하고 있는 이 영화는, 향후 시리즈 전체의 운명을 결정지을 인피니티 스톤에 관한 소개를 담고 있다. 인피니티 스톤이란, 창조자들의 능력이 집약된 우주적 아이템이다. 마블 시리즈의 또 다른 작품인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2018)에 등장하는 소서러 슈프림 웡의 설명에 따르면, 인피니티 스톤은 우주의 여섯 가지 본질(공간, 현실, 힘, 영혼, 정신, 시간)을 관장한다고 한다. 인상적인 점은, 우주의 운명을 결정지을 아이템이 ‘돌’로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인간에게 돌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마도 고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대상들의 목록에는 운석(隕石)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은 천상의 신비로움을 나누어 갖고 있는 존재로 여겨졌다. 어떤 문화권의 원시인들은 하늘이 돌로 만들어져 있다고 믿기도 했다. 놀랍게도 고대인들은 운석 속에서 금속성 물질을 발견했다. 철광석을 다루는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인간에게 철을 제공한 것은 오로지 운석이었다. 인간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검은 스톤’을 다룰 줄 아는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했다.


 고대인들이 철을 얻기 위해 더 이상 하늘을 쳐다보지 않아도 되었던 시점은 용해(鎔解)의 비밀을 지닌 야금(冶金) 기술의 발달과 연관되어 있다. 야금 기술은 땅속에 묻혀 있어서 채굴이 용이하고 양도 풍부한 철 광맥의 개발을 부추겼다. 이제 인간은 신성한 능력을 하늘이 아니라 대지에서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야금 기술의 출현과 그 공업적 성공은 대장장이들이라는 새로운 집단을 등장시켰다. 그들은 철을 가공하는 이들이자, 새로운 금속을 찾아 떠돌아다니면서, 용해의 비밀을 간직하고 전파하는 신비스런 집단이었다.

2.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구약성서 창세기 5장에서 우리는 대장장이 집단의 첫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아담의 첫째 아들 가인의 후손 중 하나였던 라멕은 세 아들을 낳았다. 그의 아들들은 인간 문명의 시작을 보여준다. 첫째 아들 야발과 둘째 아들 유발은 각각 목축과 음악의 시조가 되었다. 배다른 형제인 셋째 아들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22절)였다. 그가 태어났던 시대에 이미 인류에게는 악이 만연했지만, 그 가운데는 “야웨의 이름을 불렀던”(26절) 이들도 살아남아 명맥을 이어갔다.


 아마도 두발가인의 먼 후예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또 다른 이름이 구약성서에 등장한다.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은 열왕기하 10장에 묘사된 예후 쿠데타의 현장에서 발견된다. “야웨를 향한 열심”을 나눠 가진 예후와 여호나답은 함께 병거를 타고 바알을 섬기던 아합의 잔당들을 진멸했다. 사실 이 본문만으로 여호나답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인물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한 힌트가 예레미야 35장에서 주어진다. 문맥 상 다소 난데없이 등장하는 레갑 족속(레갑의 아들 요나답[=여호나답]의 후손들)은 야웨께 불순종하는 유다 백성의 모습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하나의 모범 사례로 소개된다. 예레미야가 레갑 족속에게 포도주를 권하자, 그들은 자신들의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어김없이 따르고자 포도주를 거절한다. 야웨는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라는 약속으로 레갑 족속의 순종에 보상을 내리신다.


 기원후 5세기 즈음 성립된 그리스도교 위경(僞經) 문헌인 『조시모스의 여행』에서, 은둔자 조시모스는 천사의 인도로 레갑 족속이 살고 있는 향기로운 섬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레갑의 먼 후손들은 여전히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호화로운 과일을 먹으며, 인간의 문명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천사들과 함께 안락한 생을 누리고 있다고 묘사된다. 이것이야말로 야웨께서 레갑 족속에게 약속하셨던 보상이었을까?


