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T] 엘르보이스 단행본 설문조사 진행중!
지렁이 구조대
아마도 그 모든 생명은 어딘가에서 연결돼 있을 것이다.
© Judah Wester by Unsplash
나는 다이소 주방용품 매대 사이를 해파리처럼 떠돌고 있었다. 세상 어딘가에 내가 찾는 도구가 있다면 여기뿐일 텐데, 괜찮아 보이는 물건이 눈에 띌 때마다 꺼내 쥐고 자세를 취해보았지만 좀처럼 딱 맞는 게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 고심 끝에 선택했던 실리콘 알뜰 주걱도 막상 실전에서는 끝이 너무 뭉툭해 작업에 실패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조리 도구, 주방 잡화. 수입 아이디어 상품 코너까지 샅샅이 뒤진 끝에 실망하며 몸을 돌리는 순간, 베이킹 도구 코너에서 빛나는 그것을 발견했다.

스텐 스패출러 일반형(33cm), 올여름 나의 새 지렁이 구조 장비다. 여름은 태양과 장마 그리고 지렁이의 계절이다.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은 날땅 위로 올라온 지렁이는 길에서 사람들에게 밟혀 죽거나, 다음날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말라죽는다. 내가 지렁이를 구하기 시작한 것은 몇 해 전, 뜨거운 시멘트 바닥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지렁이를 화단으로 옮겨주고 싶어 하던 여자아이를 우연히 보고 도와준 후부터다. 처음에는 그냥 가까이 있는 나뭇가지로 지렁이를 들어 올려 젖은 흙 위로 돌려보내면 끝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거듭되다 보니 매번 적당한 나뭇가지를 찾는 일이 번거로웠다. 너무 가늘면 지렁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너무 굵으면 바닥과 지렁이 사이에 밀어 넣을 수 없고, 가시나 마디가 도드라지면 지렁이에게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고민하다 빵집에서 받은 일회용 플라스틱 칼의 톱날 부분을 깎아내 매끈하게 만들었더니 기대 이상으로 쓸모가 있었다. 기왕 구하는 김에 지렁이를 돌려보낸 땅이 바짝 말라 있을 때는 물을 뿌려 적셔주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자그마한 산책용 크로스백은 물병과 분무기, 지퍼 백에 든 플라스틱 칼 따위로 가득 차게 됐다.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공개 방송과 내가 발행하는 뉴스레터 ‘없는 생활’에서 지렁이 이야기를 하고 난 뒤부터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지렁이 이야기를 살짝 귀띔해 준다. 그동안 자전거를 타다가 모르고 치어버린 지렁이들에게 미안하다거나, 출근길에 지렁이가 눈에 띄길래 풀잎으로 감싸 옮겨주었다거나, 아이와 산책하러 나갈 때마다 지렁이를 밟지 않도록 조심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Jsb Co by Unsplash
어느 날은 오래 만나지 못한 친구가 책 한 권을 보내줬다. 조던 스콧이 글을 쓰고 시드니 스미스가 그림을 그린 <할머니의 뜰에서>의 주인공은 캐나다에 사는 어린아이다. 작은 오두막집에서 텃밭을 가꾸며 혼자 사는 외할머니는 비 오는 날이면 아이를 데리고 천천히 걸으며 도랑이나 웅덩이에서 꿈틀대는 지렁이를 찾아 진흙을 채워둔 작은 유리병에 담는다. 그리고 토마토와 오이, 사과나무가 자라는 텃밭으로 가져가 지렁이를 땅에 내려놓고 흙으로 잘 덮어준다. 시간이 흘러 노쇠해진 할머니는 아이의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지만, 침대 밖으로 나서기 힘든 상태다. 어느 날 할머니와 함께 비 내리는 창 너머를 바라보던 아이는 혼자 밖으로 달려나가 빗속으로 뛰어든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나는 주울 수 있는 모든 지렁이를 주워요.”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한번 지렁이를 주워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란걸.

사실 대부분 사람처럼 나 역시 길고 꿈틀거리고 미끈거리는 생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렁이를 손으로 만지지 않는 건 인간의 체온이 지렁이에게 화상을 입힐 수도 있다는 얘길 들어서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지렁이와 맞닿는 건 상상만 해도 조금 소름 끼친다. 지렁이는 개나 고양이처럼 사랑스럽거나 어느 정도 의사소통 가능한 존재가 아니고, 나 또한 결코 생태주의자라고 할 수 없기에 나의 지렁이 구조는 열성적이면서도 무심한 구석이 있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반대도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주제에 나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지렁이 몇 마리의 수명을 약간 연장하는 데 몰두하는 건 위선이고 기만이며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 아닐까 고민한 적도 있다.

