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을 좋아하는 유진☀️ 밤을 좋아하는 아란🌕
두 룸메이트가 함께 지내는 일상 에세이 ✍️
EP 30. 나누고 싶은 취향
- 영화 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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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면 공유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집안의 향기, 거실의 가구와 조명, 둘 중 한 명이 트는 노래 같은 것들. 네가 거실에서 뿌린 향수는 그대로 내 거실의 향이 되고, 네가 작업하며 틀어놓은 노래도 내 노동요가 되곤 한다. 사실 음악을 비롯해 음식, 향, 취미까지 우리에게 취향을 묻는다면 겹치는 게 거의 없을 정도로 다른 게 많다. 아마 오늘 소개하는 영화 리스트를 보아도 각자의 다른 취향이 묻어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중에서도 교집합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너의 취향이 어색하거나 신선하게 다가와 익숙하고 깊게 녹아들어 내 취향이 되는 순간.
오늘은 내 인생 영화 중 분명 너도 좋아하리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보고 싶은 영화를 가지고 왔다. (내 기준) 몇 번이고 다시 봐도 좋은 영화 3가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 내용을 소개하기보다는 내가 좋아하게 된 이유 몇 마디로 ‘같이 보자’는 말을 대신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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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낭만, 몽글몽글. 너는 그런 단어들을 좋아한다. 추측하건대 네 스타일은 밝고 유쾌한 해피엔딩. 나도 물론 해피엔딩이 좋다. 기왕이면 찝찝할 여지없이 꽉 닫힌 해피엔딩. 이 영화야말로 동화 같은 배경에 낭만적인 로맨스를 다룬 작품이라 네가 좋아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마법 같은 사랑의 힘을 믿는 낭만파 주인공 소피에게서 네 모습이 겹쳐 보였다.
다만 내게 이 영화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스토리보다 영상미였다. 화사하고 따뜻한 장면들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잔상이 남아 가끔 떠오르곤 한다. 색감만이 아니라 1920년대 유럽을 묘사한 영화 속 배경과 소품, 인테리어와 패션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로망을 한껏 충족시켜주었다. 아무튼 지금으로선 너와 함께 보고 싶은 영화 1순위다. 네가 주인공을 어떻게 바라볼지, 내가 두고두고 레퍼런스 삼고 싶은 미장센이 너에게는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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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셉션
모르는 사람이 없을 명작. 너무 유명해서 안 본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내게는 정말 인생 영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토템을 보고 영감을 받아 타투까지 새겼으니.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토템인 팽이를 돌려 꿈과 현실을 구분한다. 지금 내가 있는 시공간이 꿈 속일지도 모른다는 발상. 생생한 꿈을 꾸거나, 일상에서 기시감을 느낄 때면 이 영화가 떠오른다. 누군가의 꿈을 설계한다는 상상력에 감탄하며, 나도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데 중요한 열쇠인 토템을 만들고 싶었다. 네가 몇 번쯤 물어봤던 내 타투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이 타투를 지니고 있는 시공간이 내 자아가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만든 나의 토템. 아마 이 팽이는 지금도 멈추는 중일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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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더 기버: 기억전달자
중학교 때인가, 학교에서 처음 봤던 영화. 아마 시험이 끝나고 자유 시간에 짧게 틀어줬던 것 같은데, 당시 소재가 너무 인상 깊어 혼자 영화를 다운 받아 다시 봤던 기억이 있다. 내가 sf물이나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한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이제는 SF라면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갈 정도로 좋아하는 장르가 되었으니까.
색깔이나 감정. 우리가 유독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없는 세상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나면 분명 너와 나눌만한 얘기가 많을 거라 생각했다. ‘이 세상에 색이 없어진다면 어떨 것 같아?’라던가, ‘사랑이라는 감정 없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같은 이야기. 벌써 네 대답이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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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무엇이든 장시간 머문다는 건, 의지와 상관없이 중요한 의미가 생긴 것이라고. 그래서 영화 취향도 특별하다. 우리는 영화 리스트를 훑고, 고치고, 버리기도 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그저 스쳐간 영화가 있는 반면 차마 ‘삭제’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오래도록 자리 굳힌 영화들도 있어서.
