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배우자의 조건에 대한 아버지와 두 딸의 글입니다.
2024.5.31. 열아홉번째 이야기
70대 아버지, 30대 두 딸이 함께 같은 주제로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
땡비에서 나눠볼 오늘의 이야기는 🐝좋은 배우자입니다. '결혼'의 사전적 정의는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는 의례나 계약입니다. 다소 건조한 정의에 비해, 결혼생활은 흔히들 천국과 지옥을 오갈 정도로 다채로운 경험이라고들 하죠. 잘 맞는 배우자를 만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큰 행복일 것입니다. 님도 오늘 땡비와 함께 자신만의 기준으로 잘 맞는 배우자를 만날 수 있도록 고민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내 꿈은 유니콘(by. 아난)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 중 하나가 좋은 배우자의 기준이 무엇인지였다. 나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확고한 나의 기준을 말했다. 정치, 경제, 종교에 대한 관점이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이데올로기의 궤를 같이 하는 배우자와 생각을 나누며 사는 게 큰 재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해서 살아보니 위의 기준들은 빙산 위의 현상에 불과하다.


'좋은 배우자'를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까에서부터 막막했다. 좋은 ‘사람’이라 해서 좋은 ’배우자‘라는 보장이 없고 반대의 경우도 많다. 혼동되는 특징이 많아 고민하다 ‘배우자’에 특정하여 정의를 곱씹어서 내렸다. 내게 좋은 배우자란 관계를 잘 이어나가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와 정치, 종교, 경제관이 같은 궤도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관계에 대한 의지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만큼 관계에서 '의지'는 가장 중요한 기본점이다. 관계를 이어나가고자 의지를 표현해 주는 이상적인 배우자를 ‘유니콘’이라 칭하며 그의 덕목을 말해보고자 한다.


결혼 전에 막연히 내가 ‘유니콘’을 상상했을 때는 싸우지 않고 말을 예쁘게 조곤조곤하는 배우자가 좋다고 생각했다. 신혼 초까지도 '갈등은 없는 게 좋다!' 갈등이 있더라도 우락부락 화를 내기보다 차분하게 대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부부관계에서 10번 잘하는 것보다 한 번 잘못할 일을 만들지 않아야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부정적 감정이 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참으며 자꾸 괜찮아지려고만 했다. 연애 때 싸우지 않은게 우리가 잘 맞는 관계임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생각했던 내가 후회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갈등을 거쳐야만 비로소 깊은 관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 갈등 없이는 나와 상대가 무슨 결핍이 있고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없다. 적당한 화제와 감정만 맴돌다가는 껍데기만 붙잡고서 서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 채 쭈욱 살아가게 된다. 배우자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내가 놓친 것이 있었다. 바로 관계를 이어나갈 의지를 갖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하다. 부정적 표현을 조곤조곤 잘 말하는 것은 문제를 크게 키우지 않을 수 있지만 관계의 동력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러 갈등을 거치며 일상적으로 배우자에게 ‘긍정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부부연차에 상관없이 배우자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지 확인받고 싶은 갈증은 인간이라면 늘 있다. 부모님 세대의 부부 중 서로 눈을 바라보고 손을 꼭 잡고서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부는 과연 몇이나 될까? 겸연쩍어 표현을 못하는 게 대부분의 부부다. 부부는 시간이 흐르면서 편안해지고 연인에서 가족으로, 동반자적인 관계로 흘러간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해서 시작한 관계에 의무감만 남아 당연한 관계로 착각한다. 가족이 되었으니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고 오히려 자신의 무리한 행동도 가족이니 이해해 주길 바랄 뿐 살가운 표현이 사라져 버린다. 배우자에게 '사랑한다 고생 많았다. 너라는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서 나는 정말 행복하고 기뻐!'라는 말은 배우자에게 최고의 찬사이자 인정이다. 원수같이 싸우다가도 일상적으로 뿌려둔 배우자의 긍정적 표현 속 안정감, 따뜻함이 관계를 다시 견고하게 해주는 힘이 된다. 배우자에게 관계의 동력으로서 ‘긍정적 표현’을 끊임없이 보내는 것이 유니콘의 첫 번째 덕목이다.


