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여름>을 보고
지금을 읽고 싶은 사람들의 미디어 이야기, 어거스트
안녕하세요! 에디터 식스틴입니다.

선택에는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할까요? 기타노 다케시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 대한 짧은 에세이를 썼습니다.
👋  오늘의 에디터 : 식스틴
올해 여름은 또한 아주 따뜻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의 이야기
1. 멍청한 짓을 하고 말았다
2. 설명이 필요치 않은 선택들에 대해
3. 일상이 바뀌는 발견
멍청한 짓을 하고 말았다

고의로 유리를 깨 본 적이 있으신가요? 며칠 전 저는 어쩔 줄 모르는 감정에 휩싸여 향초를 냅다 벽에 던졌습니다. 물론 혼자 살고 있는 자취방에 저 혼자인 상태였죠. 향초가 벽에 부딪혀 와장창 깨지고 유리 파편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습니다. 묘한 감정이 들더라고요. 후련한 마음이라기 보단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어요.


식탁 위에 보이는 유리컵까지 깨고 나서야 행동을 멈추었죠. 다음날 일어나 보니 유리 조각을 치웠던 청소기까지 고장 나 13만 원을 주고 다시 새로 구매했습니다. 정말 멍청한 짓이었죠. 입을 꾹 다물고 유리 조각을 주워 담는데, 제가 보기에도 처량하기 그지없어 보였습니다. 자업자득이 따로 없었으니까요.


그날 밤 친구에게 이 사실을 전하니 친구가 호탕하게 웃으며 한 미국 드라마 이야기를 하더군요. 스트레스가 쌓인 주부들이 보호장비를 쓰고는 독방에서 유리를 박살 내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니 너도 13만 원짜리 화를 냈다고 생각하라며 심플한 위로를 건넸습니다. 그래서 전 왜 유리를 깼을까요?


때는 바야흐로 3개월 전,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는 프리랜서를 선언했더랬죠.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내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는 다큐멘터리 지원사업에 공모했지만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3개월 전부터 기대의 부풀었던 마음도 폭삭 주저앉고 말았죠. 사람 마음이란 것이 참 바다와도 같습니다. 잔잔하고 평화로웠다가도 거센 파도에 속절없이 무너져버립니다. 

설명이 필요치 않는 선택들에 대해

여기 한 소년이 있습니다. 이름은 시게루. 바다 마을에 살며 아버지를 따라 청소용역 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게루에 눈에 띈 부러진 서핑보드. 버려진 서핑보드를 주워다가 어설프게 고치고는 바다로 향합니다. 바다로 걸어가는 길, 시게루의 친구들이 그를 부르고 또 소리 높여 부릅니다. 하지만 시게루에게는 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죠.


시게루는 귀가 들리지 않는 농인입니다. 말을 하지도 못하죠. 어설프게 고친 서핑보드를 들고, 티셔츠 한 장 걸치고는 바다로 뛰어든 시게루.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의 주인공 시게루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질주하지도 않죠.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스틸컷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시게루가 발견하게 되는 부러진 서핑보드. 시게루는 잠시 망설입니다. 청소용역 트럭은 시게루를 태우고 서핑보드를 지나치지만 얼마 안 가 시게루는 트럭에서 내려 서핑보드를 챙깁니다. 이로써 시게루는 서핑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보드를 고쳤으며, 바다로 향했습니다.


영화는 시게루가 서핑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딱히 이유가 필요치 않은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죠. 누구는 인생이 연속적인 선택의 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선택은 중요한 것이고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죠.


그런데 꼭 선택에 이런 끙하는 마음만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상을 지나쳐오다 무언가 발견하는 순간, 마음속에 누군가 속삭이듯 이러면 어떨까 하고 말해주는 순간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이 순간을 마주할 때 그저 '때가 된 것뿐'이라 받아들이려 노력합니다.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스틸컷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정말 조용한 영화입니다. 시게루가 서핑을 하는 것과 같이 비슷한 장면이 이어지며, 대사보다는 음악이 흐르는 영화입니다. 조용히 시게루를 일상을 지켜보게 만들죠. 시게루는 그저 매일매일 서핑을 하고 넘어지기를 반복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열정, 도전, 실패라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시게루가 농인인 것이 어떤 위기의 서사로 귀결되거나 장애물로 묘사되지도 않죠. 그렇기에 ⟪그 여름, 조용한 바다⟫는 타자화하지 않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메시지가 없어 보이지만 그 자체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거예요.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스틸컷
일상이 바뀌는 발견

첫 번째 서핑대회에 나갔을 때 시게루는 실격당합니다. 자신의 차례가 호명됐지만 시게루에겐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아쉬운 일이지만 시게루는 상을 타기 위해 대회에 온 것이 아닙니다. 대회가 끝난 바다 위에서 시게루는 자신과의 약속인 듯 그저 서핑보드를 탈 뿐입니다.


두 번째 서핑대회를 나갔을 때에는 어느새 시게루 옆에 친구들이 있습니다. 동네 바닷가에서 서핑하는 시게루를 지켜보던 서핑 동아리 학생들이죠. 이제 시게루에게는 월급을 모아 장만한 새로운 서핑보드도 있습니다. 시게루를 응원하는 사장님이 건네준 서핑복 덕분에 더 이상 달랑 티셔츠 한 장을 걸치고서 서핑보드를 타지도 않습니다. 서핑보드를 발견한 소년의 일상은 이제 바뀌었습니다.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스틸컷
기타노 다케시가 연출한 세 번째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하나비⟫, ⟪기쿠로지의 여름⟫ 등으로도 유명한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희극인, 영화배우입니다. 폭력 장면이 많은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 중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기쿠로지의 여름⟫은 다른 결의 영화입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여름의 장면을 일상적으로 그리고 평화롭게 담았다는 것입니다. 여름이란 그런 것이겠죠. 해는 가장 길어지고, 몸은 늘어지며, 한 장의 바람에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계절. 무언가를 시작해도 늦지 않고, 끝내기에는 아쉬운 계절.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스틸컷
올해 어떤 도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 도전 자체에 매몰되지는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렇게 생각하도록 해요. 그저 내게 어떤 때가 다가온 것이라고요. 저같이 바보처럼 유리를 깨고 새 청소기를 장만하지는 말고요. 그리고 만약 당신의 앞에 무언가가 눈에 띈다면 오래도록 그것을 바라보도록 해요. 시게루가 서핑보드를 발견한 것처럼요. 그럼 당신의 인생이 생각보다 많이 바뀌어지지 않을까요? 물론 좋은 쪽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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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식스틴>의 코멘트
조용한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서 음악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심경이 대변되는 듯 보이기도 하고, 음악을 통해 감독이 관객에게 말을 걸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시게 된다면 한동안은 이 노래를 잊지 못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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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by  Zoe • 한새벽 • 구현모 • 후니 • 찬비 • Friday • 구운김 • 식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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