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주자 프로젝트- 그러코, 이 집안을 이겨나갔어] 세번째 편에서는 1990년대 김정임씨 가족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김정임씨는 투자 실패 후 경제활동과 일상에 손을 놓아버린 남편을 대신해 홀로 생계를 짊어졌는데요. 남성 가장의 경제적 좌절로 인해 여성이 홀로 생계부양자가 되는 서사, 많이 익숙하시죠. 빚 독촉까지 받았던 그 좌절 속에서 김정임씨는 어떻게 버텼을까요?
“그 무렵 할아버지가 부동산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랑 땅에 투자를 했어. 처음에는 그 땅만 생각하믄 일을 해도 어찌나 재미지던지…. 꼭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기분이더라고. 하하.”
“근디 사람 욕심이 끝이 없드라. 얼마 있다가 이번에는 각화동에 있는 큰 상가 건물을 몇 사람하고 같이 경매로 받겠다는 거야. 우리 형편에 너무 터무니없다고 말겼지(말렸지). 그런데 한번 돈 욕심에 눈이 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말해도 안 디케(들어). 그때 어떻게든 말겼어야 했는데…….”
“할아버지가 자꾸 돈이 부족하다고 해싸서, 내가 몰래 감치면서(감추면서) 통장에 모아놓은 600만 원도 결국 다 드려부렀어…. 시골 논 팔아서 가져온 돈도 들어가고, 또 여그저그서 빚까지 내서 싹 다 바친 거지.”
“결국 일이 터져부렀제. 같이 투자한다던 사람들은 뒤로 쏙 빠져 버리고 할아버지만 계속 돈을 댄 거여.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야. 아이엠에프(IMF) 때라 이자도 말도 못 하게 높은디 감당이 안 되제. 날마다 돈 독촉에 시달리고, 어떤 날은 집까지 찾아와 협박하는 사람들도 있었당께….”
“다달이 이자는 나가지, 그때는 빚만 없으면 살겄다 했어. 세상에 빚이 젤로 무서워. 그래도 ‘이 시기 넘어서면 또 좋은 날이 오겠지’ 했지. 오로지 자식들한테만은 피해 안 가게 해야겄다는 생각으로… 혼자만 같으믄 천 리라도 도망가 부렀어.”
김정임씨는 결국 식당 찬모 자리로 일을 시작합니다. 누가 알아볼까봐 두려워하고, 남편이 삶을 놓아버릴까 걱정하고, 천근만근 몸으로 자녀를 키워야 했던 삶. 그는 ‘인생이 고치(고추)보다 맵다’고 체감합니다.
“그렇게 새 빠지게 일하고 밤 10시에 집에 들어오면 몸이 아주 천근만근이여. 그래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애들 밥 맥이고 또 나갔지.”
“그 순간에는 ‘내가 이런 디다 발을 디뎌갖고 이런 말을 듣는갑다’ 싶어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어. 그래도 자식들 생각하면 그게 안 되더라고. ‘아이고,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우리 자식들 어쩌라고’ 함서 또 마음을 먹었지….”
“한번은 주방에서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시골 아는 사람이 식당에 밥 먹으러 왔다가 나를 본 거야. 반갑다고 아는 체를 하는 것 같더라고. 순간 고개를 돌려버렸지. 얼굴이 얼마나 뜨구워지던지,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얼른 부엌으로 들어와 부렀어. 그 사람이 이런 데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나를 어떻게 볼까 싶기도 하고….”
“그때 내가 60대 초반이었는디 그때 허리에 골병이 들었어. 하루 종일 서서 음식 만들고 무거운 거 들고 댕기다 본께. 인생살이가 고치보덤 더 맵다더니 세상에 내가 이런 일을 하는구나….”
“그 일 있고 나서부터 할아버지는 꼼짝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 만나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 내가 한 푼이나 벌어오지 않으면 그대로 굶어 죽을 판이야.”
“왠지 저러다가 갑자기 딴생각할 것 같이 자꾸 이상한 생각만 들어서 내가 일하다가도 가끔 집에 전화를 해봤어. 전화 받으면 ‘안 죽고 살아 있구나’ 하고 그때야 안심이 돼서 그날 일이 즐겁기까지 했당께.”
하루에 고작 3시간 남짓 눈붙이는 삶을 10여년 간 지속한 그 시절 어머니이자 아내, 김정임씨는 이제 완연한 노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겨우 ‘내 인생’을 살아보려 하는 참인데, 거기엔 또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입주자 프로젝트- 그러코, 이 집안을 이겨나갔어] 네번째 편은 다음 주 목요일에 공개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