유니콘의 두 번째 덕목은 내가 배우자를 이해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 노력하는 자세다. 내가 내 손으로 원하는 조건을 몽땅 담아 배우자를 빚어서 만난다고 한들 그 배우자와 살아보면 그 사람도 결국 나와 다른 타인이기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나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만나도 화목할 가능성은 ‘글쎄’하며 말을 줄이게 된다. 하물며 배우자는 다른 가족이라는 다른 세계에서 자란 배우자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배우자가 평생 누적되며 느낀 감정선과 생각은 이해할 수 없다. 내게는 당연한 것이 상대에게는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우주 저 끝에 있는 것처럼 서로를 느끼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가늠할 수조차 없는 배우자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네가 그랬구나. 정말 힘들었을 텐데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문제는 대화로 충분히 풀어나갈 수 있다. ‘저 사람이 어련히 저랬을까? 뭔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며 이해하려 노력하는 자세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도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하려 노력해 줄 것이다’라는 긍정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경험이 하나둘씩 쌓여 견고한 부부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일단 들어보자. 속에서 부글부글 끓더라도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줘 보자.


마지막 덕목을 쓰려니 유니콘은 점점 인간계에서 만날 수 없는 신계의 영역임이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타협할 수 없는 마지막 덕목은 배우자를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이다. 결혼으로 자신의 주체성을 잃거나 상대에게 모두 맞추라는 의미가 아니다. 부부관계는 장기전이라 일방에 맞추고 포기하고 사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평생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결혼 이후에는 부부 사이에 ‘너와 내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함께 정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라는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원가족으로부터 얻은 각각의 결핍과 상처가 있고 이를 치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은 우리가 배우자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된다. 모순되게도 결혼을 통해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으면서도 부모님과 거리를 두는 것이 자칫 불효가 아닐까하며 원가족의 문화로 상대방이 맞춰서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남편’, ‘아내'의 역할만을 강요하거나 나아가 본인의 몫인 효도를 '사위',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대신해주길 바라게 된다. 이는 결혼으로 생긴 역할이 모든 걸 잡아먹어버리며 본질을 놓치게 되는 삶이다. 서로 본가로부터 독립되어 나와 만든 이 새로운 가정을 항상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배우자 관계에서 가장 '당연'해야 한다.


나는 배우자와 내가 오늘 무슨 빵을 먹었는지부터 가장 깊숙한 마음의 이야기까지 나누고 싶다. 어떤 친구들은 '왜 그걸 남편이랑 나누려 하냐'며 나의 높은 기대치를 거두라고 한다. 그러나 꿈은 크게 꾸라고. 현실에 유니콘이 없다고 해서 체념하고 꿈꿔보지 않는다면 나 역시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라며 재미없는 기혼자들의 농담을 따라 할까 봐 두렵다. 그래서 앞으로 내 꿈은 유니콘이다. 배우자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지대를 펼치는 유니콘이 될 것이다. 어떤 이야기로 나를 식겁하게 하더라도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항상 여기 옆에 있어‘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유니콘이 되고 싶다. 현실에서는 일희일비하며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조랑말의 하루하루지만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그래서 나 조랑말의 장래희망은 유니콘이 되는 것이라 오늘도 다짐한다.

당신과 내가 잡아가는 불씨들(by. 흔희)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연애 프로그램의 출연진이 SNS에 올린 글이 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짝으로 이어진 상대방이 알고 보니 결혼식을 올렸고 혼인신고를 하기도 전에 결혼 생활을 정리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글이었다. 충분히 원망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글에 내비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러질 않았다. 자신이 좋아했던 상대의 모습과 자신에게 상처를 준 상대의 모습을 분리하여 좋은 것은 좋은 대로 힘들게 한 것은 힘든 대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그의 글에서 눈길을 끈 것은 자신이 끌리는 사람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이었다. 대략적으로 7개 정도의 항목이 나열되어 있었지만 그중에 눈길을 끈 것은 마지막 항목이었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깊이 생각해 보신 분에게 끌립니다.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다소 우울해도 상관없습니다.]