 이후로는 성서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이 기이한 족속의 정체에 관한 여러 가설들이 있어왔다. 야웨 신앙의 명맥, 철기 병거, 포도주 타부와 같은 요소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마구 자극한다. 집을 갖지 않고 장막에서 살아온(9~10절) 그들이 일종의 노마드 혹은 반(半)유목민이었다는 견해도 있고, 야금 기술을 지니고 떠돌이 생활을 했던 대장장이 집단이라는 견해도 있다. 용해의 비밀을 집단 내에 간직하고 누설하지 않으려면, 그들은 포도주에 취해서는 결코 안 되었을 것이다. “내 앞에 서다”(=나를 섬기다)라는 구절을 근거로(19절), 레갑 족속이 예언자였다는 견해도 제기되었다. 그런데 굳이 세 가지 견해 중 하나만 골라야 할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대장장이는 떠돌아다니는 사람이었고, 천상과 대지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예언자이기도 했다. 노마드, 대장장이, 예언자, 이들은 곧 하나였다.

3. 연금술사, 대장장이의 정신적 후예


 지난 세기의 고전적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연금술사는 대장장이의 정신적 후예”라고 지적한 바 있다. 중세 후기 및 르네상스기에 성행했던 연금술이 고대 야금 기술의 전통을 상당 부분 계승했다는 점에서 엘리아데의 지적은 틀리지 않다. 1505년 독일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출간된 『산악요람』(Bergbüchlein)은 야금 기술과 연금술의 연결고리를 잘 보여주는 문헌 중 하나다. 프라이부르크의 의사이자 연금술사 콜부스가 작성한 이 소(小)책자는 당대의 저명한 광물학자 게오르기우스 아그리콜라에 의해 소개되면서 잘 알려지게 되었다.


 『산악요람』은 광석의 발생을 부인과학(gynecology)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고대 대장장이들의 신념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동굴과 광산은 어머니이며,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된 광물은 장구한 세월에 걸쳐 성숙하고 발육하여 결국 완전한 금속으로 변화한다. 그런데 대장장이들은 산달을 다 채우지도 않은 광물을 땅속에서 캐내어 인위적으로 금속을 제작한다. 이러한 인위적 행위는 파괴적인 실천일까? 적어도 대장장이들의 관점에선, 그렇지 않다. 그들의 행위는 자연적이다. 다만 자연의 시간적 리듬을 더 빠르게 만들었을 따름이다.


 일찍이 고대 후기의 저명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헥사메론(hexameron)이라는 신학적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6일 동안 창조하셨음을 논증했던 바 있다. 하지만 창세기 1장의 기록을 잘 살펴보면, 창조의 엿새 중 그 어느 날에도 돌과 금속의 창조에 관한 언급은 나타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그들이 믿기로, 금속의 세계는 창조의 날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금속은 광산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 자라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산악요람』의 저자 또한 이러한 믿음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수은과 유황이 결합하여, 모든 금속을 낳는다. 유황은 마치 남자의 정액처럼 작용하고, 수은은 수태와 출산에서 여성의 역할을 한다.” 수은과 유황의 결합이 금속을 낳는다는 발상은, 14세기에 『완전성 대전』(Summa perfectionis)이라는 문헌이 성립된 이후로 연금술사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인 전제였다.


 연금술사들은 대지의 어머니가 금, 은, 구리, 수은, 주석, 철, 납이라는 일곱 기본 금속을 낳는다고 믿었다. 이들 기본 금속들은 완전성의 위계를 가지며, 당연히 그 위계의 꼭대기에는 금이 자리한다. 땅속에서 기본 금속들(금을 제외한)은 수천 세기에 걸쳐 완전성에 도달하기 위하여, 다시 말해 금으로 변성되기 위하여 성숙의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면 대장장이의 행위와 마찬가지로, 비천한 기본 금속을 고귀한 금으로 바꾸겠노라는 연금술사의 행위 또한 금속의 성장 속도를 촉진시키는 자연적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노력으로써 자연을 완전성의 단계로 빠르게 이끌어 올리겠다는 일종의 책임감은, 이처럼 대장장이들에게서 연금술사들에게로 그대로 전수되었다. “자연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야 완성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기예를 통해 단기간에 완성할 수 있다!” 자신들이야말로 신성한 스톤을 다룰 수 있을 만한 특별한 힘을 가졌노라고 확신했던 이들은, 다름 아닌 연금술사들이었다.

