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체온은 모두 36.5도. 같은 숫자지만 모두 각자만의 온도를 갖고 있다.
업무와 관련된 미팅을 하거나 도자기를 구입하러 손님들이 자주 오는 편이다. 두세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조금은 알 수 있는데 누구는 굉장히 뜨겁고 또 누군가는 보기보다 차갑다. 행동이 크고 작고, 말이 많고 적고, 웃음소리가 호탕하거나 작거나를 떠나 어떤 것에 대해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있다. 눈빛이나 작은 행동에서 티가 난다. 열정적인 사람들은 눈빛부터 뜨겁고 작은 행동에서 큰마음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작업실까지 와서 도자기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차나 도자기에 열정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다. 공통적인 취향으로 연결되어 그런지 처음 만나도 잘 통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도자기라는 매개체 하나만으로 서너 시간씩을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 종종 가장 친한 친구보다 더 이야기가 잘 통하는 친구 같다. 그건 나도 함께 뜨겁기 때문일 테다. 이런 대화 속에서 작가와 손님이 아닌 그냥 열정적인 사람 두 명일 뿐이다.
차 역시 저마다 잘 맞는 온도가 있다. 종종 어떤 온도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차를 우려내야 하는지를 몰라 차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때마다 정답은 아니지만 내가 찾아낸 방법을 말씀드린다. 차를 구매한 곳에서 주는 가이드는 표준이니 가이드를 따라서 내리다 보면 내 입맛에 조금 과한지 부족한지를 알 수 있다. 가이드를 따라 우린 차가 입에 맞지 않다면 가장 먼저 해보는 방법은 차의 양을 조절하는 것. 진하게 느껴진다면 차의 양을 줄이면 될 것이고 연하다 느껴지면 차의 양을 늘려보면 된다. 이렇게 차의 양을 찾은 후엔 온도와 시간을 바꿔본다. 100도의 온도에서 우리다 점점 온도를 낮추고 시간 역시 빠르게 빼다가 점점 늘려보는 것이다. 하나하나 바꿔가며 차를 마시다 보면 어느새 내 입맛에 맞는 차의 맛을 찾을 수 있다. 결국은 차의 양도, 시간도, 온도도 모두 본인만의 것이 있다.
분명 뜨거운 차를 내렸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차가 식는다. 식은 차를 들이키고 또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차의 맛을 이야기한다. 이야기가 즐겁다 보니 찻물의 온도가 들쭉날쭉한다. 심지어 찻잎에 물을 부어놓고 잊어버려 과하게 우러난 차를 따라내기도 한다. 그래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차실이 후끈후끈하다. 뜨거운 사람들이 다녀갔다. 바로 찻자리를 정리할까 하다가 데워진 온도를 낮출 겸 새로운 차 하나를 꺼낸다. 혼자 조용히 물을 끓이고 말소리가 아닌 물소리를 듣는다. 대화를 하며 마른입을 적시기 위해 마시는 차도 맛있지만 이렇게 조금은 식히기 위한 차도 맛나다. 몸과 머리, 마음이 제법 식었다. 찻자리를 정리하고 원래의 체온으로 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