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는 큰일이 지나갔는데,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며칠 전, 2023~2024년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았다.
사실 망설였다. 지금도 나는 아이를 기다리는 중이라, 그때의 마음을 꺼내면 괜히 더 깊은 곳으로 끌려갈 것 같아서.
막상 읽어보니, 내 기억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그때 매번 무너졌다고 생각했는데, 일기장 속 나는 울다가도 밥을 먹고, 화를 내다가도 다음 일정을 챙기고, 속상하다고 적고 나서도 어떻게든 나를 달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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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8일의 일기:
피검사 결과 19.3인 나도 일단 두 줄로 임신. 정말 어렵다 어려워.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컸는데 오빠가 다독여준다. 1년 반 만에 다시 만난 두 줄. 너무 흐릿흐릿하여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두 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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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순간이었는데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그 두려움에는 이유를 닷새 뒤의 일기를 보니 알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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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3일의 일기:
오늘로 마음을 접었다. 홀가분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답답해도 할 수 있는 숙제는 다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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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접었다’고 써놓고 바로 다음에 ‘할 수 있는 숙제는 다해야지’라고 적어뒀다. 속상해도 병원에 가야 했고, 약을 챙겨야 했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마음은 접으면서도, 다음 할 일은 알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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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1월 4일의 일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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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4일의 일기:
주사 너무 아프다. 크녹산 때문에 멍이 한 아름이다.
그 와중에도 약 챙겨 먹고 질정 넣는 나 자신.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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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 멍이 가득한데도, 오빠가 제안한 차박을 위해 홍성까지 짐을 싸 들고 가면서도, 약은 빠뜨리지 않은 나에게 내가 건넨 말이다.
난임 과정에서는 아무도 쉽게 칭찬해주지 않는다.
주사 맞고, 멍 들고, 이식하고, 약 챙기고, 그러면서도 출근하고, 밥 먹고, 잠 자고.
이 모든 걸 해내는 날에도 등 두드려주는 사람이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내가 했다.
셀프 칭찬.
칭찬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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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어느 날의 일기:
이번에도 7일차 단호박이다. 속상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나를 잘 격려하며 다시 돌아가자. 일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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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는 큰 일이 지나갔는데,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오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하루를 보냈다면,
오늘도 약을 챙긴 나. 오늘도 병원에 다녀온 나. 오늘도 울다가 밥을 먹은 나. 오늘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 나.
그 정도면 충분히 칭찬받아도 된다. 오래전 일기장에서 만난 나는, 지금도 여전히 기다리는 중인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가재는 게 편이라지만, 나는 내 편.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생각보다 꽤 잘 버티고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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