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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단 레터 없는 한 주 잘 보내셨나요!
저는 님이 무척 보고 싶었습니다🤭
오늘의 편지는 tvN 「알쓸인잡」의 천문학자이자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의 저자인 심채경 선생님이
연구자로서의 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연구나 공부를 일로 삼는 사람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이끌어가는지,
함께 읽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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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채경
국내에 몇 없는 행성과학자이자 여성 천문학자로,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있다. 2019년 『네이처』가 미래의 달 과학을 이끌어갈 차세대 과학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옮긴 책으로 『우아한 우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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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연구자입니다. 대학에서 천문학의 한갈래인 행성과학을 전공했고, 전공을 살려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학박사이기도 합니다. 어디 나가서는 박사학위 그런 거 운전면허 같은 거라고, 학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박사가 된 뒤에 얼마나 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스스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건 박사를 받은 다음에나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요. 천문학자로 살려면 박사학위가 출발선이므로, 학위가 없으면 애초에 출발도 하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20대의 시간 대부분을, 혹은 그 이상을 대학원에서 보내야 합니다. 제 경우는 ‘그 이상’의 시간이었습니다.
대학원 생활은 길고 지루했습니다. 이유는 많았어요. 우선 저는 천재가 아니었고요, 학위를 받으려면 강의를 듣는 것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고 알아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오늘 공부한 만큼의 성취가 오늘 다가오는 일 같은 건 결코 일어나지 않았죠. 아무리 해도 제자리인 것만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어요. 일한 만큼 성과가 보이고 이뤄낸 만큼 돈을 번다는 점에서, 인형 눈알 붙이기나 피자 상자 접기가 얼마나 훌륭한 작업인가 생각했습니다.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성과는 노력에 선형적으로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요. 특히 공부의 성과는 계단식으로 옵니다. 물이 끓을 때 겉으로는 별일 없어 보이다가 어느 순간 끓어오르는 것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매양 제자리걸음인 듯하다가 어느 순간 쑤욱 성장하는 시기가 오죠. 그 점핑의 희열을 대체 언제 맛볼 수 있을지,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혹시 그런 순간이 영영 오지 않는다면 어쩌죠?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내가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이 가정용 인덕션인지 영업용 가스레인지인지 캠핑 초보의 화로 속 덜 마른 장작인지를 도통 알 길이 없습니다. 혹시 불을 붙이기가 무섭게 푸슈슉, 꺼져버렸는지도 모르죠. 누군가 나의 노력에 미터기를 달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은 7노력을 했구나, 어제보다 2노력 부족했으니 내일 꼭 보충하렴, 하고 누군가 말해준다면 조금 더 견디기 쉬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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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학원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회에서 자신의 연구 내용을 발표할 때, 외적인 부분까지 상당히 신경을 쓴다는 겁니다. 학회에서는 세미나실 시간을 배정받아 짧은 강연으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하고, 자신의 성과를 큰 종이에 포스터처럼 출력해와서 발표하기도 합니다. 포스터 발표장에 가면 줄줄이 서 있는 패널에 붙여 놓은 각자의 포스터 앞에 선 발표자들이 오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준비한 걸 설명해주죠. 소식의 주인공인 그 학생은 포스터 자체를 성심껏 디자인할 뿐만 아니라, 포스터와 비슷한 색상의 옷을 입고, 포스터에 담긴 그래프를 형상화한 소품까지 준비한답니다. 자신의 포스터를 꼭 닮은 차림으로 서 있는 발표자를 다른 학회 참석자들이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울 겁니다. 연구 내용 설명을 청하기도 하고, 아직 학생이라 부족한 점을 해결할 힌트가 될 만한 아이디어를 주기도 합니다. 많은 이의 관심을 끌고, 최선을 다해 발표하는 인상적인 모습에 ‘우수 포스터상’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합니다. 아마 그건 학술 발표라기보다는 퍼포먼스, 공연, 행위예술의 경지라고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연구자의 발표 능력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발표를 잘하는 것과 좋은 연구자가 되는 것이 온전히 같은 목표를 지향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대중과 소통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연구하기도 부족한 시간에 그래프를 닮은 소품 만들기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낭비일지도 모릅니다. 우수 포스터상이 밝은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고되고 지루한 대학원생의 일상을 생각해 보면, 중요한 사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선, 무척 즐겁고 재밌는, 잊지 못할 사건이죠. 선배 연구자들은 시간이 좀 지난 뒤에도 그 학생을 쉽게 기억해낼 겁니다. 무엇보다도, 무언가 ‘해냈다’는 감각, 도전하고 이루어낸 경험을 갖게 됩니다. 그 기억으로 또 하루, 어쩌면 몇주, 어쩌면 몇달을 더 버텨볼 수 있습니다. 다시 지쳐갈 즈음,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필요한 또다른 재료를 찾아낼 원동력을 얻습니다.
