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중국집을 찾아서
요기요의 키친 탐험 

"우리 가게에서 뭘 하겠다는 거예요?" 인천 영종신도시 상가 건물 2층에 있는 비룡 사장님은 정말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요기요의 인천 특집 두 번째 테마인 동네 중국집 탐방 중이었다. 비룡은 인천 지역 요기요의 상위 랭커이자 이번 촬영의 수많은 섭외 시도 중 유일하게 우리가 부탁한 조건을 들어준 곳이다. 그 조건은 주방 공개. 주방을 열어 조리를 해주는 걸 허락해 주는 식당은 생각보다 적다. 칼과 불을 쓰는 실무가 이루어지는 곳이고, 흙과 피 같은 부산물이 남아 있는 곳이며, 이 모두가 잘 관리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팀도 비룡 같은 일반 중식당을 촬영해 보는 건 처음이었다. 기대 반 불안 반으로 주방에 들어갔다.

면따라 길따라 - 인천의 중국집을 찾아서
일시 ㅣ 벚꽃이 한창이던 3월의 어느 날
장소 ㅣ 인천 중구, 미추홀구, 부평구
탐험 난이도 ㅣ 4.0/5.0  ➡ 중국집 섭외가 쉽지 않았다.

시지프스의 짜장

주방은 깨끗했다. 식재료 창고와 실 주방이 별도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식재료에 붙은 흙 등 부산물을 상당 부분 제어할 수 있을 것이었다. 주방의 삼면에 세 남자가 각각 서 있었다. 입구 기준 가로가 짧고 세로가 긴 공간에서 오른쪽 벽에 화구가, 왼쪽 벽에 음식 나가는 창과 싱크대가 있었다. 오른쪽 벽 앞에서 남자가 웍을 돌리고, 왼쪽 벽 앞에 선 남자는 설거지를 하고, 벽 끝에 있는 남자가 그 두 명을 지켜보았다. 사장님은 벽 끝에 있는 남자와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저 사람만 한국어를 할 수 있다면서.


요리를 따로 부탁드릴 필요는 없었다. 화구 앞 남자는 이미 요리를 하고 있었다. 파티 사이즈 피자 지름에 깊이가 벤티 사이즈 컵만큼은 되어 보일 웍을 들고 있었다. 웍은 현역 조리사의 매일 업무에 쓰이는 만큼 아주 기름 길이 잘 들어 있었다. 남자는 그 안에 양파를 가득 넣고 볶았다. 왼손으로 웍을 불 위에서 밀어주다가 순간적으로 당겼다. 그러면 팬 가득 들어 있던 양파의 위아래가 뒤집히며 양파가 볶아졌다. 비룡은 고급 음식점은 아니지만 남자의 손길에는 확실한 기술이 있었다.

양파를 그렇게 많이 볶아서 뭘 하나 했더니 저녁 식사에 쓸 짜장면의 짜장을 미리 만드는 중이었다. 이렇게 만들어 놓고 짜장면이나 볶음밥에 부어준다. 한 번 하면 40인분 정도 되고, 장사가 되는 날은 이걸 몇 번씩 해야 한다고 했다. 가히 시지프스의 바위같은 시지프스의 짜장이었다. 


"중국 사람들이 오래 버티고 한국 사람들은 오래 못 버텨요." 세 명 중 유일하게 한국어를 하는 남자가 말했다. 그 역시 화교고, 중국어를 할 줄 알아서 이 일을 시작했고, 전에는 다른 일을 했으며, 이름을 밝히지는 말라고 했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물었더니 그는 면장이라는 호칭을 알려주었다. 그가 면을 뽑기 때문이었다.


보통 중국집에서도 면을 뽑는다. 마케팅 때문이 아니라 효율을 위해서. 면 상태로 된 걸 보존하느니 제면기를 하나 두고 주문이 들어오면 1인분을 뽑는 게 빠르다. 촬영을 위해 간짜장을 부탁드리자 조리사와 면장 2인조가 함께 움직였다. 조리사는 짜장 40인분을 다 만들고 바로 씻어서 깨끗해진 웍 위에 다시 한번 양파 한 바가지를 붓고 볶기 시작했다. 볶은 양파에 춘장과 소스를 조금 더 넣어 양파에 묻도록 볶아주면 간짜장 1인분이 완성된다. 면장은 면을 뽑고 바로 삶았다. 삶는 시간은 1인분 기준 50초. 상당히 빠르다. 면이 익으면 면장이 그릇에 면을 담고, 조리사가 간짜장을 붓는다. 전국의 짜장면집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분업 시스템이다.

