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글 이외의 삶에 신경 쓸 일이 있어 통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이러다 아주 못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어요. 때때로 애정은 불안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불안 때문에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모순된 말이지만, 분명 사랑하는 중엔 불안하기도 하거든요. ‘어찌나 사랑이라는 단어가 포용하는 것이 많으면, 사랑으로부터 저렇게 많은 감정이 파생되나….’ 같은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제법 많은 부분을 가리고 사는 것일지도 모르고요. 다만 그 가림마저 다시 포용하며 하얗게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지나가다 들은 말이 생각납니다. 시를 쓰지 못한 순간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장 말입니다. 이제는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오늘 편지는 9월의 초입에 도착할 것입니다. 독자님의 마지막 날은, 그리고 시작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너무도 익숙해진 얼굴들, 떠나가진 않았나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시간 안에 갇혀있는 것도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 달의 끝에 서 있는 나는 이번에도 역시 두려움을 마주했습니다. ‘두려움 주기’라고 한다면 말이 될 정도로 끔찍하게 규칙적이고, 필연적입니다. 그래도 ‘다른 주기 대할 때처럼 대비하는 마음도 단단히 먹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져 하루만이라도 시선과 의미 부여를 동일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뜻 없이 시선을 둔 곳엔 이미 지나간, 앞으로 지나갈 풍경들이 저 홀로 펼쳐지고 있었어요.


이것은 주기를 초월한 무언가였습니다. 그곳에 서서 이들이 아주 등을 보이진 않았구나. ‘나 빈번히 사랑하며 살았구나. 그래도 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초입에 내디딘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종종 여러분과 사랑할 삶에 대해, 이미 지나간 삶에 대해 그밖에 놓인 것들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어떤 형태든, 저의 시절을 닮은 문장에 담아보겠습니다.


밤이 제법 서늘해졌어요. 산책하기 좋은 날씨 같아서 잠시 밖에 나가보려 합니다. 오늘도 부디 온전하세요, 당신.




24년 9월 4일

임해온 드림

바다는 바다 아닌 곳에서 죽을 수 없고, 숲은 서로가 얽히는 방향으로 점점 길어지는데 대체 우리는 왜 서로의 곁에서 소멸하는가. 

_240904
회고_


빈 식탁에 여름을 엎질렀다


그러자 여름은

식탁 반대편

울타리 너머로 넘어갈 준비를 했다


뜨겁던 햇살만이 모조리 여름이었다는 듯

주위는 컴컴해지고 


벌써 가는구나

손 뻗으면


손금 사이로 스며드는,

잡지 않아도 잡히는 순간이

일렁이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계절은 본디 물결 같다는 사실도

결국엔 손가락과 손바닥 사이가 비어갈 것도

알고 있었다*


너무 많이

너무 많이 안 나머지


익숙해진 풍경이

저 홀로 펼쳐질 거라는 생각과

어쩌면 울타리엔 경계가 없을 거란 생각이

보폭을 넓힐 때쯤엔


영원이란 걸 믿어볼 수도 있겠다




*안희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문장 구조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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