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범 작가와의 인터뷰를 위해 그의 포트폴리오를 공부하며 내 머리를 가득 채운 건 고대 그리스의 ‘아레테(arête)’ 개념이었다. 아레테란 사람 개개인이 타고난, 각자에게 주어진 재능과 역할로, 이것에 집중해 애먼 욕망이 아닌 잠재된 자기만의 아레테를 개발하고 정진하면 무어든 이룰 수 있으며, 아레테를 잘 닦아온 이들이 모인 사회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바깥이 아닌 자기 안에서 찾는 사람, 그 찾는 과정 속의 셀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몸과 마음으로 복기하며 항상 배움의 그릇을 넓혀가는 사람. 지난 1회 인터뷰에 이어 이번 레터에서는 그 커가는 그릇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시간, 노동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인터뷰. 이경희

값진 노동의 재발견
 최근에 아프셔서 작업을 좀 쉬셨죠.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2021년 11월부터 공식적인 일은 안 하고 있어요. 거의 6개월이 되었네요. 지난해 겨울을 앞두고 작업실에 방한 대비한다고 천장의 단열 공사를 혼자 했는데, 그때 목에 무리가 왔는지 너무 아픈 거예요. 마우스도 잡지 못할 정도의 통증이 있었고 한쪽 팔은 마비도 왔어요. 병원을 여럿 다니다가 단순 디스크가 아닌, 추적 관찰을 해야 한다고 해서 꽤 당황했어요. 
한창 작업량을 늘리려던 참이었기에 무척 절망적이었죠. 그러다가 병원 치료 받으면서 조금씩 통증도 없어지고 좋아지고는 있지만, ‘진짜 소중한 것은 따로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전에는 어떤 게 소중하다고 느끼셨어요?
그냥 내게 주어진 일 해내면서, 진짜 하고 싶은 건 여력이 될 때 틈틈이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완전히 바뀐 거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여러 이유로 미루다 보면 언젠가는 하고 싶어도 시간이, 체력이,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져 오히려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치료 과정에서 몸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바로 개인 작업을 시작했죠. 지금도 클라이언트의 의뢰 일은 받지 않고 있어요. 
몸이 아픈 중에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다보니 ‘작업이라는 게 뭘까’ ‘손으로 뭔가 한다는 건 또 무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렇게 생각을 쫓아가다가 내린 결론은, ‘값진 노동’을 하고 싶다는 거였고요.
ⓕ 값진 노동이라...
예전에는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에 의문을 가질 때도 있었거든요. 컴퓨터로 이미 거의 모든 것을 다 맞춰 놓았는데, 나는 어디서 어디까지 노동으로 직접 개입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요. 물론 어느 정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형태를 잡아보고 세부를 다듬는 게 맞긴 한데, 이미 모든 걸 디지털로 완벽하게 해놓고 이걸 발주하는 게 너무 괴로운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제 오토바이 커스텀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게 있는데, 직접 손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세부가 완성되는 게 정말 자연스럽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초기의 탄탄한 설계 없이 일단 만들면서 매 단계에서 결정하는 게 전근대적이고 불성실한 태도라고 생각했거든요.