내게도 갈고닦은 영화 리스트가 있지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룸메이트인 너와 함께 다시 보고 싶은 나의 최애 영화들을 몇 가지 소개해 볼까 한다. 우연히 보게 됐지만 이제 이들은 뭐랄까. 내 취향의 풍경이요. 그 자체로 나의 일부가 되었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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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난 후 꽤 오랫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화려한 패션 영화인 줄 분명 알고 봤는데도 그랬다. 영화관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데 창문에 얼비친 내 표정을 가만 바라봤다. 이걸로 '끝'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감상으로 언젠가 새어 나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할 일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하는.
특히 쓰레기 더미에서 주인공 크루엘라가 펑크한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그 장면. 아, 장면 하나로 이렇게나 설레다니. 이럴 땐 정말 내가 영화를 '삼켰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 소화는 아마 꽤 오랫동안 진행되지 않을까. 영화속 크루엘라처럼 자신이 자신을 알기 위한 도구로 옷을, 어쩌면 우리도 패션을 활용할테지. 올해는 더더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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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명한 사람이라곤 생각하지만, 때로는 타인의 사정에 해답을 아는 듯 애써 연기하는 나를 알기에 꽤나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나는 오만하게 구는 사람은 싫어하면서, 편견을 가지고 적당히 벽을 치는 사람은 용인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타인에 대해 적당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타인은 나의 1%도 모를 것이라고 단정 짓기도 하는 사람이다.
영화 '오만과 편견'을 보고서 알았다. 내가 때로는 오만하고, 때로는 색안경을 쓰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큰 무지인지를 말이다. 이 영화의 은은한 색감, 설레는 감정선, 연출, 그 모든 요소가 훌륭하지만 스토리에 좀 더 집중해 보길 바란다. 아, 그런데 유진이 너는 글 읽기를 좋아하니까 원작 책을 더 추천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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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알잖아. 영화 속에는 이상도 담기고 현실도 담긴다. 그 비율은 작품마다 다 다른데, 나는 상상할 여지가 많은 약간 이상적인 영화에 끌리더라고. 그림자가 드리워진 음울한 영화, 찡그리며 보게 되는 잔인한 영화보다 장면을 배경 삼아 나를 투영시킬 수 있는 영화 말이다.
지브리 영화는 현실보단 상상이, 이야기보단 마음이 더 많이 느껴져서 좋다. 타 영화들에서는 적당한 긴장감으로 편치 않은 두근거림을 선사한다면, 지브리는 기분좋은 설렘만을 선물하거든. 사실상 지브리의 첫 작품이었던 이 영화도 내게 그렇다. 라퓨타, 고대병기, 해적... 나처럼 감성 끌어안고 사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랄까. 지금도 자기 전에 누워서 하늘 위 청공의 섬 라퓨타를 상상하곤 한다. 내가 맨날 트는 지브리 음악에 함께 흥얼거려주는 너 역시 그럴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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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도, 사회적 지위도 애매한 20대.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법한 그 어중간한 시절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20대이기도 하고, 여성이기도 하고, 대학생이기도
하고, 프리랜서이기도 하고. 하나의 이름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복잡미묘한 우리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
도전을 멈추지 않고 새로운 꿈을 품어가는 한,
인생은 과도기의 연속이 아닐까요. 한 명은 졸업하고 한 명은 퇴사를 한 시점,
두 룸메이트의 새로운 과도기를 맞이하여.
거창한 목표를 향해 쉴 새 없이 달려나가기보다, 일상에서 사소한 도전을 이어나가며 지금 생각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담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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