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새 집으로 이사를 와서 신난 유령이. 그런데 전 주인이 쓰던 수첩부터 화분과 조각상까지, 알 수 없는 흔적들이 계속해서 발견된다는데?!
👻: 오늘은 소설부터 영화, 뮤지컬까지 완벽한 찬사를 받으며 스릴러 장르에 한 획을 그은 작품 <레베카> 이야기를 들려드릴게령!

▲ 뮤지컬 <레베카> 포스터, 출처 : EMK 뮤지컬컴퍼니
어젯밤 꿈속 맨덜리 🌌
동화 속에 등장할 것처럼 고풍스럽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품은 대저택 ‘맨덜리’. 모든 이야기는 지난밤 그 저택이 나오는 꿈을 꾼 ‘나’가 16년 전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작돼요. 주인공 ‘나’는 원래 미국의 부유층 부인을 고용주로 모시고 지내던 여인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부인을 따라 방문한 여행지에서 막심 드 윈터를 만나게 돼요. 영국 최상류층 신사인 막심은 모두가 칭송하는 여인 레베카를 아내로 맞이했지만, 그녀는 1년 전 의문의 보트 사고로 목숨을 잃었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막심은 '나'의 순수한 모습에 마음을 열게 되고,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결혼을 약속해요! 그런데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죠.

남편 막심이 소유한 맨덜리 저택은 아름답지만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곳이었어요. 막심을 따라 맨덜리 저택으로 향한 '나'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기묘한 기운을 느끼는데요. 막심의 죽은 전 부인 레베카의 이름을 모두가 되뇌고 있는가 하면, 물건마다 레베카의 이니셜(R)이 새겨져있는 등 집 안 곳곳에 그녀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었거든요. 특히나 집사 댄버스 부인은 옛 안주인이었던 레베카를 광적으로 숭배하며, ‘나’에게는 유독 얼음같이 차갑고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죠. 

▲ 영화 <레베카> 중 막심과 ‘나’, 
출처 : 네이버 영화
사랑하는 막심마저 레베카를 잊지 못하는 모습에 점점 위축되어 가던 무렵, ‘나’는 가장무도회*를 열어 분위기를 전환시켜 보려고 해요. 하지만 자신을 미워하는 댄버스 부인에게 속아 레베카가 생전 입었던 것과 똑같은 드레스를 준비하게 되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막심과의 관계는 더욱 위태로워지죠. 급기야 죽은 레베카의 보트와 시신이 뒤늦게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가장무도회: 가면 등을 쓰고 특이한 분장으로 춤을 추는 사교 모임.

👻 :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는 레베카와 맞서야 하는 ‘나’가 너무 안쓰러워령… 그런데 ‘나’에게는 이름이 따로 없는 건가령?

▲ 영화 <레베카> 중 댄버스 부인과 ‘나’, 
출처 : 네이버 영화
<레베카>엔 레베카가 등장하지 않는다?! 😮
이야기 속 모든 사건들은 주인공 ‘나’의 시선을 따라가며 전개되지만, ‘나’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아요. 특히나 막심과의 결혼 후 사람들은 ‘나’를 ‘드 윈터 부인’이라고만 부르죠. 작중 시점에 이미 세상을 떠났음에도 모두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며 맨덜리를 지금까지도 지배하고 있는 듯한 레베카와는 매우 대조적이에요. 직접적인 등장 없이도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레베카의 존재감이 정말 압도적이지 않나요? 레베카는 생전에 주변 남성들에게도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외도를 즐기는 등 대담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묘사되는데요. 이런 캐릭터 설정은 원작 소설이 나왔던 1930년대, 권위적인 남성에 대응하는 파격적인 여성상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고.

'나'는 맨덜리에서 괴로운 방황의 시간을 보내요. 출신, 외모, 사교활동 등 모든 영역에서 완벽한 귀부인의 표본이었던 레베카와  비교를 당하기 일쑤였죠. 게다가 댄버스 부인을 비롯한 하인들조차 그녀를 새로운 안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깊이 고뇌하던 막심은 자신이 레베카에게 협박당했었고 위선적인 그녀를 증오한다는 진실을 '나'에게 고백해요. 그리고 바로 그때, '나'는 남편 막심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임을 확인하죠. 

이를 시작으로 순진한 소녀 같던 ‘나’는 점차 당당하고 강인한 여성으로 거듭나, 소중한 사랑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요. 절망에 빠져있던 막심을 일으키고, 과거에 집착하는 댄버스 부인과 레베카의 사촌의 위협에 지혜롭게 대처하기도 한다고. 이처럼 <레베카>는 유령처럼 사라지지 않던 레베카의 검은 그림자를 ‘나’가 걷어내고 진정한 드 윈터 부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어요.
 
👻 : 레베카와 ‘나’의 구도가 흥미롭네령! 그런데 뮤지컬로만 알고 있던 이 이야기, 사실은 소설이 원작이라구령?
▲ 대프니 듀 모리에와 소설 <레베카> 초판, 출처 : Wikipedia
서스펜스의 여왕 🖋
우리나라에서는 뮤지컬로 더 유명한 <레베카>는 영국 출신의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가 1938년에 출간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해요.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듀 모리에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는데요, 상상 속 허구의 세계에 매료되어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제2의 자아를 만들어냈다는 일화도 있죠.

