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의 선부론, 시진핑의 공동부유...46년의 시간을 관통한 두 회의를 비교해 드릴게요!
24.07.18(목)  I  No.2  I  구독하기
중국 광둥성 선전시가 내려다 보이는 롄화산 공원 정상에 세워져 있는 덩샤오핑 동상. 앞으로 보면서 힘차게 걷고 있는 모습의 덩샤오핑이 중단없는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느낌을 준다. 40여년 전까지 한적한 어촌이었던 이 곳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세계적인 첨단과학기술 도시가 됐다. 사진=이석우기자    

관영매체들, 3중전회 논평에서 현대화된 초강대국 건설 강조

신화통신, 인민일보 등 중국의 관영 매체들은 15일 개막된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20기 3중전회)를 46년 전 11기 3중전회와 비교하면서 두 회의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개혁·개방 노선을 이끈 덩샤오핑에 비견하며 분위기 띄우고 있다.


46년 전 덩샤오핑은 어떤 일을 했으며, 중국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일까.

중국 공산당의 수장인 총서기를 겸하고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도한 이번 3중전회는 어떤 의미를 갖길래 두 회의를 같은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걸까.


회의 개막일인 15일 1면 머리기사로 같은 내용의 논평을 실은 중국공산당의 두 기관지에서 해답을 엿볼 수 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이론지인 광명일보는 이날 1면 머리기사로 관영 신화통신의 '진일보한 전면 심화 개혁으로 중국식 현대화의 광활한 전망을 열자'라는 제목의 논평을 실었다. 여기서 중국식 현대화란 초강대국 중국의 건설을 의미한다. 


초강대국 건설은 시진핑 주석의 지도력 아래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민일보는 논평에서 "46년 전 11기 3중전회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면서 "20기 3중전회는 반드시 중국 개혁·개방의 시대를 표시하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이번 회의에 부여하는 중국 지도부의 평가와 의의를 읽을 수 있다.


46년 전 덩샤오핑이 추구했던 목표가 가난에서 벗어나 현대화된 산업국가를 만드는 것이었다면, 이미 G2국가가 된 시진핑의 중국은 '중국식 현대화 강국'(초강대국)의 완성으로 요약된다. 시진핑의 지도 아래 미국에 버금가는 혹은 그를 뛰어넘는 위대한 중국을 건설하는 계기가 이번 3중전회라는 것이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의 롄화산 공원 정상에서 내려다 본 선전 시내. 40여년 전 한적한 어촌이었던 이곳은 46년전 덩샤오핑이 주도한 11기 3중전회에서 결정한 개혁개방 정책으로 인구 1800만명의 세계적인 첨단과학기술 도시가 됐다. 사진=이석우기자  

46년전 3중전회, 가난에서 벗어난 현대화된 산업국가 만들어

46년 전 11기 3중전회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을 이념 투쟁과 가난에서 건져내 현대화된 산업국가 수준에 올려놓았다면, 이제 시진핑의 20기 3중전회는 초강대국 중국의 완성에 속도를 내는 전환점인 셈이다.


덩샤오핑은 "누구든 먼저 부자가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라는 '선부론'을 주장해 국가의 정책으로 공인시켰다. 반면 46년후 시진핑 주석은 '우리 함께'를 강조한 '공동부유'를 강조하고 있다.


1978년 11기 3중전회는 왜 중국 현대사에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나? 11기 3중 전회는 중국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역사적인 분수령이었다. 이념 및 계급 투쟁을 앞세운 '마오쩌둥 시대'를 접고 개혁개방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연 역사적인 결정들이 나왔다. 중국 공산당은 이 회의를 통해 당과 정부의 업무 중심을 경제 건설로 전환시켰다. 계급 및 이념 투쟁에 발목이 잡혀 있던 중국을 개혁·개방 노선으로 진로를 확 틀어버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11기 3중전회의 정신은 분명했다. 계급 및 이념 투쟁에서 벗어나 중국 공산당과 국가의 중점을 경제 건설에 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먼저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부자가 돼라"는 '선부론'을 내세웠다. 그리고 40여년 동안 이 같은 '선부론'의 약속을 중국 공산당과 중국 인민들은 소중하게 지키면서 불문율로 유지해 왔다. 중국인들은 이를 '덩샤오핑의 약속'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 지난 40여년 동안 경제 발전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부국강병의 길로 매진해 올 수 있었다. 지금의 중국은 덩샤오핑과 그가 주도한 1978년 11기 3중전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990년 전후로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는 풍파 속에서도 중국 공산당은 거뜬했다. 경제성장의 성과와 과실을 일당 독재를 정당화하는 방패로 내세우면서 강력한 지도력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개혁개방의 성과와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유연성 덕택이었다. 정치적 안정까지 이뤄낸 바탕 속에서 중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룩하며 40여년이 지난 지금 미국을 초조하게 하는 G2 국가가 됐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가 내려다 보이는 롄화산 공원 정상에 세워져 있는 덩샤오핑 동상 앞에 선전시의 한 은행 직원들이 단체로 참배를 하고 있다. 이들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의 발전이 이뤄졌다면서 존경을 표시하고 있었다. 사진=이석우기자