하지만 여러 해에 걸쳐 지렁이 걱정을 하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어떤 존재가 단지 조금 느리다는 이유로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 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죽음을 막고 싶다는 마음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지렁이로부터 조금씩 뻗어나간 생각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폭염 속에서 작업장을 떠나지 못해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 인간의 학대로 목숨을 잃은 동물로 향한다. 그런 죽음을 멈추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렁이 한 마리를 들어 올리기보다 어렵겠지만, 아마도 그 모든 생명은 어딘가에서 연결돼 있을 것이다.

지난봄 약해진 관절 때문에 쪼그려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무릎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을 때 든 생각은 ‘그러면 지렁이는 어떡하지?’였다. 한 시간 산책하는 동안 많으면 서른 번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데, 이 상태라면 더위보다 무릎이 문제였다. 그래서 쪼그려 앉는 대신 허리만 굽혀도 되는 새 장비를 구입한 것은 여름철 지렁이 구조를 위한 사전 대책이었다. 다행히 길고 납작한 금속 소재 스패출러 덕분에 요즘 구조대의 효율이 무척 높아졌다. 물론 “칼싸움하기 딱 좋아요”라는 농담 섞인 제품 후기에서 알 수 있듯, 한밤중에 번쩍이는 쇠붙이가 달린 물건을 들고 공원을 돌아다니는 여자가 수상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혹시 경찰에 신고라도 당하게 되면 이 글이 알리바이가 돼주길 바랄 수밖에.
작가 최지은 10년 넘게 대중문화 웹 매거진에서 일했다. <괜찮지 않습니다>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펴냈다. 뉴스레터 ‘없는 생활’의 발신자. 늘 행복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재미있게 살고 있다
댄서, 쿄카
“항상 나 자신을 위해 춤을 춰요.” 몸짓의 언어가 강렬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사람.
지금 서울을 제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댄서, 쿄카를 만났습니다.
Q. 첫 <엘르> 커버 촬영으로 만났네요. 서울은 쿄카에게 어떤 도시인가요? 이 도시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쿄카의 입맛이었던 것은?
쿄카 서울은 굉장히 활기찬 도시인 것 같습니다. 특히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조개전골, 냉면, 칼국수, 삼계탕이에요.

Q. ‘춘장립부터 코레 쿄카자 나이와!’라는 3인칭 화법. 심지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쿄카의 패션 아이템이 트렌드가 되고 있어요. 쿄카에게 왜 이렇게 열광하는 걸까요?
쿄카 사실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다만 저에게 어울리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게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해요. 일반적으로 독특하다고 여겨지는 것도 망설임 없이 입거나 자주 사용하는 편인데, 그런 점이 자신감으로 보인 걸까요?

Q.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춤 경연 방송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언더그라운드 신, 힙합 장르의 존재와 배틀이라는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일까요?
쿄카 인기 있는 방송이니까 많은 사람이 보고, 방송을 통해 스트리트 댄스를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중에서 진짜 스트리트 댄스에 흥미가 있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될 거예요. 그래서 ‘진짜 스트리트 댄스가 무엇이고 어떤 문화’인지 더 알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참여했어요. 제가 하는 일이 대단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스트리트 댄스라는 문화가 없었을 테니까요. 이들이 이 문화를 단단히 지키고 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Q. 오사카 댄스 신만의 특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쿄카 옛것과 좋은 문화, 스타일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일까요? 오사카 댄스 신은 그런 것 같아요. 전통성.

Q. “미래에는 해외에서도 활동하고 싶다. 세계 어디를 가도 댄서 쿄카라고 알 수 있도록이라는 말도 덧붙였죠. 그 말이 지금 현실이 됐습니다. 말의 힘을 얼마나 믿나요?
쿄카 제가 그런 말을 했나요(웃음)? 어릴 적 꿈은 세계에서 통하는 댄서였어요. 말의 힘은 정말 대단하죠.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요. 말을 해버리면 물러설 수 없거든요. 그래서 꼭 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몰아붙일 수 있어요. 때문에 꿈을 소리내어 말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2015년 18세 때 팔이 심하게 감염돼 절단해야 할 상황까지 갔습니다. 팔을 그냥 잘라버리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역경을 겪었지만 치료 후 회복 기간 1년 만에 일본 댄서 최초로 세계적인 프랑스 댄스 경연 ‘Juste Debout’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춤이 당신에게 구원이었을까요?
쿄카 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과 책임감에 쫓기면서 ‘안 한다’는 말을 못하고 억지로 많은 걸 해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죽을 뻔한 일을 겪고 나서 ‘내가 좋아하는 대로 춤추자’는 마음으로 바뀌었어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니까, 언제든 후회 없는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요.

