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절구절의 베니🌳예요.

여러분은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랐나요? 저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랐어요. 종종 이사를 다니긴 했지만, 여전히 도시였다는 점에서 제 환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성인이 되기 전에는 더 크고 황홀한 도시로의 이사를 꿈꿨어요. 멀리서 보면 밤이 없는 듯한 불빛이 너무나 아름다웠거든요. 하지만 정작 이사를 오니, 가까이에서 본 모습은 상상과 많이 다르더라구요. 오늘은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

※분홍 칸 안에 있는 문장은 책의 구절을 인용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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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인물들은 그림자가 일어서는 일에 익숙해요. 우리 발에 꼭 붙어 있어야 하는 그림자는 머리를 들고, 허리를 들고, 결국 등에 올라타고, 사람을 삼키기도 해요. 소설에서는 그림자를 절대 따라가지 말라는 경고가 계속 등장하죠.

그림자는 난폭한 이 도시가 주는 견디기 힘든 아픔을 의미해요. 소설의 인물들은 모두 그림자가 일어서는 일을 겪은, 도시에서 어려운 현실을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 현실에는 가난, 가족의 죽음, 일터의 상실 등 여러 아픔이 있어요.

은교씨, 나는 특별히 사후에 또다른 세계가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사람이란 어느 조건을 가지고 어느 상황에서 살아가건,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나는 물었다.

이를 테면 뒷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박스를 줍는 일로 먹고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 하고.

무재씨가 말했다.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하고.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은교와 무재는 철거 이야기가 오가는 전자상가 ‘나’동에서 일해요. ‘가’동은 철거가 확정되고 조용히 공원으로 변합니다. 『백의 그림자』는 2010년, 당시 서울을 배경으로 처음 출판되었어요. 하지만 이 소설은 13년이 지난 것이 무색하게도 시간의 흐름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요. 2023년인 지금,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폭력은 여전히 혹은 더 가혹한 방식으로 남아 있죠. 아직도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싸우고, 다치고, 죽어요. 그런 죽음을 ‘오로지 개인의 사정’으로 본다면,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을 봐야 할까요?

리밋(Limit) - 회색빛 (Feat. 박준호(PULLIK))

작사: 리밋(Limit), PULLIK(박준호)

장르: R&B/Soul

회색빛 거리 위에 빼곡히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어제의 웃음들은 뒤로한 채 저 마다의 움직임은 멈춰놓은 채

모두 다 앞만 보고 걸어가 두 눈을 감은 채로 걸어가

서로의 시선들은 멀리한 채로

어느새 도시를 상징하는 색이 된 회색. 이 곡은 회색빛 도시를 노래해요. 제가 도시에서 느낀 마음과 가사가 너무 비슷하더라고요. 물리적으로는 너무 가깝고 심리적으로는 너무 먼 이곳의 거리와 지하철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하지만, ‘서로의 시선들은 멀리한 채로’ 필사적으로 외면해요.

화자 또한 이 도시의 구성원으로서 마음을 숨기고 앞만 보고 걸어가요. 점점 힘들고 허전한 마음으로 ‘또 하루가 가고 지나죠’. 마침내 화자는 그런 회색빛 속에서 우리는 그저 나에게 집중하고, 사랑에 빠지는 것만이 필요하다고 계속해서 말해요. 

책을 읽다 보면 도시가 되기까지 잃는 것들을 한참 생각하게 되는데요. 각자의 상실이 있는 은교와 무재는 서로가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도록 돕는 존재예요. 둘의 조심스러운 대화와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자에 맞설 힘이 조금씩 생겨나죠.

나는 창 밖으로 머리를 조금 내밀고,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뜨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은교씨, 머리를 그렇게 내밀면 위험하죠.

바다가 보여서요.

더 근사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있어요.

우리 거기도 가나요?

가면 되죠.

그리고 무재와 은교는 ‘더 근사하게 볼 수 있는 곳’에 가요. 그러다 캄캄한 밤이 오고, 그림자는 어둠에 이어져 알아볼 수 없게 되죠. 둘은 도시의 완벽한 구성원으로서, 그럼에도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보여줘요. 더 진심으로, 더 최선을 다해, 더 따뜻하라고요.

저는 여전히 이 도시에 홀로 있을 때면 남의 동네에 잘못 찾아온 외부인 같을 때가 많아요. 갑작스러운 폭력에 다치기도, 지나치게 작은 집에 잠을 설치기도, 이유 없이 외롭기도 하던 나날들이 기억에 모였거든요. 어떤 길이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만 필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나에게 아늑했던 동네에는 시간을 같이 걸어 주는 타인, 타인이 만들어낸 냄새, 오감 외의 것으로 기록되는 감정들이 있죠.

하지만 저는 이 도시를 조금 원망하면서도 늘 사랑해요. 이곳의 따뜻한 사람들이 건넨 추억과 온기가 차츰 쌓이고 있거든요. 도시 안의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지만 참 먼데, 그 거리를 마구 달려와 주는 사람들이 제 도시를 포근하게 해 줘요. 우리가 우리에게 더 따뜻해지면 그림자들도 제자리를 찾고, 저도 곧 이 동네가 나의 동네처럼 느껴지겠죠. 가끔 지치더라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