자기에 대한 통찰을 기반으로 성장을 경험해 본 사람의 문장이었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이다. 연애 기간 동안 쌓아온 많은 자료를 근거로 사람들은 상대가 배우자로서 적절한 사람인지를 판단한다. 그리고 결혼으로 이 관계를 끌고 갈지 말지를 결정한다. 사실 좋은 배우자라고 하지만 이때 ‘좋다’의 의미는 굉장히 주관적이다. 누군가에게는 냉정한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더없는 다정한 이가 되기도 한다. 결국 배우자를 대상으로 ’ 좋다 ‘고 하는 말의 의미는 나와 잘 ‘맞다’라는 것이다. 나와 잘 맞는 배우자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나를 꿰뚫어 보고 상대를 이해하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통찰력은 대개 갈등 장면에서 발휘되는 자질이다. 때문에 결혼 전에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연인들은 많이 싸우고 싸움에 대처하는 서로의 태도를 눈여겨봐야 할 필요가 있다.


배우자는 애정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관계이다. 배우자 간의 주고받는 애정이 얼마나 성숙한가에 따라 결혼생활은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성숙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랑을 일구어가는 개인들이 성숙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때문에 성숙함은 ‘내적 통찰’에서부터 시작된다. 통찰력 있는 사람은 관계에서 갈등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이를 원만하게 풀어나가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사실 관계가 좋을 때의 상대는 나에게 지지나 애정을 보내주며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게끔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갈등의 장면에서 상대는 나의 민낯을 드러내게 하는 경우가 많다. 싸우다 보면 싸움을 일으키는 문제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서로 생채기를 내기 위해 내뱉었던 말들만 남는 경우가 많다. 싸움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상처받은 개인들만 피투성이가 되어 남을 뿐이다. 이때  만약 서로 주고받는 말에 꽂혀 내가 받은 상처에만 매몰되다 보면 갈등은 풀리지 않고 더 꼬여간다. 말 너머에 자리 잡고 있는 너와 나의 감정, 그리고 그 감정 밑에 자리 잡고 있는 너와 나의 욕구(관계나 어떤 행위를 통해 내가 바라는 점)를 살필 줄 알아야 한다. 통찰력 있는 사람은 말에 집착하지 않는다. 나의 감정을 살피고 너의 감정을 추측해 본다. 그리고 사건의 의미를 재조직한다.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검증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려 애쓴다.


사랑은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두 사람이 함께 하는 행위이다. 때문에 통찰력 있는 개인들이 만나 사랑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반드시 성숙하다고 볼 수는 없다. 통찰력 있는 두 명의 개인을 하나의 연인으로 묶어주는 관계성이 필요하다. 두 개인을 하나의 연인으로 묶어주는 윤활제 역할을 하는 것이 ’표현‘이다. 통찰이 사유라면 표현은 행동이다. 내적 통찰을 통해 나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했다면 그런 나의 상태를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사랑은 생각(또는 감정)이 표현되어야 지속될 수 있는 것이며 그러한 장면들이 쌓이다 보면 사랑도 성숙해진다. 생각만으로, 성찰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성찰 뒤에 따라야 하는 것은 행동이며 사랑 또한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행동하지 않고 네가 먼저 나서주길 기다리기만 하면 변화는 없다. 밑도 끝도 없는 자존심 싸움의 고리를 끊고 누군가는 먼저 선순환을 일으켜야 한다. 다양한 이유로 갈등은 생기며 그것은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장면에 따라오고 가는 말들은 여러 가지겠지만 부부관계에서 날 선 말들이 함의하고 있는 욕구는 어차피 하나다. 상대에게 사랑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으며 아낌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이 관계가 깨질까 봐 생기는 불안 때문에 해서는 안 될 말이 나오고 상처를 주는 사람이, 상처를 받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말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나의 욕구와 상대의 욕구를 통찰하고 이 과정을 상대에게 표현하는 것은 관계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실천하는 행동이다.  


