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들 지내고 계신가요? 전 지금 동해안 따라 저의 순례 걷기를 하고 있습니다. 독자 분께서 까미노 다녀와 얻게 된 저만의 진짜-가짜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하신 김에, 쉬어가는 막간 편을 계획했더랬습니다. 글의 흐름 상 정해둔게 오늘인데, 마침 길을 걷고 있으니 삶이 참 신비롭네요.
산티아고 다녀와서 정말 좋았었습니다. 머리 한대 얻어맞은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례 받은 기분도 아닌데 그 중간의 묘한 경험이었습니다. 얼떨떨하면서도 충만했지요. 이후, 까미노에서의 경험이 왜 좋았는지 매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깨달았지요.
아, 삶에서 진짜가 뭔지 새로 깨달았구나.
우선, 먹이와 배고픔을 다시 배웠습니다. 매일 걷는 스페인 산길 25km엔 인적이 거의 없습니다. 점심 때 도달한 마을에서, 식사를 팔아주기만 해도 고마운 상황입니다. 순례 중 4일 정도는 점심도 못 사먹고 비상 식량으로 때워야 했습니다. 입천장이 까지도록 딱딱한 빵에 햄 치즈 들어간 소박한 식사도 매번 진심으로 감사하며 먹었습니다. 운 좋아 더운 음식을 구하면 진수성찬처럼 느껴졌습니다.
고통도 새로 익힙니다. 십수년전, 축구하다 다쳐 수술을 받았기에, 무릎이 고질적 취약점입니다. 허리도 시원찮습니다. 그래서 완주하지 못할까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완주 못해도 별일은 아닌데 그냥 싫었습니다. 그래서 걷는 내내 기도하듯 다리와 허리를 섬기며 걸었습니다. 기도가 통하듯, 몸이 긴 길을 잘 버텨줬습니다. 이 상황에서 물집 정도는 불편일 뿐입니다. 아프고 피는 배어나지만, 물집은 제 순례를 막지 못한다는걸 깨달았습니다. 까지고 쑤시는건 가볍고, 순례를 멈출 큰 부상이 진짜 고통이라는걸 배웠습니다.
제가 숨찬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평생 러닝을 안 했습니다. 대신, 도보 산책과 자전거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까미노 다녀와서, 고통을 생활속에 체화할 방법을 찾다, 달리기가 떠올랐습니다. '가장 싫어하는걸 하자.' 역시 달리자마자 숨차고, 다리 아프고, 심장 벌렁거렸지만, 달리기는 저랑 잘맞는 진짜 운동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제가 숨차다는 가짜 고통에 가려져 제대로 한번 달려 보지도 않고, 결국 체험하지 못한 걸 알았습니다. 진짜 기쁨은 숨찬 이후에 보이는걸 몰랐습니다.
제 진짜-가짜 분류도 달리던 중 깨달은 겁니다. 달리니 새로운 감각이 열리고, 생각이 트이면서 또렷해졌습니다. 인간이 하루 25000번 숨을 쉰다는데, 그 많은 숨 중에서도, '습습, 후후' 두박자 숨만이 저를 달리게 해주는 진짜 숨이란것도 깨달았고요.
어느 비오던 날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장마철답게, 달리러 나갈 때까진 멀쩡하던 날씨가 순식간에 폭우로 변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일단 비를 피했을 겁니다. 소나기일테니 다른 사람들처럼 다리 밑에서 잠시 비를 긋거나, 코스를 접고 집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까미노에서 매일 비를 맞고 걷던 기억대로 흔쾌히 빗속을 달렸습니다. 몸과 러닝복, 운동화가 흠뻑 젖었는데 외려 기쁘고 좋았습니다. 비온다고 머리 가리고 건물로 뛰어드는 그 모습이 제겐 가짜고, 비는 나를 해칠 수 없음을 떠올리며 걷고픈 곳 걸으며 길가에 흔들리는 꽃을 바라보는 느낌이 진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 생활로 눈이 갔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부터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색을 정말 좋아해서 만년필이 여러 자루 있습니다. 잉크 수 대로 만년필을 가지고 있으니 필요이상으로 많았죠. 진짜-가짜 틀로 보니 과했습니다. 제가 진짜 좋아했던건 글쓰는 시간의 고요, 색감 좋은 잉크의 물성, 그리고 쓰는 동안 느린 생각이지 만년필 자체가 아니었지요. 그래서 당장 만년필 구조조정을 했습니다. 딱 필요한 색만 남기고 나머지는 깨끗이 청소해서 수납해두었습니다.
다음은 독서 습관을 바꿨습니다. 22년 109권, 23년 96권을 읽었고, 어느덧 다독도 은근 자부심이었습니다. 까미노 다녀와서까지 약 두달 책을 많이 못 읽었는데, 그래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즉, 제 공부와 배움, 깨달음은 책으로만 되는건 아닌데 강박이 있었습니다. 실행 없이 양에만 치중하는 독서가 가짜고, 딱 한줄이라도 건져 삶에 녹이는 독서가 진짜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