덩샤오핑의 '선부론' 약속, "가난은 공산주의가 아니다"

덩샤오핑은 국민들에게 "가난은 공산주의가 아니다"라면서 "중국 실정에 맞는 사회주의를 실천해야 한다"라고 천명했다. 자발성을 발휘해서 잘살자는 메시지를 중국 대륙 전역에 보냈다. 이 같은 그의 메시지는 중국이 1978년 이후,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이 공동부유를 강조하기 전까지 중국 공산당과 중국 인민들간의 소중한 약속이자 중국인들의 창조성과 자발성, 적극성을 이끌어 내는 동기 부여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


1978년 12월 개최된 중국공산당 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11기 3중전회)는 계급 및 이념투쟁을 강조해 온 소위 '사인방' 등 좌경주의자들을 누르고 천신만고 끝에 이뤄낸 실용주의자들의 성과이기도 했다.


신중국의 절대적인 지도자 마오쩌둥이 1976년 9월 9일 사망한 뒤 중국의 실용주의자들은 2단계의 걸친 치열한 권력 투쟁 끝에 11기 3중전회에서 개혁개방 정책의 선언을 이뤄낼 수 있었다.


첫 단계는 마오쩌둥의 부인인 장칭을 위시한 과격 '좌경주의자'들인 '사인방' 세력을 '궁중 쿠데타' 형식을 통해 몰아낸 것이다. 마오쩌둥이 사망한 지 한달 만인 그 해 10월 6일 국가주석이던 화궈방을 설득해 국방부장(장관)예젠잉 등의 주도로 장칭 등 '사인방' 세력을 체포한다. 장칭을 비롯해 당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주석 왕훙원, 정치국 상임위원 겸 국무원 부총리 장춘차오, 정치국 위원 야오원위안 등이 체포되면서, 문화대혁명은 막을 내린다.


이어 두번째 단계로는 마오의 유산을 끌어안고 시장경제와 개혁개방에 저항하던 마오쩌둥의 공식 후계자 화궈펑을 밀어내고 덩샤핑의 심복들인 후야오방, 자오즈양 등이 공산당 총서기 등 주요 자리에 앉으며 개혁개방 세력을 전면에 등장시키게 된다.

지난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리창 총리와 일어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콩 SCMP 캡처

불평등 심화 속에 공동부유 기치 든 시진핑

이런 과정을 거쳐 11기 3중전회는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천명하며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국가주도형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주도할 수 있었다.


그 뒤 중국에서는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잡는 게 좋은 고양이다." "계획이 곧 사회주의가 아닌 것처럼, 시장경제도 자본주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건설하자."는 덩샤오핑의 신조와 지시가 확산되고 회자되면서 중국인들은 시장과 개혁개방의 길로 뛰어들게 됐다.


반면, 46년 동안의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불평등의 심화라는 골을 패게 했다. "미국과 갈등을 만들지 말고, 고개를 들어 1등을 하려고 애쓰지도 말라"는 국제관계와 관련한 덩샤오핑의 유언도 이제는 지나간 말이 됐다.


이런 속에서 20기 3중전회는 어떤 의미의 메시지를 발신할까.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5일 별도 논평에서 "오늘날 개혁은 새로운 역사적 고비를 맞았다"면서 "2035년까지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제도를 건설해 이번 세기 중반,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을 위한 견실한 기초를 놓는 것"이 시진핑식 '전면 개혁 심화'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번 20기 3중전회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시각이기도 하다.