듀 모리에 하면 ‘서스펜스’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그녀의 작품들은 영국 전통 공포소설에 기반해 정교하고 사실적인 심리를 풀어나가는 것으로 유명하죠. 단순히 놀라움과 공포를 안겨주기 위한 스릴러가 아니라, 강박이나 성적 지배, 억압된 자아의 해방 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서사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거예요. 그녀의 다섯 번째 소설인 <레베카> 역시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설 양식인 고딕문학*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고딕문학: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까지 영국에서 유행한 소설. 중세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대저택의 어두운 비밀을 다루는 내용이 주를 이룸.

듀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는 출판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대성공을 거두었고 오늘날까지 전 세계의 사랑 받고 있죠. 그녀는 문학적 공헌을 인정받아 1969년에 남자의 기사 작위에 해당하는 데임 작위를 받았고, 1977년에는 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회로부터 그랜드 마스터상을 수상했어요. "서스펜스의 여왕",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그녀는 <레베카> 외에도 <새>, <자메이카 여인숙> 등의 작품을 남겼는데요. 그 중에서도 <새>는 인간을 이유없이 공격하는 새들의 습격 사건을 통해, 인간이 느끼는 일상적인 불안공포를 그려낸 단편소설이라고.
 
👻 : 심리 스릴러에 정말 탁월한 솜씨를 보였군령! 그러고 보니 <레베카>와 <새>는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들 아닌가령?

▲  영화 <레베카>(1940)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스릴러계 두 거장의 만남 🎬
맞아요, 영화 <레베카>와 <새>는 모두 듀 모리에의 소설을 원작으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재탄생시켰어요. 히치콕은 ‘나’의 심리를 옥죄어오는 섬뜩한 연출을 필름에 담아냈고,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테리한 전개와 치밀하고 세련된 미장센*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죠. 흑백 영화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원작이 지닌 긴장감을 생생하게 보여주어, 히치콕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촬영상까지 수상한다고. 

*미장센: 연극과 영화 등에서 연출가가 무대 위의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배열하는 작업
▲ 알프레드 히치콕과 영화 <레베카>(1940) 포스터, 출처 : Wikipedia
이처럼 듀 모리에의 작품은 히치콕의 손을 거쳐 새로운 매력을 가진 영화로 탄생했어요. 히치콕이 듀 모리에의 여러 작품을 영화화해서인지, 듀 모리에는 "히치콕의 영원한 뮤즈"라고 불리기도 하죠. 서스펜스 영화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은 인간심리를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표현한 <사이코>, <이창>, <현기증> 등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그는 영화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혁신적인 카메라 구도, 정교한 영화 편집, 박진감 넘치는 음향 등을 활용했고, 그러한 천재성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 : 영화 <레베카> 특유의 긴장감과 섬세함이 히치콕 감독으로부터 탄생한 거였군령! 그렇다면 뮤지컬 <레베카>는 어떻게 탄생한 거예령? 

▲ 뮤지컬 <레베카>의 무대, 출처 : EMK 뮤지컬컴퍼니
스크린을 넘어 무대로 🎭
뮤지컬 <레베카>는 <엘리자벳>, <모차르트!>로도 명성을 날린 뮤지컬계 최강 콤비 미하엘 쿤체실베스터 르베이의 작품이에요. 쿤체가 처음으로 <레베카>를 알게된 것은 10대 시절이었는데요, 듀 모리에의 미스터리한 스토리 전개에 매료되었던 그는 훗날 소설을 다시 접하며 뮤지컬화를 꿈꾸었죠. 하지만 당시 이미 여러 작가로부터 <레베카>의 상품화 제안을 받았던 듀 모리에의 아들은 판권*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듀 모리에의 아들은 쿤체의 흥행작인 뮤지컬 <엘리자벳>을 보게 되고, 이에 감명 받아 끝내 뮤지컬화를 승인했다고.

*판권: 저작권을 가진 사람과 계약하여 그 저작물의 이용 및 판매 등에 따른 이익을 독점할 권리.

그렇게 탄생한 뮤지컬 <레베카>는 2006년 오스트리아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고 관객과 언론은 뜨거운 반응을 보냈어요. 아름답고 웅장한 뮤지컬 넘버*들을 바탕으로 로맨틱적 서사가 한결 더 강조되었고, 수미상관을 이루는 회상 장면과 360° 회전하는 발코니, 가장무도회, 불타는 맨덜리 등의 화려한 무대 세트 덕분에 극의 몰입감도 극대화되었다고. 뮤지컬에서 특히나 주목받는 것은 바로 댄버스 부인 역할이에요. 사실상 레베카의 대리자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폭발적인 고음 넘버를 모두 소화해내야 하거든요. 한국에서도 실력파 배우들이 꾸준히 참여하여 흥행에 크게 성공했는데, 이에 원작자 쿤체 또한 “한국 무대가 세계 최고”라며 찬사를 보냈다고.

*넘버: 뮤지컬에서 사용되는 노래나 음악을 일컫는 말.
 
👻 : 소설, 영화, 뮤지컬 각각 서로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네령. 플로터들도 맨덜리 저택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지 않나령?
플롯 TMI 💎
어서 돌아와, 여기 맨덜리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쫓아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렬하게 울려퍼지며 극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뮤지컬 <레베카>의 넘버들! 하나 하나가 주옥같지만 그중에서도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넘버는 극의 제목과도 동일한 “레베카”일 거예요. 떠나간 레베카를 그리워하며 온 극장을 장악할 기세로 그 이름을 부르는 댄버스 부인과 그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나’대립이 잘 표현된 곡이죠. 신영숙 배우와 이지혜 배우의 듀엣 무대를 준비했으니, 궁금한 플로터는 아래 영상을 시청해보세요!

👻 : 전율이 느껴지는 대표 넘버 “레베카”, 다들 한 번씩 듣고 가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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