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의 뉴스레터 Vol.41
엘살바도르 ‘젊은 지도자’의 두 얼굴

최근 일요일 밤 11시, 엘살바도르 시민단체에서 반(反)부패 조사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 변호사의 집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습니다. 경찰관들이었습니다. 그의 자동차가 교통사고에 연루됐다는 신고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문밖으로 발을 내딛자 수갑이 채워졌습니다. 10여 년 전 그가 떠난 정부기금 관리직 근무 때 횡령한 혐의가 드러났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내가 구금된 진짜 이유는 인권운동을 통해 정부를 불편하게 했다는 것뿐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입수한 수사녹취록의 한 대목입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처음엔 갱단을 박살냈지만, 지금은 비판자들을 박살내고 있다(First he busted gangs. Now Nayib Bukele busts critics)>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2019년 대통령선거에서 “고질적인 갱단 폭력을 척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의 ‘변질’이 노골화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6년 전 37세 나이의 부켈레는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으로 치안문제부터 확실하게 해결하겠다”고 공언했고, 이내 놀라운 성과를 냈습니다. 2015년 인구 10만 명당 피살자 수가 106명으로 세계 1위였던 것이 2024년에는 단 1.9명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비결’은 간단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사람들은 무조건 잡아넣었습니다. 몸에 문신을 했거나, 경찰에 제보가 들어온 인물이거나, 경찰의 ‘느낌상’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을 재판 없이 무기한 구금했습니다.


 그 결과 전체 청년인구의 8%인 8만5000명이 감옥에 갇혔고, 엘살바도르의 인구 10만 명당 구속자 수는 1700명으로 세계 1위가 됐습니다. 2023년에는 4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테러범수용센터(CECOT)를 짓고는, 창살도 없는 거대한 감방에 머리를 빡빡 깎이고 웃통을 발가벗긴 채 정어리통조림처럼 쑤셔 넣어진 재소자들의 사진을 전 세계에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테러위협으로부터 벗어났다”며 환호했고, 부켈레는 지난해 대선에서 85%의 지지율로 재선됐습니다. 이때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났습니다. 엘살바도르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규정하고 있는데도 부켈레는 출마를 강행했고,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다수를 거머쥔 의회를 통해 사법부를 장악하고는 우회 출마가 가능하다는 판결을 끌어낸 덕분이었습니다.


 부켈레 정부가 발표해온 치안통계도 조작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경찰에 의한 사살이나 옥중 사망, 시신이 늦게 발견된 경우 등을 피살자 통계에서 제외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부켈레가 엘살바도르의 주요 갱단 조직들과 밀약을 맺고 구속 간부들에게 옥중 편의를 제공하는 등 뒷거래를 해온 사실도 폭로됐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가 ‘치안 확립’을 구실로 비판적인 시민운동가와 언론인 등을 대대적으로 억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에게 비판기사를 쓴 기자들과 정부 지출내역에 의혹을 제기하는 노조지도자, 부당한 농지 수용에 항의하는 농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체포-구금하고 있습니다. ‘공안정치’만 문제인 것도 아닙니다.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로 장기 경제성장 토대를 구축하겠다고 했지만 말뿐이었습니다. 성장률이 이웃 빈곤국가인 온두라스와 과테말라에도 못 미치고, 2019년 27%였던 빈곤율이 2023년 30%로 되레 높아졌습니다.


 다수 국민들은 부켈레의 철권통치에 길들여졌고, “시민들이 갱단보다 경찰들의 폭력을 더 두려워한다”는 말까지 나도는 지경이 됐습니다. “스트롱맨을 표방하는 지도자에게 초법적 권력을 방임하지 말라. 당장은 치안문제를 해결해주는 것 같지만 국민 개개인의 신변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가 독자들에게 내린 경고입니다.

경제사회연구원 고문

이학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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