저는 포스터를 닮은 옷차림 같은 걸 준비하지는 않지만, 일년에 한두번 열리는 정기 학회에 발표 신청하는 시기가 되면 언제나 고민을 시작합니다. 뭐라도 발표할 것을 만들어보려고 머리를 쥐어짭니다. 자랑할 만한 연구 성과가 있을 때는 신이 나서 발표를 신청하지만, 아직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이번 학회는 그냥 넘겨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면, 내세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그런 식으로 몇번의 학회에 연달아 불참하다보면,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자책감과 자괴감의 늪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럴 때는 일단 학회에 발표 신청을 해야 합니다. 아직 설익은 내용이라도, 나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봐 부끄럽더라도, 한번 최선을 다해봐야 합니다.
발표가 모든 면에서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용에 자신 없으면 발표자료 디자인에 힘을 좀 줄 수도 있고, 아나운서 톤으로 말하는 연습을 할 수도 있습니다. 대본을 달달 외워서 정해진 발표 시간을 딱 맞추거나, 관련된 동영상 자료를 멋진 걸로 하나 준비해서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발표가 끝난 뒤 어떤 성취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종류든 간에 우리는 사소한 성취라도 느껴야 큰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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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런 것을 ‘사소한 성공의 징검다리’라고 부릅니다. 원대한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아직 끓지 않고 단속적으로 부글거리기만 하는 상태로 기약도 없는 세월을 보내야 한다면 지향점에 이르지 못하고 부아가 먼저 끓어오르거나 제풀에 지쳐 놓아버리게 됩니다. 넓은 개울을 한 걸음에 건널 수는 없지만,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면 그저 작은 걸음을 하나씩 떼는 것만으로도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다음 징검다리가 너무 먼 곳에 놓이지 않도록, 나 자신이 지쳐 쓰러지기 전에 스스로에게 다음 징검다리를 놓아 주어야 합니다. 더이상 징검다리를 놓을 재료마저 없다면, 다른 곳에서 조달할 수도 있습니다. 헬스장이나 필라테스 학원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고, 가족에게 멋진 요리를 해줄 수도 있습니다.
언제 졸업할 수 있을지, 졸업이란 걸 할 수는 있을지 자꾸만 물음표가 달리던 어느 날, 컴퓨터활용능력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천문학자가 되려는 사람의 이력서에는 논문 실적이 중요하지 그런 자격증은 적을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보러 갔습니다. 응급상황이었거든요.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서 금방이라도 껍데기만 남은 채 폭삭 주저앉게 될 것만 같은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어요. 허구한 날 수식을 코딩하고 그래프를 그리는 이공계 대학원생에게 컴퓨터 활용능력이란 굳이 자격증 같은 걸 따서 증명할 필요도 없는 기본 소양입니다. 그리고 저는 어린 시절, 모니터가 흑백이었을 때부터 컴퓨터와 친하게 지내왔어요. 그래서, 바로 그 때문에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스스로를 칭찬할 일이 있은 지가 너무 오래여서, 무언가를 성취해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좋은 점수라는 걸 받고 싶었거든요. “아무리 해도 나는 안 되나봐”라는 늪에 빠져 더이상 허우적거릴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응급상황, 저 스스로에게 내린 긴급 처방이었습니다. 컴퓨터 활용능력시험이 아니었다면 초등학생들 틈에 앉아 한자능력시험 8급, 7급 시험을 봤을지도 몰라요. 중요한 건 그게 뭐가 되었든 내가 잘해낼 수 있을 것임이 분명한,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당장의 구체적인 목표가 필요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알량한 성취라도 원하고 있음을 인지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렇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뭐라도 했다는 것. 그게 중요했습니다.
나의 목숨을 살려만 준다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적의 정신승리’라는 징검다리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주변의 돌이란 돌을 최대한 그러모아 나 스스로 만들어낸 발걸음 하나니까요. 비틀거리다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버릴 뻔한 나 자신을 살려냈으니까요. 다음 번엔 조금 더, 그 다음 번엔 조금 더 크고 멋진 돌을 놓으면 됩니다. 크고 멋진 돌들 사이에 작은 돌들이 앙증맞게 놓여 있는 것도 좋겠지요. 어느 날 돌 틈에서 잡초 한포기가 무심한 듯 올라올지도, 풀꽃 한송이가 피어날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다음 디딤돌을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느라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제자리걸음도 걸음이니까요.
그렇게 크고 작고 번듯하고 울퉁불퉁한 돌들이 잔뜩 놓인 징검다리를 따라, 성공으로 가는 사소한 징검다리를 놓으며, 우리는 개울도 진흙탕도 무사히 건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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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적의 정신승리’라는 징검다리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때로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서
데려가는 것이 인생의 비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앞에 놓을 수 있는 징검돌은 무엇이 있을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오늘 편지 어떻게 읽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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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와 함께 외친 그날의 함성,
독립유공자 후손 주거개선 캠페인
주거지원 국제NGO 한국 해비타트는
2017년부터 나라를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을 위한
주거 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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