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12호를 발행합니다.
이번 달 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에는 리영희를 7,80년대 '빵잽이'들의 주례선생으로 데뷔시킨 유홍준 선생님의 글을 싣습니다. 해직이 계속되어 번역과 동시통역 저술원고료 등으로 생활을 이어 나가던 시절의 리영희는 지독한 서향으로 자리잡은 화양동 2층 서재에서 종일 작업을 했는데 그놈의 한여름 길게 들어오는 햇빛이 늘 문제였습니다. 더위가 시작되기 전 리영희가 걱정스럽게 "해직교수 누구는 에어컨을 달았다는데, 우리는 창문을 발로 가릴까 넝쿨식물을 심을까"하면 부인 윤영자는 "뭐 그렇게 걱정을 해요. 더위 오기전에 일을 끝내세요." 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을 똑같이 좋아하고 사귀어 온 1호 주례제자 유홍준 선생님이 두 사람과의 인연을 써주셨습니다. 40여년 전의 사진을 종일 찾아 귀한 글과 함께 보내주신 유홍준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번호 아카이브는 신문기자 시절 베트남과 문혁 관련 리영희의 기사와 당시 리영희의 외신면을 전면적으로 분석해 준 백승욱 선생님의 해제 글을 싣습니다. 백승욱 선생은 이 글에서 "나는 리영희를 한국사회 거의 유일한 ‘전투적 자유주의자’라고 부른다. 존경의 마음을 담아서이다. 누군가는 ‘전투적’을 읽지 않고 뒤의 ‘자유주의’에만 매달려 그의 사상의 한계를 비난할런지도 모른다. 그런 자들에게는 꼭 되물어야 한다. “너는 어떤 주의자”냐고. 그리고 너의 이상과 현실 개입을 오로지 “글에만 담아서 승리한 경험이 있느냐”고, 그런 넘치는 자신감이 힘이 되어 자유주의자들의 ‘존경’을 넘어 ‘경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포부가 있냐고."라고 쓰고 있습니다. 백승욱 선생은 리영희의 문혁관련 글도 이후 연구자들에게 그 경험을 하나의 대안으로써 보다는 문화대혁명 자체를 하나의 핵심적 모순이자 문제 자체로서 인식하도록 하는 계기를 제공해 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리영희의 문혁에 관한 논문 첫 글은 리영희의 다음과 같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합니다.
"때로 자기가 걸어온 궤적에 대해서
분명히 성격 규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리영희 1989년
50여년 전의 기사를 찾아 재단의 자료로 제공해 주고 귀한 글을 보내준 백승욱 선생님 감사합니다.
재단은 한미일 안보협력을 진단하는 긴급 토론회를 개최합니다. 4월 6일 목요일 한겨레신문사 5층 스튜디오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현장 방청이나 유튜브 시청으로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