Q. 그동안 많은 무대와 배틀을 거치며 문화적 오해나 선입견 속에서 ‘쿄카다움’을 지켜내야 했던 경험이 있다면?
쿄카 문화적 장벽이나 오해, 편견은 어느 분야에나 있어요. 그걸로 상처받거나 고민하지 않아요. 스스로를 좋아하고, 믿어주는 게 결국 자신감을 만들고, 훌륭한 결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쿄카다움’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PHOTOGRAPHER 윤지용
EDITOR 전혜진, 정소진
잘 묵호 갑니다!

여자 혼자 뚜벅이로 가기 좋은 여행지 ‘묵호’

뜨거운 햇볕을 피해 올해도 어김없이 물가로 떠났습니다. 동해에 위치한 묵호입니다. 묵호는 조선시대 한양의 경복궁(또 광화문)을 기준으로, 정동쪽에 있는 바닷가라는 뜻의 '정동진'과도 그리 멀지 않아 해돋이 명소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동안 유명하진 않았지만, 여자 혼자 뚜벅이로 떠나기 좋은 여행지로 소개되며 최근 방문객이 늘었다고 해요. 나 홀로 또는 한적한 바캉스를 계획하는 분이 있다면, 고즈넉한 도시 묵호에서 방문해보기 좋은 공간 세 곳을 소개해 드립니다.
두두달 (링크)
두두달은 소주,  맥주, 사이다 등 유리병이 버려지고 깨져 오랜시간 파도에 풍화작용을 겪으며 다듬어진 ‘바다유리’를 업사이클링한 소품샵입니다.

Q.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A.
바다를 좋아하는데, 더 오래 오래 바다를 보고싶은 마음에 시작했습니다. 쓰레기도 다시 보면 다시 쓸 수 있고, 소비를 할 때도 한번 더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답변을 읽으며 이 장소만큼은 꼭 아리님들께 알려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두두달의 철학에 공감하여 저도 이날만큼은 구매한 물건의 비닐봉투는 따로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MOOKHO287 (링크)
오션뷰로 유명한 카페이자 위층에 펜션을 운영하는 공간 MOOKHO287입니다. 숙소에 묵으며 밝아지는 기분에 잠에서 깼다가 경이로운 일출을 보게 되었습니다. 꼭 노을이 지는 순간처럼 붉고 아름다운 해돋이를 오래도록 감상할 수 있었어요. 1월 1일은 아니지만 남은 한 해를 열심히 살아보자는 다짐이 절로 생기게 되더라고요.
111호 프로젝트 (링크)
소소한 굿즈와 바이닐 음악이 있는 곳, 111호 프로젝트입니다. 문앞에 걸린 <7월 LP 선곡표>부터 마음에 쏙 든 이곳은, 작지만 사장님이 바라본 묵호 그대로를 느껴볼 수 있는 로컬 공간입니다. 봄부터 겨울까지의 묵호역이 담긴 필름 키링부터 엽서, 원하는 LP를 고르면 들어볼 수 있는 소소한 이벤트까지. 감성 가득한 취향을 가득 엿볼 수 있었습니다.
청량하고 시원했던 여름의 묵호.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은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내내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매력이 있죠. 언젠가 담백한 여행을 꿈꾼다면 묵호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이번 여행 동쪽 기운 잘 받고, 잘 묵호 갑니다!
나만 알고 있는 여름 바캉스 공간이 있다면 오늘의 피드백으로 알려주세요:)
🍋담당자 노라 각종 아카이빙이 취미인 소비요정 마케터이자 엘르보이스 고인물. 일이 힘들 때마다 구독자 후기를 읽으며 힐링한다.
엘르보이스 단행본 <잘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설문조사 참여하면 선물을 드려요!
지난 서울국제도서전에 처음 선보인 엘르보이스 단행본 <잘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을 받고자 설문조사를 진행합니다.  남겨주신 의견은 추후 엘르보이스 성장에 큰 도움이 되니 3~5분만 시간 내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설문기간 : 8/5~ 8/11

📍 경품 : 네이버 페이 1만원 (총 20명 추첨)
📍 당첨자 안내 : 본인 핸드폰 번호로 안내 예정
*  번호 오기입/미기입 시 당첨에서 제외
초등학생 때부터 한 안경점만 다니고 있는 저로서도 너무 공감되는 '이태리 안경점' 이야기였습니다. 어쩐지 마음이 뭉클해져 안경 너머로 조금 삐져나온 눈물을 훔쳤어요.

정신없는 회사에서의 아침, 엘르보이스를 읽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이 느껴져요. 짧지만 정성스럽게 쓰여진 글을 읽고 나면, 글이 주는 힘을 느끼게 되는데요. 오늘 이태리 안경원 글이 특히나 마음을 울려 이렇게 리뷰를 씁니다. 오랜 시간을 공들여 하는 모든 것을 응원하고 싶어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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