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파키스탄 민간교류에서 배우는 교훈
공영수(한반도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네루대 역사학 박사)
분단과 학살의 기억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영국 식민지배를 종식하고 파키스탄과 분리독립 되었다. 무슬림 중심국가인 파키스탄과 힌두 중심국가인 인도가 그 이후로 서로를 상대로 세 번의 큰 전쟁(1947, 1965, 1971)을 치렀다. 두 나라가 분단과 함께 군사적으로 대치하며 전쟁까지 치렀다는 점, 그로 인해 난민과 영토분쟁이 여전히 상대국가와의 관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은 한국 현대사와 닮은꼴이다.
인도-파키스탄 분단 과정에서 자행된 폭력과 학살은 그 규모나 잔혹성에 비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약속받고 모인 인도의 독립 지도자들은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해서 독립하되 무슬림 과반 지역을 파키스탄으로 할 것을 합의했다. 그러나 인도와 파키스탄 지도자들이나 영국 정부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국경선이 그어졌던 지역과 그 주변은 각자가 선호하거나 상대 종교 집단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아 피난하는 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종교 세력 간 학살이 자행되었다. 특히 인도 서부 국경 펀자브 지역에서는 힌두교인, 무슬림, 시크교인 세 종교 세력들이 뒤엉켜 큰 규모의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인종 청소하듯 한 종교 세력이 다른 종교 세력을 학살하는 일이 자행된 것이다. 동부 벵골 지역 또한 힌두교인과 무슬림이 대립하며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피난을 떠난 사람들이 어림잡아 약 1,000만 명이나 되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인구 이동이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약 50만에서 1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1) 국가 대 국가가 현대 무기를 동원하여 전면전을 치른 것이 아닌 데도 이 정도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것은 당시 종교 간 유혈 투쟁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서로를 보는 눈
이렇게 분단 과정의 상흔이 있기에 힌두 중심 국가인 인도는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에 대한 시각이 전혀 곱지 않다. 다수 힌두교인은 대대로 이어져 온 조상의 땅 인도의 일부를 빼앗겼고, 외부 종교인 이슬람교가 힌두 왕국을 무너뜨리기 시작하면서 인도의 역사와 문화가 훼손되었다고 믿는다. 또한, 현재까지 호시탐탐 인도의 영토인 카슈미르 지역을 넘보는 것과 수시로 이어지는 테러 활동으로 인해 파키스탄은 인도인에게 테러 국가이자 실체로서 적이 되어 버렸다. 국지전이긴 했지만 세 번의 파키스탄과의 전쟁은 이러한 신념을 굳혀주는 역할을 했다.
파키스탄은 어떨까? 마찬가지다. 인도가 분리되기 전에 무슬림들은 전체 인구의 4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하층민들이 많았다. 이들은 독립된 인도에서 제2의 시민으로 차별받으며 살게 될 것이 뻔했다. 그렇기 때문에 파키스탄 건국은 그들 입장에선 해방과 평등을 실현한 사건이었다. 이들이 보기에는 인도 힌두교 중심의 카스트 신분 사회가 더 모순된 사회다. 이에 더해 무슬림 인구가 90퍼센트나 되는 카슈미르 지역이 파키스탄 영토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을 장악한 인도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악랄하고 거짓된 세력으로 비치는 것이다. 두 나라의 갈등은 일상에서도 마주할 수 있다. 크리켓 국가 대항전이 있을 때면 한일 축구 경기 때보다 더 격렬한 응원 대항전을 보게 된다.
마치 남북한 사람들이 분단과 한국 전쟁, 지속되는 도발 등을 경험하며 서로에 대해, 아니면 적어도 상대 국가 정부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타자화된 상대 국가 지도자나 사람들에 대한 증오의 이미지는 교육, 선전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고착화되어 8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이해는 평행선을 그리며 상대방에 대한 증오만 켜켜이 쌓여 가고 있다.
