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거래를 했습니다. 갑자기 중고 거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아주 약간 영화 같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무슨 이런 걸 가지고 영화 같다고 말하는 것이냐고 따질 수 있을 정도로 소소한 에피소드이기는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최근에 본 어떤 영화 한 편이 떠오르는 일화였는데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아무 의미 없는 짧은 중고 거래 과정에서 불현듯 영화를 떠올렸던 것뿐입니다. 저처럼 나의 하루가 한 편의 영화인 줄 착각하며 사는 사람만 느낄 수 있었던, 그만큼 사소한 이야기입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밑밥을 까는 것인지, 그 사연이 정말로 궁금하신 분만 이어지는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일단 제가 떠올린 영화를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변성현 감독의 <길복순>입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나름 뜨거운 영화죠. 무엇보다 출연한 배우들의 이름이 화려합니다. 전도연, 설경구, 구교환, 이솜. 그리고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화의 매우 초반에 잠깐 활약하시는 황정민. 반응을 보아하니 혹평이 꽤나 많은 영화인 것 같은데 저는 나름 흥미로워 하며(?) 관람을 하기는 했습니다. 킬러들의 세계를 영화배우들의 세계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재밌게 느껴졌거든요. 살인 의뢰를 ‘작품’이라고 표현하거나, 그 의뢰와 의뢰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을 A급 B급 등으로 칭하는 게 말 그대로 재미는 있었습니다. 분명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와 관련된 디테일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요.

하지만 그 디테일 중 저의 마음에 남았던 대사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드라마를 몰라야 일이 편해”라는 대사입니다. 전도연이 연기한 길복순의 입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영화에서 복순은 A급 의뢰를 맡게 됩니다. 그건 한 젊은 청년을 살해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다만 ‘자살로 보이게 해야 한다’는 특별한 조건이 붙어 있었죠. 그래서 A급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작업이었습니다. 대사는 복순이 작업을 하기 전 장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작업을 보조하기 위해 파견된 인턴이 유서를 발견한 복순에게 묻습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그러자 복순은 “됐어. 드라마를 몰라야 일이 편해”라고 답합니다.


이 대사가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러니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죽일 때 그 사연을 모르는 게 편하다는 말은, 사람을 죽여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얼핏 합당한 말처럼 들리기는 합니다. 특히 죄가 없는 것 같은 사람을 죽여야 할 땐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영화는 살인을 영화 연기와 비유하고 있었던 영화입니다. 이에 빗대어 다시 적어보자면 복순의 이 말은 “어떤 배역을 연기할 땐, 그 배역의 전사를 몰라야 연기하기가 편해”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이 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연기에 대한 통념과는 다릅니다. 배우가 연기에 임할 때 배역의 히스토리를 연구하는 것은 일종의 미덕처럼 여겨지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건 편견일 수도 있겠다, 경지에 다다른 어떤 배우들은 사연을 머릿속에 담지 않은 채 오로지 연기만을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편했기 때문에, 그렇게 잘 연기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이 아는 것은 모든 일에 어떻게든 쓸모가 있을 것이지만, 또 너무 많이 알아도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 그 아이러니를 중고 거래를 하다가 느낀 것입니다. 에어팟 프로 2세대를 구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편의상 팟프2라고 칭하겠습니다. 팟프2는 신제품의 공식 매장 가격이 359000원인 제품입니다. 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다가, 당근마켓에 미개봉 신제품들이 꽤나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저가가 28만 원까지 있더라구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저는 드디어 적당한 매물을 발견하였고, 그 사람과 대화역 5번 출구에서 접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제게 먼저 영수증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건 거래 당일 에이샵에서 정가에 구매한 것이 너무나 명확하게 확인되는 증명서였습니다. 일말의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였습니다. 마치 A급 킬러가 완벽하게 만들어낸 자살의 명확한 증거인 가짜 유서처럼. 그걸 보고 있을 때 갑자기 그분이 제게 호소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왜 날 의심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은 정말로 정품을 저렴하게 파는 것뿐인데, 나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며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입니다. 제가 묻기도 전에 먼저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며, 정말 억울하셨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저는 그분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왜 오늘 359000원에 구매한 제품을 28만 원에 판매하시는지에 대하여. 그것이 본인에게 무슨 이득이 있으신지에 대하여. 대체 무슨 사연이 있으시길래 7만 9천 원을 죽이시는 건지에 대하여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제품은 깔끔했고, 저는 중고 거래의 프로였으니까요. 드라마를 몰라야 거래가 편한 것이니까요!


혹시 껄끄러운 거래를 맡기고 싶은 사람이 필요하시다면 제게 연락 주세요. A급 당근러인 제가, 신속 정확하게 거래해 드릴게요.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개봉영화 추천]
<장기자랑>
감독 : 이소현

극단 노란리본이 연극 ‘장기자랑’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연극은 조금 독특해 보인다. 어머니의 얼굴을 한 배우들이 교복을 입은 채 고등학생을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연을 알아차리는 것은 2014년의 4월을 겪은 한국인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인 엄마, 동수 엄마, 애진 엄마, 예진 엄마, 영만 엄마, 순범 엄마, 윤민 엄마는 그날 이후를 잘 살아가기 위해 연극을 시작한 엄마들이다. 그들은 ‘희생자 가족이 과연 이렇게 잘 살아도 되는가’ 하는 고민과, 아이들의 존재가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복잡한 심경을 품은 채 무대에 오른다. 그렇게 김태현 연극 연출가의 지도로 꾸며진 연극 ‘장기자랑’에서, 엄마들은 각각 제주도 수학여행에서의 장기 자랑을 준비하는 생기발랄한 고등학생 아이들을 연기하게 된다. 제주도에 도착하지 못한 아이들의 디테일이 담겨 있는 이 연극을, 단원고에서 올리냐 마느냐가 극단 노란리본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4·16재단에서 진행한 문화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인 <장기자랑>은, 전작 <할머니의 먼 집>을 통해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이소현 감독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영화다. <장기자랑>은 자랑할 만한 기승전결을 갖췄다. 유가족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이내 ‘그런 다큐’가 아니라는 듯 평범한 극단에서 일어날 법한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엄마들은 캐스팅에 불만을 가지며 감정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 순간 그들은 피해자가 아닌 영락없는 배우다. 그렇게 ‘피해자다움’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주던 영화는 마지막으로 고생한 모두를 위로하기에 이른다. 커튼콜에서 박수가 터져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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