4. 연금술, 인간의 창조 능력

 

 일반적으로 과학사가들은 연금술의 출발을 헬레니즘 시대, 그러니까 주전 2세기~주후 1세기의 이집트로 보는 데 동의하는 편이다. 이집트의 신전 주변 작업장에서 세공품 장식예술의 한 갈래로 출발했던 프로토(proto)-연금술은, 연금술사 자신들이 고귀한 금속의 모조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복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인식론적 도약을 통해 서양 역사에서 가장 기이한 종류의 기예로 확립되었다.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자취를 감추었던 연금술은 아랍의 철학자와 의사들을 통해 발견되었고, 서유럽은 12세기부터 아랍의 연금술을 다시금 받아들였다. 연금술이라는 기예를 두고서 당대 아랍과 서유럽 지식인들이 기울였던 관심은 ‘과연 금속의 변성은 가능한 일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이었다. 한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 있는 말로 오해되기도 했던 페르시아 철학자 이븐 시나의 선언, “금속의 종은 변성될 수 없음을 연금술 기예가들로 하여금 알게 하라”(Quare sciant artifices alkimie species metallorum transmutari non posse)는 연금술 옹호-반대 논쟁에서 연금술사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입힌 무기였다.


 연금술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전엔 없던 새로운 신학적 논리(철학적 논리가 아닌)가 도입된 것은, 르네상스기에 이르러서야 라틴어로 번역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위서(僞書) 『비밀들 중의 비밀』(Secretum Secretorum)로부터 비롯된 자극 덕분이었다. 역시나 연금술을 향한 혹독한 비판을 담은 이 문헌은 “인간이 스스로를 창조자와 동등한 능력을 지녔다고 여길 수 없노라”고 선언한다. 이 지점에서, 금속 ‘변성’의 가능성을 질문하던 연금술 논쟁의 초점은 금속 ‘창조’의 가능성으로 옮아갔다. 어쩌면 ‘변성 행위가 곧 창조 행위인가?’라는 질문 자체의 논리적 부당함을 호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샌가 연금술사들은 창조자의 능력을 찬탈하여 자신들도 그 능력을 갖겠노라고 주장하는 교만의 상징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연금술사들도 그저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특히 14세기 이탈리아 및 이베리아 반도의 연금술사들(이들 중 상당수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의 수사들이었다)은 연금술의 교리를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강력하게 결합시키기를 원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페트루스 보누스는 연금술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특별한 이들에게 초자연적인 계시를 통해 내려주시는 “선물”(Donum Dei)이라고 응수했다. 아르날두스 빌라노바누스가 기록했다고 전하는 『자연의 비밀에 관하여』(De secretis naturae)는 연금술에서 전개되는 금속의 변성 과정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 과정과 유비시켜 설명했다. 16세기의 유명한 연금술사 하인리히 쿤라트는, 우리에게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통해서 잘 알려진 ‘현자[마법사]의 돌’(lapis philosoporum)을 예수 그리스도(lapis–Christus)와 동일시하는 논증을 펼치기도 했다.


 미국 인디애나 대학의 과학사학자이자 중세 후기~근대 초 연금술/화학 역사 연구의 대가인 윌리엄 뉴먼은 『프로메테우스의 야망』(Promethean Ambitions)이라는 탁월한 연구서를 통해, 연금술과 의화학(키미스트리[Chymistry]: 의료 목적으로 실행되었던 연금술)의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풍부하고도 중요한 질문들이 그리스도교 진영을 향해 던져졌는지를 보여준다. 연금술로부터 비롯된 다채로운 논의들은, 예를 들자면, 성찬에서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의 실체에 관한 논쟁에 영향을 끼쳤고, 성령의 능력으로 마리아의 자궁 속에서 잉태된 예수의 발생에 관한 논쟁에도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했다. 논의의 범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기예가 갖는 창조의 능력이 창조주의 능력과 얼마나 대등해질 수 있느냐’라는 질문은,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는 체외 발생된 시험관 아기, 인체 장기(臟器)의 복제, 생명체의 인공 합성과 같은 이슈들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이슈들이 비단 현대 의학에서만 논의되고 있는 이슈가 아니라, 이미 중세 연금술사들에 의해 진지하게 고민되었던 사안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에 살았던 어느 익명의 신학자는 『본질들의 본질들에 관하여』(De essentiis essentiarum)라는 문헌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제안한다. “플라스크 안에서 제작된 인공 인간[호문쿨루스]을 토막 내어 그것의 혈액이 지닌 비범한 능력으로 병자들을 치료하자”라고 말이다.

