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도 쉽지 않은 한 달이었습니다.
이태원 참사 재판에 들어가기 시작한 지도 1년이 넘었는데요. 지난 한 달은 공덕동 서울서부지방법원이 가장 북적인 때였습니다.
9월 30일은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 10월 17일은 서울경찰청 관계자들의 1심 선고일이었습니다.
두 재판부는 각각 용산구청 그리고 서울경찰청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봐서 무죄로 판단합니다"
선고가 끝나자마자, 항의가 쏟아졌습니다.
"국민이 누굴 믿고 길거리를 걸을 수 있는 건데!", "158명이나 죽었어!", "사법부도 죽었어. 판사도 죽었어", "이게 어떻게 무죕니까?", "158명만 죽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가족과…"
거센 항의에 재판장은 선고 후 안내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판사 두 사람과 법정을 떠났습니다.
피고인석에 서 있던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도 곧 다른 문으로 나갔습니다.
이날 한 유가족은 고개를 깊이 떨군 채 법정 앞에 한참을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용산구청 선고일엔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가장 먼저 방청석을 박차고 나갔던 분이었습니다.
20일 전 기자들 앞에서
"오늘의 참담한 결과를 가지고 어떻게 2주기를 견뎌내야 할지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나갈 것입니다. 꼭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외쳤던 것과 다른 모습에 그대로 지나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어떤 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그대로 지나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오전에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법원 바깥은 예상처럼 혼란스러웠습니다.
경찰이 주차장을 메웠고, 기자도 너무 많았습니다.
유가족들은 소리치고 화를 내고 울었습니다. 기자들은 가장 울부짖는 유가족, 바닥에 무너진 유가족에게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이전에도 이런 상황이 되면 "그만 좀 찍어!", "찍지 마세요!"라는 항의가 나왔지만, 또 도돌이표였습니다.
저는 그런 현장을 뒤로 하고, 버스를 타고 서초동으로 향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박성민 전 서울청 정보부장의 2심 재판이 있었거든요. 박 전 부장은 참사 이후 핼러윈 관련 경찰 보고서를 삭제하라고 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상태입니다.
오후의 법정은 고요했습니다.
검사는 오전과 같은 사람이었지만, 법정은 작았고 방청객도 5명 정도로 훨씬 적었습니다.
박 전 부장의 변호인은 오전의 무죄 판결을 이 재판에서도 참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박 전 부장이 삭제하라고 한 보고서는 서울청 등 경찰의 잘못에 대한 증거일 수 있는 자료였습니다. 서울청 피고인들이 무죄라면, 박 전 부장의 혐의도 줄어들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날 제가 목격한, '김광호 무죄'의 두 번째 여파였습니다.
* * *
사회적 참사는 수많은 원인이 겹쳐 발생하고, 책임자 처벌만으로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참사의 책임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현재 사법 시스템의 문제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두 번의 무죄 판결이 가져올 여파가 걱정이 됩니다.
김광호 전 청장은 올해 1월 재판에 넘겨져 직위해제(일시적으로 직무에서 물러나는 처분)되기 전까지 서울경찰청장 업무를 계속해 왔고,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지난해 6월 보석으로 구속에서 풀려난 뒤 구청장 업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재판을 받진 않았지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여전히 직을 지키고 있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임기를 모두 채우고 지난 8월 퇴임했습니다)
이렇듯 지난 2년 동안 책임자들이 정치적이고 도의적 책임을 지지 않은 상황에서 형사적 책임에 대해 일종의 '면죄부'를 얻게 된 겁니다.
하지만 아직 재판이 남았습니다. 곧 이어질 2심 재판에서도 법정을 지켜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