‘과정으로서의 평화’2) 만들기- 민간교류와 평화교육
하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이 이렇게 대립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한적이지만 양국 민간인의 방문이 가능하다. 고향 땅을 방문하는 이들의 행렬이 늘 있다. 종종 파키스탄의 수피 음악가들이 연주 여행으로 인도를 방문하여 델리에서 공연한다는 광고를 접하기도 한다. 두 나라의 민간 기구에서 인도-파키스탄의 평화 정착을 위한 교류와 학교 간의 자매결연, 문화 교류 등을 시행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정치, 군사적 대립이 서로에게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고 피해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노력을 벌이는 것이다. 평화는 두 나라가 더 발전하고 안전하게 살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다.
그중 가장 큰 규모의 민간교류로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파키스탄-인도 국민 포럼(Pakistan-India Peoples’ Forum for Peace and Democracy, Pipfpd, 이하 ‘파키스탄-인도 국민 포럼’)이 있다. 이 단체는 양국의 민간인들이 모여 1994년에 결성했고, 29년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가 다루는 이슈는 다양하다. 핵 감축이나 군비확대 반대, 카슈미르 이슈, 종교적 근본주의와 인권, 평화교육 등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온라인으로 현재까지 포럼과 강연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민간교류라는 것 자체에 한계점이 있지만 이들의 노력은 세 가지 측면에서 평가할 만하다. 첫째, 지속해서 만난다는 것이다. 양국 정치가 경색될 때도 이들은 지난 29년간 꾸준히 만나고 소통했다. 둘째, 대안 공동체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핵 감축, 인권, 민주주의, 종교적 근본주의 반대, 평화교육 등을 두 나라의 미래 대안으로 제시하고 필요하면 캠페인을 전개하는 등 대안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셋째, 편견을 깨는 다음세대 평화교육이다.3) 양국 청소년과 대학생들을 학교끼리 자매결연을 맺어 서로 만나는 일을 주선하기도 하고, 평화교육을 위한 대안 교과서 운동을 진행하기도 한다. 두 국가의 공통 유산과 장점들을 받아들이는 열린 교육이 편견을 넘어서는 첫걸음이 되고 다음세대를 평화 지킴이로 세우는 일이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은 남북한 상황과 다르지만, 평화 정착이 나라의 발전과 안보를 위해 필수라는 점은 같다. 20세기를 살아간 방식이 닮은 인도-파키스탄과 남북한은 평화를 현실로 이뤄야 한다는 동일한 현재진행형 과제를 안고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는…
2023년 5월 현재 한반도는 주변 강대국의 패권 경쟁으로 인한 편 가르기 시도와 남한과 북한의 강 대 강 정치, 군사적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과연 한반도 평화 구축이 가능한 일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더 우려되는 것은 민간교류의 단절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나 NGO, 종교 및 문화계 인사들의 방북이 끊어진 지 오래다.
한반도의 현시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파키스탄-인도 국민 포럼이 하는 일 중 제일 부러운 점은 지속적으로 만난다는 것이다. 지속해서 만나지 않으면 편견과 선입견을 깰 수 없다. 그것이 안 되면 상호신뢰를 구축하기 힘들다. 한시라도 빨리 민간교류가 재개되어 남북한 공동 이익과 평화 구축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남한의 교회와 기독교인이 평화를 위한 민간교류와 통일교육에 더 적극적이기를 기대한다. 평화와 화해의 기독교 신앙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화의 사도로 기능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일지라도 교회는 평화를 선포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회가 한국 사회에 제시할 수 있는 대안 공동체는 한반도 평화에 앞장서는 공동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교나 가정, 교회,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통일교육이 평화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재점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혐오 교육을 멈추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혐오만이 아니라 남한 내에 있는 지역 차별, 이주민 혐오 등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교훈이다.
1) Urvashi Butalia, The Other Side of Silence: Voices from the Partition of India, New Delhi, Penguin, 1998, 3.
2) Ranbir Samaddar and Helmut Reifeld(ed.), Peace As Process: Reconciliation and Conflict Resolution in South Asia, New Delhi, Manohar, 2001.
3) Lalita Ramdas, “Dismantling Prejudice: The Challenges for Education” in Bridging Partition: People’s Initiatives For Peace Between India and Pakistan (edited by Smitu Kothari and Zia Mian), New Delhi, Orient Blackswan, 2010, 19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