"여기가 왜 장사가 잘되느냐고? 배달비를 안 받아서 그래!" 우리가 취재를 나왔다고 했을 때 사장님의 친구인 듯한 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생각하며 한입 맛보았다. 아니었다. 맛있었다. 양파가 많이 들어 향이 좋고 식감이 아삭했다. 인천공항에 가다 말고 여기까지 오라고 할 만한 음식일지는 모르겠으나, 우연히 들어왔는데 후회할 만한 집도 아니었다. 비룡 간짜장은 말하자면 이 동네 사람이 동네 중국집 3곳을 하나씩 시켜보고 이곳에 정착할 것 같은 맛이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취재팀끼리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그런데 왜 인천에는 배달비를 안 받는 중국집이 많지? 비룡 사장님 친구분의 말씀이 기억에 남았다. 그 이유는 조금 뒤에 갈 다음 중국집에서 알 수 있었다. 그 중국집에서 본 건 내가 언젠가 분명히 봤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었다.

자연발생적 딜리버리 시스템

영종도에서 인천대교를 지나 인하대학교 앞에 도착했다. 인하대학교 앞 인하각이 오늘의 두 번째 목적지다. 다만 인하각부터는 주방 사진이 없다. 섭외 없이 찾아갔기 때문이다. 섭외가 어려웠던 이유는 아까 설명했다. 식당 쪽 사정도 이해할 수 있다. 남에게 내 일터를 보여주는 건 귀찮은 일이다. 요리에 상당 부분 마진을 붙일 수 있는 고가품 요리(말하자면 파인 다이닝)정도나 가끔 그런 멋을 부릴 수 있는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도 주방 공개는 잘 안 한다. 


섭외는 못 했어도 인천에서 요기요 배달 주문이 많은 곳을 찾아 간판 사진이라도 찍고 가려 했다. 그런데 의욕적이고 호기심 많으며 식사량도 많은 사진가 신동훈이 온 김에 한 그릇 먹고 간짜장이라도 찍고 가자고 했다. 우리는 즉석 간짜장 동호회가 되어 인하각으로 들어갔다. 간짜장을 사 먹고, 왜 찍냐고 하면 간짜장 동호회라고 하기로 했다. 다행히 사장님은 우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까 비룡에서도 간짜장을 시켰으니, 비교를 위해 간짜장을 주문했다. 저녁 시간 조금 전인 인하각은 한가했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6명과 선생님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그러게, 학생들을 불러 짜장면 한 그릇 사줄 만한 곳이었다. 우리도 간짜장과 삼선짬뽕을 시키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중 아주 의미심장한 광경을 보았다. 인하각 벽 한 켠에는 지도가 걸려 있었다. 벽 하나를 다 가릴 만큼 큰 관내도. 대형 동네 지도를 보는 것 차제가 오랜만이라 신기했는데, 더 신기한 건 그 앞에 있는 어떤 중년 남성분이었다. 그는 소형 손전등으로 지도를 비추며 가상의 길을 그렸다. 배달 루트였다. 그 광경을 보자 인천이 배달 앱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음식 배달이 비즈니스가 되려면 세 분야 담당자가 필요하다. 조리. 주문/포장. 배달. 보통 식당은 조리와 홀 담당만 있다. 배달을 일상화하려면 식당 안에 주문/포장 담당자와 배달 담당자가 모두 있어야 한다. 이 두 담당자를 상시 고용해야 배달 서비스가 가능하다. 그랬던 곳이 치킨집, 중국집, 피자집이다. 배달 앱은 여기서 주문과 배달을 아웃소싱한 모델이다. 주문은 배달 앱이 받고 배달부는 프리랜서가 되어 배달 앱을 통해 중개를 받는다. 개별 식당 입장에서는 주문과 배달 인력을 인하우스에 두지 않고도 배달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된 셈이다. 요기요를 비롯한 대배달시대가 열린 흐름이다.


인천 중국집이 배달비를 안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주문만 아웃소싱하고 인하우스 라이더가 여전히 함께 하기 때문이었다. 즉 라이더들이 여전히 식당의 직원이었다. 그 결과가 동네를 속속들이 알고 오프라인 지도를 읽는 인하각의 배달 아저씨였다. 배달 아저씨는 인천 상륙 작전을 준비하듯 심각하게 용현동 관내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뒷모습은 분명히 프로의 뒷모습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음식이 도착했다. 인하각의 간짜장은 비룡보다 20%쯤 저렴했다. 먹어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양파 양이 적고 양배추가 더 많았다. 나는 이 글로 결코 인하각과 비룡의 우위를 가리려는 게 아니다. 다른 동네에서 다른 단가로 판매되는 음식점이니 다른 재료가 쓰일 수 있겠다고 이해했을 뿐이다. 인하각 간짜장도 맛있었다. 일단 가격에 비해 양이 많았다.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근처에 있는 동네에서 이보다 큰 미덕이 있나. 인하각 간짜장의 맛은 제한된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한 맛이었다. 우리는 인하각의 간짜장과 삼선짬뽕을 조금 남기고 일어났다. 즉석 간짜장 동호회가 갈 곳이 한 군데 더 있었다. 