ⓕ 뭔가 딱 떨어지거나 완벽하지 않은 느낌인가요?
여지를 둔 상태에서 계속 찾아가면서 하는 건 성실하지 못하다고 봤는데, 이젠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예전에 손과 머리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는 걸 머리로만 ‘그런가보다’ 했는데, 제가 직접 몸으로 찬찬히 작업을 해나가니 느끼는 게 달라요. 몸을 쓰면서 느끼는 노곤함, 그리고 그 노곤한 몸을 느끼면서 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봤을 때의 기분 좋은 느낌. ‘이게 뭘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떠오른 게 ‘값진 노동’이었어요. 
같은 일이어도, 같은 글쓰기여도 괴롭거나 불쾌하게 소모되는 느낌이 드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은 내가 살아가는 현재의 시점과 맥락이 자연스럽게 맞으면서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올 때가 있잖아요. 생각과 상황 모두가요. 디자인과 제작에도 뭔가 다른 국면이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 한창 몸을 움직여 작업하다가 힘들어서 막간에 지금까지 한 것을 바라볼 때, 약간은 피곤한 상태로 뜨거워진 몸과 마음의 그 순간을 누군가에게 정확히 전달한다는 게 쉽지 않겠어요. 매우 개인적인 본인만의 경험일 것 같아요.
옛날 사람들은 이미 그걸 다 경험한 것 같아요. 근대화되면서 기계가 등장하고 대량생산화되면서 장인과 장인이 아닌 노동자가 분리되면서 이미 각종 문제점이 다 드러났고, 실험적인 공예가 운동도 있었고요. 예전엔 이것들이 끝난 이슈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지금도 꽤 유효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거죠. 
요새 돈을 버는 방식은 이와는 많이 다르잖아요. 오랜 시간 몸을 써서 돈을 버는 것은 비하하고, 핸드폰 속 앱을 통해 뭔가 매끈하게, 아니면 그냥 코인으로 수익을 내는 게 멋있다고 인식하는 사회에서, 디자이너 혹은 제작하는 사람으로서 저부터도 노동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협업, 혼자보다 둘이 나은 것
ⓕ 레어바이크 작업실이 위치한 곳은 문래동이에요. 마치 세운상가를 지상에 펼쳐놓은 것 같은 곳이죠. 주변의 다른 작업소, 철공제작소와도 활발히 왕래하는 인상을 받았는데, 실제로 함께 작업하기도 하는지, 레어바이크는 이곳에서 어떤 영감과 작업의 도움을 받고 있나요?
문래동에서 작업하면서 매우 좋은 점은 일단 ‘눈에 보인다’는 것이에요. 예전에 지나가면서 보니 뭔가 매우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나는 게 길가에 나와 있기에 봤더니 아연 도금을 한 가공물이었는데 너무 예쁘게 노란 바탕에 무지개색으로 빛이 나는 거예요. 아연 도금이 철을 보호하기 위한 가공인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저 도금을 꼭 써봐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눈으로 봐야 할 수 있는 거죠.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김다움 작가와 같이 ‘김에김’이라는 팀으로 작업을 하는데, 공원에 있는 나무 팻말을 걸어야 했어요. 그런데 나무를 단단한 걸로 결속하면 나무 성장에 방해가 되니 스프링으로 설치된 푯말을 보고 우리도 그것으로 하려고 했는데, 정작 어떻게 설계하고 만들지 고민인 거예요. 그런데 제 작업실 바로 앞에 스프링 제작소가 있거든요. 철사를 꼬아서 스프링을 만들어요. 혹시나 해서 여쭤봤더니 ‘이거?’ 하면서 딱 주시는 거예요. 자세히 보니 결속 방법도 정말 대단한 게, 스프링을 쭉 말다가 한쪽은 얇고 좁게 말아서 완성해요. 그리고 나사산 체결하듯 돌리면 스프링이 탁 체결이 되는 거예요. 아무 도구 없이 자체의 텐션과 좁아진 나사산 형태만으로요. 만약 우리가 모르는 상태에서 비슷한 걸 만들려 했거나, 알아도 제작 업체를 찾으려 했다면 정말 어려웠을 텐데 가까운 곳에서 쉽게 자재를 구하고 쓸 수 있었죠. 그런 걸로 봐서는 재료, 가공, 기술적인 것들에 엄청난 도움을 받고 있어요.
 혼자 하는 레어바이크 이외에도, 과거에는 오랜 기간 ‘노네임노샵’이 있었고, 현재도 ‘서울과학사’ ‘김에김’ ‘AB그룹’ 등 여러 동료와 함께 하고 있어요. 레어바이크와는 어떤 다른 결을 가진 협업체이며, 어떻게 함께 하게 되었나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과 했던 노네임노샵은 거의 아무것도 없던 때에 성장의 시기를 함께 해 준 되게 소중한 시간이면서,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힘든 성장통을 겪었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여러 명이 머리를 맞대야 했기 때문에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죠. 여섯 명 모두 경험치가 없는 상태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그때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작업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소중한 시간이자 협업이었어요. 지금은 혼자 작업하면서 쉽게 다른 사람과 결속, 협업할 수 있는 상태가 됐죠. 
‘AB그룹’의 이혜연 디자이너와는 그간 오래 쌓아온 공통 경험을 토대로, 제가 구조적인 걸 맡으면 이 친구는 그래픽과 컬러풀한 걸 맡아서 함께 작업했어요. ‘서울과학사’는 제 클라이언트였던 3d 프린터기 제조업체의 창립자이면서 엔지니어인 최종언 엔지니어와의 협업팀이에요. 원래는 종언 님이 저희에게 3d 프린터 디자인을 의뢰해주셔서 같이 디자인과 설계를 개발하다가, 어느 날 제게 제안 온 전시가 종언 님과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아 ‘서울과학사’로 시작해 2015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작업을 해오고 있어요. 프라모델은 어린 시절부터 제겐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험인데 성장하면서 그게 단절되어 아쉬웠는데, ‘서울과학사’를 계기로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어 소중한 활동이에요. ‘김에김’은 가장 최근의 협업으로 김다움 작가와 함께 해요. 저는 디자인 베이스라면 다움 작가님은 순수예술 베이스로, 미술계 시스템과 작가의 역할을 굉장히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작업 과정에서 에너지가 점점 내려가는데 다움 작가님은 에너지가 밝고 추진력도 좋아서 새로운 게 나오는 것 같아요.

