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적이는 공기와 삼베 이불 사이에 누워 천장의 무늬를 빤히 바라봤다. 쟤는 네 살밖에 안 된 애가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걸 좋아해, 하고 어른들은 말했지만 한참 모르는 소리였다. 저게 대체 무슨 모양일까, 무얼 나타내고 싶었던 걸까 알아내느라 눈이 빠질 지경이었다. 매일. 자다 깨서 보면 물결무늬 같았고 바람이 좀 불면 아 바람 무늬인가 싶기도 하고 어떤 날엔 할머니 댁 논밭의 무성한 벼 머리 같다. 나가서 놀든지 동생을 보든지 하라는 말에 동생 옆에 나란히 누워 천장을 보기로 했다. 아가는 계속 칭얼거린다. 너도 참 답답하겠다. 오른손을 뻗어 가슴팍을 토닥토닥. 토닥토닥. 사실 온 신경은 천장 무늬에 쏠려 있다. 아, 아까 감고 나온 내 머리카락도 닮았네? 오늘 아침 엄마는 수건으로 내 머리를 툴툴 털어준 다음 대문을 열고 나가서 문 앞에 잠깐 서 있으면 잘 마를 거라고 했다.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뛰는 건 진짜 별로지만 가만히 서 있는 건 정말 좋다. 그 아래 서서 매끈매끈한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슥슥 빗고 베베 꼬면 보드랍고 따뜻하니까. 얼른 말려서 앞머리를 베베 꼬고 싶었다. 뒤통수를 요래조래 굴리며 머리 말리는 척 1층에는 무슨 일 없나 귀를 기울였다.
2층 주택의 2층에는 나와 엄마와 동생과 아빠가 살아서 우리 집이고, 1층은 주인집이다. 주인집에는 내 또래 남자애가 하나 있었고 이름은 경수다. 흠 우리 집은 지영이네 집인데 왜 경수네는 주인집이지? 엄마와 아빠는 그 집 가족 셋을 모두 주인집 누구라고 부른다. 주인집 여자가 9시 이후에 변기 물 내리지 말래요, 퇴근길에 보니까 주인집 사장 또 멕시카나에서 맥주 마시던데, 주인집 아들 오늘도 뛰어다니다가 복개천에서 무릎 갈았대. 우리 집 바닥이 주인집 천장인 곳에서 나는 늘 발가락에 힘을 주고 뒤꿈치를 바짝 든 채 걸어 다닌다. 여자애는 쿵쾅쿵쾅 걸으면 안 되니까. 우리 집 밑에는 바로 주인집이 있으니까. 걷다가 내려다보면 내 발가락은 늘 하얀색. 어제 먹은 완두콩만 한데 색깔은 하얗다. 웃기다.
경수랑 나는 별로 안 친하다. 걔는 좀 이상하다. 경수는 새까만 얼굴로 복개천 주변을 뛰어놀다가 나랑 마주치면 멈춰서서 빤히 쳐다본다. 그러다가 지 어깨로 내 어깨를 한 대 퍽 치고 도망간다. 내가 걔네 집 위에 사는 걸 알고부터 계속 그런다. 발소리가 시끄러웠나? 밤에 화장실 갔는데 혹시 들렸나? 안 들릴 줄 알았는데... 경수랑 어깨가 부딪힌 날엔 천장 무늬가 꼭 열 받은 내 머리통같다. 내 눈에는 똑같이 생겼다.
어린이날 선물로 분홍자전거를 받았다. 경수가 그걸 보더니 자기 엄마한테 가서 나한테 새 자전거가 생겼다고 일렀다. 그러자 주인집 여자, 주인집 아줌마, 아니 경수 엄마는 보라색 고무 슬리퍼를 신고 저벅저벅 걸어 나와서 자전거를 보고 말했다. 예쁘네? 엄마가 사줬니? 아빠 월급날이니? 그래서 대답했다. 엄마랑 아빠가 사주셨어요. 그리고 물었다. 근데 월급날이 뭐예요? 아줌마는 대답은 안 해주고 경수의 것과 똑같이 생긴 눈으로 똑같은 눈빛으로 나를 빤히 봤다. 내 이마에도 천장무늬같은 게 있나. 끈적한 손바닥으로 이마를 슥슥 문지르고 있는데 아줌마는 경수 손을 잡더니 대문을 닫고 들어가려다가 다시 나와 나를 보며 입술을 한 번 달싹, 우리 집을 한 번 힐끗, 그리고는 그냥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자전거를 2층에 낑낑 가지고 올라가서 구석에 숨겼다. 자전거를 타고 복개천 위를 씽씽 달리고 싶을 때마다 1층을 훔쳐보고 엿듣는다. 왠지 내가 분홍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것 같다.