같은 것을 보고 나와 함께 웃으며, 분노하고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을 배우자로 만난다면 그를 이해하기 위해 쏟아부어야 하는 에너지를 비축해 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다. 사람마다 중요한 것이 다르고 생활양식이 다르다.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이 크고 작음의 문제가 있을 뿐, 결국 결혼은 삶을 비슷한 궤적으로 맞추는 과정이다. 맞춰가는 과정에서 마찰은 빚어질 수밖에 없다. 좋은 배우자는 이 마찰로 생기는 불씨가 다른 곳으로 번져가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를 들여다보고 너를 들여다보며 그것을 너와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 이 과정을 기꺼운 마음으로 행하며 우리의 관계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실천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함께 불씨를 잡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결혼 전에 많이들 싸워보길 바란다. 싸움의 과정에서 서로가 성숙할 수 있는 관계인지, 아니면 파멸하는 관계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보길 바란다. 그리고 나 또한 싸움을 통해 배우자와 함께 성장하면서 결혼 생활을 잘 이어나가길 바란다. 아마, 우리는 잘해 나갈 것이다.

좋은 배우자란?(by. 못골)


배우자의 사전적 의미는 부부로서 짝이 되는 상대다. 친구는 어깨동무로 서로 얽혀 있어 어깨를 풀어 버리면 쉽게 남남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배우자는 2인 3각으로 묶인 관계이다. 이미 한 몸처럼 되어 그 묶음을 풀어도 배우자 간에는 많은 부대 상황이 얽혀 있기 때문에 쉽게 원래대로 회복이 불가능하다.

 

70년대 내 젊은 날에는 연애 대상이 곧 결혼 대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기대에 설레는 결혼을 앞둔 미혼 젊은이들이 갖는 배우자상,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해 가며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부부들의 배우자상, 삶을 뒤돌아보는 노인들이 바라보는 배우자상은 각 다를 것이다. 나는 삶의 과정을 한 참이나 지나와서 인생을 관통하며 갖게 된 좋은 배우자상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적는다. 여기서의 표현은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편타당한 배우자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개인적인 관점일 뿐이다.


배우자 선택 시 외모는 처음 만나는 상대방에게 직관적으로 주는 강한 느낌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외모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결혼하여 함께 생활하다 보면 많이 드러나게 된다. 살아가며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 중 외모나 막연한 느낌 때문에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기회가 되어 그런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면 '내 생각이 편견이었구나'하고 반성할 때가 있다. '잘 갖추어친 교양과 배려로 상대감을 감동시키는 좋은 사람이구나'하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내, 외적 매력을 겸비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게 좋은 조건을 모두 갖춘 상대는 드물다.


배우자는 자신의 희망사항에 가까운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고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배우자 선택은 기업이 기술적(技術的)으로 완성된 사람을 채용하려는 것과 비슷하다. 일단 입사를 하고 연수를 시키고 현장에 내보내야 그 직원의 진가가 발휘된다.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결혼 전 얼마나 상대방을 알 수 없으면 결혼을 도박이라고까지 하는가? 결혼 전과 후는 매우 다르다. 좋은 면으로 달라지는 것이야 축하할 일이지만 감추어 둔 좋지 않은 면들이 드러나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는 후회해도 늦다. 1,2년의 짧은 연애 기간으로도 알 수가 없다. 배우자로 선택받기 위해 서로 과장하여 꾸미는 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짧은 기간에도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 유아독존 안하무인인 인간, 특수한 주장을 맹신하고 추종하는 사람, 늘 남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 술만 마시면 미치는 사람, 폭력적인 사람, 언제든 기회만 되면 표변하는 사람, 낭비벽이 있는 사람, 도박이나 마약을 하는 사람, 거짓말을 늘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 등 피해야 할 사람은 많다.