맛이라는 것

완전히 해가 진 인천 시내 도로를 약 30분쯤 더 달렸다. 인천의 풍경도 내가 살면서 본 서울 풍경과 비슷했다. 넓은 도로, 조금 좁아지는 도로, 도로 폭에 비례해 높아지고 낮아지는 건물들, 헐리는 옛날 동네들, 그 사이로 지어지는 브랜드 아파트들. 우리의 오늘 동선은 바다에서 출발해 점점 서울 쪽으로 가까워졌다.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는 부개역 근처에 있는 유래각이었다. 


도착하니 우리가 마지막 손님인 것 같았다. 새마을금고 근처의 작은 시장 골목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유래각도 언젠가 가본 중국집 같았다. 8시쯤 들어가니 켜져 있는 KBS1 일일드라마, 이때쯤이면 조금 긴장을 풀고 있는 동네 중국집 홀 사모님. 유래각은 30석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중국집이었다. 우리는 또 간짜장과 삼선짬뽕을 시켰다. 요기요 담당자까지 세 명 있었는데 음식 두 개만 시키기가 좀 그래서 여기서만 있는 게 뭘까 보다가 미니 깐풍기를 시켰다.

먹어보니 오늘의 간짜장은 양파와 양배추의 비율, 즉 양양비로 표현할 수 있었다. 비룡의 양양비는 3:0이다. 양파가 100%였고 양배추는 없다. 인하각의 양양비는 1:2였고, 유래각의 양양비는 2:1이었다. 신기하게 가격 역시 양파의 양에 비례했다. 사실 양배추는 짜장의 향을 돋구는 데는 관여하지 않으니, 식감도 있고 향도 돋구는 양파가 더 나은 식재료일 것이다. 적어도 간짜장에서는. 그러나 단가를 맞추기 위해 양배추를 섞는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앞서 말했듯 '요기요 히트 인천 중국집 3곳 순위 결정'같은 걸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모두가 채널과 발언권을 가진 세상이지만 우리가 언제부터 음식을 평가했다고. 우리가 음식에 대해 뭘 알까? 우리는 조리의 영역을 얼마나 숙지한 채 합리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까? 지옥의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화구에서 볶아내는 중국 식당의 음식에 대해? 적어도 오늘 가본 식당의 음식은 원칙과 절차에 따라 조리되어 바로 나온 음식이었다. 간짜장은 식재료를 볶아야 한다. 볶음은 장인의 영역이다. 이날 볶여 나온 간짜장은 모두 내 기준에는 상응했다. 플레이팅에 치중하느라 조리의 기본은 던져버린 인스타 맛집보다 훨씬 진정성이 있었다. 


식당은 많다. 유명한 식당도 많다. 소문난 맛집도 많다. 평점 높은 집도 많다. 그러나 들어갔을 때 나른한 친절함으로 사람을 맞아주는 식당은 이제 많지 않다. 먹던 대로 적당히 성의 있게 음식을 해 주는 식당도 많지 않다. 오며가며 손님들에게 농담을 섞어 친근감을 표하는 소박한 분들이 홀에 계시는 식당도 많지 않다. 그렇게 오래된 후드 티셔츠를 입듯 편안하게 갈 수 있는 식당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날 즉석 간짜장 동호회가 찾아간 인천의 중국집 세 곳은 모두 그런 곳이었다. 여러분에게 가 보시라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 같은 성격이라면 가서 분명 뭔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박찬용 @parcchanyong

잡지 에디터. 라이프스타일이라 부르는 소비생활의 안팎을 찾아다니고 구경하며 정보를 만든다. 아레나 옴므 플러스의 피처 디렉터가 되어 일상이 더 다양해지고 풍요로워졌다. 월간지 마감이 잘 끝나서 5번째 책 《요즘 브랜드 2》의 편집자에게 이번 주 안에 연락할 예정이다.

포토그래퍼 신동훈 @hoonshin

요기요 디스커버리의 풀타임 4륜구동 SUV같은 사진가. 어디서든 진지하고 친절하고 호기심이 많다. 이번에도 신동훈 덕에 세 군데의 간짜장을 모두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요기요 외에도 여러 멋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모바일에서 접속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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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발행했던 인천 탐험에 이어, 인천 중국집을 탐험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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