아무튼 1층을 내려다보면서 뒤통수를 땡볕에 굴리고 있는데 갑자기 1층 대문이 끼익하고 열렸다. 나는 놀라서 머리 긴 귀신같은 자세로 굳었다. 근데 기분은 귀신을 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보라색 고무 슬리퍼를 신은 주인집 아줌마가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한숨을 쉬면서 우리 집 계단을 올라왔다. 그 뒤로 주인집 아저씨의 고함이 따라붙었다. 대문이 쾅 닫히면서 고함소리는 금방 사라졌다. 왠지 아줌마는 뒤통수를 땡볕으로 안 말려도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금세 2층으로 올라온 아줌마가 물었다. 너 거기서 뭐하니? 대답하려고 했는데 아줌마는 벌써 나를 휙 지나쳤다. 그리고는 우리 집 대문을 휙 열어제꼈다. 지영이 엄마, 커피 한잔하자. 벌써 신발이 현관 바닥으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보라색 슬리퍼 오른쪽 한 짝이 뒤집어진 채 툭 떨어졌다. 부엌에 있던 엄마가 도도도 달려오며 어머 오셨어요? 말하고 현관 앞에 선 나를 봤다. 눈이 마주치자 엄마가 말했다. 신발 똑바로 정리하고 들어와. 뒤통수만 마른 머리를 머쓱하게 만지다가 얼떨결에 집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호다닥 들어갔다. 동생은 계속 잔다. 왠지 아까보다 조금 더 더운 것 같다. 선풍기를 켰다. 파란 날개가 달달달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 참, 아가 가까이에 선풍기를 두면 안 된다고 했지. 두 팔을 쫙 뻗어 선풍기를 껴안고 낑낑 벽 쪽으로 옮겼다. 땀이 났다. 선풍기 앞에 가만히 서서 아아아아아 소리를 냈다. 하지 말라고 할 땐 재미있었는데 아무도 안 말리니까 재미없다. 다시 동생 옆에 누웠다. 바싹 마른 뒤통수가 베개에 닿게, 젖은 머리는 베개 위로 펼쳐서 안테나처럼 쭉 늘어뜨린 채로. 오늘은 천장 무늬가 뭐로 보일까. 안테나로 신호를 잡고 있는데 문밖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지영이 엄마, 나는 삼삼삼. 알지? 아이 그럼요 잘 알죠. 뚜껑을 돌려 병을 여는 소리가 세 번 들린다. 병뚜껑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데구르르 소리를 내다가 식탁 유리 위에 탁! 하고 앉았다. 삼삼삼. 삼삼삼. 삼삼삼. 삼삼삼은 소리도 삼삼삼처럼 들렸다. 주전자가 휘파람을 불고 가스 불이 꺼졌다. 오늘 천장 무늬가 뭔지 이제 알 것 같다. 졸졸졸. 꼴꼴꼴. 삼삼삼 위로 뜨거운 물을 붓는 소리. 달고 쓴 향기가 천장무늬처럼 온 집안에 퍼졌다. 얼음은 유리잔에 퐁퐁퐁하고 들어가서 저들끼리 달그락 탈그락하고 막 부딪힌다. 방문을 빼꼼히 열고 나갔다. 엄마가 웃는다. 귀신같이 알고 나왔네. 이리 와 봐.
주인집 아줌마와 엄마 둘 사이에 방석을 질질 끌고 가 앉았다. 유리잔과 삼삼삼과 얼음과 티스푼이 계속 만나면서 경쾌한 소리를 냈다. 달그락이었다가 쨍그랑이었다가 토각토각같기도 했다. 보기만 해도 달았고 듣기만 해도 신났다. 엄마는 얼음이 작아질 때까지 티스푼으로 계속 삼삼삼을 휘저었다. 적당히 녹아 작아진 얼음 한 알을 티스푼으로 건졌다. 아아 해 봐.
아-
엄청 달콤하고 조금 쌉쌀한 맛. 머리가 찌릿하고 혀 안에 침이 더 고였다. 네 살 어린이에게 허락된 삼삼삼은 작은 얼음 알에 묻어있는 정도가 전부다. 콩보다 작은 이로 오독오독 얼음을 씹으면서 티스푼을 계속 쳐다봤다. 엄마와 경수 엄마가 삼삼삼을 꿀꺽 삼키더니 내 입에서 나는 돌멩이 부서지는 소리에 나를 한 번 보고 크게 웃는다. 얘도 커피 좋아해? 하여간 맛있는 건 애들이 귀신같이 제일 잘 알아. 자, 아 해 봐. 경수 엄마가 말했다.
아-
쫍쫍쫍 소리를 내며 삼삼삼을 빨아먹었다. 삼삼삼은 금방 가고 오독오독 시간은 좀 길다. 오독오독이 끝나야 다시 아 할 수 있는데. 마음에 급해져서 아그극 빠각 열심히 얼음을 씹었다. 경수 엄마가 나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우리 경수도 이걸 얼마나 탐내는지 몰라. 얘도 그러네. 경수 엄마가 계속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경수 이야기가 계속됐다. 애가 누굴 닮아 그렇게 산만한지 모르겠어. 남자애들은 다 그런가? 경수 아빠는 남자애들은 다 그렇다는데 어휴 나는 정말 걱정이야. 그래도 우리 애가…
아-
경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엄마와 경수 엄마 사이에 앉아 계속 입을 벌렸다. 엄마와 경수 엄마는 계속 경수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내 입에 얼음을 넣어줬다. 이런 거라면 경수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동생이 깨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는 계속 아-하고 엄마와 엄마 사이에서 입을 벌렸다. 달고 쓴 삼삼삼과 얼음과 여름과 경수 없는 경수 이야기.
오늘 밤의 천장 무늬는 그래서, 주전자의 휘파람 소리일까 뜨거운 삼삼삼일까 얼음넣은 삼삼삼일까 아-하는 내 목소리일까? 아직 못 정했는데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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