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최근 2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는 중이다. 초등학생 아들의 큐브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서울, 수원, 안양, 안산, 오산 등 수도권은 물론 대구, 진주, 함창, 오송, 옥천, 전주 같은 지방 도시에도 간다. 아들이 큐브를 시작하기 전에는 큐브 대회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우리가 주말마다 큐브 가방을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지난 여름에는 2박3일 일정으로 전주에 다녀왔다. ‘코리아 오픈’이라는 국내 최대 규모의 큐브 대회가 전주실내체육관에서 3일 동안 열렸다. 대회장에 가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한 번 보기도 어려운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3×3×3 큐브를 5초 만에 맞추고, 심지어 눈을 가린 채 큐브를 맞추기도 한다. 처음 큐브 대회에 갔을 때는 나 역시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아들이 큐브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세계다.

 

대회를 자주 다니다 보니 새로운 관계도 생겼다. 아들은 전국에 있는 큐버 친구들을 사귀었고, 나와 아내도 자연스럽게 그 부모들과 친해졌다. 이번 대회에서는 2년째 알고 지내는 부산 사는 친구 가족을 만났다. 마침 같은 호텔에 묵고 있어서 저녁에는 가족이 함께 모여 아이들은 테이블에 큐브를 펼쳐놓고 연습했고, 부모들은 옆에서 맥주 한잔을 하며 아이들 이야기와 교육 이야기를 나눴다. 사는 곳도 다르고 원래라면 만날 일도 없었을 사람들인데, 큐브가 우리를 이어주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신기한 일도 있었다. 한 여자분이 아내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OO이 어머니시죠? 저 OO이 팬이에요. 유튜브 잘 보고 있어요.” 그러더니 아들에게 전해달라며 젤리까지 건넸다. 아내도 나도 순간 어리둥절했다. 아내는 아들이 큐브를 시작한 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주로 큐브 대회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일들을 짧은 영상으로 만든다. 가끔 어린 친구들이 아들을 알아보고 인사한 적은 있었지만, 어른이 찾아와 “팬”이라고 말한 건 처음이었다. 아마 어린 아이가 큐브를 하며 겪는 기쁨과 좌절, 도전과 실패가 보는 사람에게도 재미있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아내와 나는 이제 아들이 ‘공인’이 됐다며 밖에서도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아주 작은 것이었다. 아들이 처음 큐브를 맞춘 건 초등학교 3학년 가을이었다. 유튜브 영상을 0.25배속으로 돌려보며 몇 시간동안 따라하더니 결국 혼자서 큐브 하나를 완성했다. 그 때 맛본 성취감과 즐거움이 이후 아들의 삶을 조금씩 바꿔놓았다. 대회에 나가서 친구들보다 못한 실력에 울기도 했고, 기록을 줄이겠다며 몇 달 동안 수천 번의 연습을 하기도 했다. 처음 결승에 진출한 날에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잘하고 싶어서 애쓰고,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고, 다시 연습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경험을 큐브를 통해 하고 있다. 어쩌면 아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에게만 의지할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개척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면 그 마음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 움직이다 보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장소에 가고, 전에는 몰랐던 자기 모습도 발견한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가 삶의 반경을 넓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아들과 함께 큐브의 세계를 돌아다닐지는 알 수 없다. 어느 날 아들이 큐브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내가 아들에게 바라는 것은 최고의 큐브 선수가 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큐브를 통해 자기 마음이 이끄는 곳까지 깊이 가본 사람,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더 넓은 세계가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지금 이 작고 네모난 큐브 하나가 우리 가족을 전국 곳곳으로 데려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아들은 또 다른 무언가를 손에 들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넓은 세계로 걸어갈 것이다. 그때 아들이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 큐브처럼 그곳에 자신에게 어울리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나아갔으면 좋겠다.




*글쓴이 - 재희
게임 회사에서 사회공헌을 담당합니다. 의미있고 행복한 삶을 위한 여정과 영감을 글로 남깁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에서는 아이의 큐브 세계를 따라가며 만난 사람들, 도전과 성장의 이야기, 그리고 조금씩 달라진 가족의 삶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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