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스키에 진심입니다 |  고현

도쿄와 하이보루

나는 칵테일에 은근한 편견을 갖고 있다. 자고로 술은 섞어 마시지 말고 본연의 맛에 집중해야 한다는 순혈주의에 가까운 입장을 고수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칵테일에 마냥 심드렁한 건 또 아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다채롭게 변형되어 온 칵테일에 나름의 호기심은 갖고 있기에 여행이나 출장 중 그 나라의 독특한 칵테일이 있다면 기꺼이 시도해본다. 다시 말해 칵테일에 은근한 편견을 갖고선 염탐을 핑계로 순혈주의를 서슴없이 포기한다는 얘기다.    


어쨌든 평소에 바를 찾을 때면 칵테일 메뉴보다 위스키 쪽에 보다 집중하는 편이긴 하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하이볼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칵테일 카테고리에 집어넣기 좀 애매한 녀석이지만, 하이볼은 나와 같은 (야매) 순혈주의자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칵테일이다. 얼음 잔에 기주를 넣고 탄산수를 적당히 섞어 마시는 그야말로 정직한 칵테일이니까. 취향에 따라 진저에일이나 토닉워터를 넣어도 무방하다. 단, 순혈주의자라면 역시 기주의 풍미를 해치지 않는 플레인 탄산수 정도로 타협할 것이다.


내가 하이볼의 세계에 본격 입문하게 된 계기는 도쿄 여행 때다. 2017년 아내와 떠난 여름 휴가였는데, 저녁마다 숙소 주변을 배회하며 현지인이 즐겨 찾는 술집을 한두 곳씩 들렀다. 여행 첫날 현지인들로 득실대는 이자카야에서 생맥주를 주문해 마시는데, 다른 테이블에서 마시는 술에 눈길이 갔다. 우롱하이, 로쿠하이 등 저마다 하나 같이 길쭉한 얼음 잔에 담겨 나오는 하이보루(일본식 하이볼)를 주문해 마시는 게 아니던가. 일본 위스키나 소주를 베이스로 탄산수를 섞어 마시는 일본식 하이볼은 습도와 온도가 맹렬하게 치솟는 한여름 도쿄에서 그야말로 완벽한 술처럼 보였다. 홀린 듯 나는 곧장 우롱하이를 주문했고, 꿀꺽꿀꺽 단숨에 비워냈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도쿄에서 술집을 찾을 때면 가장 먼저  하이볼부터 주문했다. 토리아에즈 하이보루 쿠다사이!  

사실 국내에서 하이볼이 대중화가 된 계기 역시 일식 주점인 이자카야의 공이 컸다. 산토리의 가쿠빈으로 만든 하이볼은 위스키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이들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칵테일로 각광 받게 됐다. 일본처럼 하이볼의 레시피가 다양하진 않지만, 사람들에게 하이볼은 곧 이자카야라는 인식을 심어준 건 확실한 듯하다. 간혹 시럽이나 레몬즙을 과하게 넣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또 어떠랴. 일단 하이볼부터 한잔 시원하게 들이켜면 뜨겁고 습하던 도쿄의 여름밤이 떠오른다.  


하이볼의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하다. 과거 기차의 출발 신호를 하이볼이라 불렀는데, 다른 칵테일보다 빠르게 만들 수 있어서 바텐더들 사이에서 그렇게 불리게 됐다는 설이 있고, 영국에서 골프를 하던 상류층이 이 칵테일에 취해 나중에 공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돼 하이볼이라 외쳤다는 설도 전해온다. 이름의 기원이야 어떻든 술과 얼음, 탄산수의 단순한 조합만큼은 하이볼의 변함없는 레시피다. 상대적으로 하이볼은 집에서 즐기는 칵테일이라는 인상이 강한 탓에 바에서는 공식 메뉴로 잘 두지 않는 편이었다. 그저 까다로운 위스키 애호가들이 남몰래 체이서(독주를 마신 뒤 입가심을 위해 마시는 낮은 도수의 술이나 음료)로 주문하는 칵테일로 취급될 뿐.


간편한 레시피 덕분에 웬만한 바에서는 하이볼이 메뉴에 빠져 있더라도 기꺼이 만들어준다. 하이볼의 장점 중 하나는 개인의 취향에 맞춰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는 것.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위스키를 골라 하이볼로 주문하고, 기호에 따라 탄산수 대신 진저에일이나 토닉워터로 부탁해도 된다. 개인적으로는 스모키한 풍미가 깔린 피티드 위스키를 베이스로 후추를 살짝 가미한 하이볼을 좋아하는 편이다.


도쿄의 여름밤이 간절해질 때면 찾아가는 바가 하나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조금 벗어난 외딴 골목에 있는 ‘하이볼 가든’. 김소봉 셰프가 운영하는 이곳은 일본식 하이볼 바다. 위스키 라인업도 다양할뿐더러 도쿄에서처럼 여러 종류의 티를 가미한 하이볼을 맛볼 수 있다. 유자나 자두 슬라이스가 올라간 상큼한 이브닝 하이볼로 시작해 우롱차를 넣은 하이볼을 느긋하게 음미한 다음, 스모키한 위스키를 더블로 넣은 하이볼로 마무리하는 게 나만의 하이볼 코스. 언제든 기호에 따라 다채롭게 변형시킬 수 있는 하이볼에게만큼은 순혈주의는 조금 숨겨둬도 괜찮다. ✉️

고현은 낮에 글을 쓰고 밤에 위스키의 세계로 안내하는 공간 운영자다. 작업실이자 위스키 시음실로 사용하는 무용;소(@mooyong_so)에서 위스키와 취향을 매개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 작가의 생각, 기획자의 마음 |  최갑수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면?

