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영본색 16호
2021-12-07 대설

안녕하세요 이하오입니다.

  중영본색 16호에서는 중국 골동품 시장 고수들의 경쟁 <고동국중국 古董局中局>, 한국 영화 <도어락>의 리메이크작 <문쇄 门锁>,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이 된 <! 문희>의 중국 개봉 소식을 전합니다.
1. 중국 골동품 시장 고수들의 경쟁 <고동국중국>
  오랜만에 가볍게 볼 수 있는 중국의 오락영화가 개봉했습니다. <고동국중국 古董局中局>은 마백용(马伯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한 영화로, 골동품 업계의 고수들이 골동품의 진위를 가리고 상품의 값을 올리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경매 시장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고동국중국>  © 더우반
   민국시기(1912~1949중국 문화재계의 권위있는 조직 오맥(五脉)의 수장 허일성은 중국의 문화재인 불상의 머리를 일본에 보낸 죄로 매국노로 몰리고 처형당합니다. 그로부터 50년 후, 일본은 불상의 머리를 중국에 돌려주며 반드시 허일성의 자손에게 돌려줄 것을 요청합니다. 골동품 시장가에서 변변치 않게 살아가던 허일성의 손자 허원은 가족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간 불상과의 재회를 꺼리지만, 오맥의 새로운 세력 약씨 일가의 도발에 넘어가 불상을 차지기 위한 경합에 합류합니다.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불상은 가짜이며 진짜 불상을 가리키는 단서라는 것을 알게된 허원은 불상을 찾아 여정에 나섭니다.

<고동국중국> 중 허원의 골동품 경매 장면  © 더우반
  영화 <고동국중국>에 대한 중국 관객들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원작 작가 마백용의 소설은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역사적 소재를 흥미롭고 가볍게 풀어내어 대중적인 인기가 높습니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해를 품은 달’, ‘홍천기등으로 유명한 한국의 정은궐 작가와 비할 수 있습니다. '삼국기밀', '장안12시진', '풍기낙양' 등 마백용이 출간한 소설들은 중국의 인기 IP로써 여러 차례 드라마와 영화로 각색되었습니다. <고동국중국> 또한 2012년에 소설이 출간된 후 이미 네 차례에 걸쳐서 드라마화되어 중국 관객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익숙함이 영화의 독이 되었습니다. 기대를 품고 <고동국중국>을 본 관객들은 영화의 허술한 만듦새에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인물과 사건 구성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관객들은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도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중국의 영화 평론 사이트 더우반에서는 영화 속 이해할 수 없는 아홉 가지를 나열한 글이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기도 했습니다. 관객들 대부분이 원작을 봤을 것이라 짐작한듯 만들어진 불친절한 스토리는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은 물론 원작을 재밌게 본 관객들까지도 혼란스럽게 합니다.

<고동국중국> 중 갈우  © 더우반
  하지만 디테일에 얽매이지 않고 본다면 <고동국중국>은 볼거리가 가득한 오락영화입니다. 특히 1980-1990년대 배경의 중국의 골동품 시장과 박진감 넘치는 골동품 경매 장면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30년 전 중국의 목욕탕, 새해의 기차역 풍경과 산골 마을의 잔치 등 중국적 요소가 가득한 장면들은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중국의 이색적인 풍경입니다. 이 외에도 자본력 느껴지는 다양한 특수효과와 연출들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배우 갈우(葛优)의 익살스러운 연기도 감초 역할을 합니다. 가볍게 중국 문화를 느껴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2. <도어락> 리메이크작 <문쇄>, 반성없는 복제
  2018년 한국 영화 <도어락>이 중국에서 리메이크되어 지난 1119<문쇄 门锁>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습니다. 1인 가구 여성이 느끼는 위협과 공포를 포착한 영화 <도어락>은 현실감 있는 소재로 이목을 끌었습니다. 중국 또한 혼자 사는 여성이 많아지고 이들을 타겟으로 다양한 수법의 범죄가 일어나고 있어, 중국에서는 2018<도어락> 개봉 때부터 리메이크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문쇄> 포스터 오른쪽의 글은 중국에서 1인 가구 여성을 상대로 일어난 범죄 사례들을 정리한 것  © 더우반   
  대도시에서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는 주인공 팡훼이(方卉)는 혼자 사는 여성입니다. 하루종일 진상 고객들을 상대하고 집으로 돌아온 팡훼이는 맞선 보라고 채근하는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 잠자리에 듭니다. 온라인 만남 어플을 통해서 알게 된 남자가 보내준 노래를 들으며 잠이 들던 팡훼이는 누군가 비밀번호를 누르며 침입을 시도하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깹니다. 위협을 느낀 팡훼이는 아파트 경비원을 불러 복도에 있는 CCTV를 보여달라고 하지만 경비원은 설치된 CCTV는 고장 난 것이고 동네 아이들이 자주 하는 장난이니 크게 신경 쓰지 말라는 말뿐입니다. 팡훼이는 다음 날 부동산 중개업자를 찾아가 아파트 보안이 좋지 않으니 다른 집을 구하겠다고 하지만 중개업자는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는 방을 못 뺀다며 으름장을 놓습니다. 유부남 직장 상사는 혼자 가겠다는 팡훼이를 굳이 아파트 앞에 바래다주더니 집까지 따라와서는 커피를 마시고 가겠다고 버팁니다. 끊임없이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는 팡훼이를 걱정하던 친구는 이사 가기 전까지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팡훼이는 친구가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한사코 거절하더니 결국은 친구까지 위험에 빠트립니다. 실종된 친구를 찾아 나선 팡훼이는 오랜 시간 자신을 위협해온 인물과 마주합니다.