이번 3중전회의 핵심은 공동부유와 초강대국 건설을 위한 로드맵
15일 개막돼 18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리는 20기 3중전회가 중국의 미래와 중국 경제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지방정부의 재정위기·부동산침체·기술자립 등 3대 경제 현안에 대한 해법과 '중국식 현대화 강국 건설'을 위한 시진핑 정부의 의지 및 전략을 담은 향후 10년 간의 로드맵이 나오기 때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천명한 '중국몽 실현'과 이를 위한 중국식 현대화 강국 건설을 위해 1단계로 규정한 2035년까지 10년 간의 경제발전 방향과 전략의 로드맵을 결정한다.

미국 등 선진국들의 견제 속에서도 중국식 발전 모델로 초강대국으로 올라서겠다는 강한 의지와 비전이 이번 로드맵에 선명하게 투영된다는 점에서 대내외의 관심이 지대하다. 중국식 발전 모델로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이 되겠다는 중국식 현대화 강국 건설은 2050년 달성 시점을 목표로 한다. 1단계로 2035년까지 기본적인 현대화 강국의 틀을 구축하고 그를 위한 로드맵이 이번 20기 3중전회에서 결정되고 공개되는 것이다.

46년 전 덩샤오핑이 주도한 11기 3중전회. 시진핑의 20기 3중전회. 46년전 '선부론'에 대한 약속이 현재 중국을 이뤄냈다면, 공동부유와 초강대국 건설에 대한 시진핑의 공약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어떤 미래를 만들어 나갈지 세계의 이목이 뜨겁다.
2018년 1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2차 회의에서 시진핑(가운데) 국가주석 겸 총서기가 손을 들어 찬성을 표시하고 있다. ⓒ 뉴시스

3중전회란

3중전회란 중국공산당의 최고 대의기관인 중앙위원회의 3차 전체회의를 뜻한다.
중앙위원 200명, 후보위원 170명 등이 9918만 명에 달하는 중국 공산당의 총의를 수렴해 결정한다. 공산당 최고지도자인 총서기(현재 시진핑 국가주석)를 정점으로 한다.


5년마다 새로 구성되며 5년 동안 일곱 차례의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는데 이 가운데 세 번째로 열리는 회의라고 해서 '3중전회'라고 부른다. 세번째 회의인 3중 전회에서는 경제 원칙과 방향에 대한 당과 지도부의 입장을 결정한다. 첫번째, 두 번째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최고 지도자 및 당의 고위 지도부 인선을 한다. 이번 3중전회는 지난해 열려야 했지만 1년 가까이 미뤄지다 이번에 열렸다. 경제 침체 속에서 해법에 대한 이견 및 주요 인사안의 지연 등이 이유로 지적됐다.


1978년 제11기 3중전회는 역사적인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했고,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이끈 1993년 제14기 3중전회에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시진핑이 최고지도자가 된 2013년 첫 3중전회에서는 개혁의 전면적 심화와 시장 결정권을 강조하면서도 국가안전, 반부패, 군 개혁 등을 내세웠다.


3중전회의 결정사안들은 구체적인 정책 도출보다는 방향성에 대한 제시가 주를 이룬다. 3중전회가 끝나면 각 부처들은 이를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다듬는다. 이번 3중 전회는 다음번 15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2026~2030년)의 방향성을 제시할 뿐 아니라 2035년까지의 경제 발전의 로드맵을 도출한다는 점에서 무게가 있다. 


4중전회는 정치외교 등 국가전략문제의 주요 사항들을 결정한다. 내년 가을 15차 5개년 계획에 대한 당의 입장을 담은 건의안은 중앙위원회 5차 회의인 5중전회를 통해 나온다.

"중국의 현대화 초강대국 건설
 시진핑의 공약,
 시작은 46년전 덩샤오핑의 약속 선부론에서 출발" 
written by Seokwoo Lee(The Financial News)
edited by Heisun Chang(The Financial News)
매주 새로운 소식이 궁금하다면
아래의 구독 버튼을 눌러주세요!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315 파이낸셜뉴스
위 레터에 포함된 모든 콘텐츠 저작권은 파이낸셜뉴스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