<따로운동회>, '김에김'의 김다움 & 김종범, 2021
 그렇다면, 다른 협업체를 통한 작업이 레어바이크에 미치는 영향이 있나요?
제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거든요. 그리고 제가 소통을 좀 두려워하는 편이에요. 대화하거나 사람들과 뭘 하는 걸 힘들어하고. 그래서 기계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근데 협업은 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고, 새로운 꿈을 꿀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거든요. 제가 운이 좋아요. 왜냐하면 제가 다른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일하는 걸 힘들어하는데, 그런데도 이렇게 대단한 분들이 기회를 주시고 저를 많이 배려해주시니, 그 과정에서 또 많이 배우거든요.
 그런데도, 종범 작가님과 함께하고 싶은 지점이 있었으니 다양한 분들과 협업할 수 있었겠죠. 그리고 반려자인 전지 작가와의 협업도 빼놓을 수 없잖아요.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매우 필요한 존재 중 하나가 옆에서 지켜봐주는 사람이에요. 해결책을 주는 것도 좋지만, 매번 엄습해오는 불안감을 다독여주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전에는 동료들이 그 역할을 해줬고, 지금은 아내와 제가 서로에게 그런 역할을 해줘요. 작업 과정에는 늘 불안이 동반하는데, 저와 전지 작가는 서로가 옆에서 지켜봐 주고 다독여주는 그 자체로 큰 조력자인 것 같고, 실질적으로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어떤 게 더 좋거나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될지 잘 모를 때 물어보면 되게 명확하게 조언을 주기도 하고요.
현재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유
“오래된 물건이 매력적인 건 완벽해서라기보다, 부품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서울과학사’도 ‘지금 서울’이기 보다는 ‘약간의 과거 서울’을 기록하는 아카이브 작업의 성격이고, 작가님의 SNS를 보면 오래된 물건, 부품 등에 다정한 미소를 보내세요. 오래된 것에 관심을 두고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울과학사’의 경우는 과거에도 관심이 있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현재예요. 현재라는 것이 사실은 가장 포착하기 힘든 순간인 것 같거든요. 왜냐하면 과거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과거의 기록 중 생략된 부분들이 있어요. 당시에 관심을 받지 못하면 기록에서 생략되는 거죠. 그래서 현재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약간 낯설게 보는 눈으로 관찰했을 때 굉장히 특이한 것들이 있거든요. 자세히 보면 특이한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기록에 남지 않을 것들이요.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저희가 처음 만든 모형 키트 네 가지가 있는데, 전부 다 길거리에 있는 것들이에요. 불법주차 차량을 감시하는 카메라가 달린 전봇대 형태, 지붕이 있고 사거리에 서 있는 ‘교통신호제어기’, 그리고 이동형 쓰레기통과 같이 작은 포장마차 수레 같은 것 등 일상적으로는 관찰할 수 있지만 눈을 감고 머릿속에 떠올려보면 형태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거나, 나중에 그 자료를 찾아보고 싶어서 찾아보면 이미지로도 검색이 안 되는 것들이요. 정확하게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것들이죠. 이처럼 우리 주변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지만 관심 바깥의 대상으로 치부되는 것들에 관심 두고 있었어요. 모형으로 만들어 보여주면 사람들이 ‘와 예쁘다!’ 하며 주목하고요. 사실 주변에 많이 보고 동시대에 함께하는 것들인데 자세히 보지 않아서 말로는 그것이 조형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혹은 구조적으로 어떤 형태인지 잘 전달되지 않거든요.