왼쪽부터 2011년 스페인 영화 <슬립타이트>, 2018년 한국 영화 <도어락>  © 더우반
  <문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인공을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는 인물로 묘사하며 여성들이 겪는 공포감을 전시하는데 그친다는 것입니다. 안전불감증에 위기 대처 능력도 없는 주인공은 온갖 위협을 당하면서도 미련하게 버티다가 기어코 최악의 상황까지 가서 관객들의 속에 열불이 나게 합니다. <문쇄>의 전체적인 서사구조는 <도어락>과 거의 유사합니다. 한국영화 <도어락>2018년 개봉 당시에도 세련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도어락>2011년 스페인 영화 <슬립타이트> 중 "혼자 사는 여자 집에 몰래 드나드는 아파트 관리인"이라는 아이디어를 한국 상황에 맞게 각색한 작품입니다. 한국 대부분의 가정에서 사용하는 도어락을 사용하여 현실감을 높이고, CCTV와 웹캠 등 일상적 기기를 활용한 연출로 몰입감을 높여 괜찮게 만든 공포영화라고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대책 없이 나열한 여성들의 일상적 공포에 불쾌함을 느낀 관객들이 영화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감독은 인터뷰 중 이에 대해 반성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문쇄> 중 팡훼이  © 더우반
  2021년 중국의 <문쇄>3년 전 작품에 대한 그 어떤 발전도 없이 배우와 무대만 중국으로 바꾸어 복제했습니다. 리메이크 작품에서는 현지화는 물론 지나간 시간만큼 바뀐 사회적 분위기를 읽어내고 반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국 관객들은 3년 전 한국작품과 다를 바가 없는, 되려 후퇴한 듯한 리메이크작 <문쇄>에 혹평을 남겼습니다. 최근 중국에서는 제작심사 통과와 상업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명 IP를 활용하거나 해외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날이 높아지는 관객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고민과 반성 없는 복제만 계속한다면 원작이 제아무리 유명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 <오! 문희> 중국 개봉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이 지난 2일 중국 톈진에서 진행된 회담에서 한중 교류와 문화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회담 이튿날인 12월 3일 중국 전역의 영화관에서는 2020년 나문희, 이희준 주연의 영화 <! 문희>가 개봉되었습니다. 지난 2016년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 내 한류를 금지하는 "한한령限韩令"이 내려진 후 6년 만의 한국 영화 공식 개봉입니다

<오! 문희>  © 네이버영화
  <! 문희>는 한국형 가족영화로 높은 흥행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2016<암살> 이후 중국에서 처음 개봉한 영화라는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개봉 당일인 3일 중국 내 CGV 영화관 위주로 소수의 상영관이 배정되었던 <! 문희>는 중국 관객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상영관을 점차 늘려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콘텐츠를 즐겨보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호감도가 높은 나문희 배우가 <! 문희>의 주연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영화는 더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최근 중국에서는 2006년 한국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공공장소나 대중교통에서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고, 나문희 배우의 다양한 표정 연기는 짤로 만들어져 중국의 메신저와 sns에서 사이에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 문희>의 개봉 소식에 웨이보에는 “6년 만에 돌아온 한국 영화를 환영한다. 나문희 할머니를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니 기쁘다는 내용의 글이 유행하는 짤과 함께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오! 문희> 개봉 후 웨이보 반응 © 웨이보
  <! 문희>는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일 뿐입니다. 2022년은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더 많은 교류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한령이 계속되었던 지난 6년 동안에도 한국의 작품들은 비공식적인 경로로 중국에서 계속 소비되었고, 올해에만 한국 영화 리메이크작이 다섯 작품 (△너의 결혼식 △써니 △남자가 사랑할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도어락) 개봉했습니다2022년에는 공식적으로 한한령이 해제되고 더욱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합작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절기 상 일 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대설이지만,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음 절기인 동지까지 매일 부지런히 길어질 밤을 따뜻한 곳에서 즐거운 일 하시며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1년 마지막 절기 동지에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발행인 이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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