나하고 맞지 않지만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최소한 상대방의 뜻에 맞추어 주려는 배려심을 갖춘 사람이라면 크게 문제는 없다. 노력하면 된다고 본다. 하지만 성격이 완전히 다르고 남에 대한 배려심마저 없다고 한다면 부수적인 어떤 좋은 조건 하에서라도 좋은 부부가 되기는 어렵다. 그가 세상을 보는 안목이나 내면의 덕목은 중요하다. 결혼은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에 상대방의 내면을 어느 정도 알고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 바꾸고, 고쳐서 나에게 맞는 사람이 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바보온달은 일반화가 불가능한 매우 특수한 경우이다. 사람마다 변화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내가 바라는 희망사항을 일정 정도 갖춘 사람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가 아니더라도 그런 희망 중 포기할 수 없는 최소한의 내면적 덕목을 배우자는 갖추어야 한다. 배려심, 겸손, 책임감, 솔직함, 근면성, 친밀감, 교양, 추진력, 자기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취미나 특기 이런 내적 요소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경제적 요인도 매우 중요하다. 경제적 황폐는 인격적 폐인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사람을 고르는 것이 안전하다. 현재의 경제력도 여러 면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의존적인지, 우연적인지, 일시적인지...., 의존적인 경제적 안정감은 오히려 불안요소이고 믿기 어려워 더 위험할 수 있다. 철저한 가부장적 사회인 조선시대에도 허난설헌은 여성이지만 부모님의 만류에도 상대방을 결혼 전 미리 알아보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상대방을 알아보려고만 한다면 여러 방법이 있는데도 쉽게 지나쳐 버린다.


멀리 앞을 내다보고, 배우자를 현명하게 선택한 사람들의 경험을 되돌아 생각해 보자. 진학이나 취업과 달리 결혼은 잘못되는 경우까지 상상해 충분히 먼 장래를 바라보며 결정해야 한다. 다시 고쳐하기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배우자 선택은 잘 다듬어 온 나의 인생을 모두 무너뜨릴 수 있다. 아직까지는 이혼으로 인한 문제 인식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가혹하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는 더 조심스럽다. 결혼 전에 면밀하게 생각하고 잘못된 요소들을 사전에 알아야 한다. 현실을 바로 보고, 젊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하여 세밀하게 판단하지 못하다는 말을 생각해 보자. 결혼 전에 당신과 함께할 2세의 육아까지도 생각해 보라.


부부간의 문제점을 스스로에게서 찾고 항상 열려있는 자세로 대화하여 상대방과 함께 문제를 풀어 가려고 생각하는 부부는 관계가 개선되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남남처럼 살거나 남남이 될 것이다. 좋은 배우자의 조건은 ‘상대방이 이렇게 해주었으면.’하고 상대방에게서 조건을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변할 때 상대방은 어떻게 반응해 줄까?’하는 면에서 봐야 한다. 내가 변하고 양보하는 덕목을 갖추었는가 하는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내가 변할 때 상대방도 함께 해주는 공감력, 배려심이 있어야 한다. 자신은 갖추지 않았으면서 상대방에게 그런 요소를 찾는 것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 지난 호 구독자 후기 (#18. 억울함에 대하여)
익명이요❤️님 : 억울함에 대한 여러 관점들이 드러나서 참 좋았어요. 어린 시절의 억울함과 사회에서 억울함. 우리는 조직 내부에 있을 때 꼭 그런 일을 겪고는 하네요     
1 : 부모님의 학창시절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학생 인권에서 벗어난 때가 아닌가 싶어요. 현재와는 비교할 수도 없지요. 그렇지만 그러한 억울함을 그 자체로 놔두지 않은 점이 너무 멋있습니다.
2 : 제 어릴 적 선생님이 선생님과 같았다면 친구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특히나 그 나이 때의 유혹을 참기가 어려운데 유혹을 참지 못한 아이에게도 억울한 일을 당한 아이에게도 바르게 갈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느낍니다.
3 : 회사에는 실제로 일 잘하면서 뒷담화 잘 하는 사람보다는 일도 못 하고 뒷담화만 잘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함정이겠죠? ㅎㅎ 그래도 본인의 과오를 알고 나아가는 것 멋있어요. 참 좋은 아이를 두었네요 명진은.
🍯 땡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소개
 - 못골👨🏻‍🎨 : 한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진을 찍어왔다. 한계를 넘어 뭐든 끝까지 가는 남다른 의지력을 지녔다.
 - 흔희👩🏻‍🎤 : 눈치를 보지않아 '인간 사이다'로 불리나 K장녀로 은은히 돌아있다. 직업 때문에 생계형 낱말수집을 한다.
 - 아난👩🏻‍🍳 : 목구멍 보이게 웃는 큰 리액션과 미친 에너지 때문에 '어린 짐승'으로 불렸다. 빵을 굽는 방구석 빵수니. 
오늘의 땡비 어땠나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읽으면서 머리를 스친 어떤 의견이든 편하게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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