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그 모든 설레발의 다른 이름은 결국 '기대'와 '희망'이 아닐까 싶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설레발을 친다. 응원하는 야구팀이 우승할 것 같다고 미리 들뜬다거나, 아직 결정 나지 않은 여행에서 입을 옷을 미리 골라본다거나. 내가 친 설레발은 다름 아닌 ‘임신’이었다.


매년 결혼기념일이면 우리 부부는 결혼식 영상을 다시 보는 특별한 의식을 치른다. 결혼 준비 당시, 우리는 연애부터 결혼을 결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영상에 담았는데, 이걸 결혼식 때 하객들 앞에서 상영했다. 여러 번 봤지만 매번 괜히 민망해지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자녀 계획은?”이라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 장면이다. 지금보다 앳된 얼굴의 나와 남편은 한껏 들떠서 외친다. “둘보단 셋이죠! 이 시대에 맞는 문·이과 통합형 인재를 낳아보겠습니다!”

그때의 우리에겐 확신과 열정이 넘쳐흘렀다. 수백 명의 하객 앞에서 자신감 있게 문·이과 통합형 인재(!)를 셋이나 낳겠다 외쳤던 그 시절, 그땐 진짜 몰랐지. 둘보다 셋을 논하기 전에 하나부터 시작하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일 줄은 말이다. 화면 속 우리의 패기 넘치는 표정을 볼 때마다 민망함과 쑥스러움이 공존한다. 이렇게 멋지게 선언해놓고 아직도 출발선에서 쩔쩔매고 있다니.


그런가 하면 회사에서도 당당히(?) 임신 설레발을 쳤던 적이 있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본부장님과의 면담이 잡혔다. 본부장님은 공석이 된 팀장 자리를 나에게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다. 기뻤다. 입사 후 처음 맡게 되는 관리직이었고, 나에게 기대를 걸어준다는 사실도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단번에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저… 곧 임신하면 휴직을 낼 수도 있어서요. 후임자까지 미리 생각해두는 게 어떨까요?”

본부장님은 크게 웃으며 걱정 말라고 했다. 그 웃음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좀 다르게 들린다. 당시엔 내 배려가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고 책임감 있게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하니 본부장님께 민망하고도 당당하게 설레발을 친 셈이 되어버렸다. 팀장의 임신 휴직을 대비해 미리 후임자를 준비한다는 계획이라니, 너무 앞서 나간 거 아닌가. 그리고 그 설레발은 여전히 현실이 되지 않았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나는 벌써 3년째 그 자리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혼여행지에서 구입한 아기 양말, 길 가다 플리마켓에서 산 아이 머리핀, 아이와 함께 가겠다며 미리 저장해 놓았던 수많은 장소들, 그리고 남편과 미리 정해 놓은 아기의 태명까지. 

모두 이 설레발의 결과물이다. 난임 시술을 겪으며 지나간 설레발들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조금 쓴웃음이 나오지만 뭐, 나도 내가 난임일 줄 알았나?

지금도 나는 종종 또 다른 설레발을 친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할 일상과 삶을 계획하고 꿈꾸면서, 그 꿈들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믿으면서 말이다. 오늘은 더 당당히 외쳐본다. 앞으로도 계속 설레발을 치며 살겠다고, 언젠가 있을 그 날을 기대하며 오늘 미리 기뻐하며 살면 어떠한가.그리고 또 누가 알겠어? 이 설레발이 언젠가 나에게 진짜 현실이 될지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살짝 작게 외칠까…? ㅋㅋ 설레발은 조심스럽게, 그래도 유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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