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다시, /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
스물일곱 번째 섬 (미리보기)
안녕하세요, 영근입니다. 시앗님은 돌을 감각해 본 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인가요? 건물 앞 장식용 돌을 보는 것도 아스팔트 위 잔돌을 차는 것도 아닌, 자연에 속한 돌을 마음 가까이 느껴 본 적 말이에요. 돌 하나 온전히 품기 빠듯한 일상에, 화산섬에서 만난 돌 하나 시로 던져 보냅니다.
부석(浮石)
구멍 슝슝 뚫려
이외로 가벼운 돌

물 위에 뜰 만큼
돌 아닌 돌

그랬구나
가벼웠구나
알게 된 뒤에야 알았다

한 길 맘속도 모를 수밖에
맘 위에 뜰 만큼

나 아닌 나.
[에세이] 되돌아보며
가벼운 사람
화창한 주말, 땀이 잘 마르는 기능성 반팔을 챙겨 입고 토씨를 팔꿈치 위까지 바짝 끌어올렸다. 울릉도에서 오래 지낸 간부님을 따라 성인봉*으로 등산하는 날.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조금 긴장한 마음으로 길의 초입에 들어섰다. 풍광을 감상하기는커녕 헛디딜까 발밑만 쳐다봤는데, 산길 이곳저곳에 황갈색 돌들이 널려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돌에 크고 작은 구멍들이 나 있었다. 화산섬에서만 만날 수 있는 부석이었다. 짙은 황갈색이 은은하니 맘에 들어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주먹만 한 크기라 나름 무겁겠거니 했는데, 중력이 구멍으로 모조리 새어 나간 듯 낯설게 가벼웠다. 돌인데 돌 같지 않은 돌이었다. 나는 그 가벼움이 왜인지 낯익어서 그 돌을 꼭 쥐고 산을 올랐다.
한 시간 반 정도 꼬박 오르니 정상에 닿았다. 정상비에 쓰인 한자를 읽으며 간부님은 이곳에 백 번 오르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전에 사람(人)부터 되려면 이 산을 몇 번 올라야 하나요. 제 몸에 난 구멍들을 얼마나 더 메우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손에 쥐고 있던 부석은 이미 잃어버리고 없었다. 나는 질문을 속으로 삼킨 채 말없이 주변을 내려다보았다.
탁 트인 풍광 너머 물의 알갱이들이 빼곡히 푸르렀는데, 문득 이 섬도 부석인가 싶었다. 은하수를 여행하던 자가 변방의 행성에 모르고 떨군 돌처럼 울릉도는 가벼워 보였다. 이 섬도 자신의 깊이가 궁금할까. 마음의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싶어서, 그렇게 무거워지고 싶어서 수많은 나무를 키우고 생명들을 기르는 걸까. 내려가는 길, 나는 잃어버린 돌을 찾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발을 헛딛고 말았다.
* 울릉도에 가면 : 성인봉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약 986.5m)입니다. 성인들이 노니는 곳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워서 이름이 '성인봉'이라 해요(간부님이 해 주신 말은 등산객들 사이로 전해지는 이야기인가 봐요). 울릉도로 여행 오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성인봉의 풍광은 정말이지 장관이에요. 초보자였던 저에게 산행은 아주 힘들었지만요!
[창작 후기] 시인의 Pick
맘 위에 뜰 만큼
군생활은 밖도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니 일면 답답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주말이면 가끔씩 간부님이 울릉도 여행 겸 데리고 나가곤 했습니다. 성인봉을 처음 등산해 본 것도 이때였죠. 그리고 그날 부석을 집어 들고 느꼈던 감각이 시상으로 이어졌어요.
돌을 보면 그에 걸맞은 무거움을 대략 예상할 수 있는데요. [되돌아보며]에 썼듯 부석은 예상을 깨고 너무나 가벼웠으며, 저는 이 '가벼움'을 가지고 나 자신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 보기로 했어요. 시의 전반부에는 돌의 가벼움을, 후반부에는 나 자신의 가벼움을 말함으로써 물리적 속성을 자아의 속성으로 전이하는 것으로요.
그렇다면 돌과 나를 어떻게 동일시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부석은 '물에 뜰 정도로' 가볍다는 뜻이니, 물을 연결 고리로 삼자 생각했어요. 그러자 속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왜 한 길 사람 속을 ─ 왜 내 마음속을 내가 잘 모르는 걸까. "맘 위에 뜰 만큼" 충분히 무겁지 못해서. 부석처럼 가벼운 사람이라서. 
그렇게 쓰다 보니 지금의 1,2연과 4,5연이 먼저 나왔는데요. 이 둘을 자연스럽게 이어 줄 연 하나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깨달음의 순간을 담을 부분이요. 그때 명나라 문인의 시 「뒤에야」가 떠올랐어요. 뒤늦은 깨달음을 표현한 시로, 이번 제 시와 시상이 맞닿아 있거든요. 이 시의 핵심 구절인 "~한 뒤에야"를 빌려서 3연까지 완성했습니다.
삶에 대한 성찰의 깊이가 부족했던 제 자신을 부석에 빗대어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부족함을 깨닫는 건 부끄럽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래도 이런 마음들이 모이고 쌓여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요. 언젠가 울릉도에 가면 그날 잃어버렸던 돌을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네요. 그때면 조금 더 무거운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뒤에야            - 진계유(1558~1639)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일을 돌아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았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마음을 쏟은 뒤에야
평소에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
오늘의 삽화
이 삽화처럼 부석 하나를 물속에 띄워 두고는 매일 앉는 식탁에 올려 둘까 봐요.
미리 읽어 본 레터는 어떠셨나요?
<시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
아름다운 서정시를 매주 만나 보세요 :)
 글쓴이 영근(@poetic_islands)
그린이 너와길(@youand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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