 

동일한 이슈를 놓고, 오늘날의 신학자는 무엇이라고 제안할 것인가? 어쩌면 연금술의 역사가 그 해답을 위한 실마리를 제안해 줄지도 모르겠다.

윌리엄 뉴먼
그의 책, 프로메테우스의 야망

안녕하세요!

 

 여전히 과신대 사무국에서 행정팀장을 맡고 있는 박아론입니다. 요즘 정말 날씨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한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 폭염과 관련해서 심각한 기후 위기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global warming이 아니라 global boiling이라는 말이 좀 더 와닿습니다. 기후 위기라고 하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기후 위기가 아니라 인류 위기인데 마치 남 이야기하듯 관망하는 사람처럼 이야기합니다. 언젠가 친구들과 농담처럼 “망하는 건 지구가 아니야, 우리지”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런 것 같습니다.

 

 8월 과신대는 이제 개학과 발맞춰 아카데미 개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과신대가 내세우는 균형 있는 창조신앙을 교육하기 위해 ‘기초과정’과 ‘핵심과정(신학)’을 준비했습니다.  특별히 이번 교육 과정은  플립 러닝 방식으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플립 러닝은 학습자가 미리 특정 주제에 대해 미리 공부해 오고 실제 수업 때는 교수자의 지도 아래 토론식 수업을 통해 좀 더 주제에 대해 심화 학습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교육의 방식도 많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딴소리지만 교육을 전공한 사람으로 플립 러닝은 학부생 때 한참 핫한 교육방식이었는데, 학교 교육 현장이 아니라 과신대에서 운영하는 걸 보다니 느낌이 묘합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플립 러닝은 과신대의 일타강사(?)인 우종학 대표님이 맡아주십니다. 그리고 핵심과정(신학)도 역시 기라성 같은 교수님들이 수강생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플립 러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습자의 ‘학습 동기’인데 아카데미를 신청하는 수강자님들이라면 걱정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대가 됩니다. 수강생 여러분의 새롭고 참신한 시각에서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과신대도 후반기 사역을 위해 열심히 달려나가야겠습니다.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책 모임도 하고, 특별히 서포터즈들을 통해서 이제 과신대에도 청년모임이 활성화될 조짐이 보이니 설레는 마음도 있습니다.(설렘) 그래도 이 모든 것이 회원님들과 후원자님들의 지지로 이루어집니다.

 

 우리 과신대의 목적은 후원자님들의 지지와 참여가 아니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미래는 몇 명의 목회자들과 뛰어난 교회 지도자들의 몫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의 몫입니다. 다음 세대들에게 균형 있는 신앙이 전파되도록 과신대 사역에 동참해 주세요!


박아론 올림

이 달의 소식 📧


1. 아카데미

과신대 아카데미가 곧 개강합니다! 학교 개강에 발 맞춰 아카데미의 대표 강좌인 '기초과정'과 '핵심과정(신학)'이 여러분들을 찾아갑니다. 기초과정은 일타강사인 우종학 대표님이, 핵심과정(신학)은 네 분의 교수님들이 오프라인 세미나 강사진으로 참여하십니다. 과학과 신학의 관계가 궁금하고 배움을 갈망하시는 분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수강신청은 홈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