서울과학사, <Made in Seoul> 중에서
 오래된 것에 대한 관심은 비단 ‘서울과학사’ 활동 뿐만 아니라, 빈티지 조명 수리 작업을 보면서도 들었던 생각이었어요.
한번은 빈티지 조명을 수집하시는 분이 물어물어 제게 보기 힘든 빈티지 조명을 고쳐달라고 찾아오신 거예요. 조명의 밑에 몸체를 지탱하는 무게 축 베이스 부분과 수직 파이프 자재 부분의 나사산이 망가져서 이들을 붙일 수 있겠냐고 찾아오셨어요. 결론적으로는, 그걸 분해하고 고장 난 부품을 깎아서 운 좋게 고쳐 드렸어요. 근데 그 부품 안을 들여다보니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더라고요. 원래의 디자인 설계는 회전하는 축이 있었는데, 처음부터 부품 성형이 잘못되어 회전하지 않은 채로 처음부터 쭉 사용해오신 거였어요. 원래 의도와 다르게 사용하다 보니 결국 나사산에 무리가 와서 마모되었던 거죠. 작업을 마무리하고 의뢰인께 설명을 다 드렸어요. 앞으로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도요. 개인적으로 제가 빈티지 물건을 모으지 않지만, 오래된 것도 고치며 사용하시려는 모습을 보고 오래된 것의 어떤 재미, 묘미, 그 안에 들어가는 이야기의 힘을 생각하게 됐어요.

먼 길을 미리 보고 돌아갈 준비
 전시 집기를 만들 때 실용과 효용도 중요하지만, 버려지는 것을 최소화하려는 노력도 있습니다. <흙흙흙> 전시에서 조립식 앵글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그리 한 것을 보았고, <마르쉐@>와 감자꽃스튜디오를 위한 기물들, <온 모빌리티> 전시와 <팩토리 키오스크> 등 많은 작업이 하나의 용도에 그치지 않고 기민하게 여러 상황에서 유연하게 활용되는 걸 염두에 두는 편이신 것 같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디자인 과정에서 조건들이 이끄는 길을 따르는 방법을 선호합니다. <흙흙흙> 전시에서 만들었던 전시대는 지하층의 좁고 긴 공간에 이들을 사후 분해해서 보관했다가 1년 뒤 영월에서 사용할 조건으로 만들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분해가 가능하고 부피가 줄어드는 조립식 앵글을 바탕으로 필요한 부품을 제작해서 익숙한 요소와 낯선 요소를 조합해 원하는 기능을 만들어 낼 수 있었어요. <마르쉐@>은 도심형 이동 장터에 맞게 운반 시 접어서 부피를 줄이는 요소를 중시하고 필요한 만큼의 강성에 가벼운 무게를 유지하도록 고민해서 제작하였고요. 
이러한 각각에 주어진 개별 조건들이 결과적으로는 자연스럽게 그 상황에 잘 어울리는 작업물로 안착이 되는 것을 이상적인 디자인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대부분은 단순한 조건의 나열처럼 느껴지거나 먼 길을 돌아 조건들 이외의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죠. 디자인의 어려운 점은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그 먼 길을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느냐’하는 점인 것 같습니다.

