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반 월드 컴퓨터를 표방하는 이더리움은 다음달 머지 업그레이드를 기점으로 이더리움 2.0으로 불리는 큰 변화를 맞게 됩니다. 2015년 이더리움의 제네시스 블록이 만들어진지 이래 7년간 유지되어 온 작업증명(PoW) 합의 알고리즘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로운 지분증명(PoS) 합의 알고리즘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따라서 PoW에서 채굴자들이 해왔던 블록 생성과 검증 역할, 즉 검증자(Validator)를 PoS에 부합하는 요건을 갖춘 새로운 주체들이 수행하게 됩니다.
새로운 검증자들은 지분, 즉 이더리움을 맡긴 예치자들입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운영에 필수적인 블록 생성과 검증 역할을 PoW에서는 채굴자들이, PoS에서는 예치자들이 수행하는 것이죠. 예치자들은 개인도 있지만 주로 대형화된 기업들이 많고 또 기존 채굴자들이 새롭게 예치자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치자가 되기 위한 기본 요건은 최소 32ETH를 보증금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이더리움 2.0이 블록체인 업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면서 예치 규모도 올 들어 급증했습니다. 지난 3월 1000만 ETH를 넘기고 현재는 약 1400만 ETH가 이더리움의 비콘 체인을 통해 예치돼 있습니다. 검증자들의 수는 무려 41만명에 달합니다.
바로 여기에 미국 재무부의 토네이도캐시 제재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막대한 규모의 이더리움 중 토네이도캐시를 거쳐 예치된 이더리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토네이도캐시는 불법적인 자금 세탁 뿐 아니라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익명성을 확보하고 싶을 때 개발자들이 흔히 이용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이런 개발자들이 이더리움 2.0의 검증자를 하고 싶어 예치한 이더리움도 제제의 대상이 되면서 상당히 많은 이더리움 2.0 검증자들의 지갑이 미국 재무부의 특별지정제재대상(SDN), 즉 블랙리스트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자금 동결과 함께 미국 내 거래가 금지됩니다. 즉 거래 여부의 추적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거래가 검열된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블록체인의 가장 큰 본질 중 하나인 검열 저항성이 훼손된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한 벤처캐피탈 소속 투자자의 분석에 따르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거래 내역이 검열될 가능성이 있는 예치자가 총 예치자 중 3분의 2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검열 위협이 사실상 매우 높아진 것입니다.
현재 이더리움 진영에서는 이번 제재를 놓고 뜨거운 토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더리움의 실질적인 리더인 비탈릭 부테린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검열은 이더리움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며 규제 대상이 돼 검열 가능성이 높은 검증자들의 지분을 소각하는 투표에 찬성 입장을 밝혔습니다. 투표에서는 과반수 이상이 비탈릭의 의견에 동조해 지분 소각에 찬성했습니다.
하지만 3분의 2의 예치 규모를 기록중인 해당 검증자들은 리도 파이낸스, 코인베이스, 크라켄 등 대형 기업들입니다. 이들이 이더리움 2.0의 검증자에서 제외되거나 빠져나간다면 이더리움 2.0의 강력한 지지층이 이탈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더리움 2.0의 추진 동력도 그만큼 약해질 수 있겠지요. 메이커다오를 통해 스테이블 코인 시장에도 충격을 줬던 미국 재무부의 제재가 이더리움 2.0의 출범에도 브레이크를 걸지, 미래가 주목됩니다. 만약 정말 브레이크가 걸린다면 암호화폐 업계에 가해진 또다른 대형 규제 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