2. 커뮤니티
  • 교사 모임여름성경학교 시즌을 맞아 교회학교 특강 요청이 많았습니다. 과신대 교사모임 선생님들께서 전국 주일학교로 특강을 다녀오셨는데요.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서 과학과 신앙을 이어주는 역할에 힘써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다음세대에게 균형 잡힌 창조 신앙을 전하는 이 중요한 사역을 위해 여러분도 함께 기도해 주세요.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교사 모임 참여에 관심 있는 선생님들께서는 사무국으로 문의 바랍니다.
구독자님들에게만 보여주는 특별 스틸컷😀
  • 목회자 모임 : 8월 목회자 모임은 잠시 쉬어갔습니다. 다음 모임은 9월 11일(월) 오후 8시 줌에서 신간 《입대 예비 학교에 공저자이신 이현식 목사님과 함께 청년 사역에 좀 더 밀접한 소재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과신대 목회자 모임은 다양한 사역 현장의 경험을 나누고, 목회 현장에서의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위해 연대하고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정회원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참여 신청: https://bit.ly/3szaYBB

  • 서포터즈 모임(aka. 청년모임 준비위) : 8월 3일, 서포터즈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지난 포럼을 도와주신 서포터즈 님들께 감사 인사도 드리고, 젊은 과신인을 만들기 위한 열띤 토론(?)도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역동적인 모임과 참여를 기대해 봅니다. 관심 있는 20-30대 여러분들을 항상 팔 벌려 기다리고 있습니다.
    3. 북클럽
    북클럽은 정회원들이 직접 주관하고 참여하는 독서 모임입니다. 모임 참여는 사무국으로 문의 바랍니다.
    4. 과신톡(Talk)
    '샤르댕 북클럽'과 '성서와 여성 북클럽'이 함께 준비한 ‘과신톡’ 마지막 행사가 8월 17일 (목)에 있습니다.
    무사 두베의 <제국·성서·탈식민 여성주의>로 진행되고 있으며, 번역자이신 이해청 박사님의 인도로 함께 읽습니다.  탈식민주의의 주제이기도 한 ‘주변부를 돌아보기’는 문자주의 성서관에 매몰되지 않고 과학, 이성과의 관계를 잘 형성하고자 하는 과신대의 노력과도 방향이 일치합니다. 과학 시대에 함께 신앙의 길을 모색하는 과신대 북클럽에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신청 링크 : https://bit.ly/3N70DoZ)
    5. 2023년 7월 재정 보고

    이번 달 재정은 수입 6,243,879원, 지출 6,283,312원입니다.  여러분의 든든한 후원 덕분에 이번 달도 과신대 사역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세한 재정 보고는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함께하는 과신대

    과신대는 구독자 여러분의 기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채택된 분들께는 2만원 상당의
    기프티콘이 제공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주제 : 자유기고 / 다음 호 주제 칼럼 
    분량 : 워드 or 한글 4매 이내     
    제출 : scitheoeditor@gmail.com


    * 편집 사정에 따라 해당 기고문이 실리지 않거나
    다음호에 기재 될 수 있습니다.
    * 편집 사정에 따라 해당 기고문이 실리지 않거나 다음호에 기재 될 수 있습니다.
    과신뷰 이달책 
    《여섯 개의 수
    - 부제 : 책 내용은 별로 없는 실전 책 서평

    글 | 박아론

    현재 과신대에서 행정팀장으로 사무국을 지키고 있다

    서론

     

    8월 호도 포럼 특집으로 계속해서 이어가는 만큼, 이번에 들고 온 책도 바로 교양 과학 책이다. 이번 책도 우주에 관련된 책인데, 《여섯 개의 수》라는 책이 되겠다. 먼저 저자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마틴 리스(Martin Rees) 옹의 간단한 이력은 다음과 같다.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동일하게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틴 리스 옹은 영국이 자랑하는 우주론 연구자이자 천체 물리학자로 1973년부터 18년 동안 케임브리지 대학의 천문학 및 실험 철학 분야의 석좌교수를 지냈고, 무려 영국의 상원 의원이자 왕립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학장도 하신 분이다. 역시나 엄청난 분이시다. 그리고 TED 강연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테드에서도 우주론 관련 분야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우주의 여섯 개의 수


     자 그러면 어쨌든 책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여섯 개의 수라는 책 제목답게 책의 내용은 바로 우주론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 6개를 소개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책 소개가 바로 곧 이 책의 내용인데 발췌해 보고자 한다.


    우주의 크기와 수명을 결정하는 N, 원자들 사이의 결합력을 결정하는 ε(엡실론), 암흑 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Ω(오메가), 반중력의 비밀을 감추고 있는 λ(람다), 우주의 생산력을 결정짓는 Q, 우주의 차원이 몇 개인지 알려 주는 D. 이 책은 바로 이 여섯 개의 우주 창조 다이얼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탐구를 추적한 책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우주론자이자 천문학자로 영국 트리니티 대학의 교수이자 명예 왕립 천문대장이며 세계적인 학술 기관인 영국 왕립 협회의 현직 의장인 마틴 리스는 최첨단 현대 우주론을 통해 이 여섯 개의 숫자가 이루는 하모니 속으로, 누구도 보지 못했던 세계로, 우주의 얼개를 결정하는 힘들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주가 광대한 까닭 : N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거대한 수 N이 있기 때문이다. 이 수는 원자들을 결합시키는 전자기력의 세기를 원자들 사이의 중력으로 나눈 값이으로 만약 N의 ‘0’ 몇 개가 더 없었다면 우리 우주는 커다랗게 성장하지 못하고 단명했을 것이다. 소형 우주에서는 어떤 생물도 벌레보다 크게 자랄 수 없고, 생물학적 진하를 거칠 만한 시간도 없을 수 없다.

     

    원자가 결합하는 것 : ε(엡실론)

    0.007의 값을 갖는 또 다른 수 ε(엡실론)은 원자핵들이 얼마나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으면 지구의 모든 원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결정한다. 별 내부에서 일어나느 핵융합 과정을 통해 수소가 주기율표의 모든 원자들로 변화되는 과정을 통제한다. 탄소와 산소는 흔한 반면 금과 우라늄은 드문 까닭은 별에서 일어나는 행융합 과정에서 금과 우라늄이 적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ε(엡실론)이 만약 0.006이나 0.008이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우주의 밀도 : Ω(오메가)

    은하, 흩어져 있는 기체 그리고 ‘암흑 물질’ 같은 우리 우주 안에 있는 물질의 양을 측정한 것이다. Ω는 우주 안에서 중력과 팽창 에너지의 상대적 차이가 가진 중요성을 말해준다. 만약 중력과 팽창 에너지의 비율을 나타내는 Ω가 특별한 ‘임계값’에 비해 너무 높았다면 우주는 오래전에 붕괴했을 것이고, 너무 낮았다면 은하나 별이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주 탄생 초기의 팽창 속도는 정교하게 조율되었던 것 같음.

     

    반중력의 수 : λ(람다)

    1998년 최대의 과학뉴스. ‘반중력’이 존재한다는 사실. 뜻밖의 새로운 이 힘은 10억 광년보다 작은 규모에서는 뚜렷한 효과가 없지만 우리 우주의 팽창을 통제한다. 우리 우주가 훨씬 더 어두워지고 텅 비게 되면 우주의 반중력이 중력보다 훨씬 더 우세해진다. 우리에게는 다행스럽게도(그리고 이론가들에게는 매우 놀랍게도) λ가 매우 작다. 그렇지 않았다면 은하와 별이 형성되지 못하고 우주의 진화도 없었을 것이다.


    우주 공간 : Q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구조(별과 은하와 은하단)의 씨앗은 모두 대폭발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우주라는 천은 Q라는 한 가지 수에 의존한다. Q는 기본적인 두 에너지의 비율로 1/100,000 정도다. 만약 Q가 훨씬 더 작다면 우주는 불활성이 되어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Q가 훨씬 더 크다면 우주는 격렬한 장소가 되어, 그곳에서는 어떤 별이나 행성계도 살아남지 못하고 거대한 블랙홀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을 것이다.

     

    공간을 나타내는 : D

    우리 세계의 공간 차원을 나타내는 수로 바로 3이다. D가 만약 2나 4라면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은 네 번째 차원이지만 화살표를 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것들과 뚜렷하게 다르다. 즉 우리는 오직 미래 쪽으로만 ‘움직인다.’ 블랙홀 근처에서는 공간이 너무 많이 휘어서 빛이 원을 그리고 시간은 정지한다. 대폭발에 가까운 시간대나 극히 미세한 규모를 연구하다 보면 공간의 가장 심오하고 근원적인 구조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0차원 세계에서 진동하고 있는 ‘초끈’이라는 존재 같은 것


    이 여섯 개의 수는 우주의 진화 방식과 우주의 가능성을 결정하는데, 마틴 리스옹은 이 수에 관해 얽혀 있는 내용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이 수들이 어떻게 날줄과 씨줄로 엮여서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하는 물리적인 환경인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역시나 마지막 부분에서는 현대 천체물리학과 대중에게 핫한 주제인 다중 우주론을 소개하고 있다. 즉, 여섯 개의 수가 달라진다면 어떤 우주 환경이 펼쳐질 것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흥미로웠던 것은 여섯 가지 수에서 어느 정도 정밀하게 측정되고 있는 수는 단 3개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역시나 읽어보시기 바란다(비밀임). 사실 이 여섯 개의 수 자체만이 궁금했다면 책의 1장의 2~3페이지만 읽으면 충분하다. 앞서 소개한 내용도 책의 앞부분에 있는 내용이다.

    결론

     

    “이 여섯 개의 수들은 우주라는 요리의 핵심 ‘조미료’이다. 게다가 그 결과는 그 수들의 값에 민감하다. 만약 그 수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조율’되지 않으면, 별도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조율이 그저 맹목적인 우연일까? 아니면 인자한 신의 섭리일까? 나는 어느 쪽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섯 개의 수가 각각 다른 우주들이 무한히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처음부터 실패작이거나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인류는 오직 ‘올바르게’ 조합된 우주에서만 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말은 바로 '조율된 우주' 인류 중심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어떻게 우리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냐는 것'이라 했다. 아인슈타인의 신은 물리법칙이지만, 인류 중심의 원리는 천재 물리학자에게도 초월적인 존재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신기한 일인가 보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 유튜브에서 본 프랜시스 콜린스와 리처드 도킨스의 온라인 대담이 생각났다. 거기에서도 비슷하게 인류 중심원리에 관해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 세상은 우리에게 딱 맞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리처드 도킨스도 인류 중심 원리가 논리적인 증거까지는 아니더라도 굉장히 호소력 있는 논증임은 인정했다. 도킨스 인류 중심 논증이 이신론적인 신에 대한 증거는 될 수 있어도 그것이 기독교적인 신이 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는 것을 재빠르게 지적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후에 도킨스는 친구 물리학자들이 이러한 인류 중심 원리의 대안적인 설명으로 단일 우주가 아니라 다중 우주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는 학자적인 겸손함으로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인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단일 주우에서 비롯되는 인류 중심 원리가 꽤나 호소력 있는 논증임은 인정한다. 아 그러나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다중 우주론이 단순히 인류 중심 원리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중 우주론은 초기 팽창인 인플레이션 이론에서 양자 요동과의 관련성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론이다.


    무튼 마틴 리스옹의 여섯 개의 수를 다중 우주로 엮는 방식은 재미있었다. 역시 세계적인  네임드 학자라면 강의 실력 못지않게 글을 쓰는 실력도 결코 모자랄 수 없겠지만, 천체 물리학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글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결말에까지 읽어낼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한 줄 평

    "재미있음. 지하철에서 읽기 좋아요"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체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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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330분께서 7월 한달 과신대를 재정으로 섬겨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후원자님과 소통하며 <과신뷰>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달의 과신뷰를 어떻게 읽으셨나요?

    과신대 편집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보내주세요.

    <지난호 독자의 소리>

    아쉽게도 지난호 독자의 소리가 없었습니다.😥
    구독자님의 따뜻한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제발요~🙏
    과학과신학의대화 과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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