<팩토리 키오스크>, 2013
 끝으로, 머릿속에 그리는 이상적인 디자이너, 제작자의 모습이 있나요?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콘 와지로라는 학자를 좋아합니다. ‘고현학’이란 걸 만든 일제강점기 학자인데요. 즉 ‘현재를 탐구’하는 거죠. 우리나라에 몇 차례 와서 조사도 해서 관련 책도 남아 있어요. 그분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옛날에는 고궁이나 왕가의 유물과 같은 것만 연구했는데 콘 와지로는 민가를 관찰하고 주변을 기록했어요. 그분 이전에는 그런 작업이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민속학이라는 학문이 있지만, 이분은 그 토대를 만든 셈이에요. 그런 것처럼 현재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자세히 보고 거기서 새로운 걸 읽어내거나 다양한 것들을 들어낼 수 있는 태도가 저에게 매우 중요한 감각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 안에 매우 오묘한 세계가 있거든요. 끝없이 거듭한 생각으로 유추해낸 원리도 있고 미감도 있고요.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가’는 어려운 질문이지만, 옛사람의 지혜를 지금과 연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지만, 작업할 때 욕망으로 밀어붙이는 건 저한테는 에너지가 달려서 어려운 반면에, 오랫동안 사람들이 다듬은 지혜를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가지고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막연하게나마 있거든요.

사진. Yolanta C. Siu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오래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점에서 나와 김종범 작가는 비슷한 결의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나는 현재에서 어려움에 닥치거나 막막할 때 오래된 것에서 실마리나 지혜를 얻기 위해 가장 가까운 현실에 눈을 감았다면, 그는 현재, 지금을 매우 사랑하기에 지난 시간도 소중하게 끌어안는 사람이었다. 디자인과 제작, 지금과 과거를 연결하는 그의 감각을 오래오래 지켜보며 배우고 싶다.
김종범
디자이너 그룹 ‘노네임노샵’에서 각종 가구 및 장치물을 제작하였고, 2015 독립모형점 ‘서울과학사’ 설립 및 2019년 장치들의 집합체인 모터사이클을 만들기 위해 ‘레어바이크’를 설립하여 제작을 기반으로 한 여러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rarebike 

“정말이지 안 해본 거 없이 다 해봤어.” 팩토리의 홍보라 대표 (이하 보라보라)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 ‘정말’은 진짜 정말인 게, 팩토리가 처음 만들어진 2002년부터 최근까지를 얼추 더듬어보면 주제, 분야, 장르, 프로그램, 표현, 공간, 심지어 운영방식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작은 예술공간이 앞구르기 옆구르기 하며 만들어낸 촘촘한 시도는 대체 그 안에 무슨 에너지가 일었기에 가능했을까 싶다. 사진과 짧은 글들로 돌아보면 모두가 반짝이는 순간이지만,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으고, 시행착오를 겪고, 울다 웃으며 밤을 보내고 포옹했는지는 미처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본 인터뷰 시리즈는 팩토리 안팎에서 함께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만들어지기까지, 또한 앞으로 만들어나갈 함께 그린 풍성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를 기대하며 기록하는 것이다. 당신과 우리, 지난날과 앞으로의 시간, 그리고 지금 여기 모두로 열려 있기를 바라며.

팩토리2 드림
팩토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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