나는 작가로 살아가고 싶은가? 작품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구조를 만들고 싶은가?


작가 생활을 시작한 순간부터 이 고민은 늘 따라다녔습니다. 작가는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쓰고 싶은 글만 쓰는 사람은 아닙니다. 작가로 살아가면서 부딪힌 첫 번째 벽은 ‘어쨌든 쓰고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정말 쓰고 싶은 것을 쓰면서 생활한다.’ 이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작가는 ‘쓰고 싶다’와 ‘그것만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이십 년을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원고 청탁을 마감하느라 바빴지만, 매일 똑같은 이야기와 스타일을 자기 복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죠. 그러다가 완전히 새로운 Input이 필요한 시점에 다다랐고 또 다른 그래프를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됐습니다. 어떻게 새 구조를 짜야 할까? 이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이더군요. 바쁘다고 내가 성장하는 건 아닙니다. 바쁜 건 그냥 바쁘기만 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이를 두고 흔히 소모된다고 말하죠. 정체기라고 느끼고 위기라고 생각되면 정말 정체기이고 위기입니다.


몇 년 전부터 글의 주제와 스타일을 살짝 바꿨습니다. 그동안 제가 만들어왔던 이미지에서 조금 벗어나 보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시도도 했죠.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새로운 독자를 개척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조금 더 지나 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서는 나쁘지 않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콘텐츠 비즈니스는 누적이 중요하고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립니다.


지금의 제 목표는 조금 더 유명해지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독자(구매자)의 성향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취향이 점점 세분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봅니다. 앞으로의 콘텐츠 비즈니스는 점점 더 팬덤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열렬한 독자’를 만들지 못하면 자신의 작품을 팔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독자를 만들고 늘이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세분화된 독자의 취향에 맞춰 작가는 점점 더 유니크한 소재를 찾아야 하죠. 남들이 하지 않는 기획을 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경험을,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풀어내야 합니다. 남들이 다 하는 걸 해봐야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 세상은 콘텐츠로 넘쳐나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내가 더 낫다는 걸 보여주는 것보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거짓도 통하지 않죠. SNS에서는 모든 게 들통나기 마련입니다. 독자들은 눈치가 빠르거든요. 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인스타그램이든 트위터이든, 페이스북이든 팔로워 1명 늘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요. 우습게 볼 일이 아닙니다. 이제는 팔로워가 곧 독자인 시대입니다.


진심은 중요합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진심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운이 좋은 사람만 빼고요.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매일 아침 ‘내 진심과 영혼을 담아 글을 쓰겠어!’라고 다짐하는 순진무구한 사람과 ‘어떻게 하면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영리한 사람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작가는 가슴에 ‘!’를 품고, 머리속에 ‘?’를 가진 사람입니다.


가끔 SNS에서 터무니 없이 적은 원고료를 탓하며, 왜 다들 작가를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느냐는 푸념하는 작가를 봅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시장이 그렇게 바뀐 것이니까요. 사보를 만드는 기업은 거의 없잖아요. 예산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간 것이죠. 작가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글을 필요로 하는 곳이 적어진 것이며, 내가 제대로 된 원고료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글을 계속 쓰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세요. ✉️

최갑수는 작가지만 요즘에는 기획 일을 더 자주 한다. 새벽 3시부터 오전 8시까지는 작가로 살고,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기획자로 산다. 지금은 내일 레터에 쓸 '오늘의 요리'를 뭘 만들지 기획중이다. 그의 일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ssuchoi를 들여다 보자.

📎 Clip | 콘텐츠 비즈니스의 기본


먼저 오디언스 audience(일상용어로는 청중을 뜻하나 매스컴 용어로는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수신자 즉 시청자, 청취자, 독자를 뜻한다)를 모으고 나중에 그들에게 판매할 상품과 서비스를 정의함으로써 개인은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고, 경제적으로 개인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오늘날 사업을 시작하고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품을 출시해 무작정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오디언스의 관심을 끌고 그들의 규모를 키워 지속적으로 유지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일단 충성도 높은 오디언스, 즉 여러분과 여러분이 제공하는 정보를 좋아하는 오디언스를 모으면, 원하는 무엇이든 그들에게 팔 수 있을 것이다. 

_ 조 풀리지, 『콘텐츠 바이블』 중에서


두터운 지지층을 확보하려면 무엇만이 아니라 ‘어떻게How’, 즉 이것이 어떤 방법으로 탄생했는지 보여줘서 관객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핵심은 왜 이 일을 하는지, 여기에 담긴 철학과 가치관은 무엇인지 등 ‘왜Why’를 말해야 한다.

_ 오바라 가즈히로,  『프로세스 이코노미』 중에서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내가 아는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옮긴 것만이 아는 것이고 아는 만큼 성공할 수 있다.

_ 김짠부, 『더 버는 내가 되는 법』 중에서

✏️ Words | 기진맥진할 때까지

기진맥진할 때까지 전력 질주해 보는 경험은 아주 소중하다. 자신의 한계를 경험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모든 아이디어와 노력, 체력을 쏟아붓고 실패한 지점, 새로운 시도는 그 어둡고 까마득한 곳에서 시작된다. - alone&a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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