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흰색 동그라미의 흡착 고무에 의지하여 쇼윈도에 붙어있는 인형들을 지나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무엇부터 봐야할지 당황스러운 난잡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온갖 사물이 사방에 널려 있는 전시장의 구조를 파악하고 동선을 만드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립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시, 핸드폰 광고판, 가게 밖 화장실 열쇠, 사무실 파티션, 초록색 게시판 같은 것들이 각자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파악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동선을 만듭니다.

벽면에는 어디서 많이 본 게시판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학교 복도, 관공서, 지하철, 식당 같은 곳에서 본 것 같은, A4 종이를 끼워 넣을 수 있는 아크릴판, 초록색 천이 붙은 판넬, 지저분한 열쇠고리가 달린 열쇠, 정체불명의 벼 같은 것들이 벽에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서 흘러나온 파편들이 전시장 중앙에 모여 아무렇게나 자라난 '척추동물'이 됩니다. 제멋대로 붙어서 아무렇게나 자라난 것들은 조금은 엉망이고 못 생겨져버리기도 했지만 또 너무 친근하고 편안한, '우리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가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이 전시를, 그저 '한국적인' 키치를 재현하는 전시라고 쉽게 말해버리고 싶지 않고, 한 발짝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네요. 좋은 언어로 설명하기 이전에 '마음'이 먼저 가는, 그 정신없고 못 생긴 광경이 너무 싫기도 하고, 그렇지만 또 너무 좋기도 한, 그런 복잡한 마음이 느껴지는 전시였습니다. 

소설의 인물들은 모두 평범하고 일상적인, 우리 모두 한 번쯤 스쳐간 적 있는 사람들입니다.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옷차림을 지적하는 남자친구, 업무라는 핑계로 일주일에 절반은 술을 마시고 오는 아빠, 가족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 딸. 이처럼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한 번씩은 겪은 사람들에게 펼쳐지는 으스스한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점은 너무나 '한국적인' 상황과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표제작 「칵테일, 러브, 좀비」에서는 어느 날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좀비가 됩니다. 그런데 그 바이러스의 진원지는 서울의 한 국밥집으로 밝혀집니다. 사람들은 왜 국밥집에서 좀비가 되었을까요? 이렇게 사람들이 좀비가 되는 원인부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까지(스포일러라서 하나도 말할 수가 없다니!) 한국에서 정말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서 저는 정말 설득당했답니다.(이 소설대로 어느 날 좀비가 나타난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 이를테면 좀비가 된 가족을 버리지도 버리지 않을 수도 없는 마음 같은 것들도 우리 안의 '그것'이어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책을 먼저 보고 최윤의 전시를 봤는데, 전시장을 걷는 내내 자꾸만 책 속의 사람들 생각이 나서 혼자 웃겼습니다. 밥 때가 되면 먹지도 못하는 밥을 달라고 식탁을 내리치는 한국 좀비는 아무래도 무섭다기보다는 최윤의 작품처럼 조금 엉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두 작업과 다르게 김민경 개인전 《STANDARD》는 모든 게 정갈하고 깔끔한 전시였습니다. 서랍장, 받침대, 선반, 포스터 함의 모양을 하고 있는 작품들은 외관상 규격화된 사이즈를 따르는 것처럼 정돈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일상과 미술의 중간에 놓인 작품은 사물로서는 기능적으로 어딘가 어긋나 있고, 작품으로서는 개념적으로 어딘가 불편하기도 합니다. 그 모습은 원래는 가정집이었을 전시 공간의 모습과도 닮았습니다. 이 공간은 가정집으로서의 본연의 기능으로서 어딘가 어긋나 있지만, 동시에 전시장으로서 새로운 기능에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작업들이 그 자체로 공간과 개념적/미적으